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마중
그녀의 굽은 등에 파도가 친다
오롯이 숨의 깊이를 다녀온 그녀에게
둥근 테왁 하나가 발 디딜 곳이다
슬픔의 중력이 고여 있는
물의 그늘 속에 성게처럼 촘촘히 박힌 가시
물옷 속으로 파고드는 한기엔 딸의 물숨이 묻어있다
끈덕진 물의 올가미
물숨을 빠져나온 숨비소리가 휘어진 수평선을 편다
바다의 살점을 떼어 망사리에 메고
시든 해초 같은 몸으로 갯바위를 오를 때
환하게 손 흔들어 물마중 해주던 딸,
몇 번이고 짐을 쌌다가
눈 뜨면 골갱이랑 빗창을 챙겨 습관처럼 물옷을 입었다
납덩이를 달고 파도 밑으로 들어간 늙은 어미가
바다를 끌고 집으로 돌아오면
테왁 같은 낡은 집이 대신 손을 잡는다
저녁해가 바닷속으로 자맥질하고 있다
종이컵
딱 한 번 뜨거웠으면 됐다
딱 한 번 입맞춤이면 족하다
딱 한 번 채웠으면 그만이다
할 일 다 한 짧은 생
밟히고 찌그러져도 말이 없다
하현달
연못의 잉어들
둥근 달 하나
몇 날 며칠 뜯어 먹었는지
달 껍질만 동동 떠 있다
내가 다 파먹고 버린
어머니 손톱 같은
점화하다
비릿한 바다 냄새가 난다
어디서부터 걸어왔는지
내 통증의 하나가 고개를 든다
갯벌을 파헤치는
어머니의 손길이 분주하다
바구니에 쌓여가는 바지락
퉁퉁 부어오른 관절마다
짠물이 스미고
축 늘어진 물풀 같은 어머니를 꺼내면
갯내 나는 시가 켜진다
봄강
푸른 발굽으로 내달리는 신록
혼절의 빛깔이다
천 가지 무색으로 아프다
뜨겁게 죄짓고
뜨겁게 죄 씻고 싶다
유계자
충남 홍성 출생
2016년 <<애지>> 신인상으로 등단
2013년 웅진문학상 수상
2021년 애지작품상 수상
시집<<오래오래오래>>, <<목도리를 풀지 않아도 저무는 저녁>>
****유계자는 삶의 여러 방식과 형태, 또 그러한 것들을 바탕으로 살아온 사람들의 땀과 눈물에 대해 사유의 세계를 증폭시키는 아포리즘으로 천착시켜낸다. 그가 근본적으로 추구하는 시의 내면에는 삶과 사람이 존재한다. 그가 삶에 대해 진지할수록 시가 진지해지고, 사유의 세계도 진지해진다.
유계자는 과거에 경험한 사실들을 아날로그의 기억으로 철저하게 시로 잘 들춰낸다. 그래서 그림을 보듯이 잘 읽어지고 의미와 감동이 넓고 깊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시작법은 한 가지 유형과 방법에 고착되지 않고 다양한 대상과 방법으로 자세를 취하고 있다는 면에서 고무적이다. 유계자의 아날로그 기억에 대한 접근 방법은 매우 차분하며, 그 속마음 또한 상처를 가라앉히는 따듯한 진정제 역할을 한다. 또한 일상적인 삶과 보편적인 대상에 대한 유계자의 시심은 계절이나 구체적인 꽃이름, 그리고 사물명을 끌어모으는 힘에서 비롯된다.
유계자의 시가 지니는 특징은 화자 자신이 만든 상처의 요소의 하나인 독약과 그 독약을 치유할 수 있는 해독제를 동시에 구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더 이상 타나토스의 선을 넘지 않고 스스로 처방한 해독제를 사용하여 상처에서 벗어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