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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학리 마을 할머니들이 노인회관에 모이셨다. 회관입구엔 두루미 한 마리 날고.
오전 10시배를 타고 월선포에 내렸는데 도강한 차들은 쌩~하니 다가고 그러나 마을버스는 흔적조차 뵈질않아 매표소에 은송님 물으시니 버시기사가 교육을 받으러갔노라고.. 해서 그냥 걸어가야한다고 무표정한 얼굴로 노인네는 아무일도 아니라는 듯 심드렁하니 말씀하신다. 이럴땐 우짤꼬?
마침 지나는 차가 한 대있어 혹 대룡리까지 태워주실 수 있느냐고 여쭈니 손사래를 치시며 지금 시간이 바쁘다고 미안타신다. 미안한 얼굴로~ 어쩌랴 그냥 걸을밖에
대문밖을 나서면 이렇게 끝없는 돌발상황이 발생하니 이런게 라이브 아닐까? 염하님은 난색을 표하시지만 ㅎㅎ 참 재미지다. 그래서 또 일케 포구 초입의 교동교회를 마주하지만 일행이 있으니 잠시 예배 모시는것은 통과~ 그냥 목례만 숙이고 앞으로 앞으로.
낮게 앉아 평화로운 마을을 지나 커브를 틀자마자 상룡마을회관이 나두 쳐다보고 가란다.
그렇게 길을 따라 하릴없이 걷는데.. 어? 마을버스 한대가 저앞에서 오고있다. 마침 난정저수지가 종점이라는 마을버스가 기사대신이라며 늑장 배터로 가는 중 그래서 되돌아 오기를 기다리며 선두를 가시던 염하님 은송님 해피아이님 진솔맨님 일케 뒤로 빽 틈새를 기다려 염하님 막걸리부터 한 병 꺼내들고 무거우니 짐 줄이자시며 한 순배씩 돌리고. 그 모습 지켜보고있노라니 왜 웃음이 나는걸까? 느긋하게 마실새도 없이 차는 달려오고..
그렇게 차를 타고 난정저수지엘 도착하니 염하님 포구에서 쪼매 걸었으니 저수지는 통과라시며 다 내리란다. 엥? 아니 그림같은 저 눈길을 두고 그냥 바라보아야만 한다고?? 어쩌겠는가 대장님이 시키시는대로 따라야지~ 그렇게 내리자마자 은송님 왈 " 참 크구나" 그리고 모델이 되어주신다고 그래서 일케 한 컷 !!!!!!!!!
아련한 꿈길인듯 늘 머르메 길을 갈적마다 저 곳을 둘러봐야지 했는데 아무래도 방향을 바꾸어 무학마을의 설이 지나간 바로뒤 풍경을 돌아봐야겠구나싶어 염하님께 여쭈었다.
"염하가람님 저는 무학리와 지석마을 돌아보고 배터로 합류할께요. 이따 뵈요" " 흔쾌히 그러시라고. 그런데 진솔맨님이 무섭지도 않으냐구 왜 여자가 혼자 가는냐구? " 안 무서버요. 잘 다녀오세요." 그리고 저만큼 멀어져가시고.
와아~ 저수지 뚝방길은 완전 꽃길이었다. 상고대로 하여
오리는 그 넓은 비탈아래서 위로 치올라 그 발자국을 남기고.
마른 풀 끝 하나 마다마다 어찌나 맑고 예쁘던지?
그저 나들길을 걷노라면 이렇게 찬찬이 시간을두고 인석들이 들려주는 노래를 듣는것은 접어야하는데 혼자라는것은 그래서 또 한없이 자유롭다.
철조망도 덩달아 꽃으로 피어 흐르고
순백의 50만평 설원에 마른 풀 제 한몸 멋대로 햇살아래 춤을 춘다. 그림자 놀이하며
초입은 설명절이라선지 발자국 몇몇이더니 완전 바람만 지나갔을 분 그런데 우짜 된일이고? 둑방길이 한 배 반으로 넓어져 있으니? ㅎㅎ 바람이 그렇게 둑을 넓혀놓았다 저번에 20여센티 눈이 왔을 때 그 눈들을 둑에 붙여.
인석도 나두나두 햇님 맞이할래~
드넓은 교동벌은 산아래님 말씀을 빌면 설국이다.
얘는 또 누구였을까? 들풀의 이름은 알길없으나 그 모습은 얼마나 이쁘고 황홀턴지~ 지금도 눈앞에 선하다.
고라니 발자국옆에 나들배낭도 한 컷 식구로 담아주고 넘어진김에 쉬어간다고 그냥 예서 자리깔고 차마시고 봄 볕에 졸아볼까나? 한시간은 넘게 그냥 앉아 설원을 바라보고 서서이 걷혀가는 연백의 산그림자를 보고
눈 앞에 박주가리씨도 그림이다
바람으로 능선을 이룬 눈들은 산을 연상케하는데 ㅎㅎ 밟아도 얼어있어 발이 빠지질않고
난정저수지엔 바람에 간간이 스치는 눈쓸리는 소리 평원의 고요를 깬다.
내 발자국
드디어 저수지 끝에 다달으고
이 길 끝에는 바다가 그 바다너머론 연백평야가 있다.
무학마을
오토바이 타는 어르신들 ㅡ 대룡리를 나가시는가보다. 할머니 두분은 머풀러를 쓰시고 운동을 가신다며 " 아이쿠 남자인줄 알았짜나~ 하시며 주름진 얼굴에 순한 웃음을 지으시며 키가 커서 남자인가보다 했다신다.
마을 입구로 들어서니 단도직입 어디사 왔느나고?
그리고 56년 이집에 살고있다시며 할머니는 서한리에서 태어니 이곳으로 꽃다운 스므살에 시집을 오셨단다. 시집와 4년후에 이 집을 지었고
그런데 지금은 두채만 옛날식 민가잉고 다들 현대식으로 고쳐 다시짓고 산다며 아이들은 다시 교동으로 들어올 기미가없고 다시 짓고 살기도 늙은이들이 글쿠 그러시단다. 글치만 할머니 목소린 젊은차자들인양 힘이 펄펄인데 허리가 아프셔서 유모차를 밀고 다닌다고. 정초가 아니라면 할머니께 우리옛 교동민가의 모습을 보여달라 청할텐데 길손으로서 작은 예를 나름 지키며 다녀야하니 활짝웃는것으로 할머니의 소탈하신 맘에 화답을 올리고는 할머니도 마침 노인정가려던 중이라시기 같이 갔다. 강아지 한 마리는 고갤 갸웃갸웃 꼬릴 살래살래 반갑다고. ㅎ
노인정엔 12분의 할머니들이 둥글게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들 중 낯선 나그네를 보자마자 어디서 왔느냐가 인사시다. 강화읍네서 왔어요. 강화도 원주민잉몌요.
그런데 여기 12 할매중 다른곳에서 시집오신 분 누구 있어요? 여쭈니 그냥 교동에서도 오고 강화에서도 그렇게 5.6십년씩 지금 이 교동에서 사는 중이시라고.. 지지난해 아차도엘 갔을적에도 저 하얀옷입은 처자 누구냐? 어디서 왓냐가 인사였는데 섬을 살아가는 사람들 눈에서 호기심어린 반짝눈을 보는 일 언제까지일라나?
참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가고 웃음이 오고가고 한때는 꽃다운 청춘들이 세월의 강건너 이켠에 이르러 백발이 되어 곱던 얼굴은 주름이 지고 탄력이 흐르던 목소리는 세월의 힘에 밀려 둔탁해 졌어도 문을 밀고 나올적에 일어서서 문밖까지 배웅하시며 " 곱게 살펴 잘가요~ 또 꼬옥 다시와요" 점심을 사 먹을곳도 없는데 점심을 못주어 미안해요. 국수라도 있으면 삶아줄텐데.. 라시며 외려 당신들이 더 걱정이시다. 마을버스도 저녁엔 안다니니 너무 멀리는 가지말고 또 이북이 가까우니 바닷가로는 절대 가지마라고 볼것도 없는 시골마을을 보러 와주어서 고마우다시며. 만약에 늦어져 배를 못타면 다시 오라고. 저기 저 할매집에서 하룻밤 자도 된다고.. 후후 알았어요. 못가면 다시 오께요. 건강하시고 잘 계세요. 모낼때 논에 봄 물실리면 다시 올거예요. 아셨죠? 그 땐 친구들 도 같이 올지 몰라요. 또 혼자올수도 있구여. 여기저기 걱정스런 눈빛이 흐르고 엄마맘 목소리엔 정이 담뿍 담겨흐른다. 곱게 살펴 잘가요.. 곱게 가요라고 그래 옛 사람들인사 는 지금도 그렇게 곱고 고우시구나. 돌아서 다시 손흔들며 쥐어주신 밀감 두개를 배낭에 넣으며 곱게 곱게를 뇌이고 또 뇌인다. 아니 그냥 뇌어지고 있었다고 해야 마땅타. 곱게 살려 잘가라고~
그래선가?
무학마을 은행나무도 곱게 샬펴 잘가란다. ㅎㅎ 참~ 지금쯤 머르메팀들은 어딜 밝고 지나시는 중이실까나? 장정들 네분이서 . 그러는 사이 저 앞에서 오토바이 달려오는 소리 들려왔다.
한국의 아름다운 섬 강화도 심도기행 화남길위에서 단기 4346 계사년 이월 열닷새 아침결 노래하는 감사의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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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군중을 이탈 한 선물이 넘 많았네여.
야춤님은 여전히 즐기시고 계시네요. 이 엄동설한에....*^*
엄동설한은요 눈이 녹아 줄줄흐르는 영상의 날이었는데...
근데 돌아오는 길에 어떤 차 한대가 스쳐가는데 딱 보는 순간
저 분은 목사님이시구나 했는데 그 분이 바로 지석교회 목사님이더라구요.
막배를 못 탈경우 저 교회에서 하룰 머물러야지 했는데.. 나중에 다시 한 번 가야겠어요. 아니 다리가 놓이기전
몇차례 더 찬찬이 섬시절의 교동도를 돌아봐야겠는데 어느 날 한번 동행하실랍니까? 기왕이면 청량한 날
넵~! 23일(약간은 유동적 이지만) 토요일에 데불고 가 주시면 좋겠습니다.
소개 해 드릴 곳도 있구요.*^*
나무가 멋지군요...
몇백살일까요. 저녀석 은행나무인데~?
설국에서 먹는 밥맛은 어땟을까요?
고봉 수북한 꼬깔밥 드시고 설국 요정변신에 실패하셨을지도. ㅎ
요정변신은 물건너가고 길손변신은 완전무결하였다는...ㅎㅎ
샘 잘 지내시는거죠? 봄 새싹트시기전 함 뵈요. 겨울의 볼 싸함이 사라지기전에.. ^^
어허..... 예술은 어찌 다 춤님 주변에만 모였는고?
모다
멋지요.
기백년 묵었을 저 이 조차..
어데요?
처처가 다 그대로 예술세곈걸요. 승천포에서 다랑채까지 그 멋지던 날 정경도 올려야하는데
여전히 술래놀이하느라 아직 못 올렸네요. 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