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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라를 회복하여 예슈아를 닮아가는 성도님들 되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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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루살렘에 수전절이 이르니 때는 겨울이라 예수께서 성전 안 솔로몬 행각에서 거니시니 유대인들이 에워싸고 이르되 당신이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을 의혹하게 하려 하나이까 그리스도이면 밝히 말씀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거늘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요10:22-27)
1 수전절(하누카)의 주제: 누가 메시야인가?
예슈아께서 수전절에 갈릴리에서 부터 예루살렘 성전에 오셔서 솔로몬 행각을 거닐고 계셨다. 그때 유대인들이 예슈아를 둘러싸고 메시야라면 분명하게 말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때 예슈아께서 오히려 이렇게 말했다. "내가 이미 너희에게 말했지만 너희가 믿지 않는도다" 다시 말해 그들이 예슈아께서 메시야인지 모르는 이유는 예슈아께서 알아듣게 말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들이 예슈아를 믿지 않아서인 것이다. 그러면서 "나의 양이라면 나의 음성을 듣고 따르겠지만 나의 양이 아니기 때문에 나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 거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이들이 예슈아를 메시야로서 믿지 않는 것은 예슈아께서 양떼를 어둠에게 빼앗긴 것이 아니라 이들은 예슈아의 양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마지막 때도 들리는 대로 따라갈 것이다. 그분이 예슈아신지 적그리스도인지는 어떻게 듣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요10:22-27).
수전절의 주제는 '누가 메시야인가?'이다. 왜냐하면 예슈아께서 오시기 150년전쯤 마카비가 메시야처럼 일어나 이스라엘을 헬라로부터 구원했다. 완전한 구원을 가져오진 못했지만 성전을 되찾고 나라의 권위를 회복했다. 또다른 메시야는 헬라왕 안티오코스이다. 근느 모든 민족이 새로운 법, 새로운 질서로 하나되게 하려고 애썼다. 당시에도 많은 유대인이 마카비를 따랐고 많은 유대인이 마카비를 거절하고 헬라왕을 따랐다. 그러나 오늘날 유대인들은 수전절에 마카비와 같은 구원자 메시야를 찾는다. 마카비는 강한 용사였다. 그래서 망치라는 뜻의 마카비로 불렸다. 앞으로 메시야(그리스도)께서 오실 것이지만 적그리스도가 먼저 올 것이다. 그러므로 메시야를 분별하는 문제는 앞으로 우리에게 너무나도 큰 문제이다. 왜냐하면 예슈아께서는 구원을 주시지만 가짜 예슈아는 그와 더불어 사망하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 만일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행하지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려니와 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 하시니 (요10:37,38)
2 메시야의 조건은 아버지의 일이다
예슈아께서 이렇게 말했다. "만약 내가 아버지의 일을 행하지 않는다면 믿지 말라." 즉 이 말은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다면 메시야가 아니라는 말이다(요10:36-38). 아버지의 말씀이 무엇인가? 말씀중의 말씀은 언약이다. 언약궤안에 들어가 있는 언약 즉 율법(토라)이다. 즉 여호와의 명령을 행한다면 그는 참 메시야이다. 그러나 불법을 행한다면 그는 가짜 메시야 즉 적그리스도이다. 메시야가 참인지 거짓인지 분별하는 것이 너무 쉬운가? 그러나 온 세상이 불법에 미혹되어 있다면 참메시야를 분별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기억해야 할 것은 적그리스도는 불법한 자라는 것이다. 사랑을 말한다. 그러나 진리가 아닌 사랑을 말한다. 사랑을 말하지만 동성애를 말한다면 그것은 진리가 아니므로 진정한 의미의 사랑이 아닌 것이다. 또한 마지막 때도 믿음이 있다. 그러나 진리를 믿지 않고 거짓을 믿고 있다면 그것은 구원할 믿음이 아니라 심판받게 하는 믿음이다. 그러므로 좋은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개념이 중요하다. 자유를 말한다면 어떤 자유인가? 통일을 말한다면 어떤 통일인가? 평화를 말한다면 어떤 평화인가? 처럼 마지막 시대에는 개념으로 분별해야 한다. 개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법도이다. 하나님의 율법을 벗어난다면 그는 메시야가 아닌 불법한 적그리스도이다. (살후2:8-12).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그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시리라 악한 자의 나타남은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있으리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받지 못함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미혹의 역사를 그들에게 보내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살후2:8-12)
# 그가 장차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맺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또 포악하여 가증한 것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하게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
단12:11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하게 할 가증한 것을 세울 때부터 천이백구십 일을 지낼 것이요 (단9:27 12:11)
3 다니엘이 예언한 세상 끝날 (제사를 폐하고 우상을 세운다)
마지막 때 적그리스도는 7년 평화 언약을 맺을 것이며 처음에는 평화롭게 잘 지내다고 3년반 후부터 성전에서 드리던 제사와 예물을 없애고 그곳에 가증한 우상을 세울것이며 그때부터 1290일 즉 약 3년반을 지낼 것이다. 그동안 성도들은 큰 환란을 당하고 순교가 있을 것이다(단9:27 12:11).
다니엘의 예언을 어떤 사람은 마지막 때가 아니라 이미 이루어졌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왜냐하면 아주 유사한 일이 수전절에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평화 언약을 맺었지만 언약을 깨고 제사와 예물을 금했으며 성전에 가증한 우상을 세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당시 헬라왕 안티오코스를 앞으로 올 적그리스도의 예표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마지막 때를 사는 우리는 앞으로 적그리스도 때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어떤 모습일지 안티오코스를 통해 알아보자.
# 왕이 온 나라에 편지하여 모든 사람이 한 백성이 돼야 한다고 썼다. 그러므로 각자가 가지고 있는 관습을 버려야 한다고 했다. 그러자 모든 이방인이 왕의 명령을 받아들였다. 이스라엘의 많은 사람도 기꺼이 그의 종교를 받아들였고 우상에게 제사하고 안식일을 더럽혔다. 왕이 사신을 통해 예루살렘과 유다 여러 성읍에 이방인의 관습을 따르도록 다음과 같은 칙령을 내렸다. 성소에서 번제물과 희생 제물과 전제를 금하고 안식일과 절기를 금할 것 성소와 제사장들을 더럽힐 것 우상을 위하여 제단과 성전과 신당을 쌓고 돼지와 부정한 동물로 제사를 드릴 것 아들들을 할례받지 아니한 상태로 두고 부정하고 속된 모든 것으로 자신을 스스로 더럽힐 것 이렇게 하여 율법을 저버리고 모든 규례를 바꿀 것 누구든지 왕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는 자는 사형에 처할 것 (마카비서1:41-50)
4 적그리스도의 표상 안티오코스
안티오코스가 수많은 나라를 점령하여 많은 민족이 한백성이 (하나)되게 하려고 법을 제정했다. 헬라왕은 당시 바벨론 문화, 수메르 문화인 태양신을 섬기고 있었고 이는 대부분의 이방신도 이름만 다르지 동일했으므로 하나되는데 문제가 없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유대교였다. 유대적으로 사람은 법을 해석하고 판단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준행하기 위해서 있다. 사람은 하나님의 법으로 통치를 받아야지 법을 판단할 권리는 없다. 결코 법위에 사람이 있어서는 안된다. 이것이 성경적 유대적 가르침이다. 그래서 안티오코스가 모든 민족이 하나되도록 즉 자신의 가치관으로 통일시키고자 했을때 유대인들은 큰 난관에 봉착하게 되었다. 하나되는 것, 연합하는 것, 서로를 수용하는 것은 참으로 귀한 일이고 가치있는 일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며 아들 예슈아와 하나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이렇게 귀한 가르침과 하나됨을 사단은 왜곡하여 하나됨의 개념으로 오히려 하나님의 나라를 무너뜨리고 거룩함을 훼손하는데 사용한다. 그러므로 좋은 단어, 좋아보이는 말과 표현에 속아서는 안된다. 그로 인해 어떤 결과가 올지 넓게 보고 판단해야 한다. 그래야 위선자들의 말에 속지 않을 것이다.
안티오코스가 세운 법을 한번 살펴보자. 1 제사와 예물을 금한다. 2 샤밧과 절기를 금한다. 3 성소와 제사장을 더럽힌다. 4 우상을 세우고 돼지로 제사를 지내고 돼지 피를 뿌린다. 5 할례를 금한다. 6 돼지고기를 먹어 스스로를 더럽힌다. 7 율법을 버리고 모든 규례를 바꾼다. 8 왕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으면 사형시킨다. 놀랍게도 여러가지인것 같지만 결국 율법을 금한다는 말이다. 왜 어둠은 이토록 집요하게 헬라왕을 세워서 유대인들에게 율법을 금하고자 하는 걸까? 왜 어둠은 율법과 싸울까? 도대체 율법이 뭐길래? 사실 율법은 하나님의 통치이다. 하나님의 법도이므로 그 법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의 통치를 받고 있는 것이고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뜻이고 하나님께서 왕이시라는 뜻이다. 그것을 어둠은 증오하지 않겠는가? 스스로 왕이 되고 싶지 않겠는가? 심지어 이 땅에서도 왕이 되고 싶어 대통령을 탄핵시키는데 영의 세계에서는 얼마나 더 그렇겠는가? 율법을 불법화시킴으로써 어둠은 하나님을 탄핵시킬 수 있다. 즉 직무 정지시킬 수 있고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통치를 포기하게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자신의 법을 세움으로써 스스로 왕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어둠이 왕이 되는 유일한 방법은 율법을 없애는 것이다. 그래서 죄가 만연하면 그곳은 어둠이 통치하는 것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당시 기독교인이 있었다면 하나도 해당이 안된다. 왜냐하면 기독교의 교리가 헬라화되었기 때문이다. 즉 이방화되어서 이방인의 핍박을 받을 필요가 없다. 기독교 교리가 다 잘못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헌법과 같은 십계명을 회복하고 모든 율법을 회복해야 온전한 하나님의 통치를 받을 수 있고 거룩한 헌정질서가 세워져 어둠이 틈타지 못할 것이다. 즉 하나님의 나라를 대적하는 모든 반국가세력을 몰아낼 수 있다(마카비서1:41-50).
# 율법을 저버린 많은 백성이 그들과 연합하여 그 땅에서 악행을 저질렀고 이스라엘을 몰아내어 모든 도피처에 숨게 했다. 145년 키슬레브월 15일에 그들은 황폐케 하는 신상을 제단에 세웠다. 또 유다 주변 여러 성읍에 제단을 쌓고 집 문 앞과 거리에서 분향했다. 그들이 발견한 율법책은 산산조각내고 불태워 버렸다. 언약책이 어떤 사람의 소유인 것이 발견되거나 율법을 지키는 사람이 있으면 왕의 칙령에 따라 사형에 처했다. 그들은 이스라엘에서 권력을 휘두르며 그들을 대항하는 자들을 성읍에서 매달 잡아들여 학대했다. 그들은 그달 25일에 번제단 위에서 이교 제사를 드렸다. 조례에 따라 자기 자녀에게 할례를 베푼 여자를 죽이고, 그들의 가족과 그들에게 할례를 행한 자들을 죽였다. 또한, 어머니의 목에 아기들을 매달아 죽였다. (마카비서1:52-61)
5 어느 편에 설 것인가?
율법에 대한 핍박이 국가적으로 찾아왔을 때 많은 백성이 헬라즉 이집트와 연합하여 악행을 저질렀고 또한 많은 백성이 헬라를 피해 숨고 고통을 당하기 시작했다. 예슈아께서 오시기전 약 145년전 키슬레브월 15일에 헬라는 가증한 우상을 성전 제단에 세웠다. 율법책을 산산조각내고 불태웠다. 율법책을 가지도 있어도 죽였고 율법을 지키는 자들도 처형했다. 그리고 키슬레브월 25일에 더럽혀진 번제단에서 이교 제사를 드렸고 할례를 하는 자는 시술자뿐 아니라 아이와 온 가족을 죽였다. 정확히 3년 후에 마카비는 성전을 되찾고 키슬레브 25일에 성전을 하나님께 재봉헌했다. 어떤 사람은 그래서 크리스마스에 예배하는 것이 맞다고 정당성을 수전절의 역사에서 찾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키슬레브월은 유대력이다. 12월 25일이 아니다. 크리스마스의 정당성을 찾으려면 성경 밖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참 신기한 것이 있다. 분명 나라가 어려워지는 것은 불순종하는 불법한 자들 때문인데 정작 나라가 어려워지면 고통당하는 자들은 순종하는 자들이다. 만약 나라가 무너지거나 전쟁이 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전쟁이 나기전에 다른 나라로 도망갈 것인가? 아니다. 진정 하나님의 사람들은 나라가 위기에 빠지면 죽을 준비를 한다. 헌법을 위해 나라를 위해 헌정질서를 무너뜨리는 자들과 목숨건 전쟁을 시작한다. 그래서 순교자들이 있는 것이고 이런 자들이 때문에 다시 나라가 세워지는 것이다. 이처럼 나라가 어려워지면 그때부터 진짜 빛과 같은 자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전쟁하기 위해 일어난다. 그러나 반대로 어둠도 드러난다. 빛과 어둠이 명확해진다. 나라에 어려움이 생기면 헬라와 타협을 하든 나라를 팔아 넘기게 되든 자신이 살 궁리를 하기 시작한다. 그들에게 헌정질서, 나라가 더이상 중요하지 않다. 이들은 그 어떤 가치보다 자신이 살아남는 것, 혹은 자신의 가족이 살아남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비겁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이들은 중요하지도 않은 율법때문에 고집을 꺾지 않고 헬라 왕에게 복종하지 않는 율법 수호자들 때문에 나라가 더 위태로워진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율법은 그저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율법은 곧 성전이고 성전을 지키기 위해서 나라가 필요한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자유 대한민국이 왜그리 중요한가? 그것은 종교의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즉 예배드릴 수 있는 자유가 있다. 만약 중국이나 북한으로 흡수된다면 가장 먼저 기독교를 없앨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백성은 어둠에 결코 굴복하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처럼 나라가 위기에 있을 때 어느 편에 설것인가는 그때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 그때 드러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평상시 하나님의 가치관을 배우고 순종을 연습하여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다면 그날에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 그러나 이스라엘 가운데 많은 사람이 굳게 서서 부정한 것을 먹지 않기로 결단했다. 그들은 음식으로 더럽혀지거나 거룩한 언약을 더럽히느니 차라리 죽음을 선택했다. 그들은 그렇게 죽어갔다. 크고 무서운 진노가 이스라엘에 임한 것이다. (마카비서1:62-64)
6 거룩한 언약을 위해 죽음을 선택하는 자들
많은 유대인이 헬라와 연합하고 율법을 버리는 길을 선택했다. 그렇다고 그들이 하나님을 버렸다고 생각할까? 어쩌면 그들은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하고 저항하면 유대인들이 전멸되기 때문에 제우스 신 앞에서 여호와께 기도했다고 마음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을지도 모른다. 사실 이런 사상이 니골라당의 가르침이고 헬라의 이원주의 철학이다. 이런 비겁한 자들, 자기 마음대로 법을 고쳐 합리화하는 자들도 많았을 것이다. 오늘날 이재명같이 자신이 법의 심판을 받기 싫고 감옥가기 싫으니 판사를 탄핵하고 법을 바꿔버리는, 차라리 하나님의 법을 바꾸는 비겁한 자들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반면 많은 유대인이 더욱 굳게 서서 율법을 수호하기 위해 부정한 것도 먹지 않겠다고 결단했다. 음식으로 자신의 입과 위장을 더럽히고 거룩한 언약을 더럽히느니 차라리 죽음을 선택했다. 수많은 유대인이 스스로 순교를 선택했다. 이런 자들 때문에 이스라엘의 왕 예슈아께서 구원자로 오셨을 것이다.
그러면 왜 음식으로 더럽혀지는 것이 중요한 이슈가 될까? 샤밧을 없애는 것은 큰 반대에 부딧힐 수 있으나 돼지고기를 먹으라고 권하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타협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실제로 헬라왕은 신이 주신 선물인 돼지 고기를 왜 먹지 않느냐고 오히려 먹지 않는 것은 신의 은총을 무시하는 것이고 어리석은 철학이라고 말한다. 그 말을 통해 헬라왕은 우리에게 율법의 거룩함, 당위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물론 돼지고기를 먹는 문제는 작은 것일 수 있으나 그것을 무너뜨리면 다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을 안 것이다. 실제 마카비서에서 한 순교자가 이렇게 말했다.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것은 그것이 큰 율법으로서 매우 중요해서가 아닙니다. 작은 율법일지라도 중요하지 않은 율법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나라는 과거에 십자가를 발로 밟고 지나갈 수 있느냐 없느냐로 시험을 당하고 순교했다. 그러나 예슈아께서 오시기 전에는 율법의 준행으로 시험을 당했다. 그러면 예슈아께서 오심으로 율법을 준행할 필요가 없어졌을까? 그래서 더이상 율법을 준행하는 여부로 시험을 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 마지막때 용과 싸우는 남은 자손은 여호와의 계명(명령들)을 지키는 자들이다. 만약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면 그들은 남은 자손이 아니다. 만약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면 용과도 싸울 수 없다. 용과 능히 싸우려면 여호와의 율법을 준행해야 한다. 용과도 싸우는데 그보다 등급이 낮한 악한 영들과 전쟁하는 것은 율법 수호자들에게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남은 자손 그루터기는 거룩한 자들을 말한다. 그러므로 정신을 차려야 한다. 수전절이 다가오고 있다. 자칫 분별하지 못하면 불법한 자들인 헬라와 연합하여 성도들을 괴롭게 하고 마지막에 심판받을 수 있다.
#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하여 이르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냐 누가 능히 이와 더불어 싸우리요 하더라...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지어다 사로잡힐 자는 사로잡혀 갈 것이요 칼에 죽을 자는 마땅히 칼에 죽을 것이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 (계13:4,8-10)
7 요한이 예언한 적그리스도 (마지막 때 요구되는 믿음)
계시록에 적그리스도가 나왔을 때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적그리스도는 둘째 짐승으로서 통치자인 첫째 짐승의 통치를 돕는 역할을 한다. 이때 첫째 짐승은 '누가 이 사람과 전쟁할 수 있겠는가?'라는 절망과 공포가 느껴진다고 말하고 있다. 즉 그를 정말 존경해서 경배하고 따르고 싶어서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심히 두려워서 싸울 엄두도 내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굴복하게 된다고 말한다. '경배하다'는 의미는 '부복하다' 즉 완전히 엎드려 굴복하다의 의미로 복종의 뜻을 함유하고 있다. 즉 명령을 따르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는 것과 같은 말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법인 율법을 준행하지 않는다면 그것 만으로도 그는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 아니라 더럽히고 욕되게 하는 것이다(겔22:26).
하나님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 마지막 때 성도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끝까지 인내하고 죽을 수 있는 믿음이다. 즉 나라가 망하였을 때 요구되는 믿음이다. 세상 법정은 공의가 사라졌지만 하늘 법정을 믿고 소망하며 기꺼이 죽을 수 있는 믿음이 필요하고 그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훈련해야 한다. 이기는 전쟁을 하며 믿음을 지키는 것은 쉽지만 지는 전쟁을 하며 믿음을 지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이 땅에서 지는 것 같으나 이기는 것이라는 믿음이 그때는 정말 필요하다. 마지막 때는 진짜 믿음의 사람들이 일어날 것이고 그의 영광은 영원히 빛날 것이다.
#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서 있더라 (계12:17)
8 용과 싸우는 남은 자손, 마카비들이여 일어나라
성경은 거룩한 남은 자손이 마지막 때 용과 전쟁하게 될 것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남은 자손은 짐승에게 굴복하지 않은 자들로서 하나님의 계명(명령들)을 지키고 예슈아의 증거를 가진 자들이라고 말한다. 사실 하나님의 계명이 구약이라면 예슈아의 증거는 신약이라고 할 수 있다. 즉 구약의 말씀을 준행하고 신약을 가진자가 마지막 날에는 남은 자손으로서 전쟁할 것이다. 그리고 그때 우린 숨지 않을 것이고 생명을 걸고 싸울 것이다. 마카비가 전쟁할 때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파송하셔서 함께 전쟁해 주신 것처럼 그날에도 우리에게 천사들을 파송하셔서 함께 전쟁하실 것이다. 우린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 우리는 더 나은 부활을 위해 생명을 미워하기 까지 싸울 것이며 믿음으로 고난을 택하고 상주시는 분을 바라볼 것이기 때문이다. 영원한 패배는 끝까지 우리를 굴복시키지 못한 어둠이 당할 것이다.
샤밧 예배: 토요일 11시
대전시 동구 가양동 39-11 2층 레올람 토라 하우스
깃발 제작 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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