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은 정치경제사회적 불안정과 환경기후재난, 신체의 변화와 감정의 동요로 말미암아 불안감이 기본감정이 되었다. 생활환경과 일상경험이 계속 변하는 가운데 나를 감싸주던 ‘변하지 않고 내 삶을 지속적으로 지지해주던 것들’이 나에게서 자꾸 사라져 가는 것 같아 불안하다. 그냥 지금 이대로 변함없이 계속 살고 싶은데 세상도 변하고 인정도 변하고 몸도 마음도 변한다. 모든 것이 변하는 가운데 변하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 그 변하지 않고 영원히 지속되는 것이 있다면, 그걸 찾아서 붙들기만 하면, 안심하고 안정된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세계와 존재의 확실한 토대는 무엇인가? 이 세상에서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 물질세계의 불변하는 실체는 무엇인가? 끊임없이 변해가는 나의 몸과 마음 가운데 불변하는 실체는 있는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영원불변 하는 신은 있는가? 내 안에 깃든 영원불변한 본질은 무엇인가? 죽은 후에도 죽지 않고 내게 남아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신성, 영혼, 아트만, 불성, 깨달음인가? 불변하고 영원한 것, 본질, 실체만 찾으면 내 존재와 세계의 확실성을 확보할 수 있고, 그럼으로써 나는 안심하고 안정된 현재를 누리면서 미래를 예측하여 설계할 수 있을 것 같다. 본질적인 것과 비본질적인 것을 구별하여 비본질적 것을 제거하고 본질만 남기면 확실하고 안정된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이런 문제의식이 바로 인류로 하여금 철학적 종교적 사유의 불을 당긴 동기가 되었다. 여기에 대한 부처님의 답은 무엇인가? 세계와 존재의 확실성을 추구하는 사변이나 철학은 욕계중생이 욕계에 계속 존재하고자 하는 욕망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다. 어쨌든 언제까지나 살고 싶다는 본능, 존재를 놓지 못하고 지속하려는 열망을 bhavatanha有愛이라 한다. 서양에서 초월적 실재로서 창조주 하느님을 믿는 것이나, 사후에 천국에 가자는 것이나, 동양에서 범아일여의 我, 神我, 초월적인 我, 眞我, 우주적인 나, 참 나를 찾는 것은 모두 같은 심리이다. bhavatanha有愛, 존재에 대한 갈망이다. 존재를 집착한다. 존재론적 확실성을 찾으려고 안간 힘을 쓴다. 그런데 부처님은 그 욕망은 이루어질 수 없다고 단정한다. 이루어질 수 없고 채울 수 없는 욕망을 채우려는 끊임없는 애씀과 고생이 바로 苦, 불만족성 unsatisfactoriness, insatiability(dukkha라고 한다)이다. 인간이 경험하는 일체는 無常anicca하며 無我anatta이며 苦dukkha이다. 이것이 존재와 세계의 실상이다. 모든 것이 모든 것과 연결되어 생성소멸 하는 흐름 가운데 ‘나의 것’으로 챙겨 붙들어 둘 만한 것은 하나도 없고, ‘나’라고 할만한 것도 없으며, 자아라고 믿을만한 것도 전혀 없다. 이 사실을 흔쾌히 받아드리면 지금 당장 해탈 열반이요, 그렇지 않으면 惑-業-苦의 연쇄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이 가르치신다. 오온은 ‘나의 것’이 아니며 ‘나’가 아니며 나의 자아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