사38:17-20 감사합니다
어느 날, 메튜헨리 목사님이 저녁 늦게 집에 돌아오다가 그만 골목에서 강도를 만나 얻어맞고, 옷이 찢어지고 시계와 가지고 있던 돈도 다 빼았겼다. 만신창이의 모습으로 집에 돌아온 목사님의 모습을 본 가족들이 너무나 분해하면서 경찰에 신고하려 하자 만류하고 자기의 서재에 들어가서 무릎을 꿇고 세 가지 감사 기도를 했다.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내가 다치고 돈을 빼앗기긴 했지만 생명을 잃지 않았으니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이 골목을 12년을 다녔으나 오늘 같은 날이 없었기에 감사합니다. 세상에는 남을 헤치려는 못된 강도가 많은데 나는 목사가 되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하면서 감사 기도를 드린 후, 메튜헨리 목사님은 그 강도가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기를 간구하였다. (원수를 위해 축복하며 기도함) 그렇다. 감사는 인간의 모든 불행과 고통을 행복과 기쁨으로 바꾸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감사는 바퀴와 같아 인생을 잘 굴러가게 한다. 감사는 날개와 같아 인생을 높이 올라가게 한다. 감사는 조건과 환경을 초월하게 한다. 감사는 기쁨을 몰고 오고, 감사는 환난 폭풍의 진로를 바꾸는 힘이 있어 사람의 인생을 바뀌어 놓는다. 그러므로 감사는 행복의 집으로 들어가는 출입문이다.
우리 모두는 항상 두 가지 말을 잘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하나는 미안하다는 말이고, 또 하나는 감사하다는 말이다. 감사하다는 말은 가장 위대한 천국 언어다. 살전5:18에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하셨다. 사랑하는 여러분, 환경이 어떠하든지 감사하면 그 심령에는 천국이 펼쳐진다. 그러나 원망 불평하면 그 심령은 지옥이 펼쳐진다. 세상을 살면서 후회 없이 사는 방법이 딱 한 가지 있다. 감사하면서 사는 것이다. 범사에 감사할 때, 진정한 행복을 누리게 됨을 기억하길 바란다. 본문에 히스기야는 “오직 살아있는 자가 감사를 한다.” 고백을 했다. 18-19절 중반절에 “스올이 주께 감사하지 못하며 사망이 주를 찬양하지 못하며 구덩이에 들어간 자가 주의 신실을 바라지 못하되 오직 산 자 곧 산 자는 오늘 내가 하는 것과 같이 주께 감사하며....” 죽은 자는 절대로 감사할 수 없다. 그러므로 살아있으나 감사를 모르는 자는 죽은 자와 같다. (심령이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가 있음) 병을 이기고 나면 우리 몸이 더욱 건강해지듯이 환난, 고통을 이기고 나면 우리 심령이 더욱 강해진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를 강하게 만드시려고 때로 고통의 터널과 인생 겨울을 지나가게 하신다.
17절에 “보옵소서 내게 큰 고통을 더하신 것은 내게 평안을 주려 하심이라 주께서 내 영혼을 사랑하사 멸망의 구덩이에서 건지셨고 내 모든 죄를 주의 등 뒤에 던지셨나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에게 큰 고통을 주시지만 결국은 멸망의 구덩이에서 건지시고 모든 죄를 던져 버리신다. 우리에게 다가 온 고통과 문제는 행복의 예고편이다. 엄동설한 같은 고통과 문제가 지나고 나면 인생의 따스한 봄날이 오고, 행복의 꽃이 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범사에 “감사합니다.” 고백하며 살아야 하고 감사하는 법을 반드시 주변 사람들에게 가르쳐줘야 한다. 19절 하반절에 “주의 신실을 아버지가 그의 자녀에게 알게 하리이다.” 미국 인디애나주의 한 초등학교에 다니던 어떤 학생이 뇌종양에 걸렸는데 병원에 입원해 방사선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머리가 다 빠졌다. 다행히 치료 경과가 좋아서 퇴원하게 되어 선생님에게 연락이 왔다. 선생님이 종례 시간에 같은 반 학생들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었다.
"얘들아! 내일 짐이 우리 곁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방사선 치료를 받아서 머리가 다 빠졌단다. 놀리지 말고 위로해주길 바란다." 수업이 끝났다. 다른 때 같으면 우르르 다 몰려 나갔을 텐데 조용했다. 조금 후에 학생들 사이에 토론이 벌어졌다. "어떻게 짐을 위로할까?" 한 학생이 "우리도 모두 짐처럼 내일까지 머리를 깎고 오자!" 고 했다. 다음 날 아침 짐이 등교를 했다. 등교를 해서 보니까 모든 남학생들이 빡빡머리였다. 서로 보고 다 웃었다. 그리고 나서 곧 그곳은 눈물바다가 되었다. 짐도 울었고, 선생님도 울었고, 반의 모든 학생들이 서로 감동을 받아 엉엉 울었다. 짐은 선생님과 친구들의 배려에 너무 감사했다. (그후, 짐은 평안한 학교생활을 하게 됨) 히스기야는 20절에 “여호와께서 나를 구원하시리니 우리가 종신토록 여호와의 전에서 수금으로 나의 노래를 노래하리로다.” 고백하며 하나님께 감사 찬양을 올려 드렸다. 히스기야는 죽을 때까지 하나님께 감사 찬양을 드리겠다고 고백을 하였다.
그는 감사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히스기야는 항상 감사하며 일평생 하나님의 은혜에 빚진 자로 살아가겠다고 고백한 것이었다. 나폴레옹이 고백했다.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 이제 우리들은 이렇게 고백하며 살았으면 좋겠다. "내 사전에 원망은 없다" 라고 말이다. 합3:17-18에 보면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하박국 선지자는 감사의 조건을 환경에서 찾지 않고 하나님에게서 찾았기 때문에 감사 찬송할 수가 있었다. 그렇다. “감사합니다.”가 없는 심령은 돈이 있어도 불평이고 없어도 불평이다. 그 심령은 관심을 기울여 주어도 불평이고 관심이 없어도 불평이다. 같은 물이라도 젖소가 마시며 우유가 되고 독사가 마시면 독이 된다. 똑같은 사건 속에서 “감사합니다”가 없는 심령은 만족하지 못하고 범사에 원망,불평을 하지만 “감사합니다”가 있는 심령은 범사에 하박국처럼 기쁨을 발견하게 되어 감사 찬송을 하게 된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떤 환경이 나에게 “감사합니다.” 말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범사에 “감사합니다.”를 말할 때 감사의 환경이 되는 것임을 기억하기 바란다. 아무리 힘이 들고 어려워도 감사의 조건을 찾아 감사하는 자가 지혜로운 자이다. 특히 정말 힘이 들고 어려울 때, “감사합니다.” 말하는 자가 진짜 감사하는 자다. 힘이 들고 어려울 때 한 번 감사하는 것이 일이 잘 되어 백 번 감사하는 것보다 훨씬 가치가 있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큰 문제는 "힘들고 어려운 환경"이 아니라 "감사합니다“가 없는 것이 가장 문제다. 중요한 것은 환경을 바꾸는 것 보다 나를 감사의 사람으로 바꾸는 것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감사하는 사람은 어디로 가든지 길이 열리지만 감사하지 않는 사람은 어디로 가든지 길이 막히게 된다. 계3:7에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가 이르시되..“ 말씀하셨다. 행복은 감사하는 자에게 오고,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복도 감사하는 자에게 온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시50:23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하셨다. 추수감사절을 맞이하여 ”범사에 감사합니다“. 감사 신앙을 회복하여 하나님께 인정받고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복을 누리는 가나안 가족이 되길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