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계가 세 청년을 향한 관심으로 뜨겁다. 2년에 걸쳐 농업 세계일주를 한 ‘비상식량’ 팀의 유지황(31)·김하석(30)·권두현(30)씨가 그 주인공들. 이들은 12개국 35개 농장을 누비면서 “농업의 미래와 가능성을 확인했다”고 입을 모았다. 셋 모두가 농업에 뛰어든 것도 여행에서 얻은 자신감 덕분이란다. 최근 세사람의 농업 세계일주를 다룬 <파밍보이즈>란 책과 다큐멘터리 영화는 농업계 밖에서까지 화제다.
이들의 여행은 막연한 질문에서 시작됐다. ‘도대체 외국의 농부들은 어떻게 농사를 짓고 있을까?’
학교 선후배였던 유지황·김하석씨가 먼저 일본을 거쳐 호주로 떠났고, 지인의 소개로 권두현씨가 중간에 합류했다. 호주에서 세사람은 6개월 동안 하루 네댓시간 만 잘 만큼 닥치는 대로 일해 여행자금을 모았다. 본격적인 여행에 나서서는 호주는 물론이고 동남아시아와 유럽의 농업까지 두루 경험했다. 많은 농민을 만나 그들의 농법과 철학을 배우고, 생산·유통이 어떻게 이뤄지는지도 살펴봤다.
값진 경험은 각자가 농업에서 그려나가는 청사진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팀의 맏형인 유지황씨(경남 진주시)는 청년의 농촌정착에 관심이 많다. 지난해부터 귀농청년을 위한 이동식 목조주택을 만드는 ‘코부기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유다. 20㎡(6평) 크기의 주택을 저렴하게 임대해 귀농청년이 농지 근처에서 거주할 수 있도록 돕는 것. 장기적으로는 농민과 소비자가 편히 교류하는 농장을 꾸리는 ‘농장 디자인’까지 나아가는 게 목표다.
“프랑스에서는 시민들이 나서서 귀농청년에게 주택부터 농지까지 지원해주고 있더라고요. 가까운 일본만 보더라도 농촌에서 살겠다고 하면 연간 1200만원씩 5년에 걸쳐 아무것도 묻지 않고 지원하잖아요. 우린 얼마 안되는 지원금만 가지고 주택도 농지도 청년이 직접 마련해야 하는데, 고등학교나 대학을 갓 졸업한 20대에게 그게 가능할 리 없죠.”
아이쿱생협 매장(서울 송파구)을 일터로 삼은 김하석씨는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가교를 꿈꾼다. 생산자에겐 소비자가 어떤 농산물을 원하는지 알리고, 소비자에겐 밥상에 오르는 농산물이 어떻게 길러지는지 이해하도록 돕고 싶단다.
“농업선진국에서는 지역 장터를 중심으로 생산자와 소비자가 소통하더라고요. 세계 3대 공동체라 일컬어지는 호주의 ‘크리스털 워터스’는 정말 대단했어요. 매주 토요일 열리는 시장에 생산자와 인근 도시의 소비자가 엄청나게 모여요. 교류가 활발하니까 농민이 흘리는 땀의 가치도 자연스레 더 인정받게 되고, 지역 전체가 농촌과 농민을 지원하는 ‘공동체지원농업’이 가능해지더군요.”
고향인 경남 산청군에서 딸기농사를 짓는 권두현씨도 계획이 구체적이다. 농업 세계일주에서 경험한 유기농을 실천해 품질이 뛰어난 딸기를 기르는 일은 물론이고, 네덜란드의 ‘케어팜’처럼 지친 도시민을 농업으로 치유하는 농장을 만들어나가겠단다.
“네덜란드에서는 소비자가 직접 농장으로 찾아와 수확을 해보는 체험이 일상적으로 이뤄지더라고요. 사람으로 북적이는 농장, 체험거리가 많은 농장을 꾸려야죠. 저는 부모님이 닦아놓으신 기반 위에서 농사를 시작했는데, 그조차 없는 청년들에게 농사를 배울 기회도 주고 싶어요.”
세 사람의 공동 목표도 있다. 농업에서 미래를 찾는 청년들이 모여 함께 목소리를 내는 인적 네트워크를 만드는 일이다. 청년농부들이 힘을 모으면 우리 농업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고 믿는다. 다큐멘터리 영화 <파밍보이즈>가 먼저 화제가 됐지만 유지황씨가 굳이 같은 제목의 책을 펴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세 청년이 농업 세계일주에서 보고 배운 것을 차곡차곡 정리해 농업을 꿈꾸는 청년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서다. 나머지 두 친구 역시“농업에 뜻이 있는 청년들이 꼭 읽어봤으면 좋겠다”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다음번 책은 몇년 뒤에 함께 쓸 계획이다. ‘비상식량’ 팀이 각자의 자리에서 제 역할을 다하면서 얻은 경험을 모아 전해주고 싶단다.
“저희는 농업 세계일주 덕분에 화제가 됐을 뿐 수면 아래에서 농업을 준비하는 청년들이 정말 많습니다. 이들에게 용기와 희망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정책이 더 많이 만들어졌으면 좋겠어요. 청년으로 바글대는 농촌과 농업, 생각만 해도 흥미진진하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