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급히 들어서다가 주춤한다. 왜 가슴 아픈 사람들이, 이렇게 많을까. 심장내과 외래 환자 대기실이 그야말로 문전성시다. 조심스레 뒷자리를 찾아 발꿈치를 내리자, 클로즈업되는 풍경은 대부분 머리가 희끗한 중년이거나 노년의 길에 접어든 사람들의 등이다. 풀기가 가셔 버린 등줄기에서 야멸차게 달아나는 세월이 보인다. 꼿꼿하던 시간 들 다 가고 한 벌씩의 외로움으로 남은 것 같은 등을 바라보는데 내 안의 통점들이 되살아나기 시작한다.
“심장엔 별 이상이 없어 보입니다.”
“그럼 왜 아픈 건가요?”
여러 검사를 마치고 대면한 의사 선생님의 짤막한 소견에 의문은 더 커진다. 사진으로는 이상이 없지만, 흉통은 여러 가지 원인에 의해 나타난다고 한다. 심하게 아플 땐 혀 밑에 넣어 녹여 먹으라는 비상약과 운동을 꾸준히 해야 한다는 처방만 받았다. 초조한 기다림 끝에 한껏 졸였던 가슴을 펴면서도 뭔가 허탈하다. 병의 근원을 찾지 못한 찝찝함, 나이를 의식게 하는 몸 신호, 그런 것들을 밀치듯 병원 문을 나서는 순간 가을 하늘은 어찌나 선명하게 푸른지.
체중으로 얹힌 청춘기가 있었다. 인생을 알기도 전, 하늘 까마득한 곳에 내 소망을 걸어 놓은 운명은 아름답거나 그윽한 향기 같은 게 아니었다. 내 몫의 삶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수없이 회의가 일도록 냉혹한 웃음을 웃고 있었다. 내가 끌어안아야 할 삶의 벼랑에서, 곤두박질을, 하며 입술 가시랭이를 뜯는 밤이, 숱하게 스러졌다. 막 탯줄을 끊은 아이처럼 설익은 얼굴로 나왔던 바깥세상은 온통 희부연 색이었다. 세상을 봐야 할 눈과 세상 길을 홀로 감당해야 하는 쓸쓸함에 대해 알기나 하였으랴. 느닷없이 튀어나와 발목을 낚아채는 길 위의 것들을 예측이나 했으랴.
덩이뿌리들을 오종종 달고 있는 구황 식물의 줄기가 떠오른다. 줄기를 따라 덩이뿌리가 성장하듯이, 다섯의 동생들이 매달린 ‘맏이’라는 줄기는 부실한 터전일수록 그 이름을 꽉 품고 가야 한다. 기댈 데가 없는 곳일수록 용맹, 정진해야 한다. 문득문득 무릎을 꿇고 싶어도 걸으려는 의지마저 놓을 순 없는 거다. 그럴수록 일어서야 했다. 이따금 나뭇가지 사이로 얼굴을 내밀던 한 줄기 햇살의 위안이나, 차마, 다 버리지 못해 안으로 감아 둔 한 조각 꿈 때문도 아니었지 싶다. 줄기가 튼실하지 못하거나 기능을 잃는다면 덩이뿌리들도 자랄 수 없다는 것, 그만큼 절박한 ‘길 찾기’였으며 그것만큼 절실한 이유가 없었다.
스스로 길을 낸다는 건 피멍이 드는 담금질을 각오해야 한다. 두 발뿐 아니라 온몸으로 헤쳐나가는 일이다. 길의 시작도 자신에게 있는 것처럼 걸으려는 의지가 있는 사람만이 갈 수 있기에, 엎어지고 깨어지고 분노하면서도 쓸고 닦고 굳은살이 박이고 마침내 길을 낸다. 그러면서 그 길에 눈물만큼 애정도 고이고 기쁨도 반짝였지만 삶은 끝이 보이지 않는 미로였다. 예고 없이 받아 든 운명의, 잔에 치열하게 정 들여, 가는 것. 삶이란 어쩌면 그런 것이기도 하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가끔은 잊고 있던 마음자리가 보인다. 하늘빛이 투명해지거나 무심히 바라본 가로수 잎이 새 옷을 갈아입을 때, 나무의 향이 가슴에 사무친다. 나를 지나간 시간 들이 보여서 울컥 목이 메는 즈음이다. 세상을 향한 가지 뻗기만으로도 숨이 차 애써 내친 것들과, 너무 오래되어 잊은 줄도 모르는 본래의 마음자리가 그립다. 종종 구애의 신호를 보내올 적마다 인정하기 싫었던, 시간의 켜가 드러난 몸도 긍정해야 하는 지금, 나의 가을을 걷고 있다.
잘 익은 들판에서 그림 같은 가을을 거두는 마음은 무엇일까. 여문 수확을 지켜보는 때에 눈물 같은 마음은 어째서일까. 풀잎처럼 가녀리고 앳되던 시절을 지나 꽃 물든 봄이 되고 잎 푸른 여름이었다가 머리 희끗해져 가을에 든 시간을, 저기 계절을 익힌 가을 산이 물어 온다면 난 무어라 답할까.
선명한 하늘빛을 가슴에 담아 본다. 가을은 속속들이 물이 드는 시간이다. 사정없이 내리쬐는 땡볕과 무시로 부는 바람과 소낙비에 떫고 신맛을 삭히고, 온몸의 세포 하나까지 익은 물이 배는 시기이다. 화려하고 도발적이기보다 절정의 시간에 이른 단풍이 환하게 조화로운 철이다. 삐죽하게 웃자란 잎, 벌레 먹은 잎, 바람에 찢겨진 잎들이 순하게 물들어 찬란하지만 오만하지 않은 계절이다. 그러기에 살아 있는 것들이 더욱 깊숙이 다가오는지도 모른다.
나무는 얼마나 많은 울음을 간직하고 있을까. 가을 나무를 보면 ‘삶은 우리가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는 말이 생각난다. 얼마만큼 삶에 열중하고 정직했는가, 물어오는 것도 같다. 혹여 아프게 맺힌 매듭과 날 선 것들은 풀고 어루만져야 한다며, 뼈가 드러난 내 마음에 넌지시 일러 주는 것도 같다. 안에서 굳어져 밖으로 날이 선 것들을, 독기처럼 품고 있으면 화(火)가 되고, 종내는 그 화(禍)에 끌려다니게 될 것이므로, 단풍에 든 나무, 삭인 말씀이 그윽하다.
가을을 걷는다. 계절의 색과 향기는 늘 새롭다. 철마다 다른 하늘과 또 다른 색으로 펼치는 자연의 잔치가 풍성하다. 쪽빛 하늘 밑 은행나무 가로수가 그려 놓은 풍경화가 맺힌 데 없이 곱다. 나무는 옹이조차 없는 듯 묵묵하고 바람도 없이 쾌청한, 계절 물 흠뻑 들고 싶은 오후를 걷는다.
첫댓글 아름다운 가을에 단풍잎들의 노랫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요. 떨어지는 아픔도 함께........
염 작가님 감사합니다. 좋은 글 읽게 하여주셔서. 아니 아름다운 가을의 시를 읽었습니다.
부디 건강 잃지 마시기를 기원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