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본문: 출 30:11~16
제목: 성경에 나타난 금과 은의 복음적 의미
● 기독교는 금(金)과 같은 하나님의 영광과 신성을 믿고 믿음의 정결함을 유지하며 은(銀)과 같이 예수님이 대신 지불하신 속전(贖錢)의 은혜를 누리는 신앙입니다. 사람이 귀한 것을 주님께 드리는 것은 믿음의 단면이죠.
| 마2:11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treasures)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gifts of gold, frankincense, and myrrh) 드리니라 |
금과 은은 금속 돈(주화)이나 종이 돈(지폐)이 생기기 훨씬 전부터 화폐의 기능을 했습니다. 동방 박사들이 예수님을 경배할 때 빈손으로 오지 않고 황금을 드린 것은 현대 교회의 스타일로 보면 헌금을 드린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최근 들어 한국의 원화는 후진국 태국 돈보다도 가치가 떨어지고 미국의 달러화가 약세일 것을 대비해서 금과 은을 구입하는 분들이 늘어나는 추세에 있는데요. 금과 은은 성경이 문서로 기록되기 전에도 값어치가 높았습니다. 성경에서 금(金)과 은(銀)은 단순한 귀금속을 넘어, 영적 가치와 하나님의 성품을 상징하는 중요한 상징물로 자주 등장합니다. 각각의 의미를 정리해서 도표화 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요약을 보겠습니다.
| 금 | 은 |
| 하나님의 영광 | 속죄와 구속 |
| 왕권 | 대속의 값 |
| 신성 | 정결 |
| 믿음의 연단 | 말씀의 순수성 |
● 금(Gold)의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1.하나님의 영광과 신성 2.왕권과 존귀 3.믿음의 정결함.’ 등. 금은 하나님의 영광과 신성을 나타냅니다. 은은 변색이 되지만 금은 습기를 먹어도 변하지 않습니다. 물을 마시고 침이 고인 입안에 금이빨을 해 넣는 이유는 금의 변하지 않는 속성 때문입니다. 현재 장신구보다 골드바 구입의 열풍이 더 강한데요. 습기를 먹었다고 해서 금 자체의 가치나 가격은 변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금은 변하지 않고 빛나는 금속으로, 하나님의 거룩함과 영광을 상징합니다. 출애굽기에서 성막과 언약궤가 순금으로 입혀진 것은 하나님의 임재와 거룩함을 나타낸 겁니다.
출30:3.제단 상면과 전후좌우 면과 뿔을 순금으로 싸고 주위에 금 테를 두를지며 4.금 테 아래 양쪽에 금 고리 둘을 만들되 곧 그 양쪽에 만들지니 이는 제단을 메는 채를 꿸 곳이며 5.그 채를 조각목으로 만들고 금으로 싸고 6.그 제단을 증거궤 위 속죄소 맞은편 곧 증거궤 앞에 있는 휘장 밖에 두라 그 속죄소(the mercy seat)는 내가 너와 만날 곳이며 출40:5 또 금 향단을 증거궤 앞에 두고 성막 문에 휘장을 달고 히9:4 금 향로(분향제단)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언약의 돌판들이 있고 |
요한계시록에서는 하늘의 도성이 “순금과 같이 맑은 유리”로 묘사됩니다(계 21장). 개역개정은 순금을 정금(正金)으로 표기했습니다. 100% 순도이죠.
계21:18 그 성곽은 벽옥(jasper)으로 쌓였고 그 성은 정금인데 맑은 유리 같더라(the city of pure gold, as pure as glass) 계21:21 그 열두 문은 열두 진주니 각 문마다 한 개의 진주로 되어 있고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like transparent glass) |
금(Gold)은 주님의 왕권과 존귀하심을 나타냅니다. 금이 왕의 면류관과 보좌를 상징한다는 것입니다. 왕들은 약소국일지라도 금관(金冠)을 씁니다(예: 신라). 이재명 정부는 왕 노릇 하기를 좋아하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신라 금관을 선물해서 미국인의 빈축을 산 바 있으며 트럼프는 아이처럼 좋아한 해프닝도 있었습니다. 마태복음 2장에서 동방 박사들이 예수께 드린 예물 중 하나가 금이었는데, 이는 예수님의 왕 되심을 의미합니다. 한편, 믿음의 정결함을 말할 때 금이 표현되는데요. 불로 연단된 금은 시련을 통해 정결해진 믿음을 상징합니다. 믿음의 확실함은 연단으로 증명이 됩니다.
| 벧전1:7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more precious than gold which is perishable)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glory and honor)를 얻게 할 것이니라 |
참 믿음은 불로 연단되는 금보다도 더 귀한데요. 그 증명된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은 물론이고 영광과 존귀를 얻으며, 영광과 존귀는 금(金)의 속성이기도 합니다. 이는 우리 성도가 얻을 높아짐입니다.
● 은(Silver)의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1.속죄와 구속 2.정결과 말씀 3.배신과 인간의 연약함 4.말씀의 순수성’ 등. 이 복음적 의미를 살펴봅니다. 은은 성경에서 속전(대속물)과 연결됩니다. 속전은 신앙이 아닌 국어사전에도 나오는데요. 속전(贖錢)은 죄를 면하려고 바치는 돈입니다. 대속도 일반 국어사전에 나올 정도로 매우 중요한 기독교의 진리입니다. 대속(代贖)은
1.남의 죄를 대신하여 받음 2.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으로써 그 흘린 피로 만민의 죄를 대신 씻어 구원한 일 ← Daum 국어사전 |
입니다. 대속물(代贖物)은 ‘지은 죄에 대한 벌을 받거나 속죄를 하기 위해 바쳐진 물건이나 사람’인데요. 동물은 물건입니다. 구약교회의 제사법에서는 양 같은 정결한 동물을 대속물로 바쳤지만 신약성경에서는 낮아지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대속물이 되어 주셨습니다. 출애굽기 30장에서 인구 조사 시 각 사람이 속전으로 은을 바쳤습니다. 이는 죄 값을 대신 치르는 구속의 개념을 상징하고, 성경은 명확히 속전이 생명을 대속한다고 합니다.
| 출30:11.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2.네가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를 조사할 때에 조사 받은 각 사람은 그들을 계수할 때에 자기의 생명의 속전을 여호와께 드릴지니 이는 그것을 계수할 때에 그들 중에 질병이 없게 하려 함이라 13.무릇 계수 중에 드는 자마다 성소의 세겔로 반 세겔을 낼지니 한 세겔은 이십 게라라 그 반 세겔을 여호와께 드릴지며 14.계수 중에 드는 모든 자 곧 스무 살 이상 된 자가 여호와께 드리되 15.너희의 생명을 대속하기 위하여 여호와께 드릴 때에 부자라고 반 세겔에서 더 내지 말고 가난한 자라고 덜 내지 말지며 16.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속전을 취하여 회막 봉사에 쓰라 이것이 여호와 앞에서 이스라엘 자손의 기념이 되어서 너희의 생명을 대속하리라 |
초신자는 위 말씀 어디에 은이 나오나? 의아할 겁니다. ‘세겔’은 화폐를 가리키는 은화의 이름입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은 30에 팔았다는 기록을 보면 대속물이신 예수님께서 은화에 의해 매매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마26:14.그 때에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 유다라 하는 자가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말하되 15.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삼십(thirty silver coins)을 달아 주거늘 |
유다가 예수님을 은 30에 팔았다는 것은 은이 인간의 탐욕과 배신과도 연결될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당시에 화폐 기능을 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 현대의 성도들이 명심해야 할 것은 은이 나타내는 정결과 말씀입니다.
| 시12:6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 같도다(현대인의성경: 용광로에 일곱 번이나 정련한 은처럼 순수합니다) |
은은 정결함과 순수함의 상징입니다. 전설이나 야담에서조차도 은(銀)은 뱀파이어를 퇴치하고 늑대인간 같은 흉물들을 죽일 수 있습니다. 사극을 보면 독이 들어 있는지 의심이 될 때 은수저로 시험을 합니다. 은수저로 계란찜을 퍼먹으면 검게 변할 정도로 은은 순수합니다. 용광로에 일곱 번이나 정련한 은처럼 순수한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우리의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합니다(히4:12). 주님은 최후에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옵니다(계1:16). 그러므로 우리는 순수하신 말씀 앞에서 늘 회개하고 자기 점검을 해야 합니다. 아멘!
첫댓글 즐거운 주말, 기쁜 주일 되세요!
이 포스팅은, 초신자나 시간이 없는 분들은 묵상 본문만 읽으셔도 충분합니다. 아래의 댓글과 주석은 시간이 많은 분들께 다양한 이해를 제공하기 위함입니다.
알겠습니다.
마2:11
<호크마 주석>
집에 들어가 - 누가복음에는 '아기가 나신 곳'이 마구간으로 되어 있다(눅 2:7). 그에 비해 본문에는 '아기가 있는 곳'이 집으로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동방 박사들이 방문한 시기는 로마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Caesar Augustus, B.C. 27-A.D. 14)의 명(命)에 의한 호적, 곧 인구 조사(눅 2:1)가 끝난 얼마 후(아마 수개월 경과 후, Wycliffe) 요셉이 거처를 마련한 다음이었을 것이다(Theophylact, Lenski, Alford등).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 여기서 상대방에게 무릎을 꿇고 '엎드려 경배'하는 것은 헬라나 로마의 예법이 아니라 동방의 예법이다(2절). 동방 박사들이 경배했던 대상은 마리아와 '함께'가 아니고 오직 아기 예수뿐이었다. 즉 그들은 헤롯에게나 아기의 부친과 모친에게도 경배하지 아니했다. 경배의 대상은 오로지 만왕의 왕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 한 분밖에 없는 것이다(4:10).
보배합 - 이 단어는 번역이 애매하게 된 것으로 '귀중품 상자'나 '보물 상자'를 의미한다. 그들의 '보배합'은 그들의 아름답고 고귀한 마음(예물)의 저장소였다(6:20).
황금과...예물로 드리니라 - 이 내용은 이방의 왕들이 메시야 앞에 예물을 드리고 복종하게 될것이라는 구약 예언(시 72:10;사 60:6)의 분명한 성취이다. 한편 고대 동양 풍습에서는 왕을 알현(audience)할 때 예물을 가지고 가는 것이 상례(常禮)였다(창 43:1;삼상 9:7, 8;왕상 10:2;Derett, Clarke). 박사들이 헌상(offering to a superior)한 세 가지 예물 중 황금은 동서고금을 통해 매우 값지고 불변하는 성질의 귀중품으로 여겨져 왔다. 그릭고 유향은 값비싼 향료로서 반질반질하고 향내나는 흰색의 액체이며 아라비아 지방의 관목 껍질에 자국을 내어 얻는다. 또한 몰약은 역시 주로 아라비아 지방에서 자라는 나무에서 추출되는 것으로서 상당히 고가(高價)의 향기를 지닌 액체이다(시 45:8;아 3:6). 이는 시체를 썩지 않게 하는 방부제 내지는 마취제로 사용되었다(막 15:23). 그런데 고금의 많은 주석가들(Origen, Hendriksen등)에 의하면 이 예물 가운데 황금은 메시야 왕권을, 유향은 예수의 신성(神性)을, 그리고 몰약은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이에 대하여 칼빈(Calvin)은 왕과 제사장과 그분의 장사(葬事)되심을 각각 상징한다고 본다. 어쨌든 동방 박사들의 종교적 동기를 이해한다면 예물들에 상징적인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여기서 예물이 세 가지라는 사실에서 동방 박사들을 세 사람이라는 교회 전승이 형성되게 되었다. 어떤 전설(legend)에 따르면 완전수에 해당하는 '12'명의 박사라고도 전한다. 한편 이 세 예물들은 모두가 값비싼 것들로서, 예수의 가족이 애굽으로 피신하였을 때(14절) 요긴하게 사용되었을 것이다.
금과 예물의 교환가치가 외국에서 도피할 때 생활비로 잘 쓰여졌다고 생각합니다
네, 공감합니다!
<호크마 주석>
출 30:3
단...정금으로 싸고 - 분향단은 땅바닥에 닿는 아래 바닥을 제외하고는 전부 금으로 싸야 했다. 이처럼 분향단 뿐 아니라 성막의 주요 기구를 모두 정금으로 도금한 이유는 금이 지니고 있는 상징적 의미 때문인 것 같다(25:11,24,31,38;26:29), 즉 금은 그 아름다움에 있어 하나님의 영광과 위엄을 나타내며, 그 변하지 않는 속성에 있어 하나님의 언약의 불변성을 나타내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Kalisch).
묵상 본문과 결을 같이 하네요.
히9:4
<호크마 주석>
금향로...있고 - '향로'에 해당하는 헬라어 '뒤미아테리온'(* )은 70인역에서는 '향로'로만 사용된 반면에,요세푸스(Josephus)나 필로(Philo)는 '향단'이란 의미로 사용하였다. '뒤미아테리온'은 본래 성소에 속한 기물로서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하는 휘장 앞에 있었다(출 30:6;40:26). 그런데 본절에서는 지성소에 있는 기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을 '향로'와 지성소와의 관계에서 해결할 수 있다.대제사장은 일 년에 한 번 곧 속죄일에 향을 피운 향로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갔다.그는 속죄제를 드리기 전에 하나님 앞에 분향하여 그 연기로 속죄소를 가리웠다(레 16:12, 13). 향의 연기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와 속죄소를 가리워 범죄한 인간이 거룩한 하나님 앞에서 죽음을 면하도록 하였다(출 20:18, 19). 비록 향로는 항상 지성소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지성소에 속한 기물(器物)로 볼 수 있다(Hewitt,Bruce, Morris). 더욱이 본절의 '있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쿠사'(* )는 '...에 속하다'란 의미로 향로가 지성소 속에 고정 배치된 기물이라기보다는긴밀한 관계를
맺은 것임을 시사한다(Hewitt, Morris).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 - '언약궤'는 아카시아 나무 즉 조각목으로 만든 상자로서 '증거궤'라고도 불렸다(출 25:22). 언약궤 안에는 세 가지가 들어 있다.
만나를 담은 금항아리 - 이것은 하나님께서 광야생활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먹이셨던 양식임을 알리기 위한 증거였다(출 16:32-34).
아론의 싹난 지팡이 - 이것은 아론이 이스라엘의 열두지파 중에서 제사장 직분을위해서 하나님의 선택함을 입은 사람임을 알리기 위한 증거였다(민17:1-11).
언약의 비석들 - 이것은 모세가 시내산에서 받은 언약의 돌판이며, 그 내용은 십계명이다(출 25:16;31:18;신 9:9;10:3,4).
읽고 보니 향로와 향단이 조금 차이가 있나 봅니다.
<호크마 주석: 계시록>
=====21:18
그 성곽은 벽옥으로 쌓였고 그 성은 정금인데 맑은 유리 같더라 - 성곽의 재질은 벽옥이다. 이 벽옥은 보좌에 앉으신 이의 모양과(4:3)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 임한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나타내는데 사용되었다(11절). 따라서 벽옥은 하나님의 임재를 통해서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를 시사한다(Johnson, Beasley-Murray, Mounce). 한편 성의 재질은 맑은 유리와같은 정금이다. 이것은 지성소와 성소의 나머지 전체가 금으로 되어 있던 솔로몬 성정을 상기시킨다(왕상 6:20-22). '맑은 유리와 같은 정금'은 아무런 흠과 티도 없는 신부의 순결과 아름다움을 의미한다(엡 5:27, Beasley-Murray,Walvoord, Mounce, Johnson).
=====21:21
그 열 두 문은 열 두 진주니 문마다 한 진주요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 - 열 두 개의 진주로 이루어진 열 두 문은 열두 지파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것으로(12, 13절) 사 54:12을 반영한다. 랍비의 글에 따르면 가로와 세로가 30 규빗이 되는 진주와 보석들로 예루살렘의 문을 만들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다(Baba Bathra 75a). 이러한 진주는 당시에 부요와 풍요를 상징하는 것으로 인간의 상상을 초월한 거룩한 성 예루살렘의 장관을 묘사한다(Mounce). 한편 '맑은 유리 같은 정금'으로 이루어진 길은 18절에서 언급된 성의 재질과 동일한 것으로 어떠한 흠도 찾을 수 없는 신부의 순결성과 아름다움을 나타낸다(Johnson).
벧전1:7
<호크마 주석>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 본절은 약 1:3과 유사하여 혹자는 베드로가 야고보서를 참조하였을 것이라고 추측한다(Robertson). 그러나 야고보와 베드로의 표현에는 차이가 있기에 참조했다고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그차이점은 두 가지이다. (1) 야고보서에는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배우는 '수단'으로 언급되는 반면 본문에서는 금보다 더 귀한 가치를 지닌 '목적'으로 취급되고 있다. (2)야고보서에는 믿음의 시련이 온전한 신앙에서 요구되는 한 요소에 불과하지만 본문에서 믿음의 시련은 신앙의 최고 요소로 취급되고 있다. 베드로는 본절에서 앞서 언급된차이점과 같은 자신의 의도를 강조하기 위해 '히나'(* )로 인도되는 목적절로믿음의 시련을 수식하고 있다(Michaels). 베드로가 시련을 통한 믿음과 금을 비교하여강조하는 바는 (1) 참된 믿음은 변하거나 소멸되지 않는다는 사실과 (2) 금이 불로 연단받듯이 믿음도 시련을 통해 연단받는다는 사실이다. 베드로는 이러한 강조점을 통해고난당하는 수신자들을 위로하고 있다(Bigg, Leighton, Michaels).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 금이불에 의해 제련되어 순수해지듯이 그리스도인 역시 시련을 통해 참되고 순수한 신앙을 소유하게 된다. 이 참된 신앙이 온전히 밝혀지는 날 곧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에 순수하고 참된 신앙을 소유한 자는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된다. '칭찬과 영광과 존귀'는 종말론적 보상 혹은 상급으로서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기다리는 온전한 '구원'의 모든 것을 나타낸다(롬 2:7,10; 빌 1:11; 히 2:7,9, Michaels).
<호크마 주석: 마태복음>
======26:14
그 때에 - 향유 도유에 관계된 예수의 말씀이 막 끝난 때이자 가룟 유다가 예수를 팔기 위해 대제사장들에게 찾아간 때를 지시한다. 결국 이 장면은 대제사장들이 가야바의 아문에 모여 예수를 잡기 위해 모의하던 내용(1-4절)과 연결된다.
열 둘 중에 하나인 가룟 유다 - 거룩한 만수(滿數)인 '열 두' 사도의 목록에는 대부분 맨 마지막으로 가룟 유다가 언급된다(10:4). 한편 이 말석에 위치한 제자 가룟 유다는 베다니도유 사건을 기화(奇貨)로 예수를 불의한 자들의 손에 넘길 것을 결심하게 된다. 즉 가룟 유다는 예수의 장사라는 암울한 예고와 무모한 물질의 허비 등으로 인해 예수 제자의 길을 포기하고 배반자의 길에 들어서게 된 것이다. 물론 가룟 유다 배반의 근본 동인은 사단이지만(눅 22:3) 그 책임은 전적으로 그 자신에게 있었다. 한편 3절에서는 당국자들의 행위가 전혀 부각되었다면, 여기서는 유다의 배반이 '그 때 그가 갔다'는 마태의 전형적인 표현과 더불어 기름부음 직후에 일어난다. 특히 '열 둘 중에 하나'라는 사실은 중요한 의미를 준다. 즉 열 두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인 유다마저도
이런 죄에 빠지시는 것을 보아도 우리 성도는 한층 더 경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라 하겠다. 사단은 언제나 가장 중요한 순간, 가장 신뢰하는 자들을 통해서도 능히 우리를 실족시킬 수 있다(10:36 ; 미 7:6).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 가룟 유다가 어떤 경로를 통해 언제 대제사장에게 접근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의 배반 의지가 어떤 장애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은 매우 적극성을 띤 것이었다는 점이다.
=====26:15
내가 예수를...넘겨 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 유다는 요 12:6에서 볼 수 있듯이 의 욕심이 많은 자였다. 이제 그는 그러한 탐욕스런 본성을 분명히 노출시켜 자신의 스승인 예수를 정식으로 팔려고 그 값을 흥정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이같은 사악한 흥정에 대해 마가복음에서는 간접 화법으로 묘사하고 있으나 본문에서는 직접 화법으로 묘사함으로써 돈을 탐하는 유다의 죄성이 더 강조되고 있다. 마가와 누가복음에는 약속만 한 것으로 되어 있으나 본문에는 돈을 직접 받은 것으로 되어 있어 그의 물욕에 가득찬 행동을 더욱 생생히 보여 준다. 한편 본문에 언급된 '넘겨 준다'는 말은 그가 직접 예수를 묶어 공회에 넘긴다는 뜻이 아니라
단지 예수를 불의한 죄목(罪目)을 뒤집어 씌워 고소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성경 전체의 흐름으로 볼 때 예수가 피소(被訴)된 것은 유대 종교지도자들과 그들 수하에 있는 자들에 의해서였다(57-68절). 따라서 '넘겨준다'는 말은 가룟 유다가 예수를 체포할 만한 적기(適期)를 마련하고 또 유대 종교지도자들에게 파송된 무리에게 예수가 손쉽게 체포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16, 47-59절). 여하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놓고 벌어진 흥정은 순식간에 완결되었다. 실로 죄악된 계획은 죽음의 화살처럼 빨리 진행되는 것이다.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 주거늘 - 유다가 예수를 넘겨주기로 하고 받은 돈은 은30 세겔이다. 출 21:32에 의하면 황소가 남의 노예를 죽였을 때 은 삼십 세겔을 배상하도록 되어있었다. 따라서 예수는 노예의 값어치에 불과한 적은 액수로 불의한 자들의 손에 거래된 것이다. 혹자는 이렇게 적은 액수에 거래되었다는 것은 믿을 수 없으며, 이것은 단지 '그들은 은 삼십으로 그를 팔았다'는 슥 11:12의 예언을 자구적으로 맞추기 위해 그 액수의 양을 축소하여 기술한 것이라고 한다(Meyer). 그러나 이것은 무리한
해석인 듯하며 오히려 그 당시 공회와 유다 양자간에 예수를 노예 정도의 하찮은 존재로 취급하고 멸시했음을 반영하는 것이라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Robertson). 정녕 예수는 가장 비천한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으며, 또한 가장 고통받고 멸시받는 존재로 이 땅의 마지막 생을 마감하신 것이다. 이러한 철저한 자기 비하(自己卑下)를 통해 예수께서는 이 땅에 멸시받고 고난받는 자들과 죄로 인해 절망가운데 있던 영혼들을 구원하셨던 것이다(히 4:14-16). 한편 가룟 유다가 예수를 은 30세겔에 팔아넘긴 사실에 대해 다음과 같은 특이한 견해가 있다. (1) 예수에 대한 실망 때문에 예수를 배반하게 되었다. 유다는 예수를 정치적 메시야로, 즉 민족 해방운동의 지도자로 생각했었는데 반해, 예수께서는 십자가의 길을 택하셨는데, 바로 이 점이 유다의 기대에 어긋났다. 결국 실망 속에서 유다의 헌신은 미움으로 바뀌었고, 그래서 마침내는 예수를 죽이기로 작정했을 것이라는 견해이다. (2) 유다가 예수를 막다른 골목에 몰아넣어 그로 하여금 어쩔 수 없이 봉기하게 만들려고 예수를 대제사장에게 넘겨주었다고 생각한다. 즉 예수가 마지막 순간에 이르게 되면 자기가 기대했던
대로 봉기할 것으로 생각했다는 견해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유다의 배반 동기를 확실하게 알 수가 없다. 적어도 그의 배반 동기는 탐욕과 예수에 대한 실망 등이 뒤섞인 복합적인 것이었을 것이다. 사실 마태에게 있어서 유다의 배반 동기는 그렇게 큰 중요성을 지니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시선은 유다의 배반 사건이 성경의 예언(슥 11:12)의 온전한 성취였다는 것을 보여 주는 데 있다.
시12:6
<호크마 주석>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 하나님의 응답을 받은 다윗은 그 응답의 말씀에 대한 확신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순결함이여' 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테호로트' (* )는 '섞이지 않은 순수한 것'을 의미하는 말로서 여호와의 말씀은 악인들의 말(2-4절)과는 정반대로 신뢰할 만한 것임을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이 용어는 순금 또는 깨끗한 향품(출 30:35) 등에 사용되었다.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 같도다 - 여기서 '일곱 번'이란 거룩함과 완전성을 상징하는 숫자이다. 즉, 하나님의 말씀은 거룩하며 완전한 말씀인 것을 표현해 주는 것이다. 또한 이 단어는 '단련한'이란 표현과 함께 사용되어 찌꺼기가 조금도 섞이지 않은 순수한 은을 가리킨다. 이와같이 하나님의 말씀에는 찌꺼기가 섞여 있지 않다. 여기서 찌꺼기라 함은 악인들의 말에서 발견할 수 있는 거짓으로 아첨, 헛된 것 등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이런 것들이 전혀 섞여 있지 않으므로 절대적으로 신뢰할 만한 완전한 말씀인 것이다.
좋은 묵상입니다.
금이 언약의 불변성을 의미하고 은이 말씀의 순수함을 상징함에서 복음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공감과 댓글 감사합니다 😀 😊
예수님은 말씀이신데 대속의 죽음으로 우리를 위해 죄값을 지불하신 은혜를 다시 생각해 봅니다.
금과 은이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을 상징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무엇보다 이 땅에 살면서 일곱 번 단련한 은처럼 말씀의 순수성을 간직하여야 함을 강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악한 자를 대적하고 물리치는 강력한 힘이 어떤 것도 섞이지 않은 진리의 단순성과 순수성에서 나온다는 것을 여러 증거들이 방증을 해주고 있음을 알겠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마음에 잘 담아 두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풍성한 의미가 담긴 좋은 댓글에 매우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