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터 / 곽주현
고향을 자주 찾는다. 그곳에서 농사짓기 때문에 발길이 잦을 수밖에 없다. 아침 일찍부터 부산하게 움직인다. 관리기로 땅을 갈아엎고 둑을 만들어 비닐로 덮어 작물 심을 준비를 했다. 5월은 참깨 씨앗 넣고 고추 모종 심는 등 할 일이 많아 바쁘다. 그러다가 힘에 부치면 가끔 마을로 들어가 골목길을 걸어본다. 무슨 할 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발 가는 대로 이곳저곳을 기웃거려 본다. 이 집는 김 할아버지가, 저기는 영암 댁이 살았는데 문패가 많이 바뀌었다. 이 동네에서 나고 자라서 어느 집이나 옛이야기를 한 아름씩 불러낼 수 있다. 이사 온 사람 댁인지 간혹 낯선 이름도 눈에 띈다. 그러다가 빈터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마을 한가운데에 꽤 넓은 터가 하나 있다. 주변이 모두 크고 작은 건물로 둘러싸여 있는데 이곳만 휑한 땅으로 남아있다. 상추와 마늘 등의 채소가 자라고 감, 사과나무 몇 그루도 열매를 달고 있다. 십수 년 전만 해도 꽤 괜찮은 가옥이 여기에 있었다. 그 터를 찬찬히 흩어본다. 머릿속에 오만 가지 생각이 불쑥불쑥 일어난다. 지금은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전혀 남아있지 않지만, 예전의 집 형태를 생생하게 기억한다.
서쪽으로 긴 행랑채가 있고 사랑방, 화장실, 돼지우리가 죽 이어졌다. 대문을 열고 들어오면 넓은 마당에 꽃과 과일나무들이 빽빽하게 자리한 화단이 보인다. 내가 공들여 심고 가꾼 것들이다. 철 따라 꽃이 피고 열매가 열리면 지나가던 동네 사람마다 곱다는 말을 자꾸 하며 갔다. 그래서 우리 집을 ‘꽃집’이라 불렀다. 봄이 되면 내 키보다 좀 더 큰 동백나무에 박새가 둥지를 틀고 알을 낳고 새끼를 길렀다. 가끔 어미와 눈이 마주치면 제발 가까이 오지 말라는 듯 거친 날갯짓과 울음소리로 경고했다.
마당 남쪽으로 본채가 있었다. 높은 토방과 마루가 있고 창고, 부엌, 큰방, 대청마루, 작은방 순으로 자리했다. 원래는 초가였는데 지붕을 기와로 개량한 한옥이다. 일본인 지주가 살았던 곳으로 그래도 우리 마을에서는 제법 큰 집에 속했다. 유일하게 목욕탕도 있어서 설 명절이 오면 서로 이용하려고 다툼이 나서 제비뽑기로 순서를 정했다. 그때는 친구들에게 목에 힘을 주며 번호표를 나누어 줬다. 탕이라야 뭐 커다란 가마솥 비슷한 것이었지만 그래도 인기가 좋았다.
이런 기억도 생생하다. 초등학교 3학년쯤이었을까? 친구들과 모여 신발 멀리 보내기 놀이하다가 내 것이 초가지붕 위로 날아갔다. 담을 타고 올라가서 고무신을 잡았는데 그만 미끄러지고 말았다. 토방 모서리에 몸통을 찍고 떨어졌다. 한참 동안 숨을 쉴 수 없었다. 꽤 여러 날 가슴에 통증이 있었지만, 어머니에게 혼날까 봐 참고 견디었다. 어른이 되어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의사가 사고가 난 적이 있냐고 물었다. 갈비뼈 두 개가 어긋나게 붙어있다고 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때 그랬는데 모르고 지냈던 것 같다.
마당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정제(부엌을 이렇게 불렀다.)가 있었다. 넓었다. 부뚜막이 길게 있고 그 위로 검고 큰 가마솥과 희고 작은 알루미늄 솥이 나란히 걸렸다. 이곳의 주인은 늘 큰누님이었다. 농사철이 되면 수십 명의 밥을 하고 국을 끓였다. 남자는 그런 곳에 들어가면 안 된다고 말하면서도 밥시간에 쫓기면 가끔 아궁이에 불을 지피라고 했다. 사는 곳이 평야 지역이라 늘 짚과 보릿대가 땔감이었다. 화력이 약하고 연기도 많이 났다. 거기다 맞바람이라도 부는 날이면 불이 잘 꺼져버려 살려내려고 입김을 불다 보면 얼굴이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되었다. 누님은 조바심을 내며 생 밥 되겠다고 부지깽이를 빼앗았다.
광주로 이사하면서 정들었던 집을 팔았다. 두 번째 주인은 거기서 10여 년 살다가 부부가 모두 유명을 달리했다. 폐가로 수십 년 방치되어있다가 한양에서 귀향한 내 친구가 사들여 주인이 되었다.
집터를 지날 때마다 그때의 집을 다시 짓는다. 부엌에서 어머니가 부른다. “얼른 들어와서 밥 먹어라.” 젊은 가족들이 한상에 앉았다.
첫댓글 빈 집터를 바라보는 애잔한 눈길이 전해옵니다. 그래도 정든 집터에 친구가 살게 되다니, 참 다행스럽겠어요. 함께 한 세월이 많을 테니 나늘 이야기도 많고요.
국어 교과서에 나오는 글처럼 글이 정갈합니다. 교과서에 옛 성읍 터 설명하는 글처럼 자세하네요.
옛집을 보면 여러 감정이 교차하겠어요. 담백하게 쓰고, 교훈을 드러내지 않아도 이렇게 좋은 글이 되네요. 잘 읽었습니다.
어머니가 부르는 소리를 되뇌이며, 어린 시절운 떠올릴 수 있는 특권을 누리며 사시네요.
잘 읽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이면 한창 어린 나인인데 말하지도 않고 넘겼네요.
이제는 터만 남은 공간을 보면 여러 생각이 떠오르겠어요.
그래도 친구, 텃밭 덕분에 그 안에서 들리는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고향집이 사라진 터라 더욱 애잔하게 읽힙니다.
엄마가 밥 먹으라고 부르는 소리에 또 울컥!
아쉬운 듯 슬픈 선생님 마음이 전해지네요. 선생님 따라 골목 여행한 기분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어린 시절 추억이 담긴 집터 팔 때 서운하셨겠지만 친구분이 샀다니 그나마 다행입니다. 언제든지 가보실 수 있으니까요.
뭔가 가슴이 먹먹해 집니다. 어릴적 살았던 제 집도 상상하며 읽었답니다. 마지막 단락에 어머니의 밥상이 너무 정겹습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