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양빛 물들어가는 무등산
개미새끼 한마리 없었지. 나무 사이에 숨은 듯 텐트 한동 있었고.
우린, 따스히 햇빛 비추는 화장실 가까운 곳에 텐트 치고 잠깐 오수를 즐겼어.
그 무렵 우리는 둘 다 감기가 만창이었거든. 지칠대로 지쳐 있었고.
노숙자들이 왜 벌건 대낮 햇빛 아래 늘어지게 자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어.
밤이면 온도가 급강하하여 지랄맞게 추웠거든.
9월 중순 들어서면서부터는 일교차가 장난 아니게 벌어지드라구.
더우기 부실한 싸구려 9,900원 짜리 중국산 텐트잖아.
그 얄팍한 텐트와 소풍용 은박지 깔개 하나, 얇은 여름용 침낭 2개로 체감 온도
10도 이하의 기온을 버티고 다녔으니~
뼛속까지 파고드는 그 추위는 정말 대단했지.
아무튼 날이 어둑어둑해져서야 캠핑장에 들어온 승용차 두대.
우리 텐트 저만치에 텐트 두동 치더니 깜빡이는 불빛 아래 조용한 만찬을 즐기더라구.
우리는 추위와 싸우며 텐트 속에 웅크리고 자다가 그 젊은 친구들이 정성스럽게 익혀온
삼겹살과 햄버거, 쌈장까지 고루 갖춰 갖다주는 바람에 자다가 떡 얻어 먹었지.
그 친구들이 도착하자 산적이 가서 삼뽀냐 한곡 불어주고 왔었거든.
암튼, 내장사에서 추위와 싸우며 밤을 밝히고 우린 또 씩씩하게 일어났지.
차를 얻어타고 해발 450m 고지의 내장사 단풍고개를 굽이굽이 돌아 복흥에 내렸는데
그곳이 또 교통 사각지대일줄이야.
순창으로 튀려해도 서너시간 뒤에야 버스가 오고, 담양으로 튀려해도 역시나 일세.
게다가 지나다니는 차량마저 뜸하니 이거야 원~
삼거리에서 1시간 가까이 팬플룻 불며 대기한 뒤에서야 겨우 1톤 트럭 얻어타고
담양 죽녹원 도착.
죽녹원 정문 앞 연주, 그곳에 지수아빠 도착, 오리 전골 점심 사주며 배불리 먹여주시고
수업 시간이 뽀짝뽀짝 다가오는데도 우릴 곡성까지 태워다주고 가셨지.
둘 다 도저히 야영을 못하겠더라구.
그동안의 누적된 피로와 만창인 감기로 인해 컨디션이 지랄 같았거든.
울 산적, 열심히 어딘가 수소문하더니 K교장 선생님 별장에 유숙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고
담양에서 곡성으로 간 거였어.
우리는 그 아담한, 욕심없는 무명 스님의 토굴 같은 황토방에 불을 지폈지.
먹을 거라곤 쌀도 떨어져 라면 1개가 전부.
잊지 않고 챙겨간 소주 1병 나눠 먹고 우리는 그 저녁 노을이 멋들어지게 물들어가는
사리마을 일우솔방에서 정말 편안히 잠을 잤어.
'달빛 아래 마음을 내려놓고 쉬는 방' 이라는 문구가 상량에 쓰인 자그만 황토방.
나는 그 방에서 무전여행 떠난 이래 제일 편한 단잠을 잤지.
어쨌건, 아무리 감기 만창이라도 우린 아침 일찍 일어나는 걸 포기해본 적이 없어.
날이 바뀌면 어김없이 일찍 일어나 그 자리를 떴지.
우리가 머물던 자리는 늘 깨끗이 치우고 정리 정돈 해주며.
기분좋은 미풍은 머문 흔적을 남기지 않잖아.
우리도 미풍처럼~ 늘 그렇게~
그렇게하여 여차저차 광주 광천 터미널에 도착한 우리.
무전 여행의 구걸 연주 마지막을 그곳에서 하기로 했거든.
터미널 승차장 횡단보도 앞에서의 연주, 밀짚모자 앞에 놓고 길바닥에 퍼질러 앉아 있는데
어떤 신사분이 나를 보더니, "여기서도 뵙네요~" 하며 천원짜리 한장을 넣어주고 가시더라구.
봤더니, 금산 인삼 축제장에서 봤던 분.
사람의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란 참으로 묘하다는 생각이 들었지.
약속한 것도 아닌데 그렇게 딱 마주치잖아.
그래서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다' 라는 속담이 생겼나봐.
그러니, 한 생 살면서 원수 지지 말어~ 좋게들 살고~ 장학관님처럼~
그 마지막 날까지도 우리에게 어떻게든 도움을 주려고 애 쓰셨지.
장학사님까지 보내주셔서 점심 사먹여주시며.
우리의 여행 마지막 밤을 보내게 될 한천 휴양림 가까운 곳까지 안내해주시며.
일정 빠듯이 계속되는 강연으로 식사도 거르며 목이 쉬었는데도.
나는 그분의 은혜를 잊지 못할거야.
반면, 냉소적인 사람들은 비방과 비판만 일삼았지.
여행 도중, 동전 한푼 주지도 않으면서 우릴 험담하던 어느 재래시장에서의
못난 할아버지가 생각나는군. 할 일 없이 미친짓 하고 다닌다고~
하지만 우리는 할일이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지.
여행에 미쳐 감기까지 걸려가며 미친짓 하고 있기는 하지만~
하지만, 세상은 미친자에게서 뜻하지 않은 구원을 얻기도 해.
물리나 의학 외 많은 분야에서.
그래서 문명은 발달하는거고 인류는 진화해가곤 하지.
어쨌든 우리는 귀가하기 전 최종적으로 들른 곳, 화순 읍내 5일장에서 화순 자애원
사무국장님께 우리 수중에 고스란히 보관되고 있던 사십일만원을 전해드렸어.
추석자금으로 쓰시라고.
MBC 금요 와이드팀 이하 장학관님, 큰스님, 원교수님, 그리고 수많은 분들이
십시일반 보태주셨던 여비.
심지어 휴가 나온 앳된 군인과 코흘리개 초딩생들이 보태주던 돈.
그래서 우리가 굶으면서도 쓰지 못하던 귀하고 소중한 돈.
표면상 기부자는 울 산적님이지만 숨은 기부자는 그분들이었노라고 나는 당당히
말하겠어.
이상스럽게 우리는 가는 곳마다 불교색 짙은 분들을 많이 만나게 됐는데 그 또한
생과 생 사이의 보이지않는 연결고리라는 생각도 들었지.
이 세상은 뭔가 얻고 이루려 문을 두드리는 자에게 승리와 성공과 깨달음을 안겨주지.
여행 동안 느끼고 배우고 깨우치고 깨달았던 점들을 나는 마음 속 한켠에 고이고이
담아 두었어.
언젠가는 그 깨우침이 나와 가족, 주변인, 나아가 불특정 다수에게 도움이 될 날이
있을 거라고. 현 생이 아니면 다음 생에라도.
나는 진화해가는 영혼이거든.
어쨌건, 석양빛 물들어가는 무등산 아래 우리집에 무사히 도착함에 깊이 감사드리구먼.
모든 분들께 너무 고마웠노라 엎드려 큰절 올리며...
독자들께 무전여행기 읽어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도 덧붙이며....
2012.11.11. 아낙네(
http://산적소굴.kr )
첫댓글 수고 하셨슴니다. 즐거운 나날이 쭉~~이어지길 바람니다.
여여로움속에 진실이 흐르고 고생을 즐길줄 아는 지혜로움에는 자신의 이익에 앞서 추운곳에 불을 지필줄 아시는 기부하는 선한마음 .그래서 두분 늘 건강과 행복 함게 한분입니다.
산적님, 아낙네님, 바람처럼 떠돈 길을 글로라도 따라다니다 보니 그새 종착점이네요. 즐거운 고생길 이야기 잘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