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빌립보서 2:5-7).
12월은 한 해를 마무리하는 달입니다. 지나간 시간에 대한 반성과 함께 감사가 있는 달입니다.
우리 성도에게는 무엇보다 12월은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성단의 달입니다. 한 해를 제대로 살지
못한 아쉬움과 하나님 앞에 부끄러웠던 일까지도 예수님의 오심 안에서 해소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부족과 허물을 용서하고 치료하러 오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성탄
사건의 의미는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낮은 데로 오셨다는 것입니다.
하늘 보좌에서 이 땅으로 오셨으니, 가장 먼 여행이요. 가장 낮은곳으로의 이동입니다.
낮은 데로 오셨다는 것은 복음의 기본 입니다. 우리는 죄인이고 낮은 자입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높은 데로 오셨다면, 낮은 자들은 예수님을 만날 수 없고, 은혜를 입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성단은 낮은 데로 오신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첫 번째 성탄절에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모두 낮은 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길잡이로 온 세례 요한의 부모인 사가라와 엘리사벳은 늙고 연약하며 자녀도 없는 은퇴한 제사장
부부였습니다. 예수님의 모진으로 선택된 마리아는 갈릴리의 변방인 나사렛의 평범한 처녀였습니
다.
나중에 예수님의 제자가 된 나다나엘이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고 했는데, 이로 보아
나사렛은 소외된 변방일 뿐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양부인 요셉 역시 나사렛의 젊은이였고, 직업은
목수였습니다. 요아킴 예레미아스의 예수 당시의 예루살렘에 의하면 당시 목수라는 직업은 유대
사회에서 가장 천대받는 직업 중 하나였습니다. 요셉이 목수였기에, 예수님께서도 장자가 부친의
직업을 가업으로 잇는 당시 관례를 따라 목수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또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밤에
제일 먼저 예수님께 경배한 이들은 목자였습니다. 유대 사회는 유목이 보편적인 직업임에도
불구하고 독자를 전시한 것은 특이합니다. 이들은 한밤에도 집에서 잠자지 못하고, 들판에서 양을
지키던 고단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멀리 동방에서 와서 예수님께 경배한 박사들은 아마도
점성술사로서 사회적 존경을 받았겠지만, 유대인 입장에서는 천대받던 이방인이었습니다.
또 예수님께서 정결 예식을 위해 성전에 가셨을 때 만난 시므온과 안나 역시 평범한 노인에
불과했습니다. 이렇게 보면 예수님 탄생에 즈음하여 등장하는 인물은 하나같이 소외되고, 낮은
변두리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뿐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메시아 사역 역시 낮은 자들에게 집중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죄인을 위해 오셨다고 말씀하셨고, 병자들을 기꺼이 맞이하여 치료하셨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병자는 그 자체로 낮은 자입니다. 고통이 그들을 아래로 끌어내립니다. 또 예수님의
오병이어 이적은 예수님께서 당시 떠돌며 굶주리던 이들의 친구이셨음을 보여줍니다. 복음서에
드물게 등장하는 이들, 즉 산헤드린 공회원인 니고데모, 예수님을 초대했으나 환대하지는 않았던
바리새인 시몬과 같은 사람은 예수님께는 어쩌면 불편했을지도 모를 높은 사람들이었습니다.
한국 교회는 그동안 기복주의적 복음을 많이 전해왔습니다. 낮은 자리에 있던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복을 받으면 성공하여 높은 자리에 앉게 된다는 메시지가 넘쳐났습니다. 가난한 가정에서
출생하여 큰 교회의 목사가 된 이들의 이야기, 어려운 중에 시작하여 거부가 된 이들의 간증과
같은 이야기가 인기를 끌었습니다. 한국 교회에서 복음은 성공신화처럼 인식되었습니다. 이렇게
되다 보니 복음에서 십자가가 사라졌습니다. 십자가는 그저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지신 것으로
그쳤습니다. 우리가 저야 할 십자가를 잃어버렸습니다. 십자가 없는 기독교가 되었습니다.
우러나는 섬김보다 보이기 위한 섬김이 많아졌습니다.
영락교회 목사가 된 후에 소위 대단한(?) 인물들을 만나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정치인을 비롯
각계에 이름을 날리는 이들을 만나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그분들은 우리 사회에서 나름대로
성공한 이들입니다. 이런 이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낮음의 영성을 잊을까 염려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하나님께서는 제게 종종 가난하고 어려운 이들을 만나게 하서서 제 마음을 그분들을 통해
정화해 주시곤 했습니다. 몹시 어려운 형편의 성도들, 농어촌의 열악한 환경에서 목회하시는
분들을 만나게 하셨습니다.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사연을 가진 선교사님들을 만나게 하셔서
제게 거룩한 자극을 주시곤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주시는 은혜라고 믿습니다.
올해도 성탄절이 다가옵니다. 낮아지신 예수님께서 희망 없는 죄인인 우리에게 다가오신 은혜를
생각하면서 성탄을 맞이하길 원합니다. 한경직 목사님의 영성 역시 낮아짐이었습니다. 영락교회
성도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낮은 자로 살아가길 원합니다.
- 김운성 목사님, 영락교회 발간, 월간 ‘만남’ 23년 12월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