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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 실재: 새로운 물리학을 넘어서(Quantum Reality: Beyond New Physics)>
아래 글은 미합중국 물리학자 닉 허버트(Nick Herbert)가 비전문가들에게 양자물리학을 소개하기
위해 저술한 책인 <양자 실재: 새로운 물리학을 넘어서(Quantum Reality: Beyond New Physics)>
(1985)의 1장을 옮긴 것이다.
1장 실재에 대한 탐구
과학의 본질적인 점은 복잡한 수학적 형식이나 의례화된 실험법이 아니다.
오히려 과학의 핵심은 도대체 무엇이 진행되고 있는지 진정으로 알고 싶은 욕망에서 비롯되는
일종의 명민한 정직성이다!
―― 솔 폴 시락
내가 여섯 살이었을 때 내 부모님은 내게 아동 서적 한 세트―열네 권의 오렌지색, 검정색, 그리고 황금색
양장의 이야기 책, 게임 책, 그리고 노래 책―를 사 주셨다.
<과학>은 제12권이었는데, 유일하게 텍스트가 없는 대신에 거대한 기계들과 특별한 자연 현상들에 관한
수십 장의 흑백 사진을 담고 있었다.
그림 하나가 특히 나를 사로잡았는데, 오늘날 그것을 회고하더라도 여전히 나를 떨리게 한다.
이 그림은 알들의 둥지를 보여주었다.
그런데 이 알들에서 부화되고 있는 것은 새끼 뱀들이었다.
마음을 심란하게 하는 이 사진은 일상적인 것들의 표면 아래에 전적으로 기묘한(그리고 아마도 불길한)
실재가 잠복해 있다는 나의 모호한 두려운 느낌들을 하나의 영상 속에 불러모았다.
여러 해가 지난 후에 나는 아동 서적에 실린 한 장의 그림이 아니라 물리학 저널에 실린 한 수학적 논증에
의해 촉발된 그것과 동일한 느낌―이 세계가 겉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는 전격적인 깨달음―을 경험했다.
벨의 정리는 물리적 실재의 구조에 대한 단순하지만 강력한 증명이며, 나의 상상에 그 뱀의 둥지와 같은
효과를 미쳤다.
벨의 정리는 깊은 실재의 본성을 들여다볼 수 있는, 물리학자들이 소유한 가장 깨끗한 창들 가운데 하나
이다. 나는 여러분도 12장에서 이 창을 통해 들여다보기를 초대한다.
물리학자들은 세계가 어떻게 조립되어 있는지―어떤 종류들의 기본 힘들을 통해 상호작용하는 어떤 종류
들의 기본 객체들로 이루어져 있는지―에 관심을 갖고 있다.
고대에 물리학은 일종의 자연사, 즉 두서없는 형식로서 전시된 설명되지 않은 놀라운 일들과 특이한 사실
들의 민속 박물관―전승, 즉 환상적인 여행기, 중세의 동물 우화집과 연금술적 조제법와 뒤섞인 직접적인
관찰로서의 세계―으로서 시작했다.
십칠 세기에 갈릴레오, 뉴턴, 그리고 다른 자연철학자들은 물리적 사실들의 거대한 집합체가 소수의 수학적 공식들로 포괄될 수 있다는 점을 발견했다.
예를 들면, 세 개의 수학적 법칙만으로 뉴턴은 천상과 지상의 모든 운동을 설명할 수 있었다.
일차적으로 인간의 상업적 거래를 기록하기 위해 개발되었던 수학이 비인간적 세계가 작동하는 방식과 도대체 왜 어떤 관계가 있어야 하는가?
노벨상 수상자 유진 위그너(Eugene Wigner)는 인간의 수학과 비인간적 사실들 사이의 이런 불가사의한
부합을 "자연과학에서 수학의 불합리한 유효성"이라고 언급했다.
"이런 불합리한 유효성은 우리가 이해하지도 못하고 자격도 없는 멋진 천부의 재능이다"라고 위그너는
서술한다.
수학은 인간의 정신에서 비롯되지만, 세계를 설명하는 데 있어서 그것의 두드러진 유효성은 정신 자체에
까지 확장되지 않는다.
심리학은 물리학에서 매우 잘 작동하는 수학화가 이례적으로 잘 되지 않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독일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는 뉴턴의 수학적 방법에 깊은 인상을 받았으며, 그것의 성공을 설명할 뿐 아니라 그것의 한계를 이해하고자 노력했다.
칸트는 지식을 세 부분―외양(appearance), 실재(reality), 그리고 이론(theory)―으로 나눔으로써 자신의
분석을 시작했다.
외양은 자연 현상에 대한 우리의 직접적인 감각적 경험의 내용이다.
실재(칸트는 이것을 "물자체"로 불렀다)는 모든 현상 뒤에 놓여 있는 것이다.
이론은 외양과 실재 둘 다를 반영하고자 하는 인간의 개념들로 이루어진다.
칸트는 세계의 외양들이 인간의 감각적 장치와 지성적 장치에 의해 철저히 조건지워져 있다고 믿었다.
확실히 다른 존재자들은 동일한 세계를 본원적으로 상이한 방식들로 경험한다.
과학적 사실들―그것들 자체가 외양들이다―은 근본적인 실재의 산물만큼이나 관찰자의 인간적 본성의
산물이다.
우리는 특수하게 인간적인 안경을 통해 세계를 본다.
칸트는 외양의 창조에 대한 인간적 본성의 참여가 사실들에 부합할 수 있는 인간의 개념들의 주목할 만한
능력과 그런 능력의 자연적 한계 둘 다를 설명한다고 느꼈다.
칸트에 따르면, 우리의 개념이 사실에 부합하는 듯 보이는 까닭은 사실과 개념 둘 다가 공통의 기원―인간
조건―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인간적 본성이 외양들과 얽혀 있는 한, 인간의 개념들은 이런 외양들을 설명하는 데 성공적일 것이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세계에 가져오는 세계의 측면들만 설명할 수 있기 때문에 깊은 실재의 본성은 여전히
영원히 접근할 수 없어야 한다.
인간은, 직접적이든 아니면 개념화를 통해서든, 오로지 세계의 외양들과 이런 외양들 가운데 인간적 기원을 갖는 부분만을 알 수 밖에 없을 운명이다.
칸트의 입장은 다음과 같이 표현될 수 있는 실재 연구의 비관주의적 극단의 일례이다.
인간의 감각과 지성적 장치는 인류의 생존과 생식에 주로 관련된 생물학적 맥락에서 진화했다.
그토록 영리한 동물들이 소유할 수 있는 능력들이 우리의 내부 관심사를 전적으로 넘어서는 질서에 속하는 실재 자체를 묘사하기에는 전적으로 부적당하다.
다른 한편으로, 낙관주의적 성향의 실재 연구자들은, 인간들은 자연의 일부이고 철저히 자연적이기 때문에 아무것도 우리가 실재 자체를 경험하거나 개념화하지 못하게 막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사실상 우리의 경험들의 일부와 그리고/또는 우리의 관념들의 일부는 이미 근저의 실재와 접촉하고 있을지
도 모른다.
낙관주의/비관주의 분리 이외에 또 하나의 차이점이 실재의 본성에 대한 연구자들을 나누는데, 실용주의자
/실재론자 분리가 그것이다.
실용주의자는 오직 사실들과 수학을 믿으며 원칙적으로 깊은 실재에 관해 사색하기를 거부하는데, 그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그런 의문들은 무의미하다.
뛰어난 물리학자이자 천문학자인 제임스 진스(James Jeans) 경은 이런 실용주의적 정향을 이렇게 요약한다. "어떤 현상에 관한 최종 진리는 그것에 대한 수학적 서술에 놓여 있다.
이것에 아무 결함도 없는 한, 그 현상에 관한 우리의 지식은 완전하다.
우리는 위험을 무릅쓰고 수학적 공식을 넘어선다.
우리는 수학적 공식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모형 또는 심상을 발견할지도 모르지만, 이것을 기대할
아무 권리도 없으며, 그런 모형 또는 심상을 발견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추론이나 지식에 결함이 있다는
점을 가리킬 필요는 없다.
수학적 공식과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모형 또는 심상 만들기는 실재를 향해가는 걸음이 아니라 그것으로
부터 멀어지는 걸음이다.
그것은 감명을 받은 정신의 영상 만들기와 같다."
반면에 실재론자는, 훌륭한 이론은 사실들 배후에 있는 실재와 접촉하기 때문에 사실들을 설명한다고
믿는다.
실재론자들에 따르면, 과학의 주요한 목적은 사실과 이론 둘 다를 넘어서 근저의 실재에 이르는 것이다.
모든 실재론자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실재론자인 아인슈타인이 서술하듯이, "실재가 물리학의 진정한
업무이다."
실용주의자는 이론을 사실들을 정렬하고 조작하는 데 유용한 요리법들로 가득 찬 요리책처럼 취급한다.
실재론자는 이론을 사실들 바로 아래에 놓여 있는 보이지 않는 풍경의 장관을 여행자에게 제시하는
안내서로 여긴다.
대부분의 물리학자들은, 깊은 실재와 견고한 접촉을 할 기회에 관해 낙관적이면서 동시에 비관적인, 실용
주의자와 실재론자의 복잡한 혼합물이다.
인간의 다른 기획들과 마찬가지로, 과학의 실천은 극단들 사이의 끊임없이 변화하는 균형, 중도에 대한
감성, 프랑스 실험물리학자 장 페랭(Jean Perrin)이 서술하듯이, "인간 과학의 느린 진보에 필요한 신중함과 대담함이라는 본능 사이의" 균형을 요구한다.
불필요한 편견이 우리의 탐색을 방해하지 않도록, 나는 "실재 자체"가 무엇을 의미할 수 있는지에 관해
구체적으로 규정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퍼즐이나 암호에 대한 해답과 마찬가지로, 깊은 실재와의 접촉은 확실히 자체의 입증을 수반할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보면 그것을 알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물리학에서 찾고 있을지도 모르는 그런 종류들의 실재들에 대한 한 예시로서, 나는
여기서 두 가지 사례 역사―실패한 실재에 관한 이야기와 성공한 실재에 관한 이야기―를 재검토한다.
발광성 에테르
1864년에 스코틀랜드 물리학자 제임스 클럭 맥스웰(James Clerk Maxwell)은 전기와 자기를 지배하는
기본 방정식들을 발견했다.
모든 사람이 놀라게도, 이 현상들은 단일한 존재자―전자기장―의 두 가지 측면인 것으로 밝혀졌다.
오늘날 물리학자들은 자연의 모든 장들을 통일하는 밥법을 찾고 있다.
맥스웰은 장 통일이라는 과업이 헛된 일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 최초의 물리학자였다.
맥스웰이 두 장을 하나로 융합한 것으로부터 얻은 이론적 보너스는 전자기장에서 파동들이 측정된 빛의
속도와 같은 속력으로 진행한다는 발견이었다.
이런 수치적 일치를 바탕으로 맥스웰은, 빛은 사실상 특수한 주파수를 갖는 전자기 진동이라고 추측했다.
주파수를 제외한 모든 측면에서 빛과 동일한 저주파수 전자기 복사(라디오파)를 실험적으로 생산함으로써
하인리히 헤르츠(Heinrich Hertx)는 맥스웰의 대담한 추측을 입증했다.
알려진 모든 파동은 어떤 매질(공기나 물 같은)에서 진동한다.
빛이 진행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매질은 "발광성 에테르(luminiferous ether)"로 불렸다.
십구 세기 말 물리학자들의 최우선 사항은 에테르의 기계적 특성들에 대한 연구였다.
맥스웰은 이 연구 주제를 이렇게 서술했다.
"에테르의 구성에 관한 정합적인 관념을 형성하는 데 있어서 어떤 어려운 점들이 있든 간에, 행성간 공간과 항성간 공간은 텅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물질적 실체 또는 물체―우리가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확실히 가장 큰, 그리고 아마도 가장 균질한 물체―로 가득차 있다."
빛의 잘 알려진 속성들로부터 이 가설적 에테르의 많은 특성을 추론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빛은 매우 빠르게 진행하기 때문에 에테르의 탄성은 엄청나야 하는데, 가장 단단한 스프링
철강보다 수백 만 배 더 강인하다.
빛은 횡파―앞뒤라기보다 옆으로 진동하는 파동―이기 때문에 에테르는 고체이어야 한다.
기체와 액체는 오직 앞뒤로 진동하는 파동(소리가 일례이다)을 지지할 수 있는 반면에, 고체는 두 종류의
진동 모두를 전달한다(예를 들면, 지진파는 모든 방향으로 진동한다).
빛이 옆으로만 진동한다는 사실(앞뒤로 진동하는 빛은 여태까지 발견되었던 적이 없다)은, 자연스러운
앞뒤 진동을 전적으로 억제하지만 옆 진동이 대단히 빨리 전파될 수 있게 하는 에테르의 복잡한 구조로
설명되어야 했다.
우주가 강철보다 훨씬 더 단단한 투명한 "유리"로 가득차 있을지라도, 이 유리는 물체들의 행로에 아무
저항도 제공하지 않았다.
지구의 운동은 명백히 발광성 에테르의 현존으로부터 아무 영향도 받지 않았다.
변형속도에 의존하는 점성을 지닌 어떤 왁스 같은 고체들의 방식으로, 에테르가 빛 같은 빠른 운동들에
대해서는 고체처럼 작용하지만, 행성들 같은 느린 운동들에 대해서는 액체처럼 작용할지도 모른다고
제안한 물리학자들도 있었다.
현대적 견지에서 바라보면, 그런 가설은 우주가 일종의 실리퍼티로 온통 채워져 있다고 가정하는 것에
해당한다.
1887년에 두 명의 미합중국 물리학자들이 항상 존재하는, 진동하는 이 고체를 관통하는 지구의 속도를
결정하기 위한 한 가지 단순한 실험을 수행했다.
앨버트 에이브레험 마이컬슨(Albert Abraham Michelson)과 에드워드 윌리엄스 몰리(Edward Williams
Morley)는 평행한 거울들 사이에서 남북으로 움직이는 빛살을 동/서 빛살과 겨루게 하는 일종의 광학적
경주로를 구성했다.
"에테르 바람"의 방향에 의존하여 이 빛살들 가운데 이 빛살 또는 저 빛살이 경주로상의 이점을 가져서
확실히 이기게 된다.
마이컬슨-몰리 실험은 항상 막상막하의 접전이었다.
공간을 관통하는 지구의 엄청난 속도―한 해 동안 끊임없이 방향을 바꾸는 속도―에도 불구하고, 그 두
실험물리학자들은 지구를 지나가는 발광성 에테르의 그 어떤 운동도 탐지할 수 없었다.
마이컬슨과 몰리가 "에테르 바람"을 탐지하지 못한 결과 때문에 물리학자들은 지구 같은 거대한 물체들은
에테르를 가두어 함께 끌고간다고 제안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실험실에서 회전하는 거대한 물체들 주위의 이런 "에테르 끌림"을 탐지하려는 시도들은 성공적
이지 못했다.
또한 에테르 끌림은 멀리 떨어진 항성들의 겉보기 위치들을 왜곡해야 하는데, 그 효과도 두드러지게 부재
했다.
마이컬슨과 몰리가 "에테르 바람"을 탐지하지 못한 결과를 설명하기 위해 훨씬 더 기괴한 효과들이 동원
되었다.
네델란드 물리학자 헨드릭 안톤 로렌츠(Hendrik Antoon Lorentz)와 아일랜드 물리학작 조지 프랜시스
피츠제럴드(George Francis FitzGerald)는, 에테르를 관통하는 운동은 운동 방향으로 모든 물리적 객체
들의 매우 작은 수축을 낳는다고 독자적으로 제안했다.
로렌츠-피츠제럴드 수축―일종의 "에테르 압착"―은 직접 관찰될 수 없었는데, 측정하는 봉들도 에테르
바람 방향으로 정향될 때 수축할 것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로렌츠-피츠제럴드 수축의 유일한 기능은 마이컬슨-몰리 광학적 경주로에서 이길 가능성을 똑같게 하는
것이었다.
경기에서 패배했었을 빛살이 L-F 수축 덕분에 이제 더 짧은 경로를 진행할 것이고, 그 결과 두 빛살 모두
정확히 같은 시간에 결승점에 이를 것이다.
이런 가설적 "에테르 압착"은 이미 특이한 에테르에 또 하나의 더 이례적인 속성을 부여함으로써 외양을
구하려는 필사적인 시도였다.
새로운 탐구들이 매번 시행됨에 따라 에테르의 특성들은 더욱 더 기괴해짐에도 불구하고, 에테르 자체의
존재는 결코 의문시되지 않았다.
영국의 선도적인 물리학자들 가운데 한 사람인 저명한 윌리엄 톰슨(William Thomson), 즉 켈빈 경(Lord
Kelvin)은 마이컬슨-몰리 실험이 수행된 지 몇 년이 지난 후의 물리학자들의 일반적인 태도를 다음과
같은 말로 표현했다.
"우리는 한 가지 것을 확신하며, 그리고 그것은 발광성 에테르의 실재성과 실체성이다."
발광성 에테르의 현존에 대한 물리학자들의 강한 믿음에도 불구하고, 켈빈 경이 신앙 고백을 한 지 몇
년 후에 에테르는 플로지스톤, 칼로릭, 그리고 전설적인 철학자의 돌을 수반하는 무용지물의 물리적
개념들의 쓰레기장으로 사라져 버렸다.
취리히 특허 사무국의 무명의 직원이었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1905년에 특수 상대성 이론이라고
불리게 되는 시간과 공간에 관한 새로운 이론을 발표했다.
아인슈타인의 이론의 초석은 물리학의 기본 법칙들에 대해 오직 상대적인 운동들이 중요할 뿐이라는 것
이었다.
아인슈타인에 따르면, 공간을 관통하는 물체의 절대적인 운동을 관찰할 수 있는 어떤 물리적 수단도 존재
하지 않는다.
아인슈타인의 무해한 가정은 광범위한 실험적 결과들을 낳았다.
예를 들면, 동일한 사건들의 위치들과 시간들을 측정하는, 상대적인 운동 상태에 있는 두 관찰자는 상이한
결과들을 얻을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경우에, 시간과 공간은 모든 관찰자에 대해 상이한 상대적인 개념들이다.
상대성의 또 하나의 중요한 결과는 유명한 E = mc^2 관계식인데, 이 식은 한 객체의 질량이 막대한 변환
인자―빛의 속력의 제곱―을 통해서 어떤 양의 에너지와 동등하다고 예측한다.
아인슈타인의 이론에서는 시간, 공간, 그리고 운동이 상대적인 개념들일지라도, 어떤 다른 물리적 양들은
절대적인데, 즉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하다.
상대성 이론에 핵심적인 아인슈타인의 주요한 통찰은 모든 유효한 물리적 법칙들은 오직 이 절대적인 양
들로부터 구성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오직 이런 식으로 이 법칙들은 모든 관찰자들에게 동일하게 만들어질 수 있다.
아인슈타인의 절대량들 가운데 하나는 빛의 속력인데, 이것은 화성의 관찰자에게도 지구의 관찰자에게도
동일하다.
또 하나의 아인슈타인의 절대량은 이른바 시공간 간격(space-time interval)이다.
시간과 공간 자체들은 각 관찰자에게 상이하지만, 공간에서의 변화가 시간에서의 변화를 상쇄하도록 선택된 시간과 공간의 어떤 수학적 조합은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하다.
상대성 이론에 따른 불변하는 시공간 간격에서 시간과 공간의 밀접한 결합은 실제로 세계는 사차원적인
것―세 개의 공간적 차원과 한 개의 시간적 차원으로 이루어진―이라는 관념을 낳는다.
시공간 간격은 그런 사차원 공간에서 일종의 "거리"이다.
아인슈타인에 따르면, 그런 절대적인 양들만이 유효한 물리적 법칙의 성분으로 사용될 수 있다.
아인슈타인의 규정에 따라 세워진 법칙들은 "공변적(covariant)"이라고 불린다.
오늘날 우리는, 어떤 물리학 이론이 공변적 형식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사실들을 나타낼 수 없
다는 점을 확실히 알고 있다.
그것이 공변적이지 않는 지점―어떤 곳이든 그것이 절대적인 개념이라기보다 상대적인 개념을 사용하는
지점―을 찾아냄으로써 심지어 그것이 어떻게 실패해야 하는지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
발광성 에테르―"공간에서 정지해 있는" 물체―는 명백히 비공변적인 개념인데, 그것은 오직 한 관찰자에
대해서만 정지해 있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에 따르면, 물체 A와 B의 상호작용을 관장하는 물리학은 어떤 특수한 준거틀에 대해서 측정
되는 속도가 아니라 그것들의 상대적인 운동에만 의존할 수 있다.
아인슈타인의 이론이 옳다면―그리고 그것은 풍부하게 검증되었다―에테르라는 개념은 어떤 올바른 물리학 법칙에도 결코 편입될 수 없다.
에테르는 전적으로 문자 그대로 쓸모 없는 개념이다.
그것은 물리학에서 무용지물이다. 빛 파동은 공간을 관통하여 진행하지만―빛의 전파 방식은 여전히 일종의 불가사의이다―우주를 꽉 채우는 보이지 않는 실리퍼티로 이루어진 매질을 통해서 진행할 수는 없다.
빅토리아 시대의 과학에서 그것의 중요한 역할에도 불구하고, 발광성 에테르는 현대 물리학에서는 그
어떤 역할도 수행하지 않는다.
에테르는 실패한 하나의 실재이다. 다음으로 성공한 하나의 실재―물질은 원자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관념―를 고려하자.
물질의 원자성
세계가 표준적인 작은 부분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관념은 고대에서 비롯되었다.
압데라의 데모크리토스의 진술보다 원자 가설에 관한 더 설득력이 있는 진술을 발견하기는 어려울 것인데, 그는 (기원전 500년경에) 이렇게 적었다.
"관습에 의한 신맛, 관습에 의한 단맛, 관습에 의한 색깔. 사실상 원자들과 공허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원자 가설은, 세계가 어떤 사람은 "불"이라고 불렀고, 다른 사람들은 "공기" 또는 "물"이라고 불렀던 단일한 연속적인 실체의 변환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믿음과 나란히 존재했다.
온도에 의존하여 물이 고체, 액체, 또는 기체적 형태를 취할 수 있다는 일반적인 관찰은 하나의 솔기없는
실체가 세계의 거대한 다양성을 나타낼 수도 있는 방식에 관한 일례로 간주되었다.
그렇지만, 십구 세기 말까지 연속체 가설과 원자 가설을 지지하는 논변들은 주로 수사학적이었으며, 이 두
견해에 대한 증거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1808년에 영국의 화학자 존 돌턴(John Dalton)은 화학 물질들이 고정된 비율들에 따라 결합한다―예를
들면, 부분들 각각에 표준 분동(standard weight)이 부여되면, 산소 한 부분이 수소 두 부분과 결합하여
물을 형성한다―는 점을 발견했다.
산소의 표준 분동은 수소의 표준 분동의 열여섯 배이다.
돌턴은 이런 일정한 결합 비율들은 원자량이 표준 분동에 비례하는 실체 원자들의 결합을 나타낸다고
제안했다.
돌턴에 따르면, 실제로 물은 두 개의 수소 원자와 한 개의 산소 원자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덩치 수소는
덩치 산소와 2대1의 비율로 결합한다.
돌턴은 이런 일정한 화학적 비율들을 보이지 않는 원자적 실재의 증거로 간주했다.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돌턴의 논변에 설득 당했고, 화학 반응에 대한 설명으로서의 원자들의 실재적 현존을 받아들였다.
그렇지만, 작지만 특권적인 소수파가 그것이 사실을 넘어선다는 점에 바탕을 두고 원자 가설에 반대했다.
1826년에 돌턴은 영국의 유명한 화학자 험프리 데이비(Humphry Davy)로부터 런던 왕립학회의 명예
메달을 수여받았다.
돌턴 연구의 중요성을 찬양하면서 데이비는 "원자"라는 단어는 현실적으로 "화학적 등가물"이라는 의미만
가질 수 있다―원자는 물질적 존재자라기보다 화학 반응의 단위이다―고 경고했다.
데이비는 화학비율의 법칙을 발견한 점에 대해 돌턴을 칭송하였고, 그의 명성이 현상 배후에 있는 보이지
않는 존재자들에 관한 사변보다 오히려 이런 실제적 발견에 의존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다양한 국적의 화학자들이 원자 가설에 반대하기 위해 단결하였다.
예를 들면, 프랑스의 뛰어난 화학자 장 바티스트 뒤마(Jean Baptiste Dumas)는 이렇게 천명했다.
"내가 상황의 주재자라면, 나는 과학에서 원자라는 단어를 삭제할 것이고, 그것이 경험을 넘어서며 화학
에서는 결코 경험을 넘어서지 말아야 한다고 설득했을 것이다."
벤젠 고리(거의 틀림없이 순전히 상징적으로 해석했던)의 발견으로 유명한 독일의 화학자 케쿨레(Kekule)
는 원자들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원자들이 현존하는지 아닌지에 관한 의문은 화학적 관점에서 거의 중요하지 않다.
그 논의는 오히려 형이상학에 속한다.
화학에서 우리는 원자들에 대한 가정이 화학적 현상의 설명에 적응된 하나의 가설인지 결정하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도대체 누가 기체 분자 또는 원자를 본 적이 있단 말인가?"
마르슬랭 베르텔로(Marcelin Berthelot)는 실험을 할 수 없는 보이지 않는 존재자들에 대해 많은 동료
화학자들이 느꼈던 경멸을 표현하면서 꾸짖었다.
그것의 옹호자들조차도 원자 가설을 도대체 직접적으로 검증할 희망을 거의 보지 못했다.
이 기본 입자들의 크기는 빛의 파장보다 수천 배 더 작은 것으로 추산되었고, 그래서 기술적으로 영원히
볼 수 없을 것이라고 추정되었다.
나중에 노벨상을 수상한 독일의 화학자 빌헬름 오스트발트(Wilhelm Ostwald)는 원자 가설에 대한 대안
으로서 화학열역학이라는 분야에 몰두했다.
두 가지 열역학 법칙―에너지의 보존과 이 에너지의 활용에 대한 엔트로피에 기반을 둔 한계를 요구하는
법칙들―은 맥스웰과 깁스에 의해 확장되어 원자 가설에 호소하지 않은 채 물리적 반응과 화학적 반응의
상세한 세부 사항들을 성공적으로 서술하였다.
열역학적 접근방식의 성공 덕분에 오스트발트와 그의 동료들은 분자들과 원자들은 가상적 허구물이고
우주의 근본적인 실재적 성분은 다양한 형태의 에너지라는 점을 납득하게 되었다.
설명 원리로서 원자들이라기보다 에너지에 대한 그들의 믿음 때문에 오스트발트와 그의 동료들은 "에너
지론자들(energeticists)"이라고 불렸다.
저널들과 과학 학술회의들에서 벌어진 원자 가설의 지지자들과 에너지론자들 사이의 논쟁들은 날카로왔고 감정적이었다.
1906년에 뛰어나지만 불안정했던 루트비히 볼츠만(Ludwig Boltzmann)이 자살하는 데 기체 운동론에
관한 자신의 연구에 대한 반원자론자들의 신랄한 반대가 부분적으로 책임이 있었을 것이다.
발광성 에테르를 폐기시킨 상대성 이론을 생각해 냈던 같은 해인 1905년에 아인슈타인은 원자들의 실재적 현존과 관련된 결정적인 실험들에 대한 길을 가리키는 브라운 운동에 관한 한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미크론 크기의 입자들이 액체 속에 떠 있을 때마다 그것들은 1828년 스코틀랜드의 식물학자 로버트 브라운(Robert Brown)이 발견한 이래로 그것의 기원이 불가사의였었던 영구적인 진동 운동을 겪는다.
브라운 운동에 관한 초기 실험들은 꽃가루로 수행되었으며, 그 활동성은 생물학적 기원과 관련이 있다고
믿어졌다.
나는 강력한 현미경으로 내가 "세포"라고 여겼던 것을 최초로 본 경험을 기억하는데, 그때 나는 선생님이
내가 먼지 입자들의 브라운 운동을 바라보고 있다고 말할 떄까지 매우 작은 심장 박동 같은 끊임없는 맥동
에 매혹당했다.
(사실상, 내가 결국 실제 세포들을 탐지했을 때 그것들은 춤추는 먼지만큼 흥미로운 듯 보이지 않았다.)
어떤 종류이든 미세하게 분할된 물질이라면 무엇이나 그런 흥분(스핑크스의 돌까지도 분쇄되어 현미경
아래에서 춤을 추게 만들어진다)을 나타낼 것이라는 점이 발견되었을 때, 생물학적 가설은 폐기되었고
다양한 물리적 메커니즘―온도 구배, 표면장력, 불명료한 전기화학적 효과들―이 제안되었다.
이것들 가운데 아무것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브라운 운동은 여전히 물리학의 외딴 구석에 감춰진 사소한 불가사의였다.
아인슈타인은 브라운 운동을 브라운 입자와 충돌하는 운동 중에 있는 수많은 원자들의 작용으로 설명
했다.
원자들은 브라운 입자들보다 질량이 수백 만 배 더 적으며, 그리고 같은 양의 원자들이 모든 방향으로
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것들의 집단적 압력은 아무 순운동도 초래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이전에 이 설명은 거부되었었다.
아인슈타인은 각 방향에서 브라운 입자를 때리는 원자들의 수가 평균적으로 같을지라도, 이 평균에서
벗어나는 요동이 무작위적인 방향으로 균형이 깨진 힘들을 초래한다는 점을 증명했다.
어떤 무작위적인 과정에서도, 평균값으로부터의 상대적인 요동은 표본들의 수의 제급근에 반비례하는데,
표본이 더욱 더 적을수록 요동은 더욱 더 커진다.
큰 입자의 경우에 주위를 둘러싼 원자들의 덩치 압력은 사실상 균등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지만, 작은
입자의 경우에 부딪치는 원자들의 수에 있어서의 요동은 예측할 수 있는 힘으로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그것을 밀어내기에 충분하다.
아인슈타인은 이런 무작위적인 힘이 온도와 입자 크기에 따라 어떻게 변할 것인지 보여주었다.
원자들이 존재한다면, 브라운 운동에 대한 아인슈타인의 모형 덕분에 이런 요동력에 반응하여 브라운
입자가 얼마나 멀리 표류하는지 측정함으로써 브라운 입자를 때리는 원자들의 수를 실제로 셀 수 있을 것
이다.
일련의 독창적인 실험으로 프랑스의 물리학자 장 바티스트 페랭은 아인슈타인의 모형을 입증했고 한
방울의 물 속의 원자수를 실제로 세는 데 최초로 성공했다.
1913년에 그저 <원자들(Les Atomes)>이라 불리는 책에서 페랭은 원자 가설에 대한 자신의 직접적인
검증을 발표했다.
1895년에 오스트발트는 "과학적 유물론을 극복하기에 관하여"라는 제목의 연설에서 원자 가설을 악담
했다.
"우리는 자연 현상을 원자들의 역학에 귀속시킴으로써 물리적 세계를 나타낼 희망을 버려야 한다.
'그러나'―나는 여러분이 말하는 것을 듣는다―'그러나 원자들을 버린다면 무엇이 남아 있어 우리에게
실재에 대한 그림을 줄 것인가?"
이것에 난 이렇게 응대한다.
"무엇이든 그것에 대한 어떤 조각된 심상도 , 또는 모습도 고려하지 말지어다."
우리의 과업은, 우리 정신의 본성이 허용하는 한, 어둡고 왜곡된 심상을 거울을 통해서가 아니라 직접적
으로 세계를 보는 것이다.
과학의 과업은 실재들, 즉 예증할 수 있고 측정할 수 있는 양들 사이의 관계들을 식별하는 것이다 . . .
그것은 우리가 관찰할 수 없는 원자들 사이에 작용하는, 우리가 측정할 수 없는 힘들에 대한 탐색이 아니다."
그런데 아인슈타인과 페랭의 연구에 대응하여, 에너지론자들의 지도자가 실험적 증거에 승복하여 마침내
원자들의 실재적 현존을 받아들였다.
오스트발트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 나는, 우리가 원자 가설이 수백 그리고 수천 년 동안 헛되이 찾았던, 물질의 이산적, 또는 입자적
본성에 대한 실험적 증거를 최근에 소유하게 되었다는 점을 납득하게 되었다.
[페랭의 실험과 같은 실험들이] 가장 신중한 과학자가 이제 물질의 원자적 본성에 대한 실험적 증명에
관해 말하는 것을 정당화한다.
따라서 원자 가설은 과학적으로 근거가 충분한 이론의 지위로 격상된다."
더 최근에(1957년) 과학철학자 한스 라이헨바흐(Hans Reichenbach)는 원자 가설에 관한 현대의 견해를
이렇게 요약했다.
"물질의 원자적특질은 우리의 현재 지식의 가장 확실한 사실들에 속한다 . . . 우리는 별들의 현존만큼
확실하게 원자들의 현존에 관해 말할 수 있다."
원자들의 현실성은 성공한 실재이다. 오늘날 아무도 원자들이 정말 존재한다는 점을 의심하지 않는다.
실용주의자들에 따르면, 과학은 요리책―현상들에 질서를 부여하기 위한 단순한 요리법―과 같다.
일단 작동하는 요리법을 갖게 되면, 더 이상 무엇을 요청할 수 있을 것인가?
실재론자들은 더 이상을 원한다.
그들은 좋은 이론이란 세계 저쪽에 실제로 존재하는 것에 대한 안내서로서 작용해야 한다고 믿는다.
뛰어난 과학적 실재론자인 마이클 폴라니(Michale Polanyi)의 말에 따르면, "우리가 합리적이라고 격찬
하는 이론은 자체적으로 예언 능력을 갖춘 것으로 간주된다.
우리는 실재와 접촉할 희망으로 그것을 수용하며, 그래서 정말 참인 이론은 그것의 저자들은 꿈꾸지 못한
방식으로 미래의 세기들에 걸쳐 자체의 진리를 과시할 것이다."
양자론은 실험할 수 있는 모든 층위에서의 현상들을 기술하는 데 보편적으로 성공적이었다.
그것이 무엇이든 우리가 요리하려고 선택한 것에 대해 양자론은 완벽한 요리책이다.
그렇지만 이런 포괄적인 실제적 성공은 양자론이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전례가 없는 의견
불일치와 어떤 종류의 실재가 현상계를 뒷받침하는지에 대한 부수적인 혼동를 동반하였다.
다음 장에서 나는 상이한 물리학자들이 우리가 사는 이 세계의 외부적 외양들 배후에 놓여 있는 "진짜
실재"라고 주장하는 모순적인 양자 실재들 가운데 일부를 검토한다.
2장. 지배력을 상실한 물리학자들
현대 과학의 어떤 발전도 양자론의 등장보다 인간의 사유에 더 심대한 영향을 끼쳤던 것은 없
었다.
수세기가 지난 사유 유형들로부터 억지로 떨어지게 된 한 세대 전의 물리학자들은 새로운 형이
상학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는 점을 깨달았다.
이런 재정향이 유발했던 고뇌는 오늘날까지 지속한다.
기본적으로 물리학자들은 심각한 상실, 실재에 대한 지배력의 상실을 겪었다.
―― 브라이스 드윗(Bryce DeWitt), 닐 그레이엄(Neill Graham)
가장 잘 유지된 과학의 비밀들 가운데 하나는 물리학자들이 실재에 대한 지배력을 상실했다는 점이다.
물리학 공동체 밖에서는 실재 위기에 관한 뉴스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대중을 가로막는 것은 부분적으로는 언어 장벽―과학자들 사이에서 소통을 촉진시키는 수학적 형식을
문외한들은 이해할 수 없다―이고, 부분적으로는 자신들의 혼란스러운 점들과 불확실한 점들을 억제하면서 자신들이 성공한 점들을 홍보하는 물리학자들의 인간적 경향이다.
무엇보다도 물리학자들은 "더 구체적인" 의문들을 지지하여 불편한 실재 쟁점을 무시하는 것을 선호한다.
하인즈 페이겔스(Heinz Pagels)의 <우주의 암호(Cosmic Code)> 같은 최근의 대중과학서가 물리학의
실재 위기에 관해 대중에게 정보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양자 실재>에서 나는 물리학자들이 실재를 다루는―또는 실재를 다루지 못하는―방식을 명료하고 전례
없이 자세하게 검토할 작정이다.
세계가 정말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관해 소수의 솔직한 물리학자들이 제시하는 기괴한 듯 들리는 어떤
주장들보다 더 두드러지게 물리학의 핵심에 놓인 당혹감을 노출시키는 것은 없다.
우리가 이런 주장들을 액면 그대로 간주한다면, 물리학자들이 말하는 이야기들은 신비주의자들과 광인
들의 이야기와 비슷하다.
물리학자들은 그런 불미스러운 연상들―을 재빨리 거부하고 자신들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말하고 있
다고 강력히 주장한다.
그럴듯한 지리로 미지의 땅을 채우는 고대의 지도제작자들처럼 우리가 무지해서 이런 주장들을 제시하지
않는다고 그들은 말한다.
무지가 아니라 뜻밖의 지식의 출현이 사물들이 진짜로 존재하는 방식의 대한 모든 새로운 견해들을 우리
에게 강요한다.
새로운 물리학의 주장들의 다수성에 의해 증거되듯이, 그것의 견해는 여전히 흐릿하지만, 무엇이든지
간에 그 결과는 결코 평범하지 않다는 것은 확실하다.
여러분이 양자 실재에 대한 맛을 느끼도록, 여기서 나는 배후에서 정말 진행되고 있는 것에 대한 여덟
개의 주요한 추측들을 나타내는 여덟 개의 실재 형식으로 가장 중요한 창안자들의 견해들을 요약한다.
나중에 우리는 이런 실재들 각각을 더 자세히 살펴보고, 세계에 대한 매우 많은 상이한 견해들을 정당화
하기 위해 다른 물리학자들이 동일한 자료를 사용하는 방식을 알게 될 것이다.
양자 실재 #1:
코펜하겐 해석, 1부(심층의 실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양자 실재가 정말 어떠한지에 관한 우리의 관념들에 덴마크 물리학자 닐스 보어보다 더 영향을 끼친
사람은 없으며, 양자물리학의 가장 터무니없는 주장들 가운데 하나―심층의 실재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제시한 사람이 보어이다.
보어는 자신의 감각들의 증거를 부정하지 않는다.
우리가 주변에서 보는 세계는 충분히 실재적이만, 그것은 실재적이지 않는 세계 위에서 부유한다고 그는
단언한다.
모든 현상들 자체는 현상이 아니라 전적으로 다른 종류의 존재로부터 구성된다.
기발한 또는 소수적 입장이기는 커녕, "심층의 실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견해는 기성 물리학의 지배적인
신조를 나타낸다.
이 양자 실재는 닐스 보어의 코펜하겐 연구소에서 전개되었기 때문에 "코펜하겐 해석"이라고 불린다.
실재론 종파의 이단자들이 이따금 제기하는 이의제기에도 기세가 꺾이지 않은 채, 다수의 물리학자들은
보어의 반실재론적 신조에 대해 최소한 명목적인 충성을 맹세한다.
물리학 공동체의 대부분에 의한 실재 자체의 공식적인 거부보다 실재 위기의 깊이를 더 두드러지게 가리
키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아인슈타인과 다른 저명한 물리학자들은 보어가 심층의 실재에 대한 무자비한 부인을 요청함에 있어서
너무 멀리 나갔다고 느꼈다.
확실히 보어가 말하려고 했던 전부는, 우리 모두는 훌륭한 실용주의자이어야 하고 우리의 사변을 실험
범위를 넘어서 확대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1920년대에 수행되었던 실험들의 결과로부터 보어는 어떻게 그 어떤 미래 기술도 더 심층의 진리를 결코
드러내지 못할 것이라는 결론을 내릴수 있었을까?
확실히 보어는 실제로 심층의 실재를 부정할 의도가 결코 있었던 것이 아니라, 사변적인 숨은 실재들에
대한 신중한 회의주의를 권고했을 뿐이다.
보어는 그런 희석된 판본의 코펜하겐 학설을 수용하기를 거부했다.
모든 실재론자의 가슴을 틀림없이 서늘하게 만드는 말로 보어는 강하게 주장했다.
"양자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추상적인 양자 서술이 있을 뿐이다."
처음으로 새로운 수학적 세계에 발을 내디뎠던, 양자론의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인 베르너 하이젠베르크도
그가 다음과 같이 서술했을 때 아인슈타인 같은 실재를 그리워하는 물리학자들에 대해서 똑같이 강경한
태도를 취했다.
"새로운 실험들이 우리를 시간과 공간에서 일어나는 객관적인 사건들로 다시 데리고 갈 것이라는 희망은
대략적으로 남극의 탐사되지 않은 지역들에서 세계의 끝을 발견할 것이라는 희망만큼 근거가 충분하다."
보어와 하이젠베르크의 글들은 모호하고 여러 해석들에 열려 있다고 비판받아 왔다.
최근에 코넬 대학의 물리학자 N. 데이비드 머민(David Mermin)은 오해의 여지를 거의 남기지 않는 말로
보어의 반실재론적 입장을 깔끔하게 요약했다.
"아무도 보고 있지 않을 때 달이 명백하게 거기에 있지 않다는 점을 이제 우리는 알고 있다."
(13장에서 머민의 "증명"을 살펴볼 것이다.)
코펜하겐 해석
양자 실재 #2:
코펜하겐 해석, 2부(실재는 관찰에 의해 생성된다.)
코펜하겐 학파의 수많은 물리학자들이 심층의 실재의 존재를 믿고 있지는 않지만, 그들은 현상적 실재의
존재를 단언한다.
우리가 보는 것은 틀림없이 실재적이지만, 관찰되지 않는다면 이 현상들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들은 말한다.
코펜하겐 해석은 정확히 두 개의 다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1. 관찰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아무 실재도 없다.
2. 관찰이 실재를 생성한다.
"여러분이 여러분 자신의 실재를 생성한다"라는 진술이 프레드 울프(Fred Wolf)의 책 <과학은 지금
물질에서 마음으로 가고 있다(Taking the Quantum Leap)>의 주제이다.
세계의 무수한 과정들 가운데 어느 것들이 관찰로서 자격이 있는가?
관찰의 어떤 특별한 특징이 관찰에 실재를 생성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하는가?
이와 같은 질문들이 관찰자 생성 실재 학파를 여러 진영으로 분리하지만, 일반적으로 모든 진영들은
세계에서 실재적인 것과 실재적이지 않는 것을 구분하기 위한 양자이론가 존 휠러의 인상적인 격률에
동의한다.
"그 어떤 기본 현상도 그것이 관찰된 현상이 되고 나서야 실재적 현상이 된다"고 휠러는 공표한다.
틀림없이, 변덕스러운 달에 관한 머민의 서술은 그에게 관찰자 생성 실재 학파의 회원이 될 자격을 부여
한다.
철학에서 실재가 관찰자 생성적이라는 믿음은 진부한데, 그것은 다양한 형식의 관념론의 주제로서 역할
을 수행했다.
버트란드 러셀은 트리니티 칼리지의 학생 시절 동안 관념론에 매혹되었던 사실을 이렇게 회상한다.
"이 철학에서 나는 잠깐 동안 편안함을 발견했다 . . . 시간과 공간이 비실재적이고, 물질이 환영이며,
세계가 실제로 마음으로만 구성되어 있다고 믿게 되었을 때 이상한 쾌락을 느꼈다."
물질에 관해 곰곰히 생각하는 것이 그들의 일용할 양식이기 때문에 많은 물리학자들이 그저 신기루로서의
물질에 대한 러셀의 즐거움을 공유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을 좋아하든 그렇지 않든, 양자론의 성실한 실천을 통하여 적지 않은 물리학자들이 관념론의 꿈세계의 범위 안에서 헤맨다.
"
<양자 실재: 새로운 물리학을 넘어서(Quantum Reality: Beyond New Physics)>(1985), pp. 15-8.
분할되지 않은 전체로서의 실재
양자 실재 #3
(실재는 분할되지 않은 전체이다.)
빛/물질 상호작용에 관한 표준 교과서의 저자인 월터 하이틀러(Walter Heitler)의 견해는 양자물리학자
들의 세번째 특이한 주장을 잘 나타낸 예이다.
그 주장은, 세계의 명백한 분할과 경계들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세계는 솔기 없고 분할할 수 없는 하나의
전체라는 것인데, 이것은 <물리학의 도(Tao of Physics)>에서 프리초프 카프라(Fritjof Capra)가 전개
하고 어떤 동양 신비주의자들의 가르침과 관련시키는 결론이다.
하이틀러는 관찰자 생성적 실재를 수용하지만 관찰 행위가 관찰자와 관찰 대상 사이의 경계도 용해한다고
덧붙인다.
"관찰자는 전체 구조의 필수 부분으로 나타나고, 완전한 능력을 갖추었을 때 의식이 있는 존재자로 나타
난다.
세계를 '객관적인 외부 실재'와 '우리', 즉 자기를 의식하는 구경꾼으로 나누는 것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 객체와 주체는 서로 분리할 수 없게 되었다."
다세계 해석
양자 실재 #4:
다세계 해석(실재는 그 수가 꾸준히 증가하는 평행 우주들로 이루어져 있다.)
새로운 물리학의 모든 주장들 가운데 각 측정 행위의 순간에 수많은 우주들이 생성된다는 주장보다 더
터무니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상이한 결과들이 가능한 그 어떤 상황에 대해서도(예를 들면, 동전 던지기), 모든 결과들이 실제로 일어
난다고 믿는 물리학자들이 있다.
아무 모순 없이 상이한 결과들을 수용하기 위해서 온전한 새로운 우주들이 생성되는데, 그 우주들은
그것들을 생성시킨 단일한 결과를 제외하고는 세부적으로 동일하다.
던져진 동전 하나의 경우에, 한 우주는 앞면을 나타내는 동전을 포함하며, 다른 한 우주는 뒷면을 보여
주는 동전을 포함한다.
자신의 책 다른 세계들(Other Worlds)
미국 물리학회의 주요 매거진인 <피직스 투데이(Physics Today)>에 투고한 글에서 브라이스 드윗은
자신이 양자론에 대한 다세계 해석을 처음 접한 경험을 이렇게 서술한다.
"나는 이 다중세계 개념을 처음 만났을 때 내가 경험했던 충격을 여전히 생생하게 회상한다.
궁극적으로 인식할 수 없게 되는, 그 이상의 사본들로 전적으로 끊임없이 분할되는 자신의 10^100개를
넘어서는 약간 불완전한 사본들에 관한 관념은 상식과 화해시키기가 쉽지 않다 . . ."
1957년에 프린스턴 대학의 대학원생 휴 에버릿(Hugh Everett)에 의해 고안된 다세계 해석은 새로운
물리학의 무대에 늦게 등장했다.
우리 우주만큼 실재적인 무수히 많은 평행 우주들 각각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당황스런 결론에도 불구
하고, 에버릿의 다세계 견해는 양자이론가들 사이에서 상당한 지지를 받았다.
에버릿의 제안은 특히 이론가들에게 매력적인데, 우리가 알게 되듯이, 그것이 양자론의 주요한 미해결
수수께끼―악명 높은 양자 측정 문제―를 해결하기 때문이다.
이런 네 가지 양자 실재들은 세계의 궁극적 본성에 관한 주장들의 다양성에 대해 어떤 느낌을 틀림없이
줄 것이다.
에버릿의 추종자들은 셀 수 없이 많은 양자 세계들을 증언하는 반면에, 보어와 하이젠베르크의 학도들은 단 하나의 양자 세계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강력히 주장한다.
양자 사실의 미끄러운 보도 가운데서 확고한 발판을 얻기 위한 투쟁에서 물리학자들은 네 가지보다 더
많은 실재들을 고안했다.
절박할 때 항상 제 정신을 유지하라.
양자 논리
양자 실재 #5:
양자 논리(세계는 비인간적 종류의 추리를 따른다.)
양자 논리학자들은 양자 혁명은 매우 심층적이어서 낡은 개념들을 새로운 개념들로 대체하는 것이 충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양자 사실들을 잘 처리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추리 방식 자체를 페기하고 새로운 양자 논리를 받아들여야
한다.
논리는 우리 지식체의 골격이다.
논리는 우리가 언어에서 가장 간단한 몇 가지 낱말들, 즉 그리고(and)와 또는(or), 아니다(not) 같은 낱말
들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분명히 설명한다.
이런 작은 언어적 연결사들의 거동이 우리가 사물들과 구조들에 관해 말하는 방식과 결과적으로 우리가
그것들에 관해 생각하는 방식을 지배한다.
이천 년 동안 (서양에서) 논리에 관한 이야기는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고안된 삼단논법적 주형에서 주조
되었다.
십구 세기 중엽에 아일랜드의 교사였던 조지 불(George Boole)은 일상 언어의 논리적 뼈대를 낱낱이
밝힌 인공적인 기호 언어를 발명함으로써 논리적 진술들을 단순한 산술로 환원시켰다.
추리 규칙에 대한 불의 명료한 기호화는 논리가 중세 시대에서 빠져나오게 충격을 추었고 현재 번성하고
있는 수리논리학을 출범시켰다.
수학적 주류의 외부에서 소수의 창의적인 논리학자들이 불의 규칙이 아닌 규칙을 사용하여 "미친 논리들"
을 구성하며 즐겼다.
그리고/또는/아니다에 대한 이런 비정상적인 고안들은, 수학적으로는 정합적이었지만 그 어떤 인간의
담론 유형에도 부합되지 않는 듯 보여기 때문에 그저 흥미로운 것들로 간주되었다.
그렇지만, 몇몇 새로운 물리학자들에 따르면, 이런 미친 논리들 가운데 하나가 그야말로 양자 사건들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불의 규칙에 대한 반란을 요청하는 양자이론가 데이비드 핀켈스타인(David Finkelstein)에 귀를 기울이자.
"아인슈타인은 고전적 시간 개념을 폐기했다.
보어는 고전적 진리 개념을 폐기했다 . . . 논리에 관한 우리의 고전적 관념들은 기본적인 실제적 방식으로
그냥 틀릴 뿐이다.
그 다음 단계는 올바른 방식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 즉 양자 논리적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물리학을 바꾸는 대신에 여러분의 마음을 바꾸는 것의 유용함의 일례로서 양자 논리학자들은 기하학의
영역에서 자신들이 논리학과 관련하여 제안하는 것을 획득했던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을 지적
한다.
기하학은 점과 선의 학문이다.
이천 년 동안 오직 하나의 기하학이 존재했는데, 그것의 규칙은 한때 인기에 있어서 성서에 버금갔던
자신의 가장 잘 팔리는 책 <원론>에서 그리스 수학자 유클리드에 의해 열거되었다.
논리학에서 불의 선구적인 작업과 동시에 소수의 모험적인 수학자들이 "미친 기하학들", 즉 점과 선이
유클리드의 규칙을 벗어나서 놀 수 있는 게임들을 고안했다.
새로운 기하학의 주요한 건축가는 독일 수학자 칼 가우스(Karl Gauss)와 게오르크 리만(Georg Riemann)
과 더불어 러시아 수학자 니콜라이 로바체프스키(Nicolai Lobachevski)였다.
비불적인 논리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의 비뚤어진 기하학들은 고도의 수학적 놀이, 영리한 과업이지만
실재와 접촉하지 않는 놀이로 여겨졌다.
모든 사람이 알고 있듯이, 유클리드 기하학은 유일한 기하학이었고, 결국 삼각형과 다른 기하학적 도형
들에 적용되는 상식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1916년에 아인슈타인은 유클리드의 독점을 파괴시켰던 급진적인 새로운 중력 이론을 제안했다. 뉴턴과 다른 모든 사람들에 반대하여 아인슈타인은 중력이란 힘이 아니라 시공간의 곡률이라고 선언했다.
자유낙하 상태에 있는 객체들은 참으로 자유롭고 할 수 있는 한 직선―즉, 중력에 의해 뒤틀린 기하학의
기준에 의한 직선―으로 움직인다.
아인슈타인의 이론은 시험할 수 있는 결과들을 제시한다.
예를 들면, 태양을 스쳐 지나가는 별빛의 굴절(1919년에 에딩턴에 의해 확증된)과 블랙홀의 존재(천체물리
학자들의 따르면, 시그너스 성좌에 블랙홀 시그너스 X-1이 존재한다)가 있다.
우리의 상식이 형성되었던 지구에서는 중력이 미약하여 공간이 거의 유클리드적이지만, X-1 근처에서는
고등학교 기학학이 실패한다.
아인슈타인의 교훈은 이해하기 쉽다고 양자 논리학자들은 말한다.
세계의 참된 기하학에 관한 문제는 상식이 아니라 실험에 의해 해결된다. 논리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올바른 추론의 규칙을 얻기 위해서는 여러분 자신의 머리 속을 보는 것이 아니라 실험실에 가야 한다.
"
<양자 실재: 새로운 물리학을 넘어서(Quantum Reality: Beyond New Physics)>(1985), pp. 20-2.
신실재론
양자 실재 #6:
신실재론(세계는 평범한 객체들로 이루어져 있다.)
평범한 객체는 관찰되든 그렇지 않든 자체의 속성들을 소유하는 존재자이다.
예외적인 것들(신기루, 환영, 환각)을 제외하면, 외부 세계는 객체 같은 존재자들로 가득차 있는 듯 보인다. 평범한 실재의 명료성과 편재성이 소수의 물리학자들―나는 그들을 신실재론자(neorealist)들이라고 부른다
―을 매혹시켰고, 그들은 이런 친숙한 종류의 실재가 원자 영역과 그 너머까지 확대될 수 있다고 가정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평범한 객체들 자체가 객체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평범한 상식적인 견해가 사실상 기성 물리학의
가장 불길한 이단이다.
"원자들은 사물들이 아니다."
정통 양자 신앙의 고위 성직자들 가운데 한 사람인 하이젠베르크가 말하는데, 그는 실재론자들을 평평한
지구를 믿는 사람들에 비유한다.
"양자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코펜하겐의 교황인 보어가 경고했다.
"추상적인 양자 서술만 있을 뿐이다."
반면에, 신실재론자들은 정통의 다수파가 공허한 형식주의에 빠져서 불필요한 신화화로 세계의 단순성을
가리고 있다고 비난한다.
대신에 그들은 순수하고 더 원시적인 신앙으로 돌아가자고 설교한다.
신실재론 반란자들의 수장은 아인슈타인인데, 실재론에 대한 열정 때문에 그는 양자 정통에 정면으로
맞서 싸우게 되었다.
"하이젠베르크-보어의 안심 철학―또는 종교?―은 매우 정교하게 고안되어서 당분간 그것은 진정한 신자
에게 매우 쉽게 깨어날 수 없는 부드러운 베개를 제공한다.
그래서 그가 그곳에 누워 있게 내버려 둔다."
신실재론자들의 네안데르탈인적 관념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신실재론자들이 양자론의 원리들에 관해
무지하다고 비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양자론의 정초자들이었다.
아인슈타인 외에, 저명한 실재론자들에 막스 플랑크가 포함되는데, 그의 작용 양자의 발견은 양자 혁명을
촉발했다.
에르빈 슈뢰딩거도 포함되는데, 그는 모든 양자 체계가 따라야 하는 파동 방정식을 고안했다.
그리고 루이 드 브로이 왕자도 포함되는데, 그는 양자론을 충분히 고려하여 물질의 파동성을 예측했다.
전시에 무전병으로 참전함으로써 교회사에서 물리학으로 자신의 연구분야를 전환했던 프랑스 귀족이었던
드 브로이는 자신이 통계적 해석(코펜하겐주의를 가리키는 또 하나의 이름)으로 개종했던 1928년까지
평범한 실재론을 위해 싸웠다.
그렇지만 이십 년이 지난 후에 데이비드 봄의 신실재론 부활에 영향을 받은 드 브로이는 신앙을 부정하고
청년 시절의 신앙으로 되돌아갔다.
"과학자들의 심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내가 뜻밖으로 폐기된 관념으로 복귀한 까닭에 관해 궁금히
여길 것이다 . . . 나는 파동역학의 통계적 해석을 전개할 때 만나는 끊임없는 어려움들에 관해서, 또는
양자물리학을 둘러싸고 있는 듯한 안개 속에서 데카르트적 명료성에 대한 나의 은밀한 갈망에 관해서도
그렇게 많이 생각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사실상, 내가 통계적 견해를 검토할 때] 그것에 대한 반대 의견들의 힘과 . . . 너무나 추상적이고
. . . 너무나 도식적인 . . . 그것의 변호 논변들의 어떤 애매함에 깊은 인상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내가 현재의 유행에 유혹당했었다는 것을 깨달았고, 확률 해석에 대한 명쾌한 설명을 제시하려고
노력했을 때마다 내가 왜 매우 불편했었던지 이해하기 시작했다."
물리학 공동체의 소수의 전통 가운데 하나는 기념 논문집―논문들의 향연―으로 위인들의 생일을 기리는
관습이다.
1982년에 영예롭게 회개하지 않은 구십 세의 루이 드 브로이는 이런 학술적 방식으로 과학자 동료들의
하례를 받았다.
세계의 거의 모든 신실재론자들이 드 브로이의 생일 잔치에 참석했다.
여분의 의자들은 마련할 필요가 없었다.
양자론의 성공에 많이 기여했음에도 아인슈타인은 결코 진심으로 양자론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실재론적 세계관이 양자 사실들과 양립가능하다는 낡은 믿음을 완고하게 고수했다.
1930년대 동안 아인슈타인과 보어는 양자 실재 문제에 관한 장기간에 걸친 논쟁을 벌였다.
보어는, 실재에 관한 한, 양자론은 끝나버린 일이라고 주장했다.
1928년에 예민한 물리학자들은 이미 그 이론의 본질을 파악했었다.
양자론은 세부적으로 발달할 것이지만 그것의 원리들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보어의 확신은 여태까지 유지되었다.
오십 년 후에도 물리학자들은 여전히 옛 규칙을 따른다.
양자론은 현 상태로 완전하다고 보어는 말했다.
그것은 평범한 객체들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게다가 그런 객체들은 양자론의 예측적 성공을 훼손하지 않은 채 부가될 수 없다.
양자론에서 평범한 객체들은 그저 불필요한 사치품들이 아니라, 그것들은 전적으로 불가능하다.
아인슈타인의 전략은 양자론이 무언가를 빠뜨렸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던 일련의 사고
실험들로 보어를 대적하는 것이었다.
그는 양자론이 틀렸다는 점을 증명하려고 시도했던 것이 아니라, 그것이 불완전하다는 점을 예증함으로써
아인슈타인은 자신이 "실재의 요소들"이라고 불렀던 것을 위한 문을 개방하기를 희망했다.
승자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보어는 아인슈타인의 구멍들 각각을 메꾸었지만, 각자의 정신에서 그 논쟁은
결코 해결되지 않았다.
그들의 논쟁이 끝난지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보어가 사망한 그 날에, 그의 칠판에는 아인슈타인의 사고
실험들 가운데 하나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보어는 죽을 때까지 아인슈타인과 투쟁했다.
아인슈타인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자서전에서 그는 양자 실재 문제에 관한 자신의 마지막 사유들을 표현한다.
"나는 여전히 실재의 모형―즉, 그저 사물들이 나타나는 확률이 아니라 사물들 자체를 표상하는 이론―에
대한 가능성을 믿는다."
"
<양자 실재: 새로운 물리학을 넘어서(Quantum Reality: Beyond New Physics)>(1985), pp. 22-4.
의식이 실재를 생성한다
양자 실재 #7
관찰자 생성적 실재론자들 가운데 한 작은 분파는 (여러분과 나처럼) 의식을 부여받은 장치만이 실재를
생성할 특권이 있다고 단언한다.
중요한 유일한 관찰자는 의식이 있는 관찰자이다. 우주의 구조(Fabric of the Universe)
헝가리 태생의 폰 노이만은 이십 세기의 가장 흥미로운 몇몇 개발물들에 대한 수학적 산파였다.
상황이 가장 치열한 곳이라면 어디서나 폰 노이만이 도움을 주고 있는 듯 보였다.
1940년대 말에 그는 저장 프로그램 컴퓨터라는 개념을 고안했는데, 오늘날의 컴퓨터 과학자들은 휴대용
계산기에서 거대한 IBM 컴퓨터까지 모든 컴퓨터를 "폰 노이만 기계"라고 부른다.
오스카 모르겐슈테른(Oskar Morgenstern)과 공동으로 폰 노이만은 동방과 서방 양 진영의 많은 정부
정책과 기업 정책의 기반을 제공하는 전략적 게임 이론의 수학적 토대를 놓았다.
또한 그는 초기 로봇에 관해 연구했고 원자폭탄의 개발을 도왔다.
1936년에 하버드 대학의 수학자 개릿 버코프(Garrett Birkhoff)와 함께 그는 양자 논리라는 관념을 고안
하지만, 양자 실재 연구에 대한 폰 노이만의 가장 큰 기여는 양자론에 관한 자신의 저서이다.
1920년대 말에 물리학자들은 자신들의 일상적 요구들을 충족시키는 양자론을 구성했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양자 사실들을 조직하는 대강의 수학적 구조가 있었다.
그 시점에 폰 노이만이 입장하여 물리학자들의 엉성한 이론을 엄밀한 형식으로 표현하였고, 양자론을
그것이 오늘날까지 거주하는 우아한 수학적 "힐베르트 공간"이라고 불리는 가정에 안착시켰으며, 물리
학자들의 미숙한 이론을 수학적으로 승인했다.
1932년에 폰 노이만은 <양자역학의 수학적 기초>라는 제목의 만만찮은 대작에서 양자론에 대한 자신의
결정판을 제시했다.
양자론에 대한 우리의 가장 일반적인 견해는 본질적으로 <기초>에서 폰 노이만이 개괄했던 것과 동일하다. 폰 노이만의 책은 우리의 양자 바이블이다.
많은 다른 성서들과 마찬가지로 그 책은 소수가 읽으며 다수가 경배한다.
그 책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1955년이 되어서야 영어로 번역되었다.
<양자 실재>에서 내가 논의하는 많은 쟁점들 가운데 많은 것들이 폰 노이만의 책에서 처음 공론화되었다.
예를 들면, 양자론이 올바르다면, 세계는 평범한 객체들로 이루어질 수 없다―즉, 신실재론적 해석은 논리
적으로 불가능하다―는 폰 노이만의 증명이 있다.
폰 노이만은 양자 실재 문제의 주요 쟁점인 유명한 양자 측정 문제를 제기했지만, 모든 사람이 만족할 정도
로 해결하지는 못했다.
게다가, 폰 노이만은 양자론이 관찰자 의식의 능동적 역할을 어떻게 시사하는지 보여준 최초의 인물이
었다.
의식이 있는 관찰자가 그것들을 관찰하고 있지 않다면 물리적 객체들은 아무 속성도 지니지 못할 것이
라고 폰 노이만은 말했다.
폰 노이만 자신은 분명하지 않은 우화로 의식 생성적 실재를 암시했을 뿐이다.
그의 추종자들은 대담하게도 그의 논변을 논리적 결론으로 밀고 갔다.
폰 노이만 판본의 양자론을 수용한다면, 의식 생성적 실재가 불가피한 결과라고 그들은 말한다.
우리의 가장 유물론적인 과학의 논리적 핵심에서 우리는 죽은 물질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생생한 자기
들을 만나게 된다.
폰 노이만의 프린스턴 대학 동료이자 헝가리 동포(그들은 부다페스트에서 같은 고등학교에 다녔다)였던
유진 위그너는 이런 역설적인 사건 전환에 관해 이렇게 논평했다.
"의식을 언급하지 않은 채 완전히 정합적인 방식으로 양자역학의 법칙들을 표현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 . . 우리의 미래 개념들이 어떤 식으로 전개되든 간에, 외부 세계에 대한 바로 그 연구가 의식의 내용이
궁극적 실재라는 결론을 낳을 것이라는 점은 여전히 두드러질 것이다."
"
<양자 실재: 새로운 물리학을 넘어서(Quantum Reality: Beyond New Physics)>(1985), pp. 24-6.
하이젠베르크의 이중 세계
양자 실재 #8: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의 이중 세계(세계는 이중적인데, 잠재태와 현실태로 구성되어 있다.)
대부분의 물리학자들은 심층의 실재란 없으며(양자 실재 #1) 관찰이 실재를 생성한다(양자 실재 #2)고
진술하는 코펜하겐 해석을 믿는다.
이 두 실재가 공유하고 있는 바는 현상만이 실재적이라는 단언이다.
현상 아래의 세계는 실재적이지 않다.
이 입장이 즉각적으로 떠올리게 하는 한 가지 의문은 이렇다.
"관찰이 실재를 생성한다면, 그것은 무엇으로부터 이 실재를 생성하는가?
현상은 순전한 무로부터 생성되는가 아니면 어떤 더 실체적인 재료로부터 생성되는가?"
측정되지 않은 실재의 본성은 정의상 관찰할 수 없기 때문에 많은 물리학자들은 그런 의문들은 실용적인
근거에서 무의미하다고 일축한다.
그렇지만, 양자론은 측정된 실재를 완전히 정확하게 서술하기 때문에 현상이 비롯되는 원료에 관한 어떤
실마리들을 포함해야 한다.
상상력을 사용하여 우리는 이 이론의 아래를 응시할 수 있을 것이고 우리의 친숙한 단단한 관찰들의 세계
가 기대고 있는 배경 세계에 관한 어떤 예리한 추측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베르너 하이젠베르크는 현상 아래의 세계를 서술하려고 시도할 때의 어려운 점들을 전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여기서 언어의 문제점들은 정말 심각하다"고 그가 말했다.
"우리는 '사실들'―예를 들면, 안개 상자 안의 물방울들―에 관해 말할 뿐 아니라 원자들의 구조에 관해
어떤 식으로 말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우리는 일상 언어로 원자들에 관해 말할 수 없다."
그렇게 할 때의 어려움을 알아차렸지만, 하이젠베르크는 양자 실재를 들여다 보았을 때 자신이 본 것을
표현하고자 노력한 소수의 물리학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하이젠베르크에 따르면, 심층의 실재는 없다.
아래로 내려가면, 현상적 사실들이 실재적인 것과 동일한 의미로 실재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
측정되지 않은 세계는 그저 반(半)실재적이며, 관찰 행위 동안 완전한 실재 지위를 얻는다.
"원자적 사건들에 관한 실험들에서 우리는 사물과 사실들, 즉 일상 생활의 그 어떤 현상과도 꼭 마찬가지로 실재적 현상에 관련된다.
그러나 원자와 기본 입자들 자체는 실재적이지 않다.
그것들은 사물 또는 사실 가운데 하나라기보다 잠재태 또는 가능태의 세계를 형성한다 . . ."
"확률 파동은 . . . 무언가에 대한 경향을 의미한다.
그것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잠재태(potentia)라는 오랜 개념의 정량적인 한 판본이다.
그것은 사건이라는 관념과 현실적 사건의 가운데에 있는 것, 가능성과 현실의 한가운데에 놓인 기묘한
종류의 물리적 실재를 도입한다."
하이젠베르크의 잠재태의 세계는 우리 자신의 세계보다 덜 실재적이기도 하고 더 실재적이기도 하다.
그것이 덜 실재적인 까닭은 그것의 거주자들이 현실태가 아니라 그저 경향들로 이루어진 유령 같은 양자
생활양식을 향유하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측정되지 않은 세계가 더 실재적인 까닭은 그것이 대부분 모순적인, 공존하는 가능한 것
들을 충분히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이젠베르크의 세계에서 던져진 동전은 앞면과 뒷면을 동시에 보일 수 있는데, 이것은 현실 세계에서는
궁극적으로 불가능한 사태이다.
삶의 불가피한 사실들 가운데 하나는 우리의 모든 선택이 실제 선택이라는 점이다.
한 행로를 택하는 것은 다른 모든 행로를 포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의 일상적 경험은 모순되는 사건들의 동시 발생 또는 다중의 역사를 포괄하지 않는다.
우리의 경우에, 세계는 원자적 영역에서는 명백히 부재하는 단독성과 구체성을 지니고 있다.
여기에서는 한 시점에 한 사건만이 일어난다.
그러나 그 사건은 실제로 일어난다.
반면에, 양자 세계는 우리 세계처럼 현실적 사건들의 세계가 아니라, 행위에 대한 수많은 미실현된 경향들로 가득차 있는 세계이다.
이 경향들은 슈뢰딩거와 그의 동료들에 의해 발견된 정확한 운동 법칙들에 따라 연속적으로 움직이고,
성장하고, 병합하며, 쇠퇴한다.
그런데 이런 활동에도 불구하고, 거기에서는 결코 아무것도 실제로 일어나지 않는다.
모든 것은 여전히 엄격하게 가능성의 영역에 남아 있다.
하이젠베르크의 두 세계는 물리학자들이 "측정"이라고 부르는 특수한 상호작용에 의해 연결된다.
마법의 측정 행위 동안, 한 양자 가능성이 선택받아서 그것의 유령 같은 자매들을 버리고 우리의 일상
세계에서 현실적 사건으로 나타난다.
우리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은 저쪽의 다른 세계―양자 잠재태의 세계―에서 준비된 가능한 것들에서
비롯된다.
결국, 우리 세계가 잠재태의 무리들이 얼마나 멀리 배회할지에 대한 한계를 설정한다.
어떤 사실들이 현실적이기 때문에 양자 세계에서 모든 것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심층의 실재,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의 심층의 실재는 없다.
그 대신에 관찰되지 않은 우주는 가능한 것들, 경향들, 충동들로 이루어져 있다.
하이젠베르크에 따르면, 우리의 일상 세계의 토대는 약속만큼 실체적이다.
"
<양자 실재: 새로운 물리학을 넘어서(Quantum Reality: Beyond New Physics)>(1985), pp. 26-7.
양자론의 탄생
양자론은 양자 실체를 수학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이며, 기호들로 실행된 세계 모형이다.
수학이 종이 위에서 무엇을 하든 간에, 양자 실체는 외부 세계에서 행한다.
양자론은 최소한 다음의 것들을 포함해야 한다.
1. 양자 실체를 나타내는 어떤 수학적 양.
2. 이 양이 어떻게 변화를 겪는지를 서술하는 법칙.
3. 이론의 기호들을 세계 속의 활동들로 번역할 수 있는 방법을 말해주는 대응 규칙.
양자론 #1: 하이젠베르크는 한 양자계를 일련의 행렬로 나타내고, 그래서 행렬역학이라고 불린다.
행렬은 여러 도시들 사이의 거리들을 나열하는 도로지도 위의 주행거리 도표와 비슷한 정사각형 배열이다. 각각의 하이젠베르크 행렬은 에너지나 운동량 같은 다른 속성을 나타내는데, 주행거리 도표의 도시들은
그 속성의 특수한 값들로 대체된다.
하이젠베르크 행렬의 대각선 요소들은 양자계가 특수한 속성 값을 갖는 확률을 나타내고, 비대각선 요소
들은 속성의 가능한 값들 사이의 비고전적 연결 관계들의 세기를 나타낸다.
따라서 한 원자의 운동량 p는 고전물리학에서처럼 하나의 숫자로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정사각형
배열들 가운데 하나에 의해 표현된다.
위치 x, 에너지 E, 그리고 계의 어떤 다른 속성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모두 행렬들로 표현된다.
이런 행렬들의 시간에 따른 변화는 형식적으로는 뉴턴 법칙과 비슷하지만 특이한 차이점들을 포함하는
특수한 운동 법칙을 따른다.
큰 차이점 하나는 수와 달리 행렬들은 교환법칙이 성립되지 않는다.
이것은 행렬 곱의 순서가 차이를 생성한다는 점을 의미한다.
특히, p와 x가 정사각형 배열들일 때, p 곱하기 x는 x 곱하기 p와 같지 않다.
양자론 #2: 슈뢰딩거는 양자 실체를 파동 형식으로 표현하고 그런 파동 형식이 따라야만 하는 양자
운동 방정식들(슈뢰딩거 방정식)을 제시했다.
처음에 슈뢰딩거는 자신의 파동이 맥스웰의 전자기 진동처럼 실재적인 고전 파동으로 믿었지만, [...]
슈뢰딩거 파동의 실재 지위는 대단히 의심스럽다.
그는 양자 실체를 파동 형상으로 나타내기 때문에, 슈뢰딩거의 이론은 파동역학이라고 불린다.
양자론 #3: 디랙은 양자 실체를 추상적인 다차원 공간엣거 어떤 방향을 가리키는 화살표(또는 벡터)
기호로 나타내었다.
양자 실체의 운동은 화살표의 회전에 대응한다.
화살표가 어떻게 회전하는지 서술하기 위해서는 화살표의 공간 위에 어떤 종류의 좌표들(지구 표면을
가로지르는 경도선 및 위도선과 유사한)을 설정해야 하지만, 지구 위에서처럼, 이런 가상적 선들이 배치
될 수 있는 방식의 자유도는 대단히 크다.
좌표들의 선택에 의존하여 같은 화살표에 대해 피상적으로 매우 다르게 보이는 양자 서술들을 얻는다.
디랙 이론의 큰 부분은 한 좌표계에서 다른 한 좌표계로 변화하는 방식, 즉 회전하는 동일한 화살표에
대한 겉보기에 상이한 서술들 사이에 변환되는 방식에 관한 것이다.
서술의 전환에 대한 강조 때문에 디랙은 자신의 도식을 "변환 이론"이라고 부른다.
양자 물리학은 석기 시대부터 풍성함―각각 세계를 설명한다고 주장하는 세 가지 양자론―에 대한 당혹
감과 함께 등장했다.
디랙은 하이젠베르크 이론과 슈뢰딩거 이론 둘 다 자신이 제시한 회전하는 화살표 판본의 양자론의 특수
한 사례들이라고 증명할 수 있었다. 디
랙의 화살표는 어떤좌표계를 선택하는지에 따라 행렬 집합 또는 파동처럼 보인다.
그러므로 실체들에 대한 상이한 묘사에도 불구하고, 세 이론 모두 동일한 내용을 갖는다.
다른 경로들을 여행하면서, 하이젠베르크, 슈뢰딩거, 그리고 디랙은 세 가지 다른 방향에서 같은 설명에
수렴했다.
[...]
하이젠베르크, 슈뢰딩거, 그리고 디랙으로부터 삼중의 계시를 받았을 때 물리학자들은 새 이론을 외부
세계의 사건들에 대해 열심히 시험하기 시작했다.
이 지점에서 양자 이야기는 두 개의 경로를 취하는데, 양자론을 세계를 조작하기 위한 상징적 도구로서
사용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양자론을 그것을 통해 세계의 내부 본성을 지각하는, 실재를 들여다 보는
창으로 간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대부분의 물리학자들은 도구제작자들이 되었다.
빠르게 진행되는 양자 시대에 "실재"를 추적할 여가를 찾아낸 사람은 거의 없었다. [...]
양자론은 한 가지 문제―빛과 원자들의 상호작용―를 다루기 위해 발명되었다.
그런데 일단 원자 문제가 해결되자, 물리학자들은 서둘러 다른 불가사의한 현상들―고체, 액체, 기체의
본성, 원자 안에 깊이 숨은 매우 작은 핵의 구조, 그리고 아원자 존재자들의 본성―에 대해 새 이론을
시험하였다.
기호들 아래에 놓인 더 심층의 실재을 보려고 시도했던 물리학자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물리학자들은
강력한 새 차에 탄 일단의 십대처럼 양자론을 사용했다[...].
[...]
물리학자들이 항상 실재에 대해 대단히 경계하지는 않았다.
양자 시대의 첫번째 십 년(1925-35) 동안, 양자 이론/실재 연결에 관한 논쟁이 풍성했다.
예를 들면 이 시기에는 유명한 보어-아인슈타인 논쟁이 벌어졌다.
점차로 하이젠베르크, 보어, 그리고 괴팅겐의 막스 보른에 의해 고무된 견해가 지배하였고 코펜하겐 해석
으로 알려진 공식 학설로 굳어졌다.
코펜하겐주의자들은 심층의 실재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QR #1).
코펜하겐주의를 실용주의―내가 현상에 대한 요리책 접근방식이라고 불렀던 것―와 동일시하는 물리학자
들도 있다.
양자론은 외양들과 비교되는 요리법일 뿐이라고 실용주의자들은 말한다.
이론은 실제에 관해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으며, 우리는 이론이 그렇게 하리라고 기대도 하지 말아야 한다.
물리학은 수학을 측정에 맞추는 문제이며, 다른 모든 것은 근거 없는 사변이다. [...]
[...]
코펜하겐 학설의 확립은 실재 연구에 있어서 중요한 사건이었는데, 그것이 주류의 관점을 대표하였고
실재 질문에 관한 논쟁을 끝내는 데도 작용했기 때문이다. [...]
코펜하겐 해석과 관련된 다른 두 사건은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와 보어의 상보성 원리이다.
그것들은 함께 자연이 그 어떤 측정 행위에도 부과하는 듯 보이는 기본적인 제약을 표현한다. [...]
[...]
양자 실재 문제에 걸려 있는 것은 전자의 현실적 존재가 아니라 전자가 자체의 주요한 속성들을 갖는
방식이다.
고전물리학자들은 모든 입자가 각 순간에 명확한 위치와 운동량을 갖는다고 생각했다[...].
자체의 속성을 내재적으로 갖는 존재자―입자, 장, 사과, 또는 은하―를 "보통 객체"라고 부르는 데 동의
한다면, 고전물리학의 기본 메시지는 이랬다.
물리적 세계 전체는 보통 객체들로 이루어져 있을 뿐이다.
반면에, 양자론은 세계가 보통 객체들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고 시사한다.
전자, 그리고 다른 모든 양자 존재자가 자체의 모든 속성들을 내재적으로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전자는 자체를 다른 종류들의 양자 존재자들과 구분하는 데 도움이 되는 어떤 내재적 속성들―예를 들면,
질량, 전하, 그리고 스핀―을 갖고 있다.
이런 속성들의 값은 모든 측정 조건에서 모든 전자에 대해 동일하다.
이런 특별한 속성들에 대해서는 전자도 보통 객체처럼 행동한다.
그렇지만, 고전 입자들이 내재적으로 갖고 있다고 여겨졌던 다른 모든 속성들, 가장 두드러지게 위치와
운동량은 더 이상 아무 자격도 없이 전자에 귀속될 수 없다.
이런 ["동역학적"] 속성들[...]은 전자 자체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부분적으로는 전자의 측정 맥락에 의해
생성되는 듯 보인다.
전자가 자체의 동역학적 속성들을 획득하여 갖게 되는 방식이 양자 실재 문제의 주제이다.
중요한 사실은 오늘날 정말 아무도 전자 또는 그 어떤 다른 양자 존재자도 자체의 동역학적 속성들을 실제
로 어떻게 갖게 되는지 모른다는 점이다.
코펜하겐 해석에 따르면, 전자의 동역학적 속성들은 맥락적(contextual)이다.
그것이 갖고 있는 듯 보이는 어떤 속성들은 그것을 어떻게 측정하는지에 달려 있다.
이른바 전자의 속성들은 그 전자와 측정 장치에 공동으로 속한다.
코펜하겐주의자가 "심층의 실재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때, 그는 전자가 측정되지 않고 있을 때 그것
이 "실제로 갖고 있는" 숨은 위치값은 없다는 점을 의미한다.
위치는 전자와 그것의 측정 장치에 공동으로 속하는 속성이기 때문에, 여러분이 측정 장치를 제거할 때
전자의 위치도 제거한다.
맥락적 속성의 일례는 보통 객체의 색깔이다.
색깔은 내재적 속성이 아니라 조명의 질과 바라보는 상황의 다른 측면들에 의존한다. [...]
쇠고기의 색깔은 내재적 속성이 아니지만, 그것은 쇠고기에 고유한 속성―즉, 이 고기의 흡수 스펙트럼―에
근거를 두고 있다.
흡수 스펙트럼(쇠고기에 고유한), 방출 스펙트럼(쇠고기 판매대 빛에 내재적인), 그리고 분광학적 반응
(인간 눈에 내재적인)의 결합이 그 쇠고기의 색깔 속성을 결정한다.
이 세 가지 내재적 속성들 가운데 한 요소를 변화시키면 쇠고기의 지각된 색깔이 변하게 된다.
전자의 위치가 쇠고기의 색깔과 비슷하다―즉, 맥락적이지 않은 더 심층의 속성들에 근거하는 맥락적 속성
―는 것이 가능한가?
코펜하겐주의자가 "심층의 실재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때, 그는 전자는 쇠고기와 다르다는 점을 의미
한다.
측정 장치를 제거하면, 전자는 틀림없이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것은 결코 그 어떤 동역학적 속성도 갖지
못한다.
특히 그것은 그 어떤 특정한 위치 또는 운동도 갖지 못한다.
우리는 그런 존재 상태를 결코 묘사할 수 없지만, 자연은 그런 존재자들을 만들어내는 데 아무 문제도
없는 듯 보인다. [...]
"
<양자 실재: 새로운 물리학을 넘어서(Quantum Reality: Beyond New Physics)>(1985), pp. 41-7.
전자에 관한 봄의 보통 객체 모형
봄(Bohm)은 펜실베니아에서 태어나서 버클리에서 J. 로버트 오펜하이머(J. Robert Oppenheimer)의
지도 아래 물리학을 연구했는데, 오펜하이머는 코펜하겐에서 보어 자신에게 양자론을 배웠다.
자신의 연구를 끝마친 후에, 봄은 프린스턴 대학의 교수가 되었고 양자론에 관한 교과서를 저술함으로써
자신의 사유를 명확히 하고자 결심했다.
봄의 교과서 양자론(Quantum Theory)전자는 사물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1951년에 데이비드 봄은 상원의원 조지프 매카시(Joseph McCarthy)의 비미국 활동 위원회 앞에서
오펜하이머에 불리한 증언을 하기를 거부했을 때 미국의 정치적 현실과 얽히게 된다.
그는 프린스턴의 교수직을 잃었고 미합중국에서는 결코 다시 가르칠 수 없게 되었는데, 먼저 브라질로
이주한 후에 마침내 런던에 정착했다.
대략 이 시기에 이루어진 아인슈타인과의 대화 덕분에 봄은 자신의 교과서에서 자신이 무엇을 말했든
간에, 폰 노이만이 무엇을 증명했든 간에, 양자론에 관한 보통 실재 해석이 가능하다는 점을 확신하게
되었다.
1952년에 봄은 전자에 대해 그런 모형을 구성했다.
봄의 모형에서 전자는 하나의 입자로서 항상 명확한 위치와 운동량을 갖는다.
덧붙여, 각 전자는 새로운 운동 법칙에 따라 그것의 운동을 인도하는 어떤 새로운 장―이른바 "파일럿
파동(pilot wave)"과 연결되어 있다.
파동과 입자 둘 다 실재적―그 어떤 허구적인 대용 파동도 없다―이지만, 파일럿 파동은 보이지 않으며
그것과 연결된 전자에 미치는 효과를 통해서만 간접적으로 관찰할 수 있다.
봄의 모형에서 양자 실체는 파동 측면과 입자 측면 둘 다를 조합하는 단일한 실체가 아니라 두 개의
개별적 존재자들―하나의 실제 파동 더하기 하나의 실제 입자―이다.
환경에 대한 일종의 탐침으로 작용하는 파일럿 파동은 세계 속의 어느 곳에서든 변화가 일어날 때마다
즉각적으로 모양을 바꾼다.
그 결과, 파일럿 파동은 이런 변화에 관한 소식을 전자에 전달하며 전자는 자체의 위치와 운동량을 변화
시킨다.
이런 종류의 측정이 이루어질 때 파일럿 파동은 이런 형태를 취하고, 저런 종류의 측정이 이루어질 때
파일럿 파동은 저런 형태를 취한다.
상이한 종류들의 측정에 대해 전자는 상이한 속성들을 띠게 되는데, 전자의 파일럿 파동이 상이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봄의 모형은 자체의 속성들이 맥락적이지 않는 존재자들(파일럿 파동 더하기 입자)을 사용하여
전자의 맥락적 행동을 흉내낸다.
전자의 속성들은 내재적이지만, 편재하는 파일럿 파동이 이런 속성들을 전자에 대해 시행하려고 준비하고
있는 측정 유형을 포함하는 환경의 모든 세부에 미세하게 그리고 즉각적으로 반응하게 만들기 때문에
맥락적인 듯 보인다.
양자론이 보통 입자를 인도하는 보통 파동의 견지에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라는 관념은 이십 대 말의
드 브로이(de Broglie) 왕자에서 비롯되었다.
심각한 수학적 난점들을 만난 뒤에 드 브로이는 자신의 모형을 버리고 지배적인 코펜하겐 학설을 지지
하게 되었고, 그후 사반 세기가 지난 후에 데이비드 봄이 파동 더하기 입자 개념이 양자 사실들에 대한
정합적인 묘사를 제시할 수 있도록 작동하게 만들 수 있는 방식을 보여주고 나서야 자신의 모형으로
돌아왔다.
봄의 파일럿 파동 모형은 양자론이 보통 객체들의 견지에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라는 신실재론적 희망을
부활시켰다.
그렇지만, 봄의 모형은 한 특이한 골칫거리에 시달린다.
그것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어디에서든지 무언가가 변할 때마다 파일럿 파동은 이 변화에 대한 정보를
전자에 즉각적으로 전달해야 하는데, 이것은 빛보다 빠른 신호 전달을 필요로 한다.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 이론에 의해 빛보다 빠른 신호가 금지되어 있다는 사실은 봄의 모형에 대단히
불리하게 작용하지만, 그는 자신의 모형에서 이 괴로운 측면을 결코 제거할 수 없었다.
자체의 얼마간 꾸며낸 특성과 빛보다 빠른 영향의 존재 때문에 봄은 자신의 모형을 시작에 불과한 것,
양자 실재에 대한 보통 실재 모형이 사실상 가능하다는 하나의 구체적인 예증으로 여겼다.
초기의 이런 성공에 고무된 봄은 양자 사실들 배후에 놓여 있다고 확신한 실재에 대한 더 나은 견해를
계속 추구했다.
"
<양자 실재: 새로운 물리학을 넘어서(Quantum Reality: Beyond New Physics)>(1985), pp. 49-50.
벨의 상호연결성 정리
1964년에 제네바에 소재하는 유럽 가속기 센터인 CERN에서 일하고 있던 아일랜드 물리학자 존 스튜어트
벨(John Stuart Bell)은 빠르게 변화하는 고에너지 물리학의 세계로부터 안식년 휴가를 얻어 양자 실재의
샛길을 탐사하기 위해 떠났다.
벨이 제기했던 첫번째 질문은 이렇다. 폰 노이만이 아무도 결코 그런 것을 할 수 없다고 증명했었는데,
봄은 어떻게 전자에 대한 보통 실재 모형을 구성할 수 있었을까?
사실상 봄의 모형은 그것이 주장했던 것을 해냈다.
그것은 보통 객체들로만 이루어진 실재를 사용하여 양자론의 결과들을 재현했다.
그렇다면 잘못은 봄의 모형에 있는 것이 아니라 폰 노이만의 증명에 있음에 틀림없다.
벨은 본래 판본의 이 증명과 양자 바이블의 출판 이후에 다른 이론가들이 고안해내었던 이 증명의 여러
변양태들을 주의깊게 연구했다. 그는 봄의 보통 객체 모형이 존재할 수 있게 하는 구멍을 찾아낼 수 있었다.
폰 노이만과 그의 동료들은 보통 객체들이 "합당한 방식들로" 조합되는 그 어떤 도식도 양자론의 결과들을
재생산할 수 없다는 점을 증명했었다.
벨은 합당한 방식들에 관한 폰 노이만의 관념이 불필요하게 제한적이라는 점을 보여주었다.
특히, 폰 노이만은 측정 장치의 배치를 감각할 수 있는 보이지 않는 장을 통해서 자체의 속성들을 조정할
수 있는 "이성적인" 전자를 고려하지 않았었을 것이다.
그런 맥락에 적응할 수 있는 전자들에 바탕을 둔 봄의 모형은 "합당한" 것이 아니고, 그래서 그것은 폰
노이만의 증명을 벗어난다.
이 구멍이 발견되는 데 삼십 년이 흘렀다는 사실은 폰 노이만의 권위와 양자 실재 연구의 느긋한 속도 둘
다에 대한 척도이다.
폰 노이만의 증명을 검토하면서 벨은 양자 사실들의 근거가 될 수 있는 그런 종류들의 실재들에 대해
확고한 한계를 설정할 견고한 논증이 구성될 수 있는지 궁금히 여겼다.
SLAC―스탠퍼드 선형 가속기 센터―를 방문하는 동안 벨은 그런 증명을 찾아내었는데, 그 증명은 이후에
벨의 정리로 알려지게 된다.
벨의 정리가 실재에 대해 요청하는 특별한 요구는 양자 세계의 환원할 수 없는 기묘함에 관한 자료에
대한 가장 명료한 묘사를 제공한다.
양자론에 약간의 산술을 덧붙여 논증을 전개함으로써 벨은 무엇이든 그 어떤 실재 모형―보통의 것이든
맥락적이든 간에―도 비국소적(nonlocal)이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줄 수 있었다.
그후에 벨의 정리는 양자 사실들의 견지에서 전적으로 입증되었는데, 양자론에 대한 그 어떤 언급도
필요하지 않다.
가장 최신의 판본으로 벨의 정리는 다음과 같다.
양자 사실들과 약간의 산술은 실재가 비국소적이어야 한다고 요구한다.
국소적 실재에서는 영향이 빛보다 더 빨리 전달될 수 없다.
벨의 정리는 이런 종류의 그 어떤 실재에서도 정보가 양자 사실들을 설명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빨리
전달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실재는 비국소적임에 틀림없다.
실재가 자체의 속성들을 내재적으로 지니고 있는 보통 객체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하자.
벨의 정리는 그런 세계에 대해 그것의 객체들이 비국소적 영향들에 의해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고 요구한다. 봄의 모형은 그런 세계의 일례이다.
이 모형에서 보이지 않는 장은 빛보다 빠른 반응 시간으로 환경의 변화에 관한 정보를 전자에 전달한다.
벨의 정리는 봄의 파일럿 파동의 빛보다 빠른 특성이 우연이 아니라라는 것을 보여준다.
빛보다 빠른 연결이 없다면, 보통 객체 실재 모형은 결코 사실들을 설명할 수 없다.
실재가 자체의 속성들을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라 측정 행위 속에서 그것들을 획득하는 맥락적 존재자
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하자.
이것은 보어와 하이젠베르크가 선호하는 실재 유형이다.
벨의 정리는 그런 존재자들에 대해서 그것들의 속성들을 결정하는 맥락은 실제 측정 현장의 빛 속도
범위를 넘어서는 영역들을 포함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달리 말해서, 비국소적인 맥락적 실재들만이 사실들을 설명할 수 있다.
벨의 정리는, 보통의 것이든 맥락적이든 간에, 그 어떤 실재 모형도 빛의 속도 제한을 존중하지 않는
영향들에 의해 연결되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벨의 정리가 유효하다면, 우리는 빛보다 빠른 실재에서 살고 있다.
심층적 실재의 필연적인 비국소성에 대한 벨의 발견은 양자론이 고안된 이후의 실재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업적이다.
양자론에 의해 고무되었지만, 벨의 정리는 더 심층적인 근원에서 비롯된다.
예를 들면, 폰 노이만의 증명은 양자론의 진실성에 의존하지만, 벨의 정리는 그렇지 않다.
우리가 보게 되듯이, 벨의 정리를 증명하는 데 필요한 전부는 사실들과 약간의 산술이다.
관련된 사실들은 의심스럽지 않다.
1972년에 버클리에서 존 클로저(John Clauser)가 그것들을 측정했다.
오늘날의 양자론이 아무 약점의 징조도 보여주지 않지만, 언젠가 그것은 붕괴할 것이다.
벨의 정리는 양자론의 죽음에도 살아남아서 양자론의 계승자에게 비국소성을 부과할 것이다.
벨의 정리는 실재 자체의 일반적인 한 특징과 접촉하기 때문에 그것은 미래의 모든 물리학 이론들의
형태를 예견한다.
"
<양자 실재: 새로운 물리학을 넘어서(Quantum Reality: Beyond New Physics)>(1985), pp. 50-2.
닉 허버트(Nick Herber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