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은 빨개! 칙칙할 줄 알았던 뜻밖의 영국 풍경
런던에 가기 전 가지고 있었던 이미지는 빨간색 2층버스가 도심을 누비는 장면이었다. 과연 새빨간 컬러의 버스들은 오래된 벽돌건물들로 좀 옛스럽기만 한 도심에서 눈에 확 들어오면서 뭔가 역동적인 느낌을 주었다.
빨간색이 석재로 이루어진 건물들 사이에 정차해 있는 모습은 미니어처 속에 장난감 자동차가 세워져 있는 것 같았다. 어디서나 눈길이 가기때문에 분명히 버스를 구별해 내는 데에는 도움이 되었다.
고색 창연해 보이는 옛 석조건물들 사이를 달리는 빨간 버스들은 역사와 권위따위는 신경도 안 쓴다는 듯이 재빠르게 휙~ 지나쳐 버린다. 어쩌면 저 엄청난 기념물들은 이제 가치를 주장할 근거도 없이 일반 시민들의 일상생활 속에서 잊혀져 가는 중인지도 모른다.
다른 대도시의 시티투어버스에서는 획기적인 컬러를 사용했노라고 주장하겠지만 이곳 런던에서는 시내버스와 똑같은 대접을 받는다. 다만 2층의 지붕이 없을 뿐이다. 그렇다면 런던의 빨간색은 특별함을 평범함으로 치환시키는 기능을 하고 있는게 분명하다.
단지 빨간색만이 아니었다. 마치 아이언맨을 오마주 한 듯한 런던의 빨간색 2층버스는 그동안 주목받았던 왕족과 귀족들의 궁전과 저택 그리고 그들의 공공건축물들의 시선을 송두리째 빼앗아 오는데 성공한듯 보였다. 빨간색의 아이언맨 버스는 공격적으로 세인트폴성당과 웨스트민스터사원 중앙재판소 잉글랜드 은행 등을 노려보면서 새로운 권력의 수비를 위해 눈을 번뜩였다.
틀림없이 그것은 권력교체의 현상이었다. 빅토리아 시대 이후 절대우위를 점하던 산업제국주의의 권위는 평준화 되고 있었다. 칼 마르크스는 30년 이상 자본주의 경제시스템을 연구하던 British Museum Reading Room을 나와서도 영국은 빨갛게 물들이지 못하고 당시 농업사회였던 러시아를 빨갛게 하는데 그쳤었다.
런던의 빨간 색 2층 버스는 그런 마음으로 권위주의 사회의 심장부를 질주하고 다닌다. 심지어 교통표지판도 모조리 빨간색이다.
지하철 표지판은 더더군다나 혁명적이다. 1863년 세계최초의 지하철은 런던메트로폴리탄 철도는 증기기관에서 엄청난 매연을 뿜어내면서 현재까지도 지하철 대부분을 칙칙하게 만들어 놓았지만 지상에 설치된 지하철 안내판은 완전 빨간색으로 어두움을 가리기 위해 애쓴다. 조만간 열차도 빨간색 아이언맨으로 바뀌지 않을까 걱정된다.
런던은 어떻게 이렇게 과감한 색을 공공재에 사용하게 되었을까?
빨간색은 다른 색에 비해 시인성(視認性)이 좋다고 한다. 이것은 안개가 잦은 영국의 날씨와도 관련이 있다고 하는데 잘 보이게 하는 동시에 런던이라는 특징을 잘 정돈해서 상징성을 성립하고자 하는 고도의 계산이 깔려 있다고 한다. 이미 런던을 너머 영국을 상징하는 통일적인 색깔로서 빨간색이 정착한 느낌이고 그 전략이 성공했다면 기존의 권위와 역사성에 대한 장기간에 걸친 해석과 재정립보다는 탈 권위에 해당되는 빨간색이 단기간 내에 그러한 위계를 무시하고 단 하나의 체계로 집중시키기 좋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인가 교통체계 뿐 아니라 공중전화 박스와 우체통도 순 빨간색이다. 그나마 우체통은 과거의 시간을 아쉬운듯 몸체에 새겨놓고 잠시나마 권위에 저하해 보려고 한다. 그렇지만 요새 누가 우체통을 이용할까? 공중전화도 마찬가지인가?
이러한 흐름에 동조하듯 런던 시내 곳곳에는 빨간색의 동조자들이 대규모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당국의 통일성과 상징성 제고 운운은 어쩌면 시대에 떠밀린 나머지 내뱉는 변명일지도 모른다. 이 집은 아예 '빨간카페'라고 이름지었다. 분명하다.
이것이 런던이다!!
빨간색이 런던이다.
런던은 빨개!!!
이제보니 빨간색은 런던의 어디에나 다 있다. 이 정도면 충분히 빨간것 아닌가?
런던은 점점 더 빨개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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