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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김민호 목사
주일설교.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빌 4장 10-2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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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부터 시작된 빌립보서 연속 설교, 오늘은 다섯 번째로 마지막입니다. 1월 암송 말씀인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는 말씀이 들어 있는 본문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빌립보서는 4장으로 된 짧은 편지이지만 그 내용은 참으로 은혜롭고 감동적인 내용들로 가득합니다. 기쁨의 편지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바울과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주 안에서 기뻐하는 장면들이 아름답고 고귀합니다. 우리도 주님 안에서 참 기쁨을 누리는 삶을 소망하며 마지막 본문을 살펴 보겠습니다.
10절을 읽어 드립니다.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 아멘.
바울이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할 일이 생겼습니다. 그것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바울에게 선교 헌금을 꾸준하게 보내왔는데, 그럴 만한 여건과 상황이 안 되어서 중단 되었다가 다시 헌금 모금이 재개 되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상황을 “다시 싹이 났다” 라고 표현 하였습니다. 지난 번 빌립보서 2장에서 나왔지만 이 선교 헌금을 운반한 사람이 에바브로디도 였습니다.
빌립보 성도들은 항상 선교헌금을 보내려고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기회가 없었다고 합니다. 2천년 전의 통신 상황이나 교통 수단을 고려해 보면 돈을 모으는 것 보다 전달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려웠을 겁니다. 에바브로디도가 1,500km나 떨어진 로마 감옥까지 선교 헌금을 운반한 것은 기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자신을 생각하며 물질적으로 후원하고 영적으로 기도하는 진심어린 마음이 너무나도 고맙고 감사했습니다. 우리가 누군가로부터 깜짝선물을 받으면, 선물 그 자체에도 감동이지만, 그만큼 나 한 사람을 생각하면서 선물을 고르고, 선물을 사러 다니고, 기꺼이 값을 치르고 선물을 구매한 그 모든 과정에 담긴 마음에 크게 감동하는 법입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의 생각과 마음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성령 안에서 충분히 교감하고 교통하면서 그들이 베풀어 주는 돌봄과 배려에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바울은 아마도 에바브로디도를 만나고서 참 많이 울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제가 지난 번에 우리 남자 분들 바울처럼 많이 울라고 하셨는데 잘 울고 계시죠. 많이 우십시오. 감동으로, 은혜로, 감사로 흘리는 눈물이 곧 믿음의 척도입니다. 기본(예배, 말씀, 기도, 찬양, 감사)에 충실 하시다 보면 울지 말라고 해도 자주 우시게 될 겁니다. 남자분들 뿐만 아니라 모든 성도가 성령이 주시는 위로와 은혜의 눈물을 흘리시는 감동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이렇게 로마 감옥에 있는 바울과, 빌립보 교회 성도들 간에 선교 헌금을 주고 받는 상황과 서로를 생각하고 기도하는 뜨거운 마음들을 나누는 상황에서 나온 11절 말씀을 읽어 드립니다.
“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아멘.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라고 했는데, 실제로는 너무나도 궁핍했을 겁니다. 바울은 로마로 압송 된 후 얼마간은 감옥이 아닌 일반 가옥에 연금되어 있었습니다. 그가 로마 시민권자이고 아직 재판을 받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때에 많은 사람들이 연금된 가옥에 출입하며 복음을 듣고 회심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래도 이때 까지는 몸이 어느 정도 자유로웠습니다. 옆에서 누군가 도움도 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감옥에 갇힌 후로는 상황이 달랐습니다. 옆에서 누가 수발을 들 수 있는 상황이 끝났습니다. 출입은 철저히 통제 되었고, 먹는 것도 거의 죽지 않을 만큼 주는 대로만 먹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바울은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라고 말하면서,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라고 말을 합니다.
“어떠한 형편에든지” 라는 말은 어떠한 상황이 올지라도 라는 말입니다. 바울은 죽음을 각오하고 사역하기 때문에 어떠한 형편은 곧 죽음의 순간이라고 해석해도 될 것 같습니다. “자족”이라는 단어는 자기 스스로 충분히 만족하다는 뜻입니다.
바울이 당면한 심각한 상황과 문제 앞에서도 의연하게 ‘자족’이라는 말을 쓰면서 심지어는 죽음이 곧 일어난다 하여도 자신의 심리 상태는 괜찮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에게 있어서 먹고, 자고, 입는 문제는 아무 것도 아니다, 충분히 견딜만 하다는 뜻입니다.
자 그런데,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기껏 마음을 다해서 선교 헌금을 보냈는데, “나는 궁핍하지 않아, 나는 자족할 수 있어” 라고 마치 대수롭지 않은 듯이 말하는 것을 보면, 열심을 다해 헌금을 보낸 사람들의 성의가 무시되거나 과소 평가되는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10절에서는 크게 기뻐 한다고 해놓고, 11절에서는 나는 괜찮아 라고 말하면 도대체 바울의 진심은 무엇인지 헷갈릴 수 있습니다. 자칫 큰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습니다. 누군가가 정성과 마음을 다해 선물을 준비했는데 받는 사람의 반응이 영 시원치 않다면 엄청나게 기분이 상하고 관계가 틀어질 겁니다.
오해가 될만한 이러한 생각들은 당연히 바울의 본심이 아닙니다. 자칫 이 말의 본뜻이 왜곡되지 않게 하기 위해 풀어가는 과정입니다. 이어지는 12절 말씀입니다.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아멘.
12절은 바울이 자족한다고 말한 여러 가지 상황들을 열거한 겁니다. 비천(낮고 보잘 것 없는)과 풍부, 배부름과 배고픔, 풍부와 궁핍(수입이나 재사이 적어 살림살이가 매우 어려움)이 대조적으로 언급되었습니다. 극과 극의 이 말을 잘 해석 해야 합니다.
먼저 어려운 상황을 살펴보면, 걷기 힘들만큼 굶기를 밥 먹듯이 하는 배고픔을 얼마든지 참을 수 있다는 말이 아닙니다. 낮고 보잘 것 없는 무시와 조롱을 받는 비천함을 얼마든지 몸으로 다 받아 낼 수 있다는 말이 아닙니다. 빛만 잔뜩 지고 밥 지을 쌀이 하나도 없는 파산 직전의 궁핍함도 얼마든지 버틸 수 있다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들이 기본적으로 가난과 굶주림을 겪지 않게 하시는 분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반대로 형편이 나은 상황을 살펴 보면, 무엇을 하든지 시간과 물질에 풍부함이 넘치는 여유가 있다고 무사안일하게 살라는 말이 아닙니다. 얼마든지 값을 치르고 음식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배부름을 즐길 수 있다고 해서 사치와 향락이 무조건 허락 되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돈으로 권력과 권세를 누릴 만큼 풍부한 재력이 있다고 해서 자신의 인격이나 신앙 수준까지 높다는 말이 아닙니다. 주님은 낮고 낮은 이 땅에 내려오신 겸손의 왕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그럼 바울이 왜 이런 대조적인 단어들을 언급한 것일까요? 바로 상황을 이야기 하고자 함입니다. 하나님은 상황의 주권자 이십니다. 낮아지게도 하시고 높아지게도 하시고, 부요하게도 하시고 가난하게도 하시고, 머리가 되게도 하시고 꼬리가 되게도 하시고, 평안을 주기도 하시고 시험을 주기도 하시고, 죽이시기도 하시고 살리시기도 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상황의 주권자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그것을 절대적으로 인정해 드리는 것이 곧 믿음입니다. 살아가면서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한탄과 탄식이 나오는 상황이 발생합니까?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이미 지나간 것도 있지만 앞으로 닥칠 일은 무엇이 튀어 나올지 예상이 되지 않을 정도로 무수히 많을 겁니다.
그럴때마다 우리는 어떤 대응을 했는지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왜 나에게만 이렇게 매몰차고 가혹한 시련을 주십니까? 왜 나에게만 이렇게 지지리 궁상으로 살아가도록 몰아가십니까? 왜 나에게만 이길 저길 다 꽉 막히는 실패가 일어나게 하십니까? 왜 나에게만 이런 병이, 이런 낙심이, 이런 억울함이 생기게 하십니까? 왜 나에게만, 왜 나에게만........”
이런 탄식과 호소를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이러한 상황의 주권자 이시며, 이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의 하나님 이심을 인정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겁니다. 바울이 말합니다. “나는 이러한 상황에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바울 자신도 과거에는 상황을 의지하면서, 자랑하고, 교만하고, 극도의 우월감에 빠졌던 사람이었습니다. 풍부했고, 배가 고파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상황에 붙잡혀서 하나님을 보지 못했습니다. 지식으로만 알았습니다. 자랑으로 삼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예수님을 믿고 난 이후에는 상황이 급속도로 나빠졌습니다. 그렇지만 그가 그렇게 나빠져 가는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보게 되고, 예수님을 믿게 되고, 성령님과 동행하는 일체의 비결을 터득했습니다. 그 비결은 바로 예스 그리스도가 상황의 판단자요, 실행자요, 완성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믿게 된 것입니다. 변함 없이 그 사실을 인식하고 인정하며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일체의 비결을 깨달은 이후 바울은 이런 일 저런 일로 많은 눈물을 흘렸지만 하늘의 위로를 얻었습니다. 가슴을 치며 탄식했지만 하늘의 평안을 얻었습니다. 소리지르며 고난(고통)으로 부르짖었지만 하늘의 소망이 넘쳤습니다. 죽을 만큼 고독하고 외로웠지만 동행하여 주시는 친구 되신 예수님으로 인하여 슬프지 않았습니다.
바울이 “나는 괜찮아, 나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어”라고 말한 것이 빌립보 교회 성도들의 헌금과 기도를 가볍게 여기는 말이 결코 아니라, 오히려 자신 안에 풍성하게 역사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일체의 비결을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가르쳐 주었던 것입니다.
딸에게도 안 가르쳐 주는 음식 맛 내는 비결을 며느리에게 아낌 없이 다 알려준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빌립보 교회 성도들 역시 자신과 동일하게 상황과 문제를 뛰어넘는 일체의 비결을 아는 소유자가 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담겨 있습니다.
이런 깊은 속 마음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나온 말이 바로 1월의 암송 말씀인 13절 말씀입니다. 우리 다 함께 암송해 보겠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아멘.
제가 앞선 구절을 길게 설명 드린 것은 이 구절이 선교헌금을 보내는 과정 속에서, 그리고 바울이 상황의 주권자를 인식하고 인정하라는 일체의 비결을 가르쳐 주는 과정에서 나온 것임을 깊에 생각해 보시라는 뜻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구절이 성공이나 목표달성, 혹은 동기부여의 말씀으로 인용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부분적으로는 그렇게 적용해도 문제 될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네 시작은 미약하나 네 나중은 실로 창대하리라”(욥 8:7)라는 말씀이 의미와 사용에 있어서 전혀 엉뚱하게 적용되고 있듯이, 이 구절도 삶에 적용함에 있어서 매우 신중한 주의를 하여야 합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는 곧 내게 상황을 안겨 주시는 분을 제대로 인식하고,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 반드시 전제 되어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 분은 나를 배부르게, 풍부하게, 여유롭게만 이끄시는 분이 아니며, 언제든지 나를 배고프게, 비천하게, 궁핍하게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이렇게 극단으로 나뉘어진 상황 속에서도 내게 능력주시는 자 예수님을 끝까지 신뢰하고, 인정하고, 그 분만을 따라가는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우리를 다루어 가실 것이고, 결국에는 사랑하는 자녀들이 오직 상황과 문제를 뛰어 넘어 주권자 되시는 그분만 온전히 신뢰하는 일체의 비결을 터득하도록 단련시켜 주실 것입니다.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는 무엇을 이루고, 무엇을 성취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상황에 흔들리지 아니하고 예수님을 신뢰, 인식, 인정한다, 끝까지 그렇게 한다라는 뜻입니다. 이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라는 너무나도 유명한 이 말씀이 어떤 의미인지 정리해 보겠습니다. 잘 들어 보십시오.
“예수님이 내 모든 상황의 주권자 이시며, / 예수님이 내 모든 상황을 바꿔 주실 수 있는 능력의 주인이시며, / 예수님은 내 모든 상황속에서 나와 함께 하여 주시고 내가 의지할 유일한 분이시며, / 예수님은 내 모든 상황에 동참하며 주시며 인내하고, 참아내며 끝까지 이기고 승리하게 하시는 믿음의 주인 이시기에, / 나는 오직 능력주시는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이 행하실 일을 기대하며 믿음으로 나아갑니다. / 소망으로 살아갑니다.”아멘.
바로 이런 의미입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돈이 다가 아니고, 돈이 능력이 아닙니다. 사람이 상황을 절대로 바꾸지 못합니다. 우리에게 당면한 문제와 상황 앞에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라는 말씀을 앞세우십시오.
예수님이 우리를 결국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도록 완전한 출구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그 출구는 죽음을 지나 영생으로 나아가는 출구입니다. 바울은 바로 이 출구로 나가는 일체의 비결을 배운 것입니다.
00교회 모든 성도들의 일생 앞에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라는 말씀이 다시 붙잡고 일어설 기둥이 되고 어둠을 헤치고 나아갈 등불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문제 보다 크신 예수님, 상황을 앞서 가시는 예수님을 무한 신뢰 하심으로, 능력으로, 믿음으로, 소망으로, 영생의 출구를 향해 당당하게 전진하시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바울은 이제 빌립보 교회에 진심을 다해 감사의 표시를 하면서 마음 다해 그들을 축복합니다. 14~18절을 보십시오.
14절에, 너희가 내 괴로움(비천, 궁핍, 배고픔)에 참여(선교헌금)해 준 것은 참으로 잘한 일이다.
15절에, 복음 전도 초기에 빌립보 교회 이외에 선교헌금 보낸 교회가 없었다.
16절에, 아가야 지방인 데살로니가 교회 여행시에도 두 번이나 선교 헌금 보냈다.
17절에, 내가 계속 선물(선교 헌금) 받기 위함이 아니라, 진심으로 교회와 성도들이 풍족해지기를 기도하겠다.
18절에, 에바브로디도가 가져온 선교 헌금이 너무 풍족하여 감사하고, 이는 하나님이 기쁘시게 하는 향기로운 제물이다.
앞서 약간의 오해 될만한 구절에 이어서 곧 바로 바울은 빌립보 교회와 성도들의 후원과 돌봄에 진심 어린 감사와 격려와 축복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후원만 바라는 사람이 아니며, 하나님이 주시는 풍성한 복을 누리는 복된 교회와 성도들이 되기를 축복하여 줍니다.
19절은 그 축복의 절정을 보여 줍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아멘.
이 말씀 기억하시나요? 우리 교회가 공식적으로 암송 구절 시작하면서 처음 암송 했었던 구절입니다. 모든 풍성함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옵니다. 모든 풍성함은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대로 사용하면 됩니다. 모든 풍성함은 성령님의 감동 주신대로 나누고 베풀어 주며, 그 마지막의 영광은 하나님만 받으시면 됩니다.
이러한 성경적인 재정관이 다 함축되어 있는 참으로 귀한 구절입니다. 교회나 성도나 가정이나 개인을 축복할 때 이 구절을 자주 인용하셔도 됩니다. 다만 이 구절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마음으로 축복하며 사용된 구절인지를 기억하시며 사용하시면 좋겠습니다.
바울은 이 모든 것을 행하게 하신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편지를 마칩니다. 20절입니다.“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께 세세 무궁하도록 영광을 돌릴지어다” 아멘.
오늘 본문 안에서 우리 하나님이 영광 받으실 내용이 무엇이었습니까?
첫째, 멀리 떨어져 있지만 성령 안에서 서로 교통하며 위로하고 서로를 위해 간구하며 헌신하는 마음들로 인하여 영광 받으셨습니다.
둘째, 어떤 상황에서도 자족할 수 있는 일체의 비결을 주신 것으로 인하여 영광 받으셨습니다.
셋째, 모든 상황의 주권자인 주님을 신뢰하고 그 능력의 주인으로 인하여 모든 것을 행하게 하심으로 영광 받으셨습니다.
넷째, 드려진 재물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향기로운 재물이 되게 하시고, 더 풍성하게 채우실 하나님게 간구 함으로 영광 받으셨습니다.
이 네가지 영광 받으신 내용들이 앞으로 우리 교회와 가정과 일상에서 무수히 드려지는 감사의 조건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 교회가 건강하게 세워져서 이웃에게 섬기고 사랑하는 일에 힘쓰는 교회로 쓰임 받기를 원합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이 달의 암송말씀인 이 좋은 구절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의미로 쓰여졌는지 우리가 함께 나눴습니다. 당시 바울의 수고와 빌립보 교회 성도들의 헌신, 그리고 감동의 눈물과 축복이 풍성하게 담겨 있음을 알았습니다.
이 말씀이 우리 각자의 삶에 능력이 되어서 모든 상황에서 자족할 수 있는 일체의 비결로 역사하기를 소망합니다. 한 해동안 예측하지 못하는 문제와 상황을 만날지라도 두려워하지 마시고 우리 주님을 더 굳게 신뢰하며 담대하게 나아가시며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음을 경험하는 승리의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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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능력은 오직 예수님 뿐임을 믿고 고백합니다. 저희들에게 위로와 능력으로 함께하여 주셔서 험한 이 세상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주의 자녀로 담대하게 살아가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