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로움과 어질음
논어 옹야 펀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나옵니다. "지혜로운 자는 물을 좋아하고, 어진 자는 산을 좋아한다." 지자요수 인자요산(智者樂水 仁者樂山) "지혜로운 자는 움직이고, 어진 자는 고요하다." 지자동 인자정(智者動 仁者靜) "지혜로운 자는 즐김이 있고, 어진 자는 오래삶이 있다.". 지자락 인자수(智者樂 仁者壽)
<논어집주>에는 다음과 같은 주석이 있습니다. "지혜로운 자는 사리에 통달하고 두루 막힘이 없어 물과 같다. 그래서 물을 좋아하는 것이다. 어진 자는 의리에 편안하여 중후하니 함부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래서 산을 좋아하는 것이다."
지혜로움은 분별력을 의미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옳은 것과 그른 것, 좋은 것과 나쁜 것, 유효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분간할 줄 압니다. 그래서 순리를 따르면서도 실용적이지요. 이는 물이 아래로 흐르는 순리를 지키는 것과 같기도 하고, 담긴 용기에 따라 형태를 변화시키는 처세술이 있는 것과도 같습니다.
어질다는 말은 분별 이전에 포용한다는 뜻입니다. 이는 마치 움직이지 않고 자리를 지키는 산처럼 호불호 없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지요. 정태적이고 우뚝 솟은 모양이 성인(聖人)의 경지를 연상케 합니다.
윗 문장을 오래 음미하다 보면 지혜로움과 어질음 가운데 어질음이 더 높은 경지에 있음을 헤아릴 수 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과 같이 있으면 즐겁습니다. 현실에 적용되는 지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어진 사람과 같이 있으면 편안합니다. 어떠한 말이나 행동도 다 받아주기 때문이지요.
<논어>의 핵심 가치는 인(仁)입니다. 그런데 공자는 논어 전편을 통하여 인(仁)이 어떤 것이다라고 정확히 이야기한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인(仁)을 규정짓는 과정을 통해 공자의 사상이 발전해 왔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공자가 말한 인(仁)은 사람 간의 사랑으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주의해야 할 것은 근대적 의미의 사랑과는 좀 다르다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유교는 기본적으로 인간 평등사상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공자의 유교는 춘추시대의 혼란상 속에서 주나라 시대의 질서를 회복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시 느슨해져 가고 있던 신분제를 엄격하게 하여 각자의 신분에 어긋남 없이 행동하면 질서가 회복될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즉 유교에서 인간 간의 사랑(인<仁>)은 엄격한 신분제를 전제로 하는 사랑이지요.
그래서 인(仁)의 실제 발현은 군주에 대한 충성, 부모에 대한 효도, 형제간의 우애, 친우 간의 신뢰, 어른에 대한 공경 등으로 나타납니다.
어찌 되었거나 지자동 인자정(智者動 仁者靜)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이것저것 참견하며 정신없이 생활합니다. 하지만 어진 사람은 고요함을 유지하고 있지요. 그 정태적인 모습이 위대함의 단초가 됩니다.
무술의 고수는 함부로 주먹을 휘두르지 않습니다. 많이 아는 사람도 함부로 나서지 않지요. 그 묵직한 고요함을 닮고 싶은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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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복> 님의 글입니다.
70이 넘었는데도 아직 산과 물 사이에서 우왕좌왕하고 있습니다. 결국, 知者도 仁者도 못된다는 말이겠죠. 그저 평범한 사람인가본데, 그 평범함마저 남보다 나은 구석이 한군데도 없습니다.
하기사 곡 남보다 나을 필요도 없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