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 협정의 역사
한미원자력협정은 핵의 상업적 이용에 관한 한, 미 양국의 협정이다. 우리나라가 미국으로부터 핵발전소 설비, 핵연료, 관련 기술을 도입하면서 미국 정부의 요구에 따라 체결하고 있는 것이다. 한미원자력협정은 1956년에 처음 체결되었고, 1972년 핵발전소 도입을 계기로 새로운 협정으로 대체되어 1974년부터 효력을 발생한 뒤 42년간 유지되어 오다가 지난 4월 22일 한미원자력협정 개정 협상이 타결되었다.
정부는 2010년 6월부터 개정 협상을 해 왔는데, 이 과정에서 특히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파이로프로세싱)의 동의 문제로 난항을 겪었다. 미국은 외국의 핵산업을 원조해주는 대신에 해당 국가들에게 미국의 ‘동의가 없는’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의 금지를 요구하고 있다.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는 핵무기 제조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천연 우라늄235를 90퍼센트 이상 농축하거나, 사용후핵연료의 재처리에서 나오는 플루토늄239을 이용하여 핵무기를 만들 수 있다. 덧붙이면, 전자의 우라늄 농축 핵무기(Little Boy)가 히로시마에 투하되었고, 후자의 플로토늄 핵무기(Fat boy)는 나가사키에 투하되었다. 특히 핵발전소에서 반드시 나오는 사용후핵연료는 핵무기의 원료가 될 본질적인 위험성을 안고 있다.
한국 언론과 미국 언론의 상반된 보도
대부분의 언론은 한미원자력협정의 개정 결과, 한국에도 우라늄 저농축과 재처리의 길이 열렸고, 한국 핵발전소 수출에 큰 호재가 될 것이라고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최근 미국이 아랍에미레이트(UAE) 및 타이완 등에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를 명시적으로 금지하는 ‘골드 스탠더드’조항을 적용한 것과는 달리, 한국은 이 조항의 적용에서 배제되어 이젠 재처리의 길이 열렸다고 홍보하였다.
그러나 개정 한미원자력협정 전문은 공개되지 않아 정확한 내용을 확인할 수가 없고, 아직 미국 의회의 비준 절차가 남아 있으며 가서명만 한 상태이다. 미국 국무부는 4월 22일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협상이 타결된 데 대해 '핵비확산 정책'을 고수했다고 평가했고, 뉴욕타임스는 “지속적으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핵 농축과 재처리 권리를 불허한다”고 보도하였다. 한국 언론의 보도와는 상반된 내용이다. 개정 한미원자력협정이 국제정치적으로 대등하고 평등한 내용인가에 대해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보도도 있으나, 필자는 개정협정을 통해 정부가 추진하려는 사용후핵연료의 파이로프로세싱에 관한 위험성과 허구성에 대하여 지적하고자 한다.
한미원자력협정에 대한 우리나라의 비밀주의
한미원자력협정의 의미와 실체에 대하여 얼마나 국민들에게 정확한 정보와 토론의 기회가 주어졌던가? 한미원자력협정은 국제협정으로서 상하원의 비준을 모두 받아야 하는 미국처럼 우리나라에서도 국회의 비준을 받아야 할 것이다. 협정문 전문을 공개하여야 하며, 게다가핵연료주기의 완성에는 막대한 예산이 소요될 수 있고 위험성도 크며 에너지정책에도 중대한 영향을 끼치는 사안이니 만큼 국민적 논의 과정도 필수적이다. 그런데 정부는 개정 협정이 국회 비준을 거칠 필요도 없이 법제처 심사와 국무회의를 거쳐 대통령이 재가하면 국내 절차가 끝난다는 입장이다. 한마디로 비밀주의다.
정부는 “사용후핵연료를 ‘재활용’하고 폐기물의 부피를 줄일 수 있는 파이로프로세싱(Pyro-processing)의 한미 간 공동연구와 협력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는 점을 개정협정의 주요 성과로 들었다. 파이로프로세싱의 전반부 공정의 일부만을 국내 연구시설에서 자유롭게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국이 동의를 받은 절단-전해환원작업은 플루토늄을 직접 다루지 못하지만, 핵비확산을 강조하는 미국 의회가 심의과정에서 동의할지 여부는 미지수다.
파이로프로세싱이 지닌 의미
파이로프로세싱은 사용후핵연료를 건식 재처리하는 것으로서, 정부는 사용후핵연료의 방사능 독성도 줄이고 이 다음에 소듐냉각고속로(SFR)가 개발되면 연료로 ‘재활용’ 하겠다는 것이 파이로프로세싱 연구의 목표라고 한다. 파이로프로세싱에 대해서는 ‘재처리기술(핵폭탄 제조 가능)’인가 ‘재활용기술(핵폭탄 제조 불가능)’인가의 논쟁이 있다. 미국은 2007년까지는 이 기술을 재활용기술로 판단하였으나 2009년부터 ‘재처리기술’로 판단하기 시작하였다. 즉 미국은 파이로프로세싱 역시 플루토늄 추출 기술, 즉 재처리 기술로 보고 있다. 미국 에너지부 산하의 로스알라모스 등 7개 국립 핵연구소가 2009년 7월에 공동 발표한 보고서는 파이로프로세싱 역시 습식재처리인 퓨렉스(PUREX)방식과 마찬가지로 핵무기 확산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 이 보고서는 미국 에너지부 승인 없이 발표될 수 없다는 점에서 사실상 미국 정부의 공식 입장으로 볼 수 있다.
찰스 퍼거슨 미국과학자협회(FAS) 회장은 지난 4월27일 한국이 핵폭탄을 제조하는 데 필요한 핵물질, 핵탄두 설계 및 운반체계를 쉽게 구축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미 여러 개의 핵폭탄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것으로 분석하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특히 한국이 중수로인 월성 1-4호기에서 매년 416개의 핵폭탄을 만들 수 있는 준 무기급 플루토늄 2,500킬로그램을 생산할 수 있고, 부족한 연료공급 능력을 고려하더라도 최저 150킬로그램(핵폭탄 25-50개)에서 최고 500킬로그램(100개)의 핵폭탄을 만들 수 있다고 보았다. 이 보고서는 한국의 연구용 원자로인 '하나로'(HANARO)도 매년 11킬로그램의 무기급 플루토늄을 만들 수 있다고 보고 한국과 미국이 공동으로 연구 중인 '파이로프로세싱' 기술이 핵무기 제조에 전용될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사용후핵연료 재활용은 허구
정부는 사용후핵연료를 파이로프로세싱을 하면 고속로의 연료로써 94-96퍼센트 재활용할 수 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재활용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일부 언론이 사용후핵연료 재활용을 연탄재에서 미처 타지 않은 부분만 골라 새 연탄을 만드는 것과 같다고 주장하는데 이것은 거짓말이다. 왜냐하면 사용후핵연료의 ‘타지 않은 우라늄(감손우라늄)’에는 대단히 많은 불순물(죽음의 재 등)들이 섞여 있다. 그런데 천연우라늄을 농축하여 핵연료를 만드는 과정에서 나오는 ‘열화우라늄’은 불순물이 없는 깨끗한 것이며, 더구나 사용후핵연료에서 나오는 감손우라늄에 비하여 약 7.8배나 많으며 재처리비용도 전혀 들지 않는다. 이런 상황은 핵발전소가 우라늄 농축을 한 핵연료를 사용하는 한 계속된다.
게다가 정부는 ‘사용후핵연료 재활용’을 파이로프로세싱 실시의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정작 고리, 한울, 한빛 등의 경수로형 핵발전소(19기) 전체에서 나오는 사용후핵연료량에 버금가는 사용후핵연료량을 중수로형 핵발전소(월성1-4호기) 4기에서 배출하고 있지만 이는 파이로프로세싱을 할 수 없다는 점에서 보더라도 ‘재활용’을 한다는 주장은 허구임을 알 수 있다.
사용후핵연료 파이로프로세싱의 진실... 핵폐기물이 늘어난다
중수로에서 나오는 플루토늄 순도가 높은 사용후핵연료는 핵무기 제조가능성 때문에 재처리든 재활용이든 캐나다의 동의를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 사용후핵연료를 파이로프로세싱하면 부피는 20분의 1로 줄어든다고 하지만, 건식재처리과정(재처리공장)에서 각종 장비 등이 오염되고 다른 핵폐기물들이 늘어난다. 미국 에너지부의 2008년 보고서는 고준위 핵폐기물은 25퍼센트 줄지만 다른 폐기물이 늘어 전체 핵폐기물은 7배로 늘어난다고 밝혔다. 또한 사용후핵연료의 부피를 축소한다는 주장도 100퍼센트 추출 및 소듐냉각고속로의 이용이라는 전제조건에서만 성립할 수 있는데 이 전제조건의 실현가능성이 거의 없다.
재처리비용이 직접처분을 할 때 보다 훨씬 높은데, 일본정부의 비공개자료에 따르면 약 4배이고 2011년 11월 일본원자력위원회는 약 2배라고 밝혔다. 일본의 롯카쇼무라 재처리공장은 공장의 건설비용이 당초 계획이 7000억 엔이었으나 나중에는 그 3배가 넘는 2조 4000억 엔으로 늘어났는데, 이는 단일 공장으로서는 세계 최고액의 건설비이다. 1997년 12월의 가동예정이었던 것이 21회 이상 연기되었고, 연기되고 있는 와중에도 공장 관리비용이 매년 1100억 엔이 들어가고 있다. 또 재처리를 해도 최종처분장이 필요하다.
파이로프로세싱은 아직도 실험실의 연구단계에 있는데, 파이로프로세싱이 완성되어도 제조된 핵연료은 경수로의 핵연료로는 사용할 수 없으므로 소듐냉각고속로의 완성이 불가결하다. 고속로가 실현 가능해야 ‘사용후핵연료의 재활용’을 시도할 수 있는데 고속로는 세계적으로 성공한 사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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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의 몬주 원자력발전소.(사진 출처 = en.wikipedia.org) |
슈퍼피닉스, 몬주... 불가능을 바라는 이름
프랑스의 고속실증로 슈퍼피닉스는 건설비가 1994년 기준으로 약 10조원이나 되었지만 1998년에 가동을 중지하고 포기하였다. 일본의 고속원형로 몬주는 건설비가 설계 당시 360억 엔에서 1994년 4000억 엔으로 약 11배 늘어났다. 1995년 나트륨폭발·화재사고가 난 후 현재 정지되어 있는데 일본 원자력규제위원회는 2013년 5월 몬쥬의 무기한 운전 금지를 명령하였다.
일본정부의 공식자료에 따르면, 2011년 3월 말 현재 합계 약 18조원의 사업비가 투입되었고, 가동 중지된 상태인데도 매년 약 200억 엔의 예산이 투입된다고 한다. 피닉스는 불사조, 몬주는 문수보살을 의미하는데, 핵산업계가 가능하지 않은 것을 염원하기 때문에 초월적인 존재에 기대려하는 정서가 담겨 있다.
게다가 냉각재인 나트륨으로 인한 폭발, 화재사고가 없었던 고속로가 없을 지경이다. 또한, 핵무기용 슈퍼급 플루토늄을 생산하므로 핵 비확산에도 역행한다.
결국, 파이로프로세싱을 추진하겠다는 것은 어떤 미사여구에도 불구하고 국민을 속이는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여기에는 핵무기를 보유하고 싶어 하는 일부 정치세력의 심리를 이용하고, 과학을 가장하고 비밀주의를 동원하여 국민들의 혈세를 빼 먹으려는 핵산업계의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
김영희 변호사 재벌개혁과 소액주주운동을 주로 하는 경제개혁연대 부소장이며 4대강조사위원회 활동을 하고 있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법학교수, 변호사 등으로 구성된 탈핵법률가모임 해바라기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진행한 주요 소송으로 새만금소송, 4대강소송, 제일모직 주주대표소송, 현대차 주주대표소송, 신고리 5,6호기 관련 소송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