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43-51절
빌립은 ‘나를 좇으라’ (요1:43)는 에수님의 부르심에 곧바로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에는 학벌이나 가문이 중요시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에 곧바로 응답할 자세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어떤 사명이 있을 때 그 나머지 모든 문제는 예수님이 책임져 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를 불러 소명을 주실 때 많은 말을 하시지 않았습니다.
마치 자석이 쇠붙이를 끌어 당기듯 사람의 마음을 꿰뚫으시는 위대한 능력이 예수님께 있었습니다.
시간이 없다, 물질이 없다는 등의 이유로 우리는 예수님의 일에 주저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일이 무엇보다 중대한 일이었기에
빌립은 모든 세상적인 것을 뒤로 하고 예수님의 부르심에 곧 응답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모험과 도전의 삶입니다.
이것은 계산과 세상 이치를 뛰어넘는 믿음과 순종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뒤로 하고 미지의 세계인 가나안을 향해 간 것도
하나님에 대한 순종의 좋은 본보기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생활은 하나님께 자기의 목숨까지라도 의탁하고
그의 부르심에 아멘으로 응답해야 됩니다.
빌립은 예수님의 분명한 부르심인 ‘나를 좇으라’는 명령이 있는 한
망서리거나 주저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곧바로 그의 생애를 그리스도께 던져 버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3년 반 동안 그의 제자들에게 많은 교훈을 주시며 하늘나라의 진리를 말씀하셨지만
제자들을 움직인 것은 이것 만이 아니었습니다.
말없이 행동하시는 예수님의 모범과 예수님의 전 생애 전 인격을 통해 흘러 넘치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였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앞에 나오면 무릎 꿇고 죄를 회개하며 자신의 죄 된 모습을 발견하게 된 것은
압도하는 하나님의 영광과 사랑의 빛이었습니다.
빌립은 이러한 예수님을 만난 후 자신의 사명을 발견했습니다.
빌립 앞에는 오직 예수님을 위해 일할 소명이 있었고 썩지 아니할 영광의 면류관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믿으려 하기보다는 과거의 경험이나
얄퍅한 지식에 의해 모든 사물을 판단하려 합니다.
그래서 나다나엘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참조,요1:46)고
자기 선입관을 털어놓았습니다.
불신자를 그리스도께 인도하기 위해서는 진리 앞에 가로막혀 있는 그의 선입관을 뛰어넘어야 합니다.
이 벽을 제거하지 않고는 결코 진리이신 예수님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만나보지 않은 자는 누구나 나다나엘과 같은 무지의 고백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다나엘의 무지한 물음에 빌립은 곧 와 보라고 대답했습니다.
이론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에게 이론으로 맞서 보겠다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이러한 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그리스도를 보여 주고 만나게 해야 합니다 .
참신앙은 많은 말보다 한번의 행동이 더 중요하며
많은 이론보다 직접 체험을 통한 산 신앙이 필요합니다.
보통 사람으로서는 상상도 못할 주님의 능력 앞에 나다나엘은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이러한 고백을 하는 성도야말로 하나님의 자녀가 됨은 물론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오르락 내리락’ (요1:51) :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