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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롬 12:1-2)
우리는 지난 주에 로마서 12장 1절을 통하여 거룩한 산 제물이라는 제목으로 그리스도인의 삶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배웠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의식적인 예배만이 아니라 삶이 예배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라고 할 때 영어로 "worship"이라는 말과 함께 'service'라는 말이 있습니다. 다시말하면 '예배'는 '봉사'라는 뜻이 담겨 있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 봉사하는 것이 예배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 전체를 하나님을 섬기는 자세로 살면 그것이 예배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삶을 예배화하는 것이 우리가 무엇보다도 관심을 두어야 할 방향입니다. 예배와 삶은 나눌수 없는 하나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예배입니다. 그것은 섬김입니다. 내 몸이 가는 곳이 예배할 처소입니다. 주일에 드리는 두 시간만 따로 떼어서 예배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이것을 포함해 삶 전체로 드리는 것이 영적인 예배입니다.
1절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제물은 희생입니다. 희생이 없는 제물은 없습니다. 따라서 제물은 죽음을 의미합니다. 제사에는 제물이 필요합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희생 양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없기 때문에 어렵습니다. 예수님은 온 인류의 죄를 씻어 주시기 위해서 제물이 되셨습니다. (마 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거기에 십자가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제물은 자기가 잘못한 것 때문에 희생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이 잘못한 것을 대신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이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날 교회도 많고 예수믿는 사람도 많은데 왜 세상이 변하지 않습니까? 그리스도인이 제물되기를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제물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여러분에게 제물이 되라고 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저는 예수는 믿지만 제물은 되기 싫습니다"라고 하시겠습니까? 가정에도 제물이 필요합니다. 한 사람의 희생 양이 있으면 가정이 행복합니다. 교회에도 제물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도 제물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지난 설교를 통해 우리들이 받은 메시지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이 말씀은 '제물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즉, 제물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을 가리켜 그리스도인, 제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바로 이런 사람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이 가는 곳마다 예배가 이루어집니다. 이렇게 사는 것을 가리켜 '빛과 소금'의 삶이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으로서 실제적인 행동 강령은 무엇입니까?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 2절에서 두 가지 원리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2절,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첫째는 '하지 말라'입니다. 둘째는 하라'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모든 율법도 이 두 가지입니다. '하지 말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세대는 보이는 세상, 지나가는 세상, 잠깐 살다가는 세상을 의미합니다. 세상은 변합니다. 시대에 따라 가치관도 달라집니다. 그런데 우리는 세상을 따라갑니다. 세상을 따라가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아니 세상을 따라가지 않으면 많은 손해를 본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유행을 따라가고 세상이 좋아하는 대로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세상을 거슬러 올라가라고 명령합니다. '세상을 본받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첫 번째 원리입니다. 두 번째 원리는 첫 번째보다 적극적인 것입니다.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는 것입니다. 변화를 받게 되면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하나님의 기뻐하시고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주인의 뜻을 알아야 종은 일할 수 있습니다.
주인의 뜻도 모른 채 종이 제 마음대로 일을 하면 그것은 주인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일은 열심히 했는데 주인과는 상관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희생하고 봉사를 했는데 하나님의 뜻도 모른 채 내 마음대로 열심히 일을 했다면 그것은 하나님과는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내가 좋은 것을 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정확하게 알아서 그대로 해야 합니다.
더도 덜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만큼 행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열심이 없거나 믿음이 없기보다는 하나님의 마음을 모르고 자기 마음대로 하나님을 섬기기 때문에 시간과 돈, 건강을 다 낭비하고 나중에는 "하나님께서 저에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라는 말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1절이 그리스도인의 삶을 정의하고 있다면 2절은 그리스도인의 행동원리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2절을 다시 보시겠습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우리가 구원받은 자로서 하나님의 생명을 가졌다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삶을 살기 위해서 이렇게 살라는 것입니다.
먼저, '하지 말라'는 소극적인 명령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이 예수 믿고 구원받은 사람으로 온전히 살려면 이 세상을 본받지 말라. 세상을 따라 살면, 세상 방법대로 살면 예수 믿는 삶을 살 수 없다." // 문제는 내가 세상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천국에 있으면 아무런 걱정이 없을텐데, 내가 살고 있는 현 주소가 세상 한복판이기 때문에 세상사람들과 만나 일을 해야 하고, 함께 살아야 하고, 함께 호흡하며 지내야 하는데 그들은 우리와 생각하는 것과 사는 방법이 다릅니다. 가치관이 다릅니다. 소속이 다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없다고 말합니다. 자기가 중심이 됩니다.
이런 사람들과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여기에 그리스도인의 갈등이 있고 고민이 있습니다. 세상이 어마어마한 힘을 가지고 내게 접근해 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세상을 이길 힘이 없습니다. 무장해제된 것처럼 힘이 없습니다. 어떻게 이길수 있겠습니까? 내가 가지고 있는 힘으로, 물질로, 지식으로, 결코 이길수 없습니다. 요즘 묵상하는 사무엘하에 다윗이 전쟁하는 모습을 보십시오. 세밀한 전략이나 수많은 군사력이 아닙니다.
오직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을 앞세웁니다. 놀라운 것은 하나님이 저들과 싸우십니다. 하나님이 승리하십니다. 시편 3편에 보면 다윗의 찬양이 나옵니다. (시3:6-8)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 [7]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주께서 나의 모든 원수의 뺨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꺾으셨나이다 [8]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 (셀라)”
다윗은 보이는 적들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느끼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나의 힘으로 삼고 하나님과 함께 싸웁니다. 삼하 8:을 보면 반복해서 나오는 말씀이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삶이 믿음의 삶입니다. 세상사람들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물질과 권력과 지력을 가지고 자신의 힘으로 과시하고 있지만 우리는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이 나의 힘이 되어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세상 사람들 가운데 있지만 목적이 다른 사람들입니다. 생각이 다른 사람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 욕심을 따라 자기 만족만을 찾고 물질 중심으로 살지만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목표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삶의 의미요 삶의 목적입니다. 내가 세상에 사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1)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것이고, 2)생명을 살리는 일입니다.
이 두가지를 빼놓고는 그리스도인의 인생을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산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래서 구약에서는 몇 가지 모델들을 제시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4백년간 종살이를 합니다. 우리는 일제에 36년간 종살이를 했는데 아직도 일제 콤플렉스가 있습니다. 상처가 많습니다. 그런데 4백년간 종살이를 했으면 어떻겠습니까? 정치, 문화, 경제, 사고 방식, 모든 것이 애굽의 사람과 같이 되지 않았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빼내기로 결정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애굽에서 탈출시키셨습니다. 이 과정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출애굽기를 보면 알수 있습니다. 애굽의 바로는 열 번이나 약속을 어기고 하나님을 대적합니다. 여러분, 마귀가 그런 우리를 쉽게 놔 주겠습니까? 쉽게 놔 주지 않습니다. 꼭 뒷다리를 잡습니다. 애굽에서 나올 때 바로는 10번을 붙잡았습니다. 이런 것을 경험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예수를 잘 믿으려고 하면 꼭 뒷다리를 잡지 않습니까? 마귀는 쉽게 여러분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빼내셨습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수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 다니신지 얼마되지 않은 분들, 얼마나 힘이 듭니까? 옛생활이 끊임없이 뒷다리를 잡습니다. 놓치 않으려고 온갖 생각으로 자신의 옛 습관을 합리화시켜 봅니다. 그러나 왠지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4백년 간이나 애굽의 때가 묻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할 수 없이 광야에 몰아내셔서 그 때를 벗기셨습니다. 그 때를 벗기는데 40년이 걸렸습니다. 때를 벗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고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먹을 것 먹지 못하고, 입을 것 입지 못하고, 마실 것을 마시지 못하며 살게 하셨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인간이 살 수 없는 광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셔서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며 살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는 또 있습니다. 70년 포로 생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가지고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형식적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것을 없애셨습니다. 그리고 70년 동안 포로 생활을 하게 하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세상 방법대로 살지 않도록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유대인들에게 배울 교훈이 있습니다.
그들은 2천년 동안 전세계로 유리 방황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그런 상황에서도 그들은 율법을 지키고 자식들에게 히브리어를 가르쳤고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그들은 이방 문화 속에 살면서도 성경에서 금지한 음식을 먹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유대인들은 문화도 바꿨습니다. 비행기를 타면 유대인들에게는 그들이 먹을수 있는 식사가 제공됩니다.
여러분, 세상이 유대인을 변화시키지 못했습니다. 유대인이 세상을 변화시켰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따라가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세상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세상이 우리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세상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이제는 얼마나 우리가 타협을 했는지 국가에서 주일에 자격시험을 치릅니다. 세상 사람이 다 되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의 그 특이한 태도, 믿음, 생활을 다 포기하고 만 것입니다.
요한일서 2:15-17을 보면 아주 적절한 말이 있습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세상은 변하기 때문에 세상을 좇아가는 사람들은 오래 가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은 촌스럽고, 바보스럽고, 시대에 맞지 않는 것 같지만 그들은 영원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6:8에서 비슷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우리는 소속과 위치, 신분이 다른 사람들입니다. 세상 속에 살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 백성이요. 우리의 왕은 예수 그리스도시요, 우리의 통치자는 하나님이십니다.
문제는 세상대로 사느냐 성경대로 사느냐 입니다. 이 문제에 대하여 성경은 단호하게 "구원받은 성도라면 세상을 따라가지 마라!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고 명확하게 말씀하십니다. 저는 저희 부모님을 생각합니다. 저희 집안은 우상숭배의 집안이었습니다. 그러나 저희 부모님은 예수믿는 가정이었습니다. 그러니 집안에서 핍박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럴수록 더욱 더 열심히 저희 부모님은 매일 새벽 기도를 하셨습니다.
제가 어려서부터 아버지가 믿음으로 사는 모습을 보며 자랐습니다. 이것이 지금 와 생각해 보면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아버지따라 새벽기도를 갔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그야말로 신앙이 삶이 있었습니다. 들에 나가 일하시면서 큰 소리로 찬송을 부르십니다. 길을 가다가도 어려운 이웃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셨습니다. 입고가던 아들의 옷을 벗어주라고 까지 할 정도로 이웃의 어려움을 지나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어려서 그러한 아버지를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도대체 우리도 입을 것, 먹을 것이 없는데 왜 꼭 저렇게 해야 하는가?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주일에는 주일헌금, 십일조를 꼭 챙겼습니다. 언제나 교회 중심의 생활이었습니다. 어떤 때는 아버지가 미웠습니다. 그러나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참으로 귀한 모범이었습니다. 이것이 기독교 정신입니다. 어떻게 보면 시대에 뒤떨어진 것 같고 어리석어 보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자녀들에게도 이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삶으로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생명이 있는 그리스도인은 이 세대를 거슬러 올라 갑니다. 육신의 생각을 거스러 올라갑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 속에 생명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로 적극적으로 '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변화를 받는다'는 말은 '거듭난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새롭게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었듯이, 본질상 진노의 자식이며, 저주의 자식이며, 사탄의 자식이었던 우리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거듭 태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변화없이 새출발은 없습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죄에 빠져 있을 때 우리를 위해 대속물이 되어 주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신 구세주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우리 안에 모시면우리 속에 예수의 생명이 들어오고 예수의 사람으로 거듭납니다. 거듭나야만 새로운 출발이 있습니다.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출발이 있을 수 없습니다. 저 북한에 살던 사람이 자유롭게 살려면 남한에 내려와야 합니다.
아무리 북한에서 자유롭게 살려고 해도 북한에 있는 한 자유는 없습니다. 사탄의 손아귀에 있는 한 여러분들이 아무리 잘 살고 싶고, 정직하고 싶고 의롭고 싶고, 정직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먼저 마귀의 세력에서 빠져 나와야 합니다. 어둠의 세력, 저주와 죽음의 세력으로부터 빠져 나와야 합니다. 그리고 빛의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빛의 자녀로 살수 있습니다. 어떻게 변화를 받습니까? 두 가지입니다. 예수님과 성령님으로 인해 변화를 받습니다.
예수님을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하면 됩니다. 좀 더 실제적으로 말씀드리면 삶의 운전대를 주님께 내놓으라는 것입니다. 주인이 바뀌었는데 삶이 안바뀝니까? 예수님이 나의 삶의 키를 잡으셨는데 내 삶이 안바뀝니까? 안맡겼으니까 그대로 있는 것입니다. 입으로만 주여주여 하지 실상 삶의 키를 내가 쥐고 있으니까 세상에 사로잡혀 있는 것입니다.
롬 8:1을 보면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시면 내 안에 있는 정죄감, 죄책감, 죄가 다 사라집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그리고 그렇게 예수님을 영접하고 죄사함을 받으면 생명의 성령이 기름을 부어 주십니다. 성령이 오시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해방시켜 주십니다. 이것이 거듭남입니다. 거듭난 사람은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변화되면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은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에는 이 세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뜻은 선합니다. 악하지 않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일을 해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시면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그리고 또한 하나님의 뜻은 부분적이 아닌 온전함입니다. 구약과 신약이 짝을 이루듯이 하나님의 뜻은 온전합니다.
여러분, 무엇이든지 알면 쉽고 모르면 어렵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도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알면 쉽고, 모르면 어렵습니다. 감옥에 들어가거나 암에 걸린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참된 그리스도의 삶을 알게 되면 우리는 기쁘고 즐겁고 신이 납니다. 이것은 고통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억지로 끌려다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기는 하는데 그 길로 가지 않으려고 버티는 사람이 있습니다. 교회에 오기는 하지만 꼭 늦게 오고, 설교시간에는 좁니다. 그렇다고 교회에 오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기쁨으로, 감사함으로, 충만함으로 삽니다. 7시에 오라고 하면 6시에 옵니다. 그런 것은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닙니다. 연애하는 사람이 늦게 가는 것 보셨습니까?
7시에 만나자고 해도 그 전에 가 있지 않습니까? 이런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이런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고생하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기쁨이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합니다. 돈이 있고 없고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병이 들었는지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내 안에 계셔서 그분이 나를 지배하시고 다스리느냐가 중요합니다.
종은 주인의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무슨 일이든지 알면 쉽고 모르면 어렵습니다. 목표가 없는 것을 가리켜 '방황'이라고 합니다. 가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가기는 하는 데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모르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돈을 버는 목적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오래 사는 이유가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결혼하는 이유가 있어야 하고, 자녀를 교육하는 목적이 있어야 하며, 직장 생활을 하는 의미가 있어야 합니다.
그 의미를 아는 사람은 직장에 가는 것을 좋아합니다. 재미있어 합니다. 상사가 아무리 뭐라고 해도 이 사람에게는 삶의 의미가 있기 때문에 기쁩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변화받은 사람만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모두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바랍니다.
어느 목사님이 그 교회 성도의 임종 예배를 드리러 갔습니다. 대학병원 응급실에 계신 분이었습니다. 그 목사님이 그분에게 이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지금 우리는 당신의 임종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당신은 의사와 간호사 외에는 만나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그 사람에게 예수님을 전하십시오. 제가 전하면 믿지 않을지 모르지만, 당신이 전하면 믿을 겁니다" 그랬더니 성도님이 웃기 시작합니다. 사명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죽는 순간에 사명을 발견한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더니 그 성도님은 그후 일반 병동으로 옳겨 갔습니다. 완전무장한 군인같이 온 몸에 바늘과 호스가 꽂혀 있었지만 사명을 발견하니 기쁨이 넘쳤습니다. 그분이 "나는 오늘 죽지만 내 마음에는 평안이 있습니다. 당신도 예수님을 믿으십시오"라고 전도할 때 그분의 말에는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사명을 발견하면 응급실에서 일반 병동으로 옮겨갈 줄 믿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최악의 상황에서 최선의 결과를 만드시는 분입니다. 우리의 모든 실패를 바꾸어 축복으로 바꾸어 주실 것이며, 우리가 저주라고 생각했던 삶의 모든 고통이 변하여 축복이 될줄로 믿습니다. 이 말씀에 매우 적합한 말씀이 데살로니가전서 5:16-18에 있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하나님의 뜻을 검증하는 방법이 세 가지 있습니다.
우선 하나님의 뜻은 기쁩니다. 영혼이 기쁘지 않은 것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손해냐 이익이냐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어느 한 길을 선택한 뒤 불안해 하지만, 하나님의 뜻은 힘든 길일지라도 마음에 기쁨이 있습니다. 두번째, 하나님의 뜻은 계속 기도를 쉬지 않습니다. 언제나 내게 주어진 사명, 맡겨진 생명사역을 위해서 기도거리가 넘칩니다.
주어진 그 일이 기도 제목이 됩니다. 그 일에 하나님의 감동하심이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무리 힘들어도 감사가 있습니다. 이러한 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뜻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뜻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선이 있고 기쁨이 있고 온전합니다. 동시에 내 안에 기쁨과 기도와 감사가 흘러 넘칩니다. 이러한 것은 하나님의 뜻과 일치한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하나님은 우리에게 두 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을 따라가지 말라'라는 것입니다. 가는 길이 험하고 외롭고 힘이 들지라도 생명의 길을 계속 가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선택한 길은 좁은 길이지만 생명의 길입니다. 사람을 살리고 사람을 고치고 사람을 세우는 생명사역입니다. 이일을 위해 저와 여러분을 부르신 것입니다. 또 이 일을 위해 저와 여러분이 보내심을 받은 것입니다. 두 번째는 "마음이 새롭게 되어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라. 그리고 그 뜻대로 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 전부입니다. 마음을 새롭게 하십시오.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이 시대를 보고 오늘의 문제를 보십시오.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보일 것입니다. 그 뜻대로 순종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가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