ㅁ섬진강댐 재개발 사업의 취지ㅁ
과거 1965년도 섬진강댐이 준공되면서 운암면 소재지가 현재의 상운리 위치하게 되었는데 1969년 여름 집중호우가 내리자 면사무소를 비롯한 부락이 침수위기에 처했다.
운암면 소재지의 경우 '65년 댐 준공시 홍수위선의 지역으로 면사무소, 파출소,우체국 등 공공기관이 이전하게 되었으며, 임실군에서는 주택자금 융자 및 목재조달을 위한 벌채 허가를 지원, 현재와 같은 120여세대의 소재지가 형성 되었으나 "69년 집중호우로 댐 준공후 최초로 만수가 되자 면소재지를 비롯하여 350여 세대가 직접피해를 입어 큰 혼란을 겪은바 있으며, 재 측량 결과 홍수위선내로 판명 되었다.
(당시 샛터라는 현 소재지 본토에 살고있던 故이복남, 故양병문, 故김00 등 3가구는 홍수위선 위로 착오하여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았음.)
이때, 350여가구의 침수로 이재민이 발생하는등 혼란이 가중되자'69년부터 현재까지 홍수위 197.7m 보다 4.2m 낮은 193.5m로 댐의 담수능력이 비정상 적으로 운영되어 왔다.
지난 2002년 7월 14일 수자원개발 및 관리실태 감사원 감사결과 발표에 의하면 정부는 년간 14,400만톤의 용수가 허비되어 년간 43억원 이라는 엄청난 손실을 34년 동안이나 보아왔다고 조사 보고된 바 있다.
1940년에 착공 1965년네 준공된 섬진강댐은 총 저수용량 488백만(평방미터), 홍수조절용량 32백만톤, 최대유입량 3,378톤(200년빈도)를 1,868톤/초로 조절 방류하여 홍수예방을 하도록 건설되었다.
(섬진강댐공사지 1966년 100년빈도 확률강우량: 333mm/일)
지난 2000년 건설교통부와 수자원공사가 이상홍수에 대비한 댐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용역조사한 결과 1일에 749mm 폭우가 내릴 것으로 조사되어 비상여수로를 본 댐 좌안측에 설치하여 통수단면을 확대하고 치수능력을 증대하는 사업을 2008년 준공 예정으로 확정한 것이다.
ㅁ재개발 사업으로보는 향후 운암면의 변화 ㅁ
(운암면소재지 이주개발사업)
현, 운암면 소재지는 108세대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중 직접 침수세대는 58세대(운암초중학교 3.1운동 기념비 밑의 밭에서부터 故박천순씨댁과 운암시장에 이름)와 홍수위선외의 50여세대로 이루어져 있다.
정부에서는 이를 구분없이 하나로 묶어 이주개발 사업을 추진하여 구,운암중학교 부지를 중심으로 최기동씨 집에서부터 방범대사무실 위치에서 염재(아랫샛터) 최주성씨댁(대전역 이라고 일컬었던곳) 부근으로 일직선 4차선 제방을 쌓아 중학교 쪽으로 복토하여 신이주단지를 조성하는 것으로 확정하고 금년 상반기 섬진강댐 재개발사업 확정고시와 함께 본격 사업이 시행될 것으로 본다.(기반사업비 100억 확보)
용역 설계(안) 으로 보면
*호당 120평 규모로 108세대가 입주할 부지조성 마련.(호당 평수가 적다하여 주민과 협의 중에 있음)
*도시개발 계획법에 준하여 녹지공간 및 공원, 체련시설등이 계획되어 있음.
*중학교 앞을 지나는 현 도로는 9m 마을 안길 도로로 그대로 유지됨.
*관공서의위치: 운암농협은 그대로 존치되며, 박상철씨댁의 위치에 파출소가, 운암중학교옆 민가 부분
이 면사무소 면대본부 농촌지도소 우체국등의 기관이 위치한다.
(운암농협은 신덕농협과 통합할 계획으로 신덕면 희망주유소 부근으로 이전을 희망하고 있으나 주민대
책위원회의 강력한 반대에 처해 있음. 이유로는 주민의 불편함과 인구유출 및 이전에 따르는 보상비용
이 주민들의 부담으로 남기때문.)
*가구의위치: 중학교앞 길건너 들녘에서 염재쪽으로 전체 가구수의 40%이상이 자리하며, 수어촌에서
현,운암초중학교 담장까지 30%, 기타 10호씩 두곳으로 분산 위치 한다.
(영어마을: 섬진강 글로벌 빌리지 사업)
구, 운암중학교 부지에는 영어마을이 들어 선다.(참고사진: 카페 고향소식 올려짐)
첫해 약40억을 투자하여(교육청 30억, 임실군 10억) 금년 9월 개원을 목표로 사업에 착수할 것으로 보여진다.
확실한 운영 계획은 잘 모르지만 간단한 설명을 하자면 전국의 학부모들이 외국에 유학을 보내는 대신 영어마을에 1년의 수업과정으로 유학을 보내는 시스템인데, 영어마을 내에서는 아랍어,일본어, 중국어,불어등 세계 각지의 언어들이 총 망라되어 수업하는 곳으로 내부에서는 일체의 우리말을 쓰지 못한다.
년간 수백명씩 유학하고 떠난다.
지역에서 얻을 수 있는 시너지 효과는 엄청 크다 할 것이다.
(제2 강변 순환도로)
국사봉과 막은댐으로 이어지는 코스가 제1 순환 도로이다.
강진면(강진교)에서 시발되어 섬진강댐 관리소 앞을지나 운암대교 남단 운종리, 박실,청운리(거둔리),버들골, 지천리(도마테)를 약간 지나서 강변쪽으로 향하여 화적골과 염소농장(현 신만영씨 운영) 사이로 제3의 운암대교가 신축되어 사양리와 기암리, 소재지 천변길로 이어지는 사업이 제2 순환도로 건설 사업이다. (최근 며칠전에 착공 관계로 지주들에게 내용물이 전달된 것으로 알고 있다.)
또한, 관촌역 쪽에서 오는 4차선 도로가 신평까지 마무리 되어 있고 희망주유소와 외량리(양바리)쪽을 향해서 오고 있다.
외량리에서 부터는 현재 지나다니고 있는 작은불재로의 확장이 아니라 터널공법으로 내량리쪽에서 구이면 장팔리쪽 즉, 소금바위재를 지하로 관통하는 4차선이 뚫리어 전주에서 강진으로 이어지는 4차선 자동차 전용도로와 만나게 된다.
생각만해도 꿈만같던 이야기들이 눈앞의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일들이 2년쯤 있으면 전주평화동 까지는 안전속도로 가더라도 10분대에 진입할 수 있다.
도시근교의 전원지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천혜적인 자원은 고부가가치의 산업으로 연결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고 할 것이다.
ㅁ 숙제 ㅁ
(상수원보호구역 해제는 숙명적 과제)
상수원 보호구역 해제 문제가 지역주민과 임실군, 전라북도, 건교부, 환경단체등 논리가 정돈되어 있지 못하고 오락가락만 하고 있다.
1999년 당시 상수원 보호구역 지정 움직임에 우리지역 주민들은 삼복의 무더위 속에서 농사일도 포기한체 군청앞에서 결사 투쟁에 들어가 8월28일 지정된 순간까지 장장 70여일에 걸쳐 천막 농성을 하였다.
한마디로 기득권 자들의 음모라고 밖에는 볼수 없다.
당시, 전라북도지사 유00, 환경국장 유00, 담당 유00 의 정읍출신 인사들이 정읍 내장산 개발을 활성화하기 위하여 내장산저수지 상수원보호구역 해제의 대채 용수로 옥정호의 물을 담보로 할 수 밖에 없었던 처지였던 것이다.(그후, 내장저수지는 상수원 보호구역에서 해제 됨)
그 단면으로는 정작 지정되어야될 곳은, 옥정호의 물이 벗어나는 취수구에서 정읍,김제 부안으로 이어지는 첫 출발지인 정읍군 산외면 종산리에서 부터는 지정대상에서 제외시켜 옥정호에서 철저한 수질관리를 하여도 도수로를 보호관리 하지 못한다면 상수원으로서의 기능은 무의미 하다고 볼 것이다.
현재 그 도수로를 따라가다 보면 물길제방과 접하여 축산단지등이 즐비하다.
공교롭게도 그당시 임실군수는 운암분 이었고, 도의회의장은 임실군 분 이었다.
주민의 생계대책이 전혀 마련되지 않고 급행으로 처리된 졸속의 극치였다.
이로 인하여 옥정호를 기반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수많은 사람들의 생계가 막연하게 되었다.
70여명(산내,강진면 주민 제외)의 어부들이 일터를 잃어버려 년간 30억원의 생산이 멈춰졌고,
년간 20여만명에 이르는 낚시객들의 발길이 끊기면서 40여곳의 낚시도구 판매점의 손실액이 30억원,
낚시객을 실어나르던 유도선업등의 손실액이 20여억원, 운암민물고기 미식가들이 찿질않아 매운탕집등의 손실액이 약30억원 정도 추산하면 지역 전체에 미치는 금액이 년간 100억원을 웃돈다.
지역경제는 도탄 되어 있다.
거기에다 일반농가나 축산농가에서 받는 여러가지 규제들까지 합한다면 금원으로 환산될수 없다 하겠다.
임실사회의 지식인들도 요즘들어 많은걸 생각하게 될 것이다.
임실의 대표 브랜드인 임실치즈밸리사업이 옥정호 상수원 보호구역의 반경에 들어 있어서 입지를 선정하는데 정신적 부대적 비용이 만만치 않음 이었다.
임실의 중심부가 상수원보호구역 규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옥정호는 임실군의 寶庫이며 천혜적 자원 이다.
자연과 수질보호는 주민 모두가 노력하여 관리해 나가야 될 것이며
상수원 보호구역 해제는 운암면의 지역경제 회복은 물론이며, 임실발전의 축으로 자리잡게 해야할 것이다.
위의 모든 숙제를 마치는 날 운암면을 중심으로 임실의 미래는 세계에 내어 놓아도 자부심을 갖는 전원과 생산의 도시로 우뚝 설 것이다.
한강의 기적 ..........!! 옥정호의 기적 .......!!
2007. 3 강나루
첫댓글 그간의 투쟁과 노고의 결과치가 나왔군요, 이전하는 소재지의 멋진 조감이 이뤄지길 빕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의견일치란 그렇게 어려운것인가 봅니다. 말도많고 탈도 많더니... 시원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