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산책>
유방이 인재를 얻는 법
상대방에 존중받고 있다’ 느낌 심어 장량·소하·한신 중용…천하를 얻다
유방의 세 가지 장점
1. 인재를 보는 안목이 있다
2. 늘 들을 준비가 돼 있다
3. 간언을 잘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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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나긴 중국 역사를 살펴보면 큰 능력을 지니고 있었음에도 처세에 실패해 역사적 패배자요, 실패한 리더십의 전형으로 남은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반대로 특출한 능력이 없었음에도 처세에 능란해 최후의 승리를 거머쥔 자도 많습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한 고조 유방이었는데요. 라이벌 항우보다 특별히 나을 바 없었던 그가 항우를 물리치고 황제가 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명망 있는 가문 출신의 항우와 달리 농민 출신의 유방은 술과 여색을 좋아하던 건달이었습니다. 사마천은 ‘고조본기(高祖本紀)’에서 유방이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있던 신령한 기운으로 젊은이들의 우두머리가 돼 가는 과정을 말하고 있는데요. 유방의 어머니인 유온은 교룡(蛟龍)이 몸 위에 있는 꿈을 꾸고 유방을 낳았는데 그는 용을 닮은 외모에 왼쪽 넓적다리에 검은 점이 일흔두 개 있었다고 합니다. 흔한 영웅 전설의 느낌이지요. 변방 출신의 비문화적 야성미를 지녔던 진시황과 사나이다운 호걸의 풍모를 지녔던 항우와 달리 유방은 내세울 게 없었습니다. 오죽하면 사마천도 기이한 이야기로밖에 그의 남다른 풍모를 보일 수 없었겠습니까.
하지만 결국 유방은 당시 절대 우위였던 라이벌 항우를 물리치고 황제의 자리에 앉습니다. 유방은 그 스스로 자신이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군막 속에서 계책을 짜내 천 리 밖에서 승리를 결판내는 것은 내가 장량만 못하오. 백성들을 위로하며 양식을 공급하고 운송도로를 끊어지지 않게 하는 것은 내가 소하만 못하오. 백만 대군을 통솔해 싸우면 어김없이 이기고 공격하면 어김없이 빼앗는 것은 내가 한신만 못하오. 내가 천하를 얻을 수 있었던 까닭은 이 빼어난 인재들을 임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오. 항우는 범증 한 사람만 있었으면서도 그를 중용하지 않았으니 이것이 그가 나에게 사로잡힌 까닭이오.”
유방의 이 말은 그가 가진 능력보다 사람을 볼 줄 아는 능력이 있어 천하를 손에 넣었다는 자기 고백입니다. 그의 말처럼 그의 성공에는 장량, 소하, 한신과 같은 인재가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유방은 어떻게 인재들을 곁에 둘 수 있었을까요?
그에게 인재가 따랐던 건 그의 세 가지 장점 때문이었는데요. 먼저 그는 능력 있는 사람을 적재적소에 쓰는 사람이었습니다. 즉 인재를 알아보는 눈이 있었다는 겁니다. 그의 말에서도 드러나듯이 유방은 장량과 소하, 한신의 장점을 잘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장량을 작전참모로, 소하를 행정참모로, 한신을 장군으로 두어 그들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 있도록 했지요.
또한 유방은 늘 들을 준비가 돼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선견지명을 지닌 책사 장량을 곁에 두게 된 이야기입니다. ‘태공병법(太公兵法)’을 얻은 장량은 자기 뜻을 받아줄 왕을 찾고 있었습니다. 장량은 많은 이에게 태공병법으로 유세했으나 아무도 그의 말을 이해하거나 받아주지 않았는데요. 어느 날 길에서 만난 유방에게 유세하자 유방만은 그의 말을 잘 듣고 그를 알아보았습니다. 결국, 장량은 “패공(유방)은 아마도 하늘로부터 재능을 이어받았을 것”이라며 자신을 알아준 유방을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태공병법을 알아본 유방의 현명함도 있었지만, 먼저 장량의 말을 잘 들어준 유방의 성품도 한몫한 것이죠. 이렇게 그는 훗날 여태후와 함께 한신의 반란을 잠재우는 데도 결정적인 기여를 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유방은 자신을 내려놓고 간언을 잘 받아들였습니다. 한신이 건방진 말로 자신을 업신여기자 그를 멀리하려 했다가 소하의 충언을 듣고 다시 곁에 둔 이야기는 이미 다 알고 계실 텐데요. 소하는 말합니다.
“왕께서 계속 한중의 왕으로 만족하신다면, 한신을 문제 삼을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천하를 놓고 다투려고 하신다면, 한신이 꼭 필요합니다.”
그리고 덧붙이지요. 그를 일개 장수가 아닌 대장으로 삼아야 붙잡아 둘 수 있다고 말입니다. 도망갔던 한신을 다시 데려오면서 정중히 모셔 대장으로 삼기까지 하는 건 왕의 자존심으로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유방은 소하의 말을 따라 한신을 대장으로 임명했지요. 사마천은 한신이 대장에 임명되는 날 모든 장수가 다 놀랐다고 기록하고 있는데요. 결국, 한신은 유방의 천하통일에 큰 공을 세우지요.
또 이런 일도 있습니다. 항우보다 먼저 진나라 수도 함양에 들어선 유방은 유혹에 흔들리게 됩니다. 투항해 온 진나라 왕 자영을 죽이고 여느 승전 장수들처럼 그 궁전에 살며 도성의 여자와 재물을 모두 차지하라는 아부들이 흘러나왔습니다. 번쾌는 유방에게 궁 밖으로 나갈 것을 간언했으나 이미 눈이 먼 유방은 들으려 하지 않았지요. 그때 번쾌의 말을 거들어 장량이 나섰습니다.
“충성스러운 말은 귀에 거슬리지만 행동하는 데는 이롭고, 독한 약은 입에 쓰지만 병에 이롭다고 합니다.”
그제야 유방은 마음을 추스르고 번쾌와 장량의 진언을 받아들여 진나라의 보물과 재화 창고를 그대로 봉하고 회군해 돌아왔습니다. 덕분에 진나라 사람들의 마음마저 사로잡을 수 있었지요.
한 시대를 풍미한 뛰어난 최고의 리더들에게는 자기만의 인재 관리법이 있기 마련입니다. 유방이 사람을 끌어들일 수 있었던 가장 큰 장점은 상대로 하여금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을 들게 하는 인간적 면모였습니다. 결국, 인재는 자신을 알아주고 인정해주는 이에게 마음을 바치는 법이지요. 항우의 패배와 유방의 승리를 기억하시고, 좋은 인재들을 곁에 두는 리더가 되시길 바랍니다.
김 원 중 단국대학교 교수·사기 완역자
추억의 영화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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