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도잡가 중 전장가
에헤 초취(初吹) 이취(二吹) 삼취(三吹) 끝에
벽강강산(赤壁江山) 패전군사(敗戰軍士) 여기저기 모여 앉아
신세자탄(身世自嘆) 우는 양은 목불견(目不見) 못 보겠네.
어떤 군사 내 달으며 여봐라 동지들아 이내 사정을 들어보소.
이내 팔자 기박하야 초일곱에 모친 잃고
여덟 살에 아바지 잃고 혈혈단신 이내 몸이
의탁할 곳 바이없어 외삼촌 네 갔더니만
첫해에는 애 보이고 그 이듬해 소 끌리며
아차 하면 욕질이요 아차 하면 매질하니
이 세상에 돈 없고 보니 일가친척도 다 쓸 데 없구나.
남의 집 머슴살이 첫해에는 두냥 닷돈
그 이듬해는 서냥 닷돈 차차차차 올라가서
마루고봉이 되었는데 그 중에 어떤 분이
무남독녀 외딸 하나를 애지중지 곱게 길러
아무개집 아무개는 남의 집 머슴을 살지라도
착실하고 건실하다고 데릴사위로 삼는다고
목항목항 모여 앉아 쑥덕쑥덕 하더니만
길일을 택하여서 신부 집으로 나갈 적에
우리 부모가 살아 계셨던들 얼마나 기쁘련마는
영영 가시고 못 오시니 그 아니 망극하리.
일락서산에 해 떨어지고 월출동령 달 솟는데
신부 집을 당도하니 신부가 나오는데
녹의홍상(綠衣紅裳)에 명월패(明月牌)를 차고 아장아장 나올 적에
나의 설움 못 이기여 섬섬옥수(纖纖玉手)를 덥석 잡고
만단설화(萬端說話)를 다 못하여 앞뒤문으로 와르르 달려들며
고두래 상투를 부여잡고 군사 뽑혔다고 재촉하니
신부님 네 거동보소 샛별 같은 두 눈에서
진주 같은 눈물방울이 핑그르르 돌더니만
나삼소매로 낯을 가리고 말 못하고 돌아앉아
흐득흐득 흐느껴 울다가 여보시오 낭군님
당신은 대장부라 부디 아녀자를 생각을 말고
만리전장(萬里戰場) 나갔다가 백전백승(百戰百勝) 하거들랑
개가(凱歌) 부르며 돌아와서 우리들의 끊어졌던
거문고줄 다시 이어 둥기둥당실 즐겁게 놀게 되면 그 아니도 기쁘리오.
잘 가시오 잘 있으시소 이럭저럭 떠날 적에
보통물 송백수야 이별을 서러워 마라.
인간이별 남녀 중에 내 같은 이 또 있으랴
만군지중(萬軍之中)에 나갈 적에 행여나 승전하여 귀국할까 하였더니
패군지장(敗軍之將)이 되었으니 고국 갈 길이 막연하구나.
어떤 군사 나오는데 다 떨어진 전복(戰服)에다
부러진 창대 옆에 끼고 울음 울며 나오면서
여봐라 동지들아 그까짓 건 설움을 설워 말고 이내 사정 들어보소.
만군지중에 나올 적에 당상학발(堂上鶴髮) 늙은 양친
못 가리라고 울음 울고 청춘애처(靑春愛妻) 당손 오마니
시부모가 계시니까 크게 울지 못하여도
치맛자락을 입에 물고 아드득 뜯으면서
같이 가자고 달려들고 어린 당손이는 서당 갔다 오더니만
천자백수문(天子白首文)을 문밖에 와르르 던지더니
아바지의 군복 자락을 덥석 잡고
애고 아바지 애고 아바지 오날이 무삼 날입니까
전에 없던 철창창대(鐵槍槍帶)가 웬 말이며 어데로 간단 말이오.
아바지 가는 길 나도 가요. 아바지 가는 길 소자도 가요.
못 간단다. 못 간단다. 물이 깊어 못 간단다. 길이 멀어 못 간단다.
산이 높아 못 간단다. 길이 멀어 못간단다.
산이 깊어 그늘이라 뿌리기에 싹이 나고 두둘기에 회차리 나고
아바지 계시니 나 생겼지요. 부자일신(父子一身)이라 하였으니
아바지 따라서 소자도 가요.
못 갈 내력을 내 듣거라. 만약에 너도 가고 나도 가고
우리 부자가 다 나간 담에 한 번 아차 실수하여
전장검혼(戰場劍魂) 되게 되면 누대봉사(屢代奉祀)를 뉘게다 할며
너만은 만능의사(萬能意思)를 먹지 말고 열심으로 공부하여
너의 어머니 모시구서 부디부디 너 잘 있거라.
청춘애처 당손 오마니 새옷 지어 넣어두고
첫문길 썩 나서서 나가던 길 바라보며
긴 한숨 크게 쉴 제 어린 당손이는 서당 갔다 오더니만
벌써부터 제 아바지 생각하느라고 구슬픈 목소리로
애고 오마니 애고 오마니 아무개 네 아무개 아바지는 오셨는데
우리 아바지는 어느 날이나 오시나요.
청춘애처 당손 오마니 구슬피 우는 당손이를
위로하느라고 너의 아바지는 내일 온단다. 모레 온단다.
하다가서 나중에는 두 설움이 한 설움이 되어
모자간에 얼굴을 마주대고 흐득흐득 느껴 우는 양을
내 눈으로 보는 듯하고 눈에 암암(暗暗) 귀에 쟁쟁(錚錚)
동지들은 죽지 말고 고국으로 돌아가서
우리 당손 어마니 보거들랑
이무 날 아무 시에 죽었다고
국 한 그릇에 밥 한 그릇 근근히 떠 놓아서
전장객귀(戰場客鬼)나 면하게 하여 주소서
[공연히 이 세상에 태어났다가 전장 고혼(孤魂)이 되더란 말이냐.
생각을 하니 고국산천이 그리워 나 어이 살거나.]
김무빈 서도 12잡가 중 전장가 (장구 이우성)
[전장가]는 서도좌창이다. 중국 적벽싸움이 앞에 등장하기는 하나 실제 내용은 일반적인 전장에 나간 군사들의 넋두리 같은 소리이다. 두 명의 화자가 등장하여 하나는 아내와의 기막힌 이별을 하나는 자식과의 이별을 한스럽게 노래한다. 이 소리는 승려 출신이자 평안도 명창이었던 김관준(金官俊)이 1910년을 전후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서도 좌창으로 불려진다.
김종조, 김주호, 백운선 - (1994) 빅터유성기원반시리즈 11-서도소리선집I 01. 전장가 (김종조)
첫댓글 예나 지금이나 전쟁의 폐해는 참혹한 듯합니다.
힘 없는 소시민들이 희생되는 게 명백한데
옛날도 그랬는 듯...'전장가'에는 전쟁으로 개인의 삶이 무너지는 걸 실감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잠시 잠겨봤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