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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마16:28) |
<그 왕권>은 원어로 보면 <그 왕국, 그 나라>로 해석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다 비슷할 수 있지만 일단 왕권하면 좀 생소하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하면 <하나님 나라>입니다.
좀 더 생각해볼 것은 <그 나라>는 예수님을 소유격으로 하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는 성경 여러곳에서 언급됩니다(골1:13, 계11:15).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가 도래하는 시점입니다. 예수님이 자신의 이름으로 성령을 보내는 시점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가 시작되는 시간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말한 왕권, 주님의 나라는 곧 <아들의 성령을 통한 예수님이 통치하는 나라>라 봅니다.
그러면 여기서 여러 가지 질문들이 생길 수 있습니다.
1.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의 나라(통치)가 있었는가?
유대인들은 구약시대에 하나님의 나라가 있었다고 보았을까 하는 질문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서슴없이 <있다>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청중들 역시 아무도 반론을 제기하지 않습니다.
* ...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마21:43)
오랫동안 독점적으로 누려왔던 하나님 나라를 이제 유대인들이 빼앗긴단 이야기입니다.
빼앗긴 이유는 간단합니다.
열매를 맺지 못해서 그렇습니다(마21:41)
2. 구약시대에 하나님의 나라가 어떻게 펼쳐졌는가?
이것이 매우 중요한 질문이 됩니다. 마16:28절에서 나오는 것과 밀접하기 때문입니다.
간단하게 이야기 하면 구약시대 언약백성들에게 하나님 나라는 <아버지의 성령>에 의해
일어났습니다.
구약성도들이 아버지의 성령의 내주로 인하여 이 일이 가능한 것입니다.
이 부분은 우리 신앙의 패러다임의 전환을 요구하는 곳으로 심사숙고해야 합니다.
또한 이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구약 시대에 성령의 내주가 있었는가>라는 커다란
문제에 직면합니다.
결론은 성령이 내주 했습니다.
이 부분을 봐야 구약이 제대로 열리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 부분에 대한 연구를 많이 했습니다.
구약성도의 구원이나 신약성도의 구원의 길이 동일하기에 그렇습니다.
쉐마로 불리는 신6:4-5절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는가만 보아도 잘 보입니다.
어떻게 마음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가에 대한 답변입니다.
*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너로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너로 <생명을 얻게 하실 것> 이며(신30:6)
구약성경은 계속해서 율법을 주실 때 그것만 주신 것이 아니라 깨닫고 행할 수 있는
성령을 함께 주셨다고 말합니다.
*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내가 너희와 <언약한 말>과 <나의 영>이 <계속하여>
<너희 가운데> 머물러 있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지어다(학2:5)
위의 두 구절들만 보아도 구약성도들은 <특정한 사람만 성령을 받았다는 말이 사실이 아님>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잠깐 머물다가 떠났다는 이야기도 사실이 아닙>니다. 계속해서 머문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더 구체적인 것은 사도바울이 인용한 "너희는 하나님의 성전이라" 하는 구절이 <구약성경을 인용>했다는 것입니다
(고후6:16).
야고보 사도 역시 그렇습니다.
* 너희는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냐
(약4:5)
이 부분은 대다수의 학자들도 인정합니다.
예수님 때문에 이제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성전이 되었다고 바울은 말합니다.
옛날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성전인 것처럼 말합니다.
*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엡2:22)
중요한 것은 차이점을 잘 보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이 <아버지의 성령> 안에서 이스라엘이 이미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성전이 된 것 같이 이제는 (예수 안에서 다시 말해 그리스도의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성전이 되었다는 것 입니다.
구약성도들에 대한 표현을 보면(사실 예수님의 십자가로 인한 새언약을 맺기 전까지 즉 복음 서의 상당부분) 하나님의 나라가 임함으로 나타나는 표현들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가리라(마7:21, 12:50)
구약 이스라엘이 성령 안에서 사는 결과 나타나는 것은 <아버지의 뜻대로 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버지의 성령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제 <자신이 왕권(나라)을 가지고 온다>고 합니다. (아버지의 왕권, 나라라는 구약성경을 이해하면
예수님의 왕권이 무엇인지 보입니다)
그 시점은 잘 알다시피 부활, 승천후 아버지 보좌 우편에 앉은 때입니다.
예수님은 이제 자신이 보낸 성령 안에서 통치를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현재적 하나님 나라라고 봅니다.
현재적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을 통해 임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하늘 나라를 유업으로 받습니다.
결국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나 아들의 뜻대로 행하는 자나 한 성령안에서 이루어지는 것 입니다.
다만 다른 것은 누구의 이름으로 그 일들이 이루어지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28:18절에 나오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에서 '모든 권세' 부분 입니다.
저는 모든 권세에 대해 이렇게 생각합니다.
* 성령을 주님의 이름으로 주심(계3:1, 5:6) - 아버지의 것인데 아들에게 주신 것
* 천사들 - 아버지의 것인데 아들에게 주심(마26:53, 요18:36)
(마태는 천사를 아버지의 소유로 보고, 요한은 예수님의 종들로 표현합니다)
* 성도들
* 모든 피조물들
3. 그리스도의 왕권(나라, 왕국)
다시 마16:28절로 돌아가서 결론을 내보면 예수님이 보내신 성령을 통하여 이루어진 하나님 나라와 구약시대
아버지의 성령을 통해서 이루어진 하나님 나라의 차이가 어느 정도인가 하 는 것이 궁금할 것입니다.
한 성령님이 다스리는데 무슨 차이가 존재할까요?
저는 있다고 봅니다.
성령은 자의로 행하지 않고 보내신 자의 뜻을 행하는 것에서 제한을 받습니다(요16:13).
즉 성령은 계시된 범위 내에서 활동하시기에 구약에서는 성령을 통한 행복함과 더불어
(신33:29), 오실 메시아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습니다.
신약에서는 실체가 오심으로 인하여 더욱 완성된 계시를 보게 되었고,
그럼으로 인하여 구약에서 보기 어려웠거나 매우 드물게 나타났던 표적들이
드러났다고 봅니다.
제가 생각하는 것과 일반 학자들이 바라보는 가장 큰 시각의 차이점은
< 구약의 하나님 나라 있다는 것과 성령의 내주>입니다.
이 부분을 보게 되면 마태복음이나 야고보서의 근저를 보게 됩니다.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펼쳐지는 두 곳 성경의 바탕은 하나님나라와 성령을 모두 인식하고
있다고 보기에 이 둘을 생략하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약의 구원 즉 다른 말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신약과 동일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성령이 내주하니 성령의 열매를 맺으라는 것입니다(이사야 5장의 포도원의 노래 참고)
그러므로 사람이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행위로 심판하지만 그 행위의 근원은 성령이기 때문입니다(엡2:8-9).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더하겠느냐(마6:23)
구약백성들 가운데 성령의 빛이 있다는 것을 모두가 인정하는 것입니다.
마16:16-17절의 베드로의 신앙고백 역시 그것을 알게 하신 이는 <네 아버지>라고 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아버지의 성령>을 말합니다.
아직 주님의 성령이 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을 통해서 사람들은 그 당시 사람들이 성령이 없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합니다.
*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요7:39)
- 이 부분은 예수님이 보내실 <또 다른 보혜사>를 언급한 것입니다. 아직 영광을 받지
않았기에 즉 구속사역의 완성이 안 되었기에 이들에게 (아버지의 성령)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이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마10:20)
구약 성도들은 이 부분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마태는 유대인들이 너무도 잘 알기에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표현했고(마7:11), 이방인들에게는 구체적으로 성령 이라 말합니다(눅11:13)
그런 까닭으로 무지했던 니고데모가 혼났습니다.
왜 유대인의 선생으로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나님나라를 보고, 들어가는 것을 몰랐냐 하는 책망입니다.
4. 또 다시 돌려주는 나라(왕권)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왕권)는 <다시> 아버지께 돌려집니다.
예수께서 악한 자들을 모두 굴복시킨 후입니다.
*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고전15:24)
그 시기는 성경으로 볼 때 악인들의 심판과 함께 사탄의 불 못에 던져짐의 사건입니다(계20장).
바울은 다시 한 번 그 시기를 언급합니다.
* 그가(예수님) 모든 원수를 그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반드시 왕 노릇 하시리니(고전15:25)
지금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왕권) 입니다.
좀 어려운 부분이지만 이해가 잘 되었으면 합니다.
첫댓글 글을 올리면서 미안한 맘이 듭니다.
어려운 부분을 쉽게 올린다고 했는데
이해가 잘 될지???
이해가 잘 안된다면 전적으로 저의 실력부족(?)으로
여기시고 그냥 넘겨 주시기 바랍니다.
어느 아는 목사님이 질문해와서
메일로 답변을 보내다가
여기다고 올려 보는 것이 좋을듯 해서
올렸습니다.
말씀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 드립니다!
그런데 말씀 중에 "죽기 전에"라는 말을 지금 우리에게도 똑 같이 적용 해도 되는지요?
좀 어려운 질문 같은데요?
이렇게 생각하면 좋을 듯 합니다.
<여기에 서 있는 자들중>에서 <죽기 전에> 이렇게 표현되었기에
예수님과 당대의 사람들로 보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왕권)>가 바로 자신의 이름으로 보낸 성령
<아들의 영에 의해 통치되는 나라>이기에 오순절 성령강림의 시점으로 봐야 할 것입니다.
아버지의 왕권(나라)가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왕권)로 바뀌는 시점이기에 단 한번의 매우 중요한
시점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가 <또 다시> 아버지께 돌려드리는 시점도 있습니다.
*... 그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때라(고전15:24)
지금 우리 성도들이 누리고 있는 하나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왕권)가 아닌지요?
"하나님 나라는 여기 있다 저기 있다 못 하리니 하나님 나라는 너희 가운데 있다"고 하신 말씀에 따라
우리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 안에 있는것 아닌지요?
정확하게 보셨습니다
우리가 매일매일 순간순간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왕권) 안에 있는지 시험해 보고 확인하고 확증해야 하는것 아닌지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역사속으로 재림하시어 세상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치시겠지요?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니,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마라나타!!
네, 성령을 따라 열매맺는 삶이 행복이고
그나라 백성의 모습이라 여깁니다.
감사합니다! 진실로 많은 도움이 됩니다!
<여기 서 있는 사람중에 죽기 전에> 라는 말 때문에 혼동을 느끼는 분들이 혹 있을까 해서 한 마디 합니다.
예수님이 하셨던 이 말은 곧 <제자들>에게 하신 것으로(16:24), 제자중 누군가는 예수님이 진짜 메시아인지
의심하고 있었습니다. 가룟 유다입니다.
유일하게 오순절 성령강림을 보지 못한 자가 가룟 유다입니다.
이 사건과 오순절 성령강림의 사건은 그리 길지 않았습니다.
결국 이 말씀은 의심하는 유다를 다시금 돌이키기 위해
덧붙인 말이 아닌가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