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에세이김소연의 「끝물 과일 사러」 감상 / 조민, 이영광
작성자:강인한작성시간:2018.04.14 조회수: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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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의 「끝물 과일 사러」 감상 / 조민, 이영광
끝물 과일 사러
김소연(1967~ )
끝물은
반은 버려야 돼.
끝물은 썩었어. 싱싱하지 않아.
우리도 끝물이다.
서로가 서로의 치부를 헛짚고
세계의 성감대를 헛짚은.
내리 빗나가던 선택들. 말하자면
기다림으로 독이 남는 자세.
시효를 넘긴 고독. 일종의 모독.
기다려온 우리는 치사량의 관성이 있을 뿐.
부패 직전의 끝물이다.
제철이 아니야.
하지만 끝물은
아주
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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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것들이 날로 늘어난다. 그다지 놓친 것도 잃은 것도 없는데 그저 안절부절 불안 초조다. 봄은 오지도 않고 가버리고, 아침은 오자마자 밤이 되어버린다.
하루하루가 밍밍하고 물컹해진 끝물 과일 같다. 끝물을 먹은 것 같다. 무엇인가를 마냥 기다리기만 하다가 결국 시효를 넘겨 버린 고독(孤獨)의 맛, 바람만 맞는 모독(冒瀆)의 맛, 씁쓸하고 텁텁하고 떫은 맛…. 시간의 뒷모습이 바로 이런 맛일까?
사실 한물 간 딸기나 토마토나 수박이 뭐가 그렇게 맛있겠나. 모두 아쉬움과 기다림과 허전함으로 뭉쳐진 시간의 응혈일 뿐인데. 그저 오늘을 버티며 견디며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치사량의 관성’과 같은 것인데….
조민(시인)
끝물은 상해서 반은 버려야 한다. 그것은 곧 퇴물 취급을 받을 어떤 이들의 신세와 닮았다. 처음 이런 느낌에 빠지는 게 언제쯤일까. 젊음의 열정과 희망, 모순과 혼란이 식어가는 ‘서른 즈음’일까. 그만 떠나주세요, 이제 당신들 시간은 끝났습니다…. 이런 말을 들으며 무대를 떠나야 할 끝물 세대에게 무엇이 남았을까. 기다림의 독, 고독과 모독의 시간이 발효시킨 어떤 진심이 남았다. 진심은 독하고 달다. 포기를 모른다.
이영광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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