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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청춘 마리안느, 우리 사랑 KBG!
그때 그 시절에는 왜 그리 좀이 쑤셨던가?
<조 두 영>
아, KBG! 여러분은 물론 기억할 것이다. 지금 세종문화회관 터 광화문 천막교사를 쓰던 고3시절, 우리의 짝사랑 대상은 앞집학교 같은 학년 KBG 이었다. 그녀는 쭉 뻗은 체구에 가무잡잡 윤기가 흐르는 피부, 휘둥그레 큰 눈과 쌍가풀, 진한 속눈섭, 환한 웃음과 경쾌한 걸음거리, 여학생답게 눈을 내려 깔지않고 상대방을 똑바로 쳐다보는 도전적 자세, 그리고 거느리고 다니는 서너명의 호위부대 여학생들을 지니고 있었다. 서양인형 모습과 ‘칼멘’의 끼가 섞인 인상을 주는 이 KBG는 언제부터인가 우리 학년 전체에서 화제에 올랐다. 우리학년 아무개 패와 잘 지낸다는 말도 있었는데, 그 패 이름이 수시로 달라 어떤 때는 잘 놀고 잘 생긴 친구들이었다가 어떤 때는 주먹께나 쓴다고 정평이 난 친구들이 되었다. 또 어느 귀공자의 이름도 떠올리곤 했다. 어떤 때는 다른 학교 어깨들과 노는 것을 보았다는 증인까지 나왔다. 그러니 우리 상상 속에서 반은 귀공녀이고 반은 ‘후랏바’(내놓은 여학생, 논다니)가 되었기에 모두가 속으로 가슴을 조리고 침을 흘렸다. 별명이 그래서 나온 것이다. 거북하지만 그 별명은 원래 female dog의 생식기를 말하는 우리 말에서 따온 것으로, 남자인 우리도 차마 입에 담기 어려워 영어로 KBG로 약자화(略字化)한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감히 넘볼 수 없는 비너스이기에 이런 야비한 별명이 나왔는데, 그때의 우리는 부끄러운 줄도 몰랐다. 우리 스스로 이솦우화 ‘여우와 신 포도’ 속 여우가 되어 그녀를 향기로운 포도로 모신 격이다. 어떻게 소문이 났는지 그녀 학교 동급생들은 이 약어를 ‘Kyunggi Beautiful Girl’(京畿第一美女)이라 번안해 불렀다. 다른 소문으로는 그녀와 같은 반 여학생 하나의 먼 촌 오빠가 우리 동기에 있어 하루는 “왜 그렇게 불르느냐?”고 물어 얼떨결에 그렇게 얼버무려 대답한 것이 퍼진 것이라고 하였다.
나도 그녀를 두어 번 본 일이 있다. 학교가 파해 “와!’하고 광화문 큰 골목길을 나서는데, 수근수근 “야, 온다!”라는 소리가 나는가 싶더니 앞에 가던 떼거지들이 모세의 기적처럼 좌우로 쏵 갈라지는 것이 아닌가. 모두가 이그러지고 뻘개진 얼굴이 되어 께리침침해진 눈동자를 허둥대며 땅을 보는가 하면, 갑자기 화제가 엉뚱하게 바뀌어 왜 이러나 싶을 정도였다. 어떤 친구들은 아예 얼어붙어 그저 ‘어! 어!’ 모기소리만 내기도 하였다. 그런 가운데를 생글거리는 KBG와 호위대가 유유히 지나가면 한참 후에 정신을 차린 우리는 주섬주섬 이전 화제로 돌아갔다. 누구나 뒤를 돌아보고 싶었지만 서로 체면 때문에 그렇지도 못했다. 오금이 저렸던가, 왜 그리 갑자기 오줌이 마려워 왔는지. 그리고 나면 당시 광화문 네거리 공중변소는 우리 동기들이 줄을 서서 소변 볼 차례를 기다렸다.
하루는 점심시간에 전(全)학년에 비상이 걸렸다. B고교의 ‘벽돌’이 일당을 거느리고 우리 교문 앞에 대기하고 있으니 함부로 나가지 말라는 전언이다. 당시는 고3에 한해 점심시간이면 밖에 나가 사먹는 것이 자유였던 시대였다. ‘벽돌’이란 싸울 때 급하면 벽돌로 상대의 머리를 깐 적이 더러 있다는 데서 얻은 별명으로, 이 어깨가 B고교 두목에 등극하여 인근 학교 싸움패들까지 모두 평정한 뒤 왕중왕(王中王)으로 군림하고 있던 터 였다. 또 급보가 왔다. 벽돌이 온 것은 자기가 데리고 노는 KBG를 우리학교 누군가가 건드리려 하니 그렇다면 한판 붙자고 온 모양이라는 것이다. 보통 이럴 때는 주인학교 대표격 어깨가 나가 불청객 타교 어깨와 교문 앞에서 당당히 일대일 대결을 벌려 혼을 내주어 영웅이 되거나, 아니면 얻어맞고 들어와 대표자격을 학년에 반납하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불행히도 우리는 이 대표가 선정되어있지 않았고, 또 누구라고 비공식으로 꼽히긴 했지만 대학진학을 앞둔 마당에다 상대가 하도 어마어마하니 나서려 하지 않았다. 대표급보다 한급 낮은 준(准)어깨로서는 ‘뼉다귀’, ‘X쟁이’, ‘갈비’, ‘똥자루’, ‘스딸린’ 등이 있었으나 이들은 우선 별명의 상징성에서도 그 두려운 ‘벽돌’과 상대가 되지 못했다. 즉 모두가 깡패와 싸운 경력이 없는 선량한 친구들로, 이들은 교내용(校內用)일 뿐 대외용(對外用)이 되지 못했다. 여하튼 우리 상당수는 그날 점심을 굶으며 중1때 본 럭비주장 ‘떡메’, 유도부 주장 ‘털보’선배를 그리워 하였다. 뒤에 알려지기로는 그날 벽돌이 온 것은 친선 방문이었다는 것이다.
대학에 입학하고는 모두가 새 환경에 적응하느라 한동안 KBG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반년이 흘러가고서야 관심이 다시 생겨 나오는 말들이 그녀 행방이 묘연하다는 것이다. 갈만한 대학을 다 알아 보아도 없고, 시내에서 본 적도 없으니 미국유학을 간 것 같다 하였다. 다시 일년이 더 지나 나오는 소문은 그녀가 외국에서 귀공자인 새까만 우리선배와 결혼하였다는 것이다. 모두가 허전해 하고, 씁쓰레해 하였다. 각자가 소유하면서도 또 함께 공유했던 소중한 보물을 빼앗긴 기분이었다. 부모가 나선 중매결혼이라고도 하였다. 이 말에 우리 상처가 다소 회복은 했다. 그리고 나니 미안하고 측은하기도 했다. 그녀는 사실 천진난만한 여학생으로, 우리학년 그 누구와도 교제한 일이 없고, 절대로 후랏바가 아니었다는 말도 나왔다. 더더구나 다른 학교 어깨 패들과는 상종한 일이 없다고 여기저기서 자신있게 말하였다. 통상적으로 여성은 청소년기에서 남성보다 심신발달이 2년 정도가 빠른지라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사실은 우리 모두가 KBG 그녀의 상대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이 무렵 나온 프랑스 영화가 ‘나의 청춘 마리안느’였다. 배우도 감독도 이름은 지금 잊어버렸다. 프랑스 시골 어느 상류층을 위한 기숙(寄宿)고등학교가 배경으로 나오는 영화다. 호수 건너 고성(古城)을 바라보던 사색파(思索派) 주인공 남학생이 어느 날 우연히 호수를 헤엄쳐 건너가 숲 속을 산책하는 같은 또래 여자를 만나 짝사랑에 빠진다. 신비스러운 그녀는 도시 말이 없다. 밤 호수를 다시 헤엄쳐 가 만나 눈치 챈 것은 그녀가 고성 성주에게 구속받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그는 그녀를 구조해 내려고 밤에 보트를 져서 와 대기했지만 그녀는 사전 발각되어 성주에게 어디론가 끌려가버렸기에 그가 허탈에 빠진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영화는 이것이 어디까지가 실제이며 어디까지가 주인공의 환상인지를 분명히 해주지 않아 관객들을 혼동시킨다. 영화의 끝 이야기는 짧다. 혼란 속에 고민하던 주인공이 드디어 졸업하고 떠나가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때의 그는 얼마전의 청소년이 아닌 심리적으로 훨신 침착해지고 숙성해진 어른의 모습이다.
우리 동기는 이 영화를 거의 다 가 보았다. 어떤 친구는 두 번을, 어떤 친구는 내친 김에 한자리에서 두 탕을 보았다 했다. 그리고는 주로 주인공 여자 마리안느가 신비스럽다느니, 어디로 갔을까 의문도 던졌고, 저런 여자라면 일생을 걸겠다는 친구들이 많았다. 행방불명이 된 마리안느를 생각하며, 프랑스와 프랑스 영화와 명감독들을 안주로 삼아 우리는 술을 억수로 퍼 먹었다. 그럴 것 같지 않던 수학벌레 공과(工科) 친구들까지도 ‘마리안느, 마리안느’를 불러댔다. 그러나 누구도 어른이
된 남자 주인공에 대해서는 말이 없었고, 모두가 사라진 마리안느만을 애타해 하였다. 한 계절을 이렇게 보내는 바람에 내 용돈 거의 전부를 그 놈의 마리안느가 쓸어갔다.
이렇게 우리의 ‘놓치거나 빼앗기는 계절’은 시작되었다. 대학 중반 즈음이 되니 짝사랑하던 같은 학년 여학생들이 진짜 임자를 만나 우루루 떨어져 나갔다. 말도 걸어보지 못하고 그져 멀리서 애만 태웠던 경우가 태반이고, 말을 걸었다손쳐도 정작 다른 이야기만 어설프게 나누었던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래도 그 가운데는 이런 친구도 있었다. 짝사랑 여자가 하루는 느닷없이 점심을 같이 먹자해 얼씨구나 갔더니, 하는 말이 “나 이제 약혼하게 되었으니 서운해 하지마라, 너도 이해해 주겠지?” 하길래 무너지는 가슴을 쓸어 안고 “에이, 무슨 말야! 나는 괜찮아”라고 천정을 바라보았다 하였다.
그래서 이 무렵 대학가 싸구려 술 집 문은 우리또래로 미어졌다. 부랄친구 고등학교 동창들을 모아놓고 마시는 홧술 때문이다. 인생 고비마다에는 유행하는 노래가 있기 마련인데, 이 길목에는 ‘갑돌이와 갑순이’가 딱 맞았다. 한 마을 모르는 척 서로 좋아하던 둘 이었는데, 처녀는 시집가던 날 밤 달을 보고 울었고, 후에 총각도 장가가는 날 밤 하늘 보고 웃었다는 가사(歌詞)는 우리 모두가 잘 알 것이다. 이런 술자리에서는 초청자가 슬쩍 그 노래를 선창하면 모두가 따라 하다가 서서히 술상을 내려치는 젓가락에 힘이 들어간다. 드디어 마지막 구절인 ‘…고까진 년, 했더래요!’에 이르르면 이 ‘고’에서 쾅, ‘했’에서 뜸을 드려 살짝 건드린 다음 막판 ‘요!’에서 그녀 뺨 때리듯 힘차게 갈겨버리면 뚝 소리가 난다. 젓가락이 부러진 것이다.
참, 여기 저기 초청 많이 받아 그 시절 젓가락께나 많이 부러뜨렸다. 동숭동 중국음식점 이층, 2~3학년 대학생들이 저녁에 우루루 몰려드는 이 방, 저 방에서는 젓가락 부러지는 ‘뚝!’ 소리가 노랫소리 보다 한때는 더 컸다. 여기 저기서 짖어대는 “쨩게 아저씨! 새 젓가락 좀!”이라는 심부름이 귀찮아 주인은 들어오는 손님들 관상을 본 다음 싸구려 젓가락만을 미리 한묶음 던져 놓기도 했다. 오죽해야 이웃 ‘쌍과부집’에서는 그때로는 비싼 알미늄 젓가락을 썼겠는가. 그러나 그 집은 대신 술상이 온통 멍 들었다. 그 상을 얻어다 놓고 지금쯤 기념되는 고물로 판다면 내 퇴직 후 인생은 보장될 터 인데! 이렇게 쫓던 닭이 지붕에 올라가 있는 것을 쳐다보는, 그리고 솔개가 그 닭을 낚아채가는 모습을 멍하니 보는 개가 된 신세인 친구들은 실의에 빠져 상당수가 학도병으로 자진입대 해버렸다. 논산행 입대열차 배웅이 그 다음 차례로, 우리는 그 얼마나 자주 서울역에 나아가 손을 흔들었는지 모른다.
놀랍게도 이들은 제대하는 일년 반 뒤 전혀 다른 한 사람의 어른이 되어 있었다. ‘나의 청춘 마리안느’ 영화감독이 의도한 만큼 이들은 성큼 성장해버린 것이다. 그리고 한술 더 떠 이들은 몇 년 더 지나 결행하게 될 ‘솔개’의 날개 짓을 차근차근 연마하기 시작했다.
정신분석 입장에서 볼 때, 영화 ‘나의 청춘 마리안느’에 나오는 젊은 여주인공은 어머니의 상징이요, 고성 성주는 아버지의 상징이다. 소년의 눈에는 어머니란 신비스러운 존재이며, 아버지의 압제에 시달리는 여성이다. 아들이라면 마땅히 구해 내야 될 존재이다. 그러나 아들로서는 소유권이 아버지에게 있는 어머니를 포기하고 스스로 어른으로서의 살 길을 찾아나갈 수 밖에 없다. 이 영화는 이런 가르침이 들어있는 성장(成長)영화였다. 대다수 사람에게는 풋사랑이란 진정한 사랑을 향한 징검다리일 뿐이다.
그리고 이 영화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여주인공 마리안느와 비슷한 역할을 우리 51회 동기 전체를 위해 고맙게도 KBG가 안내간판 격이 되어 열연(熱演)해 준 것이다. 그녀가 우리를 미리 깨우쳐 주었기에 우리의 성장은 비교적 순탄했다. 그래서 우리는 늦게나마 그녀에게 감사를 드린다.
자, 우리 모두 등산모나 골프모자를 쓰고 화장실에 들어가자.
그리고 이번에는 눈을 똑바로 뜨고 거수경례를 부치자,
어디선가 곱게 늙어갈 경기제일미녀(京畿第一美人) 그녀를 향해!
첫댓글 나의 청춘 마리안느 라는 영화 생각이 어렴풋이 머리에 떠오른다. 1955년에 나온 영화였으니까. 프랑스와 독일 영화가
있었다는데 우리가 본 것은 독일영화 아닐까... 마리안느 여주인공은 마리안느 홀트 Marianne Hold 고 남자주인공은
독일판으로 호르스트 부후홀츠 Horst Buchholz...그 당시 '몽쁘띠' Monpti 라는 영화에 호르스트와 로미 슈나이더 가
나왔지. 참 옛날 얘기들이다. 고맙수다, 겸산 조박사, 세종로 천막교사 시절 얘기도 좀 해야겠구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