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러디맨
정리 김광한
책소개
슈 에지마의 소설 [블러디맨]. 새로운 삶의 발판을 마련하고자 마약 운반책을 자처한 일본인 여성 부치는 데스밸리 사막 한가운데에서 기타 케이스를 등에 멘 소년을 만난다. 빠른 손, 날카로운 눈빛, 담대한 말투 등 소년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그의 행동 하나하나에 부치는 의문을 품는데……. 사라진 500만 달러의 코카인과, 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갈기갈기 찢긴 채 발견된 일가족의 시체로 혼란에 빠진 로스앤젤레스. 그곳을 방랑하는 귀신같은 칼솜씨의 소년, 필사적으로 삶의 돌파구를 찾는 부치, 각자의 가치관으로 서로 충돌하는 수사기관. 운명, 받아들일 것인가, 개척할 것인가? 밑바닥을 북북 기는 인간일지라도 미래는 선택할 수 있는가?
슈 에지마
저자 : 슈 에지마
저자 슈 에지마는 1976년생. 평소에는 온라인 마케팅 지원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미스터리, 호러, SF 등을 폭넓게 읽어왔다. 할리우드 영화처럼 비일상적인 스케일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어떤 형태로든 독자에게 ‘재미있다’라는 말을 듣는 스토리 창작에 힘을 기울이고자 한다.
역자 : 양윤옥
역자 양윤옥은 일본 문학 전문 번역가. 히라노 게이치로의 『일식』 번역으로 2005년 일본 고단샤 노마 문예번역상을 수상했다. 대표적인 번역서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 『잠』 『중국행 슬로보트』 『이상한 도서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지옥변』, 오쿠다 히데오의 『소문의 여자』, 히가시노 게이고의 『붉은 손가락』 『유성의 인연』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에쿠니 가오리의 『나의 작은 새』, 무라야마 유카의 『천사의 알』 『천사의 사다리』 『견딜 수 없어지기 1초쯤 전에』 등이 있다.
책 속으로
로스앤젤레스 시경 마약반의 브라이언 요시다는 참혹한 살인 현장 앞에서 저도 모르게 우두커니 서버렸다. 로스앤젤레스 시경에서 20년 가까이 근무했고 마약반으로 이동하기 전에는 강력반에서 꽤 오랫동안 일했지만 이토록 처참한 사건 현장은 본 적이 없다. 피와 사체도 엄청나지만 살해 당시의 광경을 상상하니 오싹 한기가 돌았다. 범인은 예리한 칼 같은 것으로 여러 명의 사람을 토막 낸 것이다. 이건 총의 방아쇠를 당기는 것보다 훨씬 더 체력이 필요한 일이다. 결코 충동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이 아니다. 여기저기 흔하게 널린 원한에 의한 사건과 비교해도 이건 광기의 차원이 다르다.브라이언 형사는 자신이 땀을 흘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프리카 계의 피를 물려받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그의 갈색 피부에 써늘한 땀방울이 흘렀다.하필 이런 시기에 이 집에서 사건이 터지다니. 최악의 기분이다.
널찍한 거실은 이미 사건 현장으로 확보되어 여러 명의 형사와 경관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브라이언의 발치에는 파란 점프슈트를 입은 과학수사관이 쪼그리고 앉아 피 웅덩이 안에서 범인의 단서를 찾고 있었다.
“이건 뭐지?”
과학수사관 한 명이 파트너에게 살덩어리 하나를 들어 보였다. 그것은 슈퍼마켓에서 파는 등심 정도의 크기로, 피에 젖은 탓에 인체의 어느 부분인지 판단하기가 어려웠다. 곁에 쪼그리고 앉아 있던 파트너는 그쪽을 바라보더니 감정이 담기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허벅지야, 어린애 다리의. 어디 봐, 이건 대퇴골이지. 여기 굵은 동맥이 있잖아.”
처음 질문한 수사관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작은 플라스틱판에 뭔가 써넣기 시작했다. 그것은 연속 번호의 숫자와 사체 부위명을 조합한 것이었다.
출판사서평
총이 빠른가, 검이 빠른가?
귀신같은 칼솜씨의 소년과, 그를 쫓는 각종 수사기관의 비밀
미국, 중국, 일본을 발칵 뒤집어놓은 하드보일드 액션
제3회 골든 엘러펀트 상 대상 수상
이번엔 하드보일드 액션이다!
한, 중, 미, 일 출간과 함께, 영화 등 다양한 매체의 형태로 선보이는 것을 목표로 만든 ‘골든 엘러펀트 상’ 제3회 대상은 하드보일드 액션 『블러디맨』이 차지했다. 수많은 후보작을 물리치고 한, 중, 미, 일 심사위원들이 만장일치로 이 작품을 지목했다. 동과 서, 각기 다른 문화권의 심사위원이 하나의 작품을 두고 한목소리를 낸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블러디맨』은 빚더미에서 벗어나기 위해 마약 밀매에 자의적으로 가담한 일본인 여성 ‘부치’와, 기타 케이스 안에 사무라이 검을 넣고 다니는 수수께끼의 소년의 만남에서 시작된다. 그들을 쫓는 각종 수사기관과의 대치를 박진감 넘치게 그린 이 작품은, 골든 엘러펀트 상이 추구하는 엔터테인먼트적 요소는 물론, CIA, FBI, NSA 등 엄청난 스케일에 비해 빈틈없는 스토리 구조, 남성스러운 필치가 하드보일드라는 장르와 완벽하게 매치된, 시나리오로서도 손색없는 작품이라는 평을 받았다. 또한 독자의 예상을 뒤집는 반전의 반전까지, 사소한 요소 하나하나가 복선의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게 만든 솜씨는 놀라울 정도다.
하지만 이러한 수많은 요소들 중 단연 돋보이는 부분은 이 작품을 이끌어가는 주인공이 귀신같은 솜씨의 칼잡이라는 점이다. 『블러디맨』의 원제 ‘퀵드로’는 서부극 등에서 나오는 ‘권총 빨리 뽑기’를 가리키는 말이다. 작가 슈 에지마는 일본 전통 ‘이아이’ 검법에 착안해 이 작품을 구상했다. 총보다 빠르게 사람을 베는, 일명 ‘광기의 춤’을 추는 소년과 전문 수사기관의 대립은 동과 서, 신과 구의 대립으로서, 설정 자체만으로도 작품 전체에 팽팽한 긴장감을 자아낸다. 슈 에지마가 앞으로 어떤 작품을 발표하든, 『블러디맨』은 그의 프로필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운명, 받아들일 것인가, 개척할 것인가?
밑바닥을 북북 기는 인간일지라도 미래는 선택할 수 있는가?
『블러디맨』은 장르소설로 분류되지만, 이 작품이 다루는 주제는 그 장르의 개성을 뛰어넘을 만큼 묵직하다. 『블러디맨』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이른바 밑바닥 인생을 살고 있다. 빚더미 인생에서 벗어나기 위해 마약 운반책을 자처하기도 하고, 몰살당한 가문의 복수를 위해 세계를 떠돌기도 한다. 일가족이 몰살당해 창녀로 살아가는 여인도 있고, 어쩔 수 없이 조직 폭력배와 관계를 이어나가는 형사도 등장한다. 이들은 더 나은 삶을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상황은 더 안 좋아질 뿐, 종종 최악의 패를 뽑기도 한다. 수많은 알력 관계 속에서 때로는 피해자가 되기도, 가해자가 되기도 하는 삶, 발버둥 쳐도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진흙탕 인생, 이러한 삶에도 희망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