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적 영성(靈性, spirituality)!
오늘은 주일이다. 과거 약50년 동안 일요일을 주일이라 부르고 교회에 가서 예배를 보고, 봉사활동을 했었다.
이제는 주일 예배 대신, 기독교 신을 떠나서, 매일 새벽 영성 훈련을 하고 있다.
카렌 암스트롱이 쓴 '신의 역사'를 읽다가 아래의 기독교적 영성의 의미를 발견해 기록한다.
위-디오니시우스의 엑스타시스,
6세기 경의 익명의 인물인 '위-디오니시우스'는 신플라톤주의에 용케 세례를 베플고 그리스 철학의 신과 셈족 신을 조화롭게 결합했다. 그는 케리그마(명료화된 진리)와 도그마(신의 초언어적이고 감추어진 신비)를 구분했고, 그 둘은 상호의존적이며 기독교 신앙의 본질이라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신은 모든 존재를 초월한 존재일 뿐 아니라 모든 명칭을 초월한 존재다. 또 신은 우리가 이해하는 의미의 단일체도 아니고 삼위일체도 아니기 때문어 우리는 신을 삼위일쳬라고 불러선 안된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신이 자신의 이름 중 '성부' '성자' '성령' 같은 이름들을 성서를 통해 우리에게 계시한 목적은 자신에 관한 정보를 우리에게 주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신을 지향하도록 이끌어 신성을 공유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는 것이다.
위-디오니시우스는 성서를 읽는 것도 신에 관한 어떤 사실을 발견하는 과정이 아니라 케리그마(계시되고 공포된 진리)를 도그마(감추어진 비전적 진리)로 바꾸는 역설적 훈련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방법은 테우르기아, 즉 우리가 신을 향해 상승할 수 있게 해주는 신의 능력을 경험하는 것이며, 플라톤주의자들이 항상 말했듯이 우리를 신성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것은 '생각을 멈추는 것'이다. 우리는 신에 관한 모든 개념을 버려야 한다. 우리는 정신의 활동을 중단한다. 우리는 신의 속성에 대한 부정마저 부정해야 하며, 오직 그럴 때만 '신과의 망아적 합일'을 체험할 수 있다. 위-디오니시우스가 말한 황홀경(ekstasis,망아상태)는 요가 수련이나 명상으로 성취하는 어떤 특정한 정신 상태나 대안적인 의식 형태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기독교인이 기도와 테오리아(관조)의 역설적 방법으로 도달할 수 있는 상태였다. 그것은 대화보다 침묵을 요구한다. 시나이산에서 '모세가 무지의 어둠을 뚫고 체험한 신의 임재'와 같이 인간은 자신을 언어와 사고의 틀에서 해방할 때 궁극적으로 신과 합일되는 엑스터시에 도달할 수 있었다.
위-디오니시우스는 이러한 망아 체험은 '산 정상에 오르는(상승) 인간의 노력'에 부응해 '산 정상으로 내려오는(하강) 신'이 있기에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위-디오니시우스는 신이 초월적 한계를 넘어 자신을 낮춤으로 피조물의 세계에 임재해 인간과 망아적 합일을 이룬다고 주장했다.
구경회 2024.0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