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종은 마치 수도사들처럼 결혼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이세종은 “바울선생은 시집가는 것이 죄는 아니나 안 가는 것이 더
복되다고 말씀하셨다. 고린도전서 7장이다. 과부가 시집가는 것이 좋으
나홀로 사는 것이 더좋다고 하셨다. 예수 믿는 것이 더좋은 일하는 것이
다. 더 좋은 복을 구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세종은 히브리서 13장
4절의 “결혼을 귀히 여기라”는 바울의 권면이 있지만 그의 수도사적인
영성의 관점 때문에 고린도전서 7장을 선택하고 있다. 물론 이세종은 결
혼을 죄로 보지는 않았다. 자식을 낳는 것도 죄로 보지 않았다. 그러나
이세종은 회심한 뒤에 순결하게 살기위해 부부는 남매처럼 지내야 한다
면서 동거하지 않고 다른 방에 거처했다. 부인이 잠든 사이에 몰래 들어
오면 어느새 알고 내쫓았다. 이세종이 세상을 떠날 무렵, 얼마 동안 아내는
남편 시중을 들려고 한 방에 있었지만, 그것도 밤에 쉴 때는 중간에 칸을
막고 이웃 방에 거처했다. 이같이 이세종이 예수 믿고 부인과 부부관계를
단절한 해혼(解婚)사상은 이집트의 동방 사막 교부들에게 서도 나타난다.
니트리아의 아모운은 삼촌이 억지로 결혼을 시켜서 했지만 수도를 하면서
18년 동안 부부가 한 집에 살면서 부부관계를 갖지 않는 해혼 생활을 했다.
그 후에 니트리아 산속으로 가서 그 곳에 수실 두 개를 짓고 22년 동안 각자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아모운은 매년 두 번 정도 부인을 만났다.
이집트의 수도사 유키리투스와 그의 아내 메리는 결혼하여 한 집에 살았지만
부부관계를 하지 않고 살았다. 그들은 주위에 해혼 사실을 숨기고 살았다.
아모운 부부는 처음 18년은 같이 살면서 해혼을 하였고, 나머지 22년은
따로 떨어져 해혼 생활을 했다. 유키리투스 부부는 처음부터 같이 살면서
해혼 생활을 했다. 이들 수도사들의 해혼의 특징은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게
해혼을 비밀로 하고 살았다는 점이다.
다른 제자들에게 강요 하지도 않았다. 반면에 이세종의 해혼 생활은 공개
적이었으며, 제자들에게 해혼을 강요한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이세종의
‘해혼 사상’은 그 당시 기성교회로부터 신학적 공격을 받는 논쟁의 빌미를
제공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