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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제 : 임재
제 목 : 하나님의 집, 하늘의 문
성 경 : 창 28:10~22
찬 송 : 338장
저 자 : 이삼규 목사
출 처 : 20240929 낙양교회 주일 낮 예배
창 28:10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창 28:11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 곳의 한 돌을 가져다가 베개로 삼고 거기 누워 자더니
창 28:12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창 28:13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창 28:14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창 28: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창 28:16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창 28:17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창 28:18 야곱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개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창 28:19 그 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이 성의 옛 이름은 루스더라
창 28:20 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창 28:21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창 28:22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네 명의 딸과 늦둥이 막내아들을 둔 권사님이 계셨습니다. 권사님은 우리나라 정서에 따라 아들을 낳기 원했는데 결혼 후 딸만 셋을 낳았습니다. 그래서 또 하나를 낳았는데 역시 딸이었습니다. 딸만 넷을 낳자 남편이 실망해서 며칠간 집을 나갔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너무나 당황스러워할 때 하나님이 권사님에게 서원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넷째 아이를 안고 교회에 가서 하나님께 아이를 온전히 드리는 서원 기도를 했습니다. 교회 목사님은 아이의 이름을 에스더라고 지어 주었습니다.
권사님은 다섯 자녀 중 하나님께 드린 막내딸 에스더를 위해 평생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막내딸은 신학교를 나와 선교사가 되었고, 목회자로 사역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Way Maker라는 NGO 단체를 만들어 어려운 환경에 있는 믿음의 학생들을 후원하고 장학 지원을 하는 귀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목사님을 통해 주신 에스더라는 이름처럼 이 세대와 다음 세대를 위해 귀하게 쓰임 받고 있는 것입니다. 뜻하지 않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 서원한 권사님의 기도가 하나님께 드려졌고, 하나님은 그 기도에 신실하게 응답하셨습니다.
많은 분들이 어려운 일을 만나면 서원 기도를 드립니다. 서원이 뭡니까? 조건부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을 해주시면 어떻게 하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하나님께서는 서원 기도를 들어주시는데 사람들은 그 서원 이행하는 것을 힘들어합니다.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른 것과 마찬가지가 아니겠습니까?
야곱은 어머니 리브가의 간교한 계획에 동참해 형 에서로부터 장자의 축복을 빼앗았습니다. 이로 인해 에서는 야곱을 죽이고자 할 만큼 분노하고, 야곱은 형을 피해 가나안을 떠납니다. 하나님은 도망가는 야곱을 홀로 버려두지 않으시고, 꿈을 통해 과거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약속하신 언약을 확인시켜 주십니다. 하나님은 벧엘에서 야곱을 기다리셨습니다. 야곱에게는 벧엘의 체험이 필요했습니다. 태중에서 택함 받았다는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그 택하심이 확증되어야 합니다. 벧엘 사건은 하나님이 야곱을 이스라엘의 3대 족장으로 인정하시며 그분의 언약을 확인해 주시는 일입니다.
√야곱이 꿈에 본 환상
야곱은 브엘세바를 떠나 외삼촌 라반이 사는 하란을 향해 가고 있었습니다. 형 에서가 받을 장자의 축복을 빼앗은 일 때문에 방황하는 도망자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부모 품을 떠나 타지를 여기저기 떠도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시간을 통해 야곱을 단련하시고 그와의 언약을 새롭게 하시는 기회로 삼으십니다. 하란으로 가던 중 야곱은 벧엘 한 곳에서 잠이 듭니다. 그리고 꿈을 꿉니다.
√창 28:12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야곱은 놀라운 꿈을 꿉니다.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습니다. 그리고 또 보니까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오늘 본문에 대한 해석이 신약 성경 요한복음 1장에 나타납니다.
√요 1:51 또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야곱이 꿈에 보았던 그 사닥다리는 바로 인자이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땅과 하늘을 잇는 사닥다리이십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꿈에 나타나셔서 이전에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언약을 다시 확인해 주십니다.
√창 28:13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창 28:14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창 28: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을 재확인해 주시는 것은 야곱이 이삭으로부터 장자의 축복 받은 것을 인정하신 일로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나그네 같은 야곱을 향한 하나님의 함께 하심과 도우심에 대한 확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나를 지키신다고 확신하십니까? 힘들 때마다 내가 붙드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빨리 가려거든 혼자 가고, 멀리 가려거든 함께 가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믿음이 굳건한 사람들도 인생 여정 가운데 지치고 힘들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함께하고, 지키고, 돌아오게 하며, 결코 떠나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해야 합니다. 성경에는 두려워하는 인생들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이 많이 있습니다.
수 1:9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사 41:10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두려워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하나님의 함께 하심과 도우심을 확실하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성품 중에 ‘신실하심’이 있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은 약속하신 말씀을 반드시 지키시는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요 14: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마 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이렇듯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과 환경을 초월해 믿음의 성도들과 함께하시고 지키시며 도우십니다. 믿습니까?
√야곱이 제단을 세우다
하나님의 현현에 대한 야곱의 반응은 두 부분으로 나뉘어 소개됩니다. 16~17절은 잠에서 깬 야곱의 행동을 묘사합니다.
√창 28:16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창 28:17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꿈 때문에 잠에서 깬 야곱은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신다.”라고 고백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현현을 장소와 연결시키는 고백입니다. 이스라엘 조상이 하나님을 만난 곳은 대단히 특별한 장소로 인식 될 뿐 아니라 후대에 제사를 드리는 장소로 사용되었습니다.
삿 20:18 이스라엘 자손이 일어나 벧엘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여쭈어 이르되 우리 중에 누가 먼저 올라가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유다가 먼저 갈지니라 하시니라
삼상 10:3 네가 거기서 더 나아가서 다볼 상수리나무에 이르면 거기서 하나님을 뵈오려고 벧엘로 올라가는 세 사람을 만나리니 한 사람은 염소 새끼 셋을 이끌었고 한 사람은 떡 세 덩이를 가졌고 한 사람은 포도주 한 가죽부대를 가진 자라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을 야곱은 뭐라고 부릅니까? ‘하나님의 집, 하늘의 문’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의 집이 뭡니까? 곧 성전입니다. 더 나아가 하늘의 문이라고 했습니다. 하늘 문이 열린 것입니다. 이것보다 더 놀라운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제 하늘에 들어갈 문이 활짝 열렸고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놀라운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18~19절은 아침에 일어난 야곱의 행동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창 28:18 야곱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개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창 28:19 그 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이 성의 옛 이름은 루스더라
야곱은 자신이 베개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미체바)으로 세우고 그곳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고대에는 이처럼 기둥을 세워 증거표로 삼기도 했습니다. ‘주상’으로 번역되기도 하는 ‘미체바’를 세우는 것은 이스라엘이 타파해야 할 가나안 종교의 의식이기도 했습니다.
출 23:24 너는 그들의 신을 경배하지 말며 섬기지 말며 그들의 행위를 본받지 말고 그것들을 다 깨뜨리며 그들의 주상을 부수고
신 12:3 그 제단을 헐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상을 불사르고 또 그 조각한 신상들을 찍어 그 이름을 그 곳에서 멸하라
신 16:22 자기를 위하여 주상을 세우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느니라
야곱은 그곳에 ‘벧엘’(베트 엘)이라는 이름을 부여했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집’(베트 엘로힘)이라는 이름과 연결됩니다. 야곱 이야기는 이렇게 벧엘의 기원을 설명합니다. 야곱이 ‘이름’(쉠)을 지은 것은 기름을 부은 행위와 연결됩니다. 야곱에게는 하나님이 자신을 만나주시고 언약을 주신 그곳이 하나님이 계신 성전이었으므로 그곳에서 하나님을 예배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과의 만남의 장소인 ‘벧엘’ 하나님의 집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집은 하늘의 문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집에 나오는 자들에게 하늘 문을 여시고 풍성한 은혜와 축복을 내려 주십니다.
√야곱의 서원
형과 아버지를 속이고 장자의 축복을 받은 야곱은 에서의 보복을 피해 황급히 집을 떠나야 했습니다. 별다른 준비 없이 하란을 향해 급히 떠난 길은 약 800Km에 달하는 멀고도 고달픈 여정이었을 것입니다. 길을 가던 야곱이 해가 지자 벌판에 돌을 베고 누워 잠이 듭니다. 그리고 꿈 속에서 사닥다리가 서 있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나그네 같은 모습으로 벌판에서 지내던 야곱은 편안했던 장막 생활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하나님의 임재와 음성을 체험하게 됩니다. 이 체험으로 인해 야곱은 그곳을 벧엘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의 집, 하나님의 전’이라는 의미입니다.
야곱은 제단을 쌓고 서원 기도를 올립니다.
√창 28:20 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창 28:21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창 28:22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서원은 두 가지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위기 서원(Vow of crisis)입니다.
야곱은 자신을 지켜 주실 것과 돌아오게 하실 것을 간구합니다. 그렇게 해 주신다며 무엇을 하겠다고 약속합니까? 기둥으로 세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것에 십분의 일을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조부였던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전리품의 십일조를 바친 것에서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봅니다. 야곱의 서원은 바로 ‘위기 서원’입니다.
성경에 보면 이런 위기 서원을 드린 또 하나의 사람이 등장합니다.
사사기 11장을 보게 되면 사사 입다라고 하는 사람이 나옵니다. 이 사사 입다의 시대에 암몬사람이 쳐들어와서 이스라엘 백성을 괴롭혔습니다. 그러자 입다가 서원을 합니다.
“하나님, 우리가 저 암몬과 전투를 하는데 이번 전투에서 이기게 해 주시면 내가 돌아갈 때에 우리 집에서 맨 먼저 나와서 나를 반기는 사람을 여호와께 번제로 드리겠습니다.”
이렇게 서원을 했는데 돌아가 보니까 자기의 무남독녀 외동딸이 맨 먼저 반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입다는 자기의 무남독녀 외딸을 시집도 보내지 못하고 여호와께 바칠 수밖에 없는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위기서원입니다. 입다의 서원은 경솔한 서원이었습니다. 나중에 후회했지만 이미 늦어버린 서원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이처럼 위기 시에 서원을 하고 후회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의 인생의 위기 시에 서원을 하는 것은 좋습니다만, 경솔히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둘째, 감사 서원입니다.
하나님이 은혜 주실 것을 믿고 감사해서 드리는 서원이 있습니다. 그것을 ‘감사서원(Vow of gratitude)’이라고 합니다. 사무엘상 1장에 보면 한나는 “하나님 내게 아들을 주시면 하나님께 아들을 바치겠습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그 기도를 듣고 하나님이 한나에게 아들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이라고 이름을 지었는데 그 뜻은 “하나님이 들으셨다.”입니다. 하나님이 들으시고 낳은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를 평생에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머리에 대지 않겠다고 서원을 해서 드린 그 사람이 바로 사무엘 선지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은 어려울 때나 감사할 때 하나님께 서원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서원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서원의 내용은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한 것입니다. 사람이 자기 자신을 드리든지 아니면 짐승을 드리든지 집을 드리든지 밭을 드리든지 하겠다는 것이 서원입니다. 네 가지 중에 하나를 드리겠다는 것이 서원인 것입니다. 그런데 마땅히 드려야 할 것을 드리는 것은 서원이 아닙니다. 의무적으로 드릴 필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발적으로 드릴 때에 그것이 서원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원에서는 자발성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강요된 것은 서원이 아닙니다. 할 수 없어 협박 받아서 하는 것은 서원이 될 수 없습니다. 자발적으로 드리는 것만이 서원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여러분의 인생 여정에서 하나님께 드린 서원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 서원을 어떻게 이행하셨습니까?
‘성령의 열매는 맺는 것이 아니라, 맺히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즉 열매는 자연스러운 결과로서 열매인 것입니다. 서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서원은 나의 목표를 위해 하나님과 거래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자에게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결과입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도피생활을 하며 벌판에서 돌을 베고 잠들었던 야곱에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이로써 그곳은 소망의 장소가 되었습니다. 또한 그의 두려움은 평강이 되었습니다. 야곱은 그곳을 ‘벧엘’이라 부르고 서원했습니다. 그가 하나님께 드린 서원은 그의 노력과 헌신을 통해서 드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한 자에게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결과로서의 열매였습니다.
엡 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여러분!
여러분 중에 위기 서원이나 감사 서원을 하신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그러면 서원은 갚아야 합니까? “아들을 주의 종으로 드리겠습니다.” “내가 이번 건축에 얼마를 드리겠습니다.” 이렇게 서원하신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 서원은 갚아야 합니까? 예, 꼭 갚아야 합니다. 그런데 아들이 주의 종으로 부름 받은 소명이 없다면 아무리 부모가 서원했어도 갚을 수 없을 것입니다.
신명기 23장 21-23절에 보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 서원하거든 갚기를 더디하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반드시 그것을 네게 요구하시리니 더디면 네게 죄라 네가 서원치 아니하였으면 무죄하니라 마는 네 입에서 낸 것을 그대로 실행하기를 주의하라 무릇 자원한 예물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 네가 서원하여 입으로 언약한대로 행할찌니라”고 나와 있습니다.
전도서 5장 4-5절에도 “네가 하나님께 서원하였거든 갚기를 더디게 말라 하나님은 우매자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서원한 것을 갚으라 서원하고 갚지 아니하는 것보다 서원하지 아니하는 것이 나으니”라고 나와 있습니다. 여러분, 서원한 것은 갚으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서원하고도 갚을 필요가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레위기 27장과 민수기 30장에도 서원을 갚지 않아도 되는 경우가 등장합니다. 예를 들어 시집 안간 여자가 서원합니다. “하나님, 우리 집에 소가 여섯 마리 있는데 한 마리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그 아버지가 듣고서 그날에 “야! 그것이 네 것이냐? 내 것인데 왜 네가 맘대로 드리느냐? 안된다!” 이러면 시집안 간 딸의 서원은 무효가 되는 것입니다. 또 결혼한 여자가 서원을 합니다. “하나님, 우리 집에 양 다섯 마리가 있는데 한 마리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그날 듣고서 듣는 그날에 “안 된다!” 이렇게 말하면 그 여자의 서원은 무효가 됩니다. 그런데 아버지든, 남편이든 간에 그 서원을 듣고서 그날 무효로 해야지 한 열흘쯤 있다가 “생각해보니 그건 안 되겠다.” 이렇게 말하면 그 서원은 유효가 되는 것입니다. 듣는 날에 취소를 해야 무효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야곱은 속임수와 계략으로 장자의 축복을 받았기에 도망자 신세가 되고 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벧엘에서 야곱을 만나주시고, 그가 어디에 있든지 함께하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사기꾼 야곱을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으로 삼으십니다. 그것은 선하신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이요 은혜입니다. 은혜는 인간의 어떤 자격이나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 은혜를 기억하며 어디서든 거룩한 예배의 제단을 쌓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