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살의 나이에 첫 태극마크를 달았고, 처음으로 출전한 국제대회에서 금메달 2개, 은메달 1개를 획득했으며 최근 막을 내린 월드컵4차대회에선 남자 5000m 계주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잦은 부상과 수술로 대표팀 데뷔가 늦었지만 임효준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평창동계올림픽을 향해 나아갔다.(사진=이영미)>
아들만 둘인 집안의 장남인 그에게 어머니는 골프와 수영 중 하나를 택하라고 말씀하셨다. 한창 몸 쓰는 걸 좋아하는 일곱 살의 나이. 그런 그에게 골프는 별다른 재미를 안겨주지 못했다. 수영을 시작하려고 결심했을 무렵에는 귓속에 면봉을 집어넣고 장난치다가 고막이 터지는 바람에 없던 일이 되고 말았다. 축구 선수가 꿈이었던 그. 초등학교 입학 후 축구부 감독이 그에게 축구부 가입을 권유했지만 운명처럼 빙상부에 등록했고 취미로 스케이트라도 배워보고자 스케이트화를 신게 됐다.
초등학교 4학년 때 그는 처음으로 쇼트트랙 종별 선수권 대회에 출전하게 된다. 1,2,3학년이 한 그룹으로, 4,5,6,학년이 또 다른 그룹에 속해 대결을 펼치는데 유일한 4학년이었던 그는 5,6학년 선배들과 함께 레이스를 펼쳤다. 당연히 메달은 꿈도 꾸지 않았다. 말 그대로 대회 참가를 통해 배움을 얻고자 하는 의미가 더 컸다.
행운은 예기치 않게 찾아왔다. 6명의 출전 선수들 중 앞서 나가던 4명의 형들이 얽혀 넘어지면서 5학년 형과 4학년의 그만 남았다. 승부욕 제로였던 그는 현실을 직시한 이후 5학년 형을 이겨야겠다는 욕심이 생겼다고 한다. 마지막 결승 지점에서 그는 TV로만 봤던 발 내밀기를 시도했고, 1등으로 들어오게 된다. 그 우승은 남자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버렸다. 쇼트트랙을 취미 생활로 시작했던 그가 비로소 승부의 세계를 맛보게 됐고, 그 결과가 주는 짜릿함을 만끽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한국 남자 쇼트트랙은 10년 후 ‘괴물’이라 불리는 임효준을 얻을 수 있게 됐다.
임효준(21·한국체대)이 쇼트트랙과 첫 인연을 맺을 때만 해도 그의 앞날은 장밋빛 세상이 펼쳐지는 듯 했다. 중학생 시절에는 국제 대회 우승으로 한국 쇼트트랙을 이끌어갈 차세대 주자로 손꼽혔을 정도였다. 그러나 여러 차례 부상들이 반복되면서 그의 발목을 잡았다. 일곱 차례의 수술과 재활을 하는 동안 그는 자신과 함께 훈련했던 선후배들이 태극마크를 달고 국제대회에서 메달 따는 걸 TV로 지켜봐야만 했다.
차세대 유망주였던 그가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았던 시기가 지난 4월 9일 남자 쇼트트랙 국가대표 2차 선발전 1500m 수퍼파이널에서 1위를 기록하는 등 1,2차 선발전 종합 우승을 차지했을 때였다. 대표팀 선발전을 1위로 통과하며 평창동계올림픽에 출전하게 된 그는 빙상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겨줬다.
임효준이 대단했던 건 태극마크를 달고 처음 출전했던 국제대회에서 금메달 2개, 은메달 1개를 획득했다는 점이다. 10월 2일(한국시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막을 내린 2017-2018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제1차 쇼트트랙 월드컵대회에서 임효준은 국제 대회 경험 부족이란 우려를 딛고 1500m와 1000m 금메달을 휩쓸며 2관왕에 올랐고, 취약 종목으로 꼽히던 500m에서도 은메달을 목에 걸며 깜짝 활약을 펼쳤다. 이후 허리 부상으로 2,3차 월드컵대회를 포기하고 최근 한국 목동아이스링크에서 열린 월드컵 4차대회에 출전해선 남자 5000m 계주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계주에 출전한 선수들은 곽윤기(고양시청)를 비롯해 임효준, 서이라(화성시청), 김도겸(스포츠토토)이었다. 이들은 6분47초365의 기록으로 2위 네덜란드보다 0.136초 앞섰다.
임효준과의 인터뷰는 계주 금메달 얘기부터 시작했다.
<월드컵 1차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던 임효준. 그러나 허리 부상으로 2,3차 대회에 출전할 수 없었다. 완쾌되진 않았지만 한국에서 열리는 올시즌 마지막 대회에 출전한 임효준은 만원 관중의 응원과 함성이 엄청난 힘이 됐다고 말한다.>
첫 출전한 국제대회에서 금2, 은1
한국에서 열렸던 2017-2018 시즌 마지막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쇼트트랙 월드컵 4차 대회는 평창 올림픽을 앞둔 마지막 리허설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대회 파이널 경기였던 5,000m 계주에서 남자 대표팀이 3년 만에 금메달을 획득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마지막 주자가 임효준 선수라 그 짜릿한 기분이 더 컸을 것 같다.
“개인종목보다 단체전 금메달을 꼭 갖고 싶었는데 그게 시즌 마지막 대회에서 이뤄져 정말 기뻤다. 계주는 팀워크가 중요하지 않나. 경험해 보니 개인전 우승보다 기쁨이 두세 배 더 큰 것 같다.”
사실 2017-2018시즌 월드컵 대회는 헝가리에서 열렸던 1차 대회 이후 4차 대회가 두 번째였다. 즉 태극마크를 달고 국제대회 출전은 두 번째였던 셈이다.
“헝가리 대회에서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두며 기쁨을 만끽했지만 갑자기 허리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2,3차 대회에 출전할 수 없었다. 계속 치료받으면서 4차 대회를 준비했는데 그 시간이 너무 짧았다. 부상이 완쾌된 상태가 아니라 4차 대회 출전이 망설여졌다. 그러나 올림픽 앞두고 치르는 마지막 시합이었고, 대회 장소가 한국이었기 때문에 올림픽 분위기를 느껴보고자 출전을 결심했다. 성적이 좋든 안 좋든 외국 선수들과 대결해보고 싶었다. 4차 대회가 열렸던 목동 아이스링크장이 만원 관중을 이뤘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열광적인 응원을 받고 경기를 벌인 게 처음이었다. 개인전에선 욕심을 앞세우는 바람에 실수가 잦았다. 충분히 메달까지 딸 수 있는 있는 경기들이었는데 내 스타일대로 레이스를 펼치지 못했다. 개인전의 아쉬움을 계주에서 풀기로 마음먹었고 형들이랑 멋진 시합을 해보자며 나름 벼르고 있었다.”
계주에선 곽윤기 선수가 1번 주자였고 임효준 선수는 2번 주자였다. 마지막 결승선을 통과하는 자리였는데 경기 앞두고 어느 정도의 부담을 느꼈나.
“대표팀에서 계주에 출전한 게 처음이었다. 형들이 하는 계주를 본 적은 있지만 대표팀에서의 계주는 처음이었고 2번 주자도 처음이었다. 막상 해보니까 2번 주자의 압박감이 만만치 않았다. 내가 마지막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순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개인전은 잘하든 못하든 나만 영향을 받는데 단체전은 다른 선수들한테도 영향을 미치니까 긴장이 엄습해오더라. 형들이 옆에서 긴장감을 풀어주려 많이 도와줬다. 덕분에 우리가 모두 갖고 싶었던 계주 금메달을 목에 걸 수 있었다. 지금까지 땄던 어느 메달과 비교도 안 될 만큼 기뻤다. 아주 잠깐은 ‘이게 올림픽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하는 생각도 들었다(웃음). 시즌 마지막 대회의 마지막 경기 흐름을 올림픽까지 이어가려고 한다. 그러려면 지금보다 더 많이 노력해야 한다.”
계주 특성상 한 선수가 실수라도 하게 되면 메달권에서 멀어지거나 메달 색깔이 바뀌는 참사가 벌어진다. 임효준은 그걸 잘 알고 있기 때문에 2번 주자의 부담을 극복하려고 애를 썼다. 마지막 레이스에선 100%의 힘으로 전력 질주해야 하기 때문에 앞선 레이스에서 체력 안배를 하는 것도 중요했다. 임효준은 거듭 마지막 단체전 금메달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그만큼 갖고 싶었던 메달이었다.
<임효준의 등장은 빙상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겨줬다. 더 이상 부상만 없다면 그는 평창올림픽에서 제몫을 해낼 것으로 평가받는다.(사진=이영미)>
빙상계, “괴물이 나타났다”
2012년 유스올림픽 1000m에서 1위를 차지한 후 지난 4월 평창올림픽 대표팀 선발전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선수가 1위에 오르며 태극마크를 달았다. 당시 빙상계에선 임효준 선수를 가리켜 ‘남자 쇼트트랙에 괴물이 나타났다’는 말들이 나돌았다. 그동안 김동성, 안현수를 잇는 스타플레이어의 부재를 겪었던 남자 쇼트트랙에서 임효준 선수의 등장은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이 날 알아보고, 응원도 많이 해주신다. 4차 대회에선 그 부분이 눈물 나도록 고마웠다. 내가 더 열심히 해서 이 분들을 더 기쁘게 해드려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얼마 전에는 가족들이랑 식당에 갔다가 어느 여성분이 사인 요청을 해서 사인을 해주는데 내가 더 감사한 마음이 들더라. 날 알아봐주셔서. 쇼트트랙은 비인기 종목이다. 동계 올림픽 때만 국민들의 관심을 받는 종목이라 일반인들이 선수 얼굴을 기억해줬다는 건 엄청난 일이다. 그 경험이 매우 짜릿했다.”
사인은 준비해둔 게 있었나. 카드 결제 사인 말고.
“친구가 만들어 준 걸 요즘 잘 써 먹고 있다(웃음).”
남자 쇼트트랙은 한때 동계올림픽의 효자 종목이었다. 그러나 2014년 소치올림픽에서 노메달에 그치며 암흑기를 맞이한 반면 여자 쇼트트랙은 굴곡 없이 좋은 성적을 이어갔다.
“훌륭한 선배님들이 이룬 업적을 후배들이 못 지킨 셈이다. 죄송한 마음이 크다. 운동하면서 매번 남자가 여자 선수들한테 밀린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그러나 평창 올림픽이 끝났을 때는 여자 선수들보다 우리가 더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될 것이다. 일부에선 이번에 처음 대표팀에 발탁된 선수들로 인해 경험 부족을 우려하지만 그 우려가 기우가 될 수 있게끔 최선을 다하겠다. 실수만 안 한다면 분명 좋은 결과가 나올 거라 믿는다. 남자 쇼트트랙한테도 응원 많이 해주시길 바란다.”
지난 4월 평창동계올림픽 대표팀 선발전에서 쟁쟁한 선배들을 제치고 종합 1위를 차지하며 엄청난 화제를 모았었다. 이정수, 신다운 등 당시 국가대표 선수들이 임효준 선수의 몰아치는 스피드를 당해내지 못했다는 평가도 많았다. 전성기의 안현수를 보는 것 같다고 해서 ‘제2의 안현수’라는 별명도 붙었는데 소감이 어떠했나.
“(안)현수 형은 어린시절 내 우상이었다. 2006년 토리노올림픽에서 현수 형이 3관왕을 차지하는 걸 보고 그때부터 팬이 됐다. 우스갯소리로 선수들끼리 우리가 갖고 있는 전국대회 메달보다 현수 형의 올림픽 메달이 더 많다고 말했을 정도이다. 내 우상이고 영웅인 선수와 비교된다는 것 자체가 감격스럽다. 얼마 전 현수 형이랑 모교인 한체대에서 함께 훈련한 적이 있었다. 현수 형의 뒤를 내가 따라가며 훈련했는데 그 포스가 어마어마하더라. 현수 형의 뒤를 따라가기만 했을 뿐인데도 내가 잘 타는 느낌이 들어 신기했다. 시간 날 때 마다 현수 형의 경기 영상을 찾아보며 배우고 있고 영상을 볼 때마다 감탄이 절로 난다. ‘제2의 안현수’란 타이틀은 내게 정말 과분한 수식어이다.”
안현수 선수가 특별히 조언해준 부분이 있었다면?
“부담 갖지 말고 편하게 스케이트를 타라고 하셨다. 모르는 내용은 아니지만 현수 형이 말해주니까 그 말이 힘 있게 들리더라.”
임효준은 스피드스케이팅의 이승훈과도 함께 훈련한 적이 있었다. 학교 선배이기도 한 이승훈에게 “올림픽에서 금메달 땄을 때 어떤 심정이었느냐”고 물어봤다는 임효준. 이승훈은 후배에게 “꼭 1등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부담이 커져 실수가 나오기 마련이다. 평소 하던 대로 편하게 즐기면서 타면 그 이상의 결과가 나온다”고 조언해줬다고 한다. 이승훈과의 훈련은 임효준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3년 만에 남자 쇼트트랙 계주 5000m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대표팀 선수들. 임효준은 결승지점을 가장 먼저 통과했다.>
“오직 평창 올림픽만 보고 재활을 이겨냈다”
오랫동안 부상과 재활로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이 무엇이었나.
“나랑 같이 훈련했던 선수들이 태극마크 달고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냈을 때이다. 그들의 성적이 질투가 난 게 아니라 난 왜 그들과 함께 대회에 출전할 수 없는지에 화가 났다. 그만 두고 싶은 생각도 많이 했었다. 그럴 때마다 딱 한 가지만 떠올렸다. 평창 동계올림픽이다. 한국에서 열리는 올림픽에 꼭 출전하고 싶어 이를 악물고 재활 훈련을 감당했고 극복했다.”
평창동계올림픽이 임효준 선수의 쇼트트랙 인생에 엄청난 동기부여를 한 것 같다. 사실 지난해 국가대표 선발전은 종합 10위를 차지했었는데 1년 만에 우승을 거머쥐었으니 말이다.
“작년 대회에서 거둔 10위란 성적이 자신감을 갖게 하기도 했다. 몸이 정상적으로 돌아온다면 더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고 믿었다. 그렇게 1년을 노력한 끝에 올림픽 대표 선발전에서 1,2차대회 1위에 오른 것이다. 당시엔 어머니가 우셨다는 걸 몰랐는데 나중에서야 어머니가 현장에서 눈물을 흘리셨다는 얘기를 들었다. 계속된 불운과 부상이 겹치면서 나보단 그런 나를 지켜보는 가족들의 마음고생이 심했다. 특히 어머니는 날 위해 희생을 마다하지 않았다. 너무 늦었지만, 늦게라도 가족들에게 위로와 선물을 전한 것 같아 보람도 느꼈다.”
그동안 수술만 일곱 차례나 한 걸로 안다. 힘든 수술을 하고 재기를 위해 다시 링크장에 섰을 때 두려움이 생기진 않았나.
“처음엔 당연히 두려웠다. 특히 발목 수술을 받았을 때는 내가 다시 스케이트화를 신을 수 있을지도 불투명했다. 결국 재기하게 되고 또 다치고…. 나중에는 부상의 두려움, 복귀해서 또 다시 부상 당할까봐 걱정하는 마음들까지 무뎌지더라. 다른 선수들보다 더디 가는 것일 뿐 별다른 차이는 없다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온전한 몸 상태로 스케이트를 탔을 때의 희열을 기대하며 몸을 만들었다.”
혹시 정상적인 몸 상태라면 남자 쇼트트랙에서 최고의 성적을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나.
“서두르지 않고 내 스타일대로 풀어간다면 상대가 누가 되든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쇼트트랙은 자기 자신을 믿는 게 중요하다. 내 자신에 대해 강한 믿음을 갖고 있다.”
이제 올림픽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어떤 각오로 훈련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허리 부상이 완쾌된 상태가 아니라 지금도 계속 치료받고 훈련과 한체대 수업을 병행하고 있다. 올림픽 메달은 내가 정하는 게 아니다. 올림픽이 끝났을 때 후회만 안했으면 좋겠다. 내가 숱한 부상을 겪고 일어선 이유와 목표가 헛되지 않았음을 실력으로 보여주고 싶다. 좀 전에 현수 형이 토리노에서 금메달 따는 모습에 자극 받아 쇼트트랙을 더 열심히 했다고 말하지 않았나. 나도 내 후배들에게 그런 존재로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임효준이 평창올림픽에서 경기하는 걸 보고 반한 나머지 쇼트트랙 선수로 성공했다’는 후배가 많이 나오길 바란다.”
<자신이 안현수를 보고 쇼트트랙 선수로 성장했듯이 어린 유망주들에게 자신도 꿈과 희망을 심어주고 싶다고 말하는 임효준. 결국엔 평창으로 가는 길에 승선한 그와 대표팀 모든 선수들에게 행운이 함께 하길 바란다.>
<이영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