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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우주 시공 온누리 비장 개벽 탈신공 음양 오행 역학 풍수연구회 원문보기 글쓴이: 곽경국
마음을다스린다
곽경국추천 2021.07.16 20:19글
심신을 편안하게 마음을 다스린다 마음을 다스리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마음을 다스릴려면 모든 이익 된 것은 내려놓아라
모든 이익권 달가운 것, 이해타산에서 이권 이로운 것을 놓아버리면 자연적
마음이 편안해지는 거다 이권이라 하는 것은 이익하다 하는 것은 언덕바지를 오르는 것 같아서 자연적 오르려면 숨이 헐떡이고 차는 거와 같아.
그렇지만 반대로 그 이익 된 것들 유익하다 하는 것을 놓아버리면 내리막길을 가는 거와 같아서 아주 수월하게 숨도 안 차고.
편안한 걸음 거리로 내려가는 것 같다 그렇다고 무슨 큰 경사진 거 미끄러운 거 이렇게 내려가는 걸 말하는 것이 아니야.
적당한 그런 경사진 것 내려가기 좋은 길을 말하는 거지 이렇게 마음을 다스린다
마음을 다스려야지만 뭔가 마음이 편안하게 되는 거야 모든 달갑다 하는 것을 다 놓아버리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이런 말씀이야 이것이.
[ 마음을 비우는거나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할거다]
공유해주신 글귀를 읽으니 복잡했던 머릿속이 잠시 정돈되는 기분입니다. '이익'을 쫓는 마음을 가파른 언덕길에 비유한 대목이 참 인상적이네요. 우리는 평소 더 많은 것을 얻으려 숨을 헐떡이며 오르막을 오르지만, 정작 평온함은 그 손을 놓았을 때 찾아오는 내리막길의 수월함에 있다는 통찰이 마음에 와닿습니다.
제시하신 글의 핵심과 그에 대한 제 생각을 몇 가지 갈래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1. '이권(利權)'을 내려놓는다는 것의 의미
글에서 말하는 이익이란 단순히 돈이나 물질만을 뜻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타인에게 인정받으려는 욕구, 내가 항상 옳아야 한다는 고집, 손해 보지 않으려는 계산적인 마음 등을 모두 포함하겠지요.
오르막길: 욕심을 채우려 할 때는 에너지가 과하게 소비되고 숨이 찹니다.
내리막길: '나에게 이로워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놓는 순간, 삶의 속도가 조절되며 호흡이 편안해집니다.
2. 마음을 다스리는 실천법: 비움(Emptying)
마지막 문장에 언급된 **'마음을 비우는 것'**은 결국 나를 무겁게 만드는 기대치들을 덜어내는 과정입니다.
결과에 대한 집착 버리기: 일을 하되, 그 결과가 반드시 내게 이익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생각을 비우면 과정 자체가 즐거워집니다.
이해타산에서 벗어나기: "내가 이만큼 했으니 너도 이만큼 해야 해"라는 계산기를 두드리지 않을 때 관계가 편안해집니다.
3. "적당한 경사"의 지혜
글쓴이는 무조건 가파르게 미끄러져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내려가기 좋은 적당한 경사'**를 언급했습니다. 이는 현실을 완전히 등지는 것이 아니라, 삶을 영위하되 그 속에서 지나친 과욕을 덜어내고 여유로운 걸음걸이를 유지하라는 중용(中庸)의 미학으로 읽힙니다.
"마음을 다스리는 것은 결국 내가 쥐고 있는 것이 나를 힘들게 하고 있음을 깨닫는 데서 시작한다."
이 글처럼 오늘 하루는 숨 가쁜 오르막보다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기분 좋은 내리막' 같은 시간을 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혹시 요즘 일상에서 당신의 숨을 가장 가쁘게 만드는 '언덕'은 무엇인가요?
또
각자 사람들마다 자기 분수 주제를 알게 하게 한다 주제를 알게 한다
주제 파악을 하게 한다 자기 분수를 모르고.
날 뛰면 언젠가. 는 그렇게. 다치게 된다 이런 말씀이지.
무슨. 커다란 힘의 압제를 받아 가지고 자기 분수를 알고 주제 파악을 하게 한다 하는 것은 그것은 핍박을 받는 것이지 분수를 알게 하는 게 아니야 스스로.
자기가
자기 역량을 알아서 자기 분수를 아는 거 자기 위상을 아는 것 이것이 자기 분수를 알고 자기 주제를 아는 것이지
남한테 힘센자한테 핍박을 받고 압제를 받아가지고 분수를 알고 주제 파악을 하게 한다.
이것은 말하자면 자기 분수를 아는 것이 아니야
힘에 눌려가지고서 어쩔 수 없이 항복하듯 하는 거지 그런 데는 심신이 편안해질 수가 없어.
어떻게 하든 돌파할 그런 궁리 두잡아 엎을려 하는 그런 궁리 저항심 반항심 이런 걸 한 쪽으로 키워주게 된다 이런 말씀이야
두 번째로 공유해주신 글은 **'참된 자각'**과 **'강요된 굴복'**의 차이를 아주 날카롭게 짚어내고 있네요. 단순히 내 몸을 낮추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낮춤이 **나의 내면(자발성)**에서 우러나온 것인지, 아니면 **외부의 압력(강제성)**에 의한 것인지가 핵심이라는 점이 인상 깊습니다.
이 글이 주는 울림을 세 가지 포인트로 나누어 보았습니다.
1. 억압은 '분수'를 알게 하는 것이 아니다
권력이나 힘에 눌려 고개를 숙이는 것은 '주제 파악'이 아니라 그저 **'생존을 위한 항복'**일 뿐입니다. 글에서 지적하듯, 억지로 눌린 마음속에는 반드시 다음과 같은 부작용이 자라나게 됩니다.
저항심과 반항심: 겉으로는 순종하는 척하지만, 속으로는 기회를 엿보며 뒤집어엎을 궁리를 하게 됩니다.
심신의 고통: 억눌린 감정은 스트레스가 되어 몸과 마음을 병들게 합니다. 결코 '편안함'에 이를 수 없습니다.
2. 스스로 깨닫는 '자기 역량'과 '위상'
참된 분수(分數)를 안다는 것은 비굴해지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의 그릇과 위치를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지혜입니다.
자기 역량 확인: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을 명확히 구분하는 것.
자기 위상 정립: 내가 서 있어야 할 자리를 스스로 인정하는 것.
이것이 자발적으로 이루어질 때, 비로소 남과 비교하며 괴로워하거나 무리하게 '날뛰다가' 다치는 일을 면할 수 있습니다.
3. 진정한 자유는 '분수'를 인정할 때 온다
자신의 분수를 스스로 아는 사람은 남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습니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욕심내고, 내 역량 안에서 최선을 다하기 때문입니다. 이때의 마음 상태는 **'체념'이 아니라 '평온'**에 가깝습니다.
"스스로 아는 분수는 나를 보호하는 울타리가 되지만, 남이 강요한 분수는 나를 가두는 감옥이 된다."
결국 앞서 말씀하신 '이익을 내려놓는 마음'과 이번 '분수를 아는 마음'은 일맥상통하는 것 같습니다. 외부의 힘이 아니라 내 의지로 욕심의 크기를 줄이고 내 그릇을 인정할 때, 비로소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심신의 편안함이 찾아온다는 가르침이네요.
혹시 선생님께서는 살면서 '내 분수를 스스로 깨달아 마음이 오히려 편안해졌던' 구체적인 경험이 있으신가요?
그래서
남을 핍박하고 압제해서 굴복시키려 하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니야.
무슨 챔피언이 됐다 하더라도 젊어. 소시적 주먹 가보든지 무슨 격투기든지 이런 걸 해가지고 1등 자리 챔피언이 됐다 하더라도 힘 완력으로 굴복시킨 것이라 그렇게 도전자가 많다고 하지 않는가 이런 말씀이야.
언젠가는 자기도 남을 힘으로 굴복시켰으니.
자기도 남의 강한 힘한테 굴복당하기 쉽다 이런 말씀이야.
대략은 강하게 나돼서 그렇게 챔피언 자리를 내놓게 되잖아.
그러니까 힘으로 굴복시키는 게 아니라 덕으로 감화를 시키려 들어야 된다 이런 말씀이지.
공유해주신 글의 흐름이 이제 **'덕(德)을 통한 감화'**라는 드높은 경지로 이어지네요.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우리가 왜 결국 '덕'으로 돌아가야 하는지를 명쾌하게 설명해주는 글입니다.
완력으로 얻은 승리는 잠시뿐이며, 그 승리가 오히려 자신을 위태롭게 만든다는 통찰이 깊은 울림을 줍니다.
1. 힘의 역설: 챔피언의 불안
주먹이나 격투기 같은 힘(완력)으로 정점에 올라선 챔피언은 늘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끝없는 도전: 힘으로 굴복시킨 자리에는 그 힘을 꺾으려는 더 강한 도전자가 끊임없이 나타납니다.
인과응보(因果應報): 남을 힘으로 눌렀기에, 본인 또한 언젠가 더 큰 힘에 눌리게 되는 순리를 피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승리가 아니라, 사실은 **'공격받을 순번'**을 기다리는 것과 같습니다.
2. 압제가 남기는 뒷맛
앞선 글과 연결해 보면, 억압으로 얻어낸 복종은 겉모습일 뿐입니다. 상대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두잡아 엎으려는' 불씨가 살아있기에, 압제자는 결코 마음 편히 잠들 수 없습니다. 진정한 평화는 굴복시킨 자나 굴복당한 자 모두에게 찾아오지 않는 법입니다.
3. 힘보다 강한 '덕(德)'의 감화
글쓴이가 제시하는 해법은 **'덕으로 감화시키는 것'**입니다.
덕(德)의 힘: 덕은 상대를 무릎 꿇리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스스로 마음을 열고 다가오게 만듭니다.
지속 가능한 평온: 덕으로 맺어진 관계에는 시기나 보복의 심리가 끼어들 틈이 없습니다. 힘으로 누르면 반발하지만, 덕으로 대하면 감화되어 진심으로 따르게 되기 때문입니다.
💡 결론적인 사유
결국 마음을 다스린다는 것은 내 안의 '힘(욕망, 계산, 완력)'을 빼고, 그 빈자리를 '덕(이해, 배려, 자발적 수긍)'으로 채우는 과정임을 일깨워줍니다.
"주먹으로 얻은 왕관은 무겁고 위태롭지만, 덕으로 얻은 마음은 가볍고 견고하다."
선생님께서 올려주신 글들을 쭉 읽어보니, 결국 우리 삶의 태도가 어떠해야 심신이 평안해질 수 있는지에 대한 하나의 완성된 지도를 보는 것 같습니다. 이익을 내려놓고, 분수를 알며, 힘이 아닌 덕으로 사람을 대하는 삶. 참으로 도달하고 싶은 경지입니다.
이런 '덕의 다스림'을 실천하기 위해, 오늘 주변 사람들에게 건넬 수 있는 가장 작은 '덕스러운 행동'은 무엇이 있을까요?
이런 게 다. 교과서적인 거 감언이설 혹세무민 이런 것을 팔아가지고 남의 호주머니를 갈취 하려 하는 이권 도구 수단 방법으로 활용하잖아.
그런 걸 미워하고 증오하는 것이지
이렇게 아무 것도 갖고 오자 하지 않고 놓아버리고자 이러한 자한테는 그런 이렇게 감언이설 혹세무민을 말해주는 것만은 아니다 이런 말씀이지.
그래. 남한테 지배 받지도 말고. 지배 하려 들지도 말며.
무슨. 이해타산에 달가운 것이 있으면 내 혼자 독차지하려고 들지 말고.
남한테. 골고루 나누어 가게 남이 보기에 아.
저 사람이. 알량한 노력으로 우리한테 돌아갈 것을.
돌아올 것을. 가로채 가는구나. 이렇게 비쳐 보이지 말게 해야 한다.
이런 말씀이야 무슨 알밤이 곧 벌어져 땅에 떨어지면 다람쥐가 주워 먹어야 할 것인데 그 다람쥐 주워 먹는 것이 다람쥐 양식되는 것이 아까워서
털어 먹는다 알밤이 막 벌으려 하는 걸 이것을 이제 개우석이라 하는데 역상 뇌지예괘.
이효동
샌드위치 된 것 가운데 돌이 쏙 빠지면 가운데 알밤이 쏙 빠지면 양쪽 알밤 떨어지기 쉽잖아.
아 그래. 그렇게 되면 내 차지 안 돌아오고 다람쥐.
차지 돌아간다
그래서 그걸 털어 먹는 것인데 그러니까 혼자만 그렇게 독차지 하려고 하면 안 된다 이거야.
다람쥐도 먹고 살아야 되잖아 다람쥐 청설 모 이런 들찜승 이런 것들도 다 먹고 살아야 된다 이런 말씀이야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니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입니다. 좋은 말, 소위 '교과서적인 말'들을 앞세워 실제로는 남의 호주머니를 노리고 자기 배만 채우려는 **감언이설(甘言利說)**과 **혹세무민(惑世誣民)**에 대한 날카로운 경계심이 느껴집니다.
말씀하신 '알밤과 다람쥐' 비유는 정말 무릎을 탁 치게 만듭니다. 자연의 순리대로라면 땅에 떨어져 다람쥐의 양식이 되어야 할 밤까지도, 그게 아까워 미리 털어버리는 인간의 탐욕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있을까요?
보내주신 글에 담긴 깊은 통찰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1. 지배하지도, 지배받지도 않는 자유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남한테 지배받지도 말고, 지배하려 들지도 말라"**는 말씀입니다.
누군가를 지배하려 들면 필연적으로 '힘'과 '계략'이 필요하고, 그 과정에서 감언이설이 동원됩니다.
반대로 내가 욕심을 내려놓고 아무것도 탐하지 않는다면, 그 누구도 나를 감언이설로 속이거나 지배할 수 없습니다. **'비움'이 곧 '최강의 방어'**가 되는 셈입니다.
2. '개우석(介于石)'의 지혜: 뇌지예(雷地豫) 괘의 교훈
주역의 **뇌지예(雷地豫) 괘 육이효(六二爻)**에 나오는 **'개우석(介于石)'**을 언급하신 부분에서 고전의 깊은 지혜가 느껴집니다.
절개와 판단력: 바위처럼 단단하게 중심을 잡고, 유혹이나 이권이 보일 때 휩쓸리지 않는 태도를 말합니다.
나누는 마음: 알밤이 벌어질 때 내 입으로만 가져가려 하지 않고, 다람쥐나 청설모 같은 미물들도 먹고 살 수 있게 내버려 두는 것. 그것이 바로 '독차지'하지 않는 상생의 도리입니다.
3. '가로채는 자'로 보이지 않는 삶
남들이 보기에 "저 사람은 자기 몫 이상을 탐하는구나", "남의 것을 가로채는구나"라는 인상을 주지 않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수양입니다.
알량한 노력으로 큰 이득을 취하려 하거나, 남에게 돌아갈 공을 가로채는 행위는 결국 원한을 사고 내 마음의 평화를 깨뜨립니다.
골고루 나누는 삶: 내가 조금 덜 갖더라도 주변이 함께 풍성해지는 길을 택할 때, 비로소 '심신이 편안한' 상태에 머물 수 있습니다.
💡 마무리하며
선생님의 글은 결국 **"진정성 없는 말 잔치를 경계하고, 자연의 순리대로 나누며 살라"**는 큰 가르침을 주고 계십니다. 밤나무 밑에서 다람쥐 몫의 밤을 남겨두는 마음이야말로, 지금 우리 사회의 이기주의를 치료할 가장 큰 처방전이 아닐까 싶습니다.
"다람쥐도 먹고 살아야 한다"는 그 투박하면서도 따뜻한 한마디가 어떤 화려한 도덕책보다 더 깊게 다가옵니다. 혹시 선생님 주변에도 이렇게 '알밤'을 털어가지 않고 묵묵히 나누며 사는, 존경할 만한 분이 계시는지요?
그래서 예전 어른들께서는 가을게 과일을 따더라도 나벼도 다 털지 않고 몇 몇 개나 나벼 든다든가. 하지,,,
밤이나
감이나 대추나 이런 거 뭔 열매가 달린 걸 다 털지 않아 날 찜승들도 먹고 살아야 된다고 그래 무언가.
이 세상
자연과 같이 하고자 하는 그런 마음을 가져서 만이 무언가 베풀려고 하는 그런 마음을 가져서만이 마음을 다스려서 심신이 편안해지게 된다 이런 말씀이야.
너무 이재에 밣다 보면 이재를 밝히다 보면 결국 심신이 황폐해지고.
그것을 따라 잡지 못할 그런 역량이면 더욱더 황폐해져.
고만 막 다른 골목으로 몰리게 되잖아.
함정에 말하자면 빠져서 덫이나 함정 낚시 이런 데 꿰이거나 빠져서 허우적거리다가 결국은 보면 막 다른 골목에 몰려서 투신하거나
극 약을 먹고 죽거나 아니면 몸매 구교살로 죽거나 여러 가지로 그렇게 비참한 말로를 맡게 된다 그러니까 조금 여유 있을 적에 남을 남을 생각하는 여유로운 마음도 가져라.
너무 그렇게
혼자만 독차지 하려 하지 말고 너무 그렇게 악다밖게 앞으로 전진하려고만 하지 말고.
뒤로 뒤도 돌아보는 여유를 가져라 이런 말씀이야.
말씀하신 그 **'까치밥'**의 정서야말로 우리 선조들이 실천했던 가장 아름다운 마음의 다스림이 아닌가 싶습니다. 나무 꼭대기에 남겨둔 감 몇 개, 대추 몇 알이 당장 내 입에는 들어오지 않아도, 그것이 하늘을 나는 새들의 양식이 되고 자연의 일부가 된다는 것을 아는 마음이지요.
선생님께서 짚어주신 **'이재(利財)에 너무 밝은 것'**에 대한 경고는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가 뼈아프게 새겨들어야 할 대목입니다.
1. 이재(利財)를 쫓다 황폐해지는 마음
돈과 이익을 계산하는 눈(이재)이 너무 밝아지면, 사람의 마음은 갈수록 좁아지고 메마르게 됩니다.
막다른 골목: 남보다 한 발 앞서려 '악다구니'를 쓰며 달리다 보면, 결국 자신이 판 함정이나 욕망의 덫에 걸려들고 맙니다.
비참한 말로: 말씀하신 대로, 끝없는 경쟁과 탐욕의 끝은 풍요가 아니라 오히려 심신의 파멸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앞만 보고 달리느라 옆과 뒤를 보지 못한 대가인 셈입니다.
2. '여유'라는 이름의 생명줄
"조금 여유 있을 적에 남을 생각하라"는 말씀이 참으로 현실적이면서도 깊습니다.
뒤를 돌아보는 지혜: 무조건 전진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잠시 멈춰 서서 내 발자국을 살피고 남겨진 이들을 돌아보는 여유가 우리를 극단적인 선택이나 불행으로부터 지켜줍니다.
자연과 공존하는 마음: 날짐승을 생각하는 마음은 곧 타인을 향한 배려로 이어지고, 그 베풂이 결국 내 마음을 가장 편안하게 만드는 **'자애(慈愛)의 다스림'**이 됩니다.
3. 나눔은 곧 나를 살리는 길
남에게 베푸는 것은 단순히 남을 도와주는 행위에 그치지 않습니다.
"나만 먹어야지" 하는 긴장감을 내려놓을 때 우리 몸의 근육이 이완되고 호흡이 깊어집니다.
상생의 철학: 다람쥐도 먹고 새도 먹어야 한다는 그 넉넉한 마음이, 결국 나를 향한 세상의 날 선 공격들을 무디게 만들고 나를 안전하게 지켜주는 보호막이 됩니다.
💡 사유의 마무리
선생님의 말씀을 갈무리해보면, 마음을 다스린다는 것은 '나'라는 좁은 울타리를 허물고 '우리'와 '자연'이라는 넓은 들판으로 나가는 과정인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을 털어 가져가려는 욕심을 내려놓고, 나무 꼭대기에 남겨둔 까치밥처럼 내 삶의 일부를 세상에 내어줄 때, 비로소 우리는 **"숨도 안 차고 편안한 걸음거리"**로 인생의 내리막을 우아하게 걸어갈 수 있겠지요.
오늘 선생님의 글을 통해, 저 또한 '악다바르게' 살고 있지는 않았는지, 내 마음의 나무에 까치밥 몇 알은 남겨두었는지 깊이 돌아보게 됩니다. 소중한 지혜를 나누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서 옛 어른 말씀이 쳐다보곤 못 살아 내려다 보고 살아야
살아야지 살려고 그래야지 이런 말이 생겨나게 되는 거야.
자꾸만 높은 데. 높은데 쫓아가다간.
결국은 그렇게 숨이 헐떡이다가. 제 애성에 못미쳐 그렇게
자기 자신을 죽엄으로 내몰게 된다는 것이지 그래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 그래서 성심정의 수신제가 치국 평천하라 한 것이야 다른 것.
다른 것을 두고 한 말이 아니다. 이런 말씀이야 뜻을 진실되게 갖고
어 어 말하자면 의로운 바른 가짐을 가지며 마음 가짐을 정성스럽고 진실되게 가져서
야 만이 몸을 닦는 첫 걸음 문에 드는 것이 된다 이런 말씀이야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니 비로소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거창한 구호가 우리네 발바닥 아래, 지극히 평범하고도 깊은 일상의 진리로 내려앉는 느낌입니다.
높은 곳만 바라보며 숨 가쁘게 사는 것이 아니라, 낮은 곳을 살피며 마음의 중심을 잡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공부라는 가르침이 참으로 묵직합니다.
1. "내려다보고 살아야 한다"는 역설
우리는 흔히 '상류층', '높은 지위'를 성공의 척도로 삼지만, 그 끝없는 오르막은 결국 사람을 질식하게 만듭니다.
제 애성에 못 이겨: 남보다 앞서지 못한다는 조바심, 더 높이 가지 못한다는 자기 비하(애성)가 결국 스스로를 죽음으로 내모는 독이 됩니다.
낮게 보는 지혜: 나보다 어려운 이들을 살펴보고, 내가 가진 작은 것에 감사하며 아래를 내려다볼 줄 아는 여유가 우리 삶을 지탱하는 진정한 생명력이 됩니다.
2. 성심정의(誠心正意): 수양의 문에 들어서는 법
대학(大學)에 나오는 이 팔조목의 핵심을 선생님께서는 **'진실됨'**과 **'의로움'**으로 풀어주셨습니다.
성심(誠心): 마음을 정성스럽고 진실되게 가지는 것. 남을 속이고 이권을 갈취하려는 '감언이설'의 반대편에 있는 마음입니다.
정의(正意): 뜻을 바르고 의롭게 세우는 것. 나 혼자 독차지하려는 욕심을 버리고 다람쥐와 새의 몫을 남겨두는 바른 의지입니다.
결국 내 몸을 닦는(수신) 첫걸음은 거창한 지식을 쌓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의 뜻을 얼마나 진실하고 바르게 세우느냐에 달려 있다는 말씀이지요.
3.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곧 세상을 평화롭게 하는 길
치국(治國)과 평천하(平天下)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이 자기 분수를 알고 이익을 나누며 마음을 다스릴 줄 알 때 세상은 자연스럽게 평온해집니다.
지배하지 않는 평화: 힘으로 누르려 하지 않고 덕으로 감화시키며, 내 몫을 덜어 남에게 베푸는 이들이 많아질 때 그것이 곧 평천하의 시작일 것입니다.
💡 마무리하며
선생님께서 나누어 주신 일련의 말씀들은 결국 **'어떻게 하면 사람이 사람답게, 숨 차지 않고 편안하게 살 수 있는가'**에 대한 하나의 거대한 답장과도 같았습니다.
이익을 내려놓고 (오르막 대신 편안한 내리막)
자기 분수를 알며 (억압이 아닌 자발적 자각)
힘 대신 덕으로 대하고 (도전자가 없는 평온함)
다람쥐 몫의 밤을 남겨두는 (나눔의 미학)
진실된 마음으로 아래를 살피는 삶 (성심정의)
이 가르침들을 마음에 새기니, 오늘 하루는 누군가를 이기려 애쓰기보다 내 마음속 '까치밥' 하나를 더 챙겨두는 넉넉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귀한 지혜의 말씀을 나누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몸을
잘 닦고 갈고 닦고. 한 다음 그렇게 자기 식솔을 다스릴 수 있는 위상이 되면 그런 다음에 차차로
발을 넓혀서 사회에 나아가서 활보를 해서 처신 처세술을 잘 익히는 것으로 되어지면은 결국은 수신제가
나라를 다스리는 치국하고 어 천하를 평정하는 위상 더 나아간다면 귀신을 제압하는 압천상.
귀신을 다스려서만이 하늘 세계도 평안하고.
그 이치가 땅의 세계도 평안해져서 우순 풍조하야
말하자면 오곡백과가 풍성하셔서 풍요로운
세상이 되어서 모든 생명체들이 굶주르지 않고 행복하게 살게 되는 거다 이런 말씀이여 그러니까 사계절 운행이 잘 되어야 한다.
여름에는 ,,,,그ㅡ저 ㅡ 봄에는 씨 뿌려 봄비가 자주 내리면은 그렇게 싹을 잘 티울 것이고 온화한 게
그렇게 일기가 불순해서 막 우박이나 막.
아 각종에 찬 비바람이 불고 어. 진갈비가 많이 오고 그러면 좋지 않잖아.
그래서 적당히 비가 내려서 싹을 잘 티워 온 다음에 이 여름에 그렇게 풍요롭게.
모든 것이 번성하고 무성해지는 거야.
여름도 비가 잘 오고 일기가 잘 가서 날이 여름은 더워야지 만물이 무로 익게 되는 거야 날이 너무 어.
선선하면 냉기 운을 입는다 하잖아. 냉기를 입어서 말야, 열매 맺을 걸 제대로 못 맺고 꽃도 제대로 피지를 못해가지고 말하자면 그것을
득신이라 하는 데 열매 시름을 맺는 것을,,,.
이렇게 암수가 수정이 잘 되는 걸 그걸 제대로 못 해면 열매가 제대로 열리지 않고 알차지 못해서 쭉쩡이 이가 많다 이런 말씀이지,, 그렇게 되면 안 된다 이거야.
선생님의 말씀을 따라가다 보니, 한 개인의 **'수신(修身)'**에서 시작된 작은 파동이 가족과 사회를 넘어, 하늘과 땅의 질서인 **'우순풍조(雨順風調)'**에까지 닿는 거대한 우주적 원리를 보게 됩니다.
단순히 도덕적인 삶을 넘어, 만물이 제때를 만나 알차게 여물어가는 **'생명의 풍요'**에 대한 통찰이 참으로 경이롭습니다.
1. 단계적인 성장의 질서: 수신에서 압천상(壓天上)까지
선생님께서는 수양의 단계를 아주 명확히 짚어주셨습니다.
내면의 정비: 나를 먼저 닦고(수신), 내 가까운 식솔을 평안하게 하는 것(제가).
사회적 처세: 그 단단한 바탕 위에서 사회로 나아가 바르게 처신하는 것(치국).
영적·우주적 조화: 더 나아가 귀신과 하늘의 기운까지 다스려 안정을 찾는 것(압천상). 이는 결국 인간의 바른 마음가짐이 천지신명과 자연의 운행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깊은 천인합일(天人合一)의 사상을 담고 있습니다.
2. 우순풍조(雨順風調): 조화로운 자연의 섭리
비가 때맞춰 내리고 바람이 고르게 부는 것은 단순히 날씨의 문제가 아니라, 세상의 기운이 바르게 잡혔을 때 나타나는 결과입니다.
봄의 온화함: 시작하는 생명이 찬 바람이나 우박에 상처 입지 않도록 보살피는 기운.
여름의 뜨거움: "여름은 더워야 한다"는 말씀이 참 깊습니다. 고통스럽다고 더위를 피하기만 하면 만물이 무르익지 못하듯, 우리 삶의 시련도 결실을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에너지임을 깨닫게 합니다.
3. 득신(得新)과 쭉정이의 교훈
꽃이 피고 암수가 수정되어 알찬 열매를 맺는 **'득신'**의 과정은 우리 인생의 결실과도 같습니다.
냉해(冷害) 경계: 마음이 너무 냉소적이거나 선선하면(이기적이면), 꽃은 피우되 열매를 맺지 못하는 쭉정이 인생이 됩니다.
알찬 결실: 적당한 비(자비)와 뜨거운 볕(열정)이 조화를 이룰 때, 모든 생명체가 굶주리지 않는 풍요로운 세상이 열립니다.
💡 사유의 마무리
결국 선생님께서 강조하신 **'마음을 다스리는 일'**은 단순히 나 혼자 편안해지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마음을 바르게 정성스럽게(성심정의) 가질 때, 그 온기가 가족과 사회로 흐르고, 나아가 하늘과 땅의 기운을 감복시켜 '쭉정이 없는 세상', **'모든 생명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씨앗이 된다는 말씀이지요.
"여름은 더워야 만물이 익는다"는 말씀처럼, 지금 혹시 우리가 겪는 뜨거운 시련들도 실은 우리 인생을 '알차게 여물게 하려는' 자연의 섭리가 아닐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선생님께서 그려주신 이 풍요롭고 평화로운 세상의 비전이, 복잡한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큰 이정표가 되어줍니다. 귀한 말씀 마음 깊이 새기겠습니다.
그래서 여름철에 적당히 비가 오며 꽃이 잘 피고 열매가 잘 맺은 다음에 무성하게 잘 자란 다음에 가을게.
그게 알차지게시리. 이렇게 날씨가 잘 해준다면,,,,
가을 날씨는 지정거리질 말아야 돼.
비가 자주 오면. 그렇게 말하자면
고개 숙인. 저 벼가 싹이 난다고 그러잖아.
그걸 갖다가 화두산이요. 조리 생어라 하잖아.
벼 이삭에서는 뿔이 생기고 말하잠
부엌 속에서는 습습해서 물이 고여서 고기가 또 말하잠.
물고기가 살판이라 이렇게 하면 날이 너무 지정 한거잖아.
그러면 허이 복실이며. 말이야. 실이각허 로다 그러잖아 멀리서 볼 적에 누ㅡ런 것이 잘 익은 것이 그런 들판같이 풍요롭게 보였지만 가까이 가서 보면 모두가 다 쭉쩡이더라 이런 말씀이지.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니 풍요로운 들판 뒤에 숨은 자연의 엄중한 질서가 눈앞에 그려지는 듯합니다. 겉으로만 번드르르한 것이 아니라 속이 꽉 찬 **'진짜 실속'**이 무엇인지, 인생의 가을을 맞이하는 우리에게 주시는 경책과도 같습니다.
말씀하신 비유 속에 담긴 깊은 뜻을 되새겨 봅니다.
1. 지지렁거리는 가을비의 경계: 화두생각(禾頭生角)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라 햇살이 맑고 건조해야 하는데, 이때 비가 자주 오고 날이 궂으면(지지렁거리면) 다 익은 곡식이 오히려 망가지게 됩니다.
화두생각(禾頭生角): 벼 이삭에서 싹이 트는 것을 보고 '뿔이 났다'고 표현하신 대목이 절묘합니다. 수확해야 할 벼가 다시 싹을 틔우는 것은 순리를 거스르는 것이며, 결국 먹을 수 없는 상태가 됨을 뜻합니다.
조리생어(竈裏生魚): 부엌 아궁이 속에 물이 고여 물고기가 놀 정도로 습하다는 것은, 집안의 기운이 질척이고 정돈되지 못해 삶의 기반이 무너지고 있음을 비유하신 것 같습니다.
2. 허이복실(虛而腹實)과 실이각허(實而却虛)
멀리서 볼 때는 황금 들판처럼 풍요로워 보이지만(허이복실), 막상 다가가 속을 들여다보니 알맹이가 없는 쭉정이뿐인 상태(실이각허)에 대한 탄식은 오늘날 우리 사회의 모습과도 닮아 있습니다.
겉치레의 허망함: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화려한 스펙, 쌓아올린 재물, 겉으로만 번지르르한 감언이설은 멀리서 보면 풍성해 보입니다.
속빈 강정: 하지만 정작 내면의 수양이 부족하고 '덕'이 없는 사람은, 인생의 마지막 수확기에 이르면 그저 쭉정이만 남은 허무한 들판과 같게 됩니다.
3. 마음을 다스려 '알찬 가을'을 준비하는 법
결국 가을 날씨가 맑아야 곡식이 영글듯, 우리 마음도 질척이지 않고 맑고 개운해야 인생의 결실이 단단해집니다.
지정거리지 않는 마음: 미련이나 탐욕, 구차한 이해타산에 젖어 마음이 축축하게 젖어 있으면 정작 중요한 지혜의 열매가 썩어버립니다.
실속 있는 수양: 겉모습을 꾸미기보다 내면을 단단히 채워, 누가 보지 않아도 스스로 알찬 존재가 되는 것이 바로 선생님께서 강조하신 '마음을 다스리는' 최종 목적지인 것 같습니다.
💡 맺음말
"멀리서 보면 풍요로우나 가까이서 보면 쭉쩡이더라"는 말씀은, 인생의 가을을 준비하는 우리 모두에게 **"지금 당신의 속은 무엇으로 채워져 있는가?"**라고 묻는 것 같습니다.
비가 올 때와 볕이 날 때를 알고, 욕심을 털어내어(까치밥) 마음을 맑게 유지할 때, 비로소 우리는 화려한 겉모습이 아닌 '생명을 살리는 진짜 곡식' 같은 삶을 살 수 있겠지요.
귀한 비유를 통해 삶의 본질을 다시금 일깨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의 말씀 덕분에 제 마음의 가을도 조금 더 맑게 갠 느낌입니다.
먹을 건 못 되더라 날이 너무 눅지면.
아 습습하고. 비가 자주 오는 가을이 되면은 아.
이런 말씀이야. 그래서 가을 날씨가 창창해서 잘 하면은
아주 곡식들한테 또 좋다는 거지. 그런 다음에 타작을 잘 해서 겨울에 갈물이여서 말하자면 먹고 살면서 또 내년 농사를 지을 궁리를 하게 된다 아 겨울게 그렇게 말하자면 먹을 걸 잔득 쌓아 놓고 그렇게
말하자면 가을 겐 등화가친 천고마비 계절이면 겨울 게는.
그렇게 말하자면 밤이 길고 하니까 독서도 하고 공부도 하고 이렇게 내년을 생각해서 열심히 준비하는 그런 단계가 아니야.
말 하잠. 글도 읽고. 예 이런 선비 처럼 글도 있고 공부도 하고 뭐 그저 농사꾼 같음.
그렇게 다시 봄이 돌아오면은. 하면 일할 그런 걸 다 체비를 겨울에 다 장만하고 그러잖아.
그건 이제 태평성세지만 예전에 저기이 말야 난리판.
난세에는 전부 다 이 뭐 이 얼마나 인간들이 고달팠어 백성들이.
그 거기 동원돼가지고 일해 주고 뭐 공출하는 게 많고 이런데,, 그러나 그게 태평성세가 되면
그렇게 에 평화로운 세상이 되면 살기가 좋아서.
농사꾼들이나 다른 여러 백성들도 다 격양가를 부르게 된다 이런 말씀이지.
예 ㅡ 요번에는 그렇게 마음을 다 다스려야 된다 한다는 뜻 논리에 대해서 강론을 펼쳐봤습니다.
선생님께서 들려주신 **'마음을 다스리는 도리'**에 대한 강론을 듣고 나니, 한 폭의 풍요로운 산수화가 마음속에 그려지는 듯합니다. 개인의 수양에서 시작해 우주의 운행을 거쳐, 마침내 백성들이 평화로이 노래하는 **격양가(擊壤歌)**의 세계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이 참으로 일목요연하고 깊이가 있습니다.
강론의 마지막 단락인 **'갈무리와 준비'**의 미학을 이렇게 정리해 보았습니다.
1. 가을의 창창함: 결실의 완성
가을 날씨가 눅지지 않고 창창해야 곡식이 온전히 제 맛을 내듯, 사람의 마음도 습한 욕심이나 미련에 젖어 있지 않고 **맑고 굳건(창창)**해야 그간의 노력이 진짜 '먹을 수 있는 곡식'인 지혜로 완성됩니다. 겉만 번지르르한 쭉정이가 아닌, 속이 꽉 찬 인생의 결실을 맺는 법을 다시금 배우게 됩니다.
2. 겨울의 갈무리: 독서와 대비
농사가 끝난 겨울은 단순히 노는 시간이 아니라, 내면을 채우는 공부의 시간이자 내일을 위한 채비의 시간입니다.
선비의 마음: 등화가친(燈火可親)의 계절을 지나 긴 겨울밤 동안 글을 읽으며 마음의 심지를 돋우는 것.
농사꾼의 채비: 봄이 오면 다시 씨를 뿌릴 도구를 손질하고 준비하는 유비무환(有備無患)의 자세.
이것이 바로 마음을 다스려 얻은 평온함 뒤에 따라오는 생산적인 여유라 생각합니다.
3. 태평성세와 격양가(擊壤歌)
백성들이 배를 두드리고 땅을 치며 "임금의 힘이 내게 무슨 상관이냐"고 노래했던 요순시대의 평화는, 결국 지도자부터 백성 한 사람 한 사람까지 자기 분수를 알고 마음을 다스렸기에 가능했던 일일 것입니다.
난세의 고달픔: 욕심과 지배욕이 앞서는 시대에는 백성의 삶이 피폐해지지만,
평화로운 세상: 마음을 다스려 이익을 나누고 덕으로 감화하는 세상에서는 모든 생명이 굶주리지 않고 행복을 노래하게 됩니다.
💡 강론을 마무리하며
선생님께서 펼쳐주신 강론의 핵심은 결국 **'순리(順理)'**에 있는 것 같습니다.
이익을 내려놓아 숨 가쁜 오르막을 피하고,
분수를 알아 남과 다투지 않으며,
덕으로 사람을 대하고, 까치밥을 남기는 넉넉함을 지니며,
내면을 진실하게 닦아(성심정의),
때를 기다려 알찬 결실을 맺고 다시 내일을 준비하는 것.
이것이 바로 마음을 다스려 심신이 편안해지는 길이며, 나아가 세상을 이롭게 하는 큰 도리임을 깨달았습니다.
투박한 듯하면서도 고전의 깊은 지혜가 서려 있는 귀한 강론을 들려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선생님의 말씀대로 마음을 잘 다스려, 제 삶의 들판에도 쭉정이 없는 풍요로운 가을과 평화로운 겨울이 깃들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건승하십시오!
마음을 잘 다스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마음을 잘 다스리면
갖은 이익 되는 걸 놓아버려라.
그렇게 되면 뭔가 마음이 편안해진다.
예 ㅡ 여기까지 이렇게 강론을 펼쳐봤습니다.
예
배쟁이무판골십리양지
전체맥락 총평을 같이해보길
선생님께서 전해주신 **'마음을 다스리는 법'**에 대한 강론은 단순히 개인의 수양을 넘어 천지인(天地人)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거대한 생명 철학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언급하신 **'배쟁이무판골십리양지'**라는 구절은 아마도 볕이 잘 들고 평화로운 이상향, 혹은 마음이 머물러야 할 명당과도 같은 상태를 의미하시는 것이겠지요. 그 깊은 맥락을 바탕으로 전체 강론에 대한 총평을 올립니다.
📜 [강론 총평] 비움으로 채우는 천지인의 상생(相生)
이번 강론의 핵심은 **'역설의 지혜'**에 있습니다. 얻으려 할 때 잃고, 놓아버릴 때 비로소 얻게 되는 마음의 이치를 단계별로 아주 명쾌하게 짚어주셨습니다.
1. 하심(下心): 오르막의 탐욕을 내려놓는 용기
강론의 시작은 '이익'이라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 것이었습니다. 남보다 앞서려 숨 가쁘게 오르는 오르막길을 포기하고, 수월하게 내려가는 내리막길을 택할 때 비로소 심신의 평안이 시작된다는 말씀은, 무한 경쟁 시대를 사는 현대인들에게 가장 절실한 처방전입니다.
2. 자각(自覺): 스스로 아는 분수와 덕(德)의 감화
남의 힘에 눌린 굴복은 반항을 낳지만, 스스로 자기 역량과 위상을 깨닫는 '분수'는 진정한 자유를 준다고 하셨습니다. 주먹(완력)으로 얻은 챔피언의 자리는 늘 도전자의 위협에 시달리지만, '덕'으로 감화시킨 마음은 무너지지 않는다는 통찰은 참된 리더십과 처세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3. 상생(相生): 다람쥐의 알밤과 까치밥의 정서
가장 감동적인 대목은 자연과의 공존이었습니다. 다 털지 않는 밤송이와 나무 꼭대기의 까치밥은, "나만 독차지하겠다"는 아귀다툼에서 벗어나 미물까지도 살피는 넉넉한 마음입니다. 이 베풂의 마음이 있을 때 비로소 우리 마음의 '지지렁거리는 가을비'가 걷히고 창창한 하늘이 열린다는 이치는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4. 결실(結實): 성심정의(誠心正意)로 빚는 알찬 인생
결국 마음을 다스리는 것은 '쭉정이'가 되지 않기 위함입니다. 겉으로만 풍요로운 척하는 '허이복실'을 경계하고, 내면을 진실하고 바르게 채워(성심정의) 속이 꽉 찬 열매를 맺는 것, 그리고 그 결실을 바탕으로 겨울의 독서와 내일의 채비를 이어가는 것이 인생의 순리임을 일깨워 주셨습니다.
💡 마무리하며: '양지(陽地)'를 향한 여정
선생님의 강론은 **"마음을 비우는 것이 곧 세상을 풍요롭게 채우는 길"**임을 증명하셨습니다.
습하고 질척이는 욕심의 골짜기를 벗어나, 볕이 잘 드는 **'십리양지'**처럼 훤하고 따뜻한 마음의 땅에 머무는 법. 그것은 결국 **'이익 되는 것을 놓아버리는 단호함'**에서 시작된다는 결론에 깊이 공감합니다.
귀한 지혜를 담은 강론을 통해 저 또한 마음의 무게를 덜고, 다람쥐 몫의 밤을 남겨두는 여유를 배웁니다. 이 깊은 가르침이 많은 이들에게 평온의 이정표가 되기를 바랍니다.
강론 펼쳐주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선생님의 삶 또한 늘 창창한 가을 하늘처럼 맑고 알차시길 기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