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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형식과 리듬 1 / 이종수 시인
마르셀 뒤샹이 1917년 뉴욕 앙데팡당전에 출품한 ‘샘’이다. 유약 처리된 변기에 뉴욕의 화장실용품 전문제조업자인 ‘리차드 머트’의 이름을 딴 "R MUTT" 란 사인이 있을 뿐이다. 흔히 보는 남자 소변기일 뿐이다. 이 작품은 예술을 모독한다며 전시회 장소에서 쫓겨났을 정도로 기성 미술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뒤샹은 현대미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다다이즘의 대표 작가이기도 했는데 그에게 예술의 본질은 기술이 아니라 선택이라는 정신적 행위였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거부한 미국에게 보내는 공개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6달러라는 참가비를 낸 모든 화가는 작품을 전시할 권리를 갖게 되는 것 같다. 리처드 머트씨는 작품 <샘물>을 출품하였는데 아무런 거론도 없이 그의 출품작은 종적을 감추었고 전시에서 제외되었다. 머트씨의 샘을 거부한 것은 어떤 근거에 의한 것인가?
(1) 혹자는 그것이 부도덕하고 상스럽다고 말한다.
(2) 혹자는 그것이 단지 화장실용구의 모사품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머트씨의 <샘>은 부도덕하지 않다. 그것은 우리가 매일 화장실용구 상점의 진열장에서 볼 수 있는 부품일 따름이다. 머트씨가 그것을 직접 자기 손으로 제작했는가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그는 그것을 선택했다. 그는 평범한 생활용품을 사용하여 새로운 이름과 새로운 관점 아래, 그것이 갖고 있던 실용적 의미가 사라지도록 그것을 배치했다. 이리하여 그는 이 소재의 새로운 개념을 창출해냈다. 화장실용구 설비품을 모사했다고 운운하는 것은 부당하다. 미국이 만들어 낸 유일한 예술품은 바로 이 화장실용구들과 교량들뿐이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은 피카소의 <황소>란 작품에서도 유용하게 쓰인다. 형식이 구애되지 않고 새로운 쓰임새와 함께 고정된 관념을 깨는 것이야말로 예술의 발전을 끌어왔기 때문이다.
시에 걸맞는 형식이란 어떤 것인가? 형식이 시를 완성한다? 정형과 자유? 저마다 그 시대의 산물이었다가 바뀔 만 한 때 새로운 그릇처럼 바뀌어 온 내용을 완성하는 틀? 물을 담는 그릇에 따라서 모양은 바뀌지만 정작 바뀌지 않는 것처럼 무엇을 담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 무엇보다 간결한 배치로 대상과의 합일을 이루려는 것이 형식이라면 옹기장이나 도공처럼 마지막까지 공력을 다 해야 할 것이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쓰임새를 강조한 것이 나올 수 있고 기술과 예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왔던 것을 생각해 보라.
거슬러 올라가 칠언시, 오언시로 대표되는 형식에 내용을 담았던 때나 걷잡을 수 없이 터져 나오는 이야기를 자유시와 실험시에 담아내는 것 모두가 읽어냄으로써 내용과 함께 시인의 정신을 이해하는 간결한 배치여야 한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내 이 세상에 난 지 삼십 년 그 동안에
헤매어 돌기 천만리로 놀았다
강으로 나갔더니 푸른 풀 우거지고
국경에 이르매 붉은 티끌 아득했다
헛되이 약 만들어 신선도 구해 보고
부질없이 시도 짓고 책도 읽었다
이제 비로소 좋이 한산으로 돌아와
개울을 베고 누워 귀를 씻노라
出生三十年 常遊千萬里
行江靑草合 入塞江塵起
鍊藥空求仙 讀書兼詠史
今日歸寒山 枕流兼洗耳
- <寒山詩 281>
스스로 살아온 날을 되돌아보며 이상향인 寒山에 돌아와 누운 시인의 마음은 오늘날에도 비슷하게 이어지고 있다. 어떤 틀에 담겨있느냐일 뿐 먼지와 티끌세상을 겪어내고 귀거래한 적요를 드러내고 있다. 여기서 한산시는 중국의 전설적인 은자(隱者)가 천태산의 나무와 바위에 써놓은 시를 편집한 것이라 전해지는 시집을 말한다. 대부분 자연과 함께하는 즐거움, 세상과 승려에 대한 비판, 불교적인 교훈시, 도교에 대한 비판, 여성의 변덕을 노래한 시들로 허망한 삶을 깨우치고 진정한 도를 구하는 주제를 담고 있다. 후대에 편집한 시집이라 저자가 누구인지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이들 시 또한 고전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는 시인의 정신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선에 가까운 듯하면서도 세상 사람들의 삶을 그려내는 시인 특유의 거침없는 정신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산악처럼 마음이 높은 사람은
나를 세워 남에게 굽히지 않네
베다의 경전을 강(講)할 줄 알고
삼교(三敎)의 글을 두루 말하며,
마음속에는 부끄러운 생각 없이
계를 부수고 율문을 어기면서,
상인(上人)의 법이라 스스로 자랑하고
제일의 사람이라 일컬어 뽐내나니
어리석은 사람, 칭찬해 마지않고
지혜로운 사람, 손뼉 치며 웃는구나
모두가 아지랑이, 허공의 꽃이어니
어찌 그것으로 나고 죽음 면할건가!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고 앉아
온갖 근심 걱정 끊음만 못하니라.
心高如山嶽 人我不伏人
解講韋陀典 能談三敎文
心中無慚愧 破契違律文
自言上人法 稱爲第一人
愚者皆讚歎 智者拊掌笑
陽燄虛空花 豈得免生老
不如百不解 靜坐絶憂惱
- <寒山詩 211>
비록 틀에 짜여져 글자 하나에 구애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할 소리 안 할 소리 다 부어놓은 도가니 같지 않은가. 형식을 뛰어넘는 내용의 완성이 돋보이는 것이다.
여기서부터, --- 멀다
칸칸마다 밤이 깊은
푸른 기차를 타고
대꽃이 피는 마을까지
백년이 걸린다
- 서정춘, <竹篇 1-여행>
“시에 관한 한 그 같은 지독한 구두쇠를 나는 달리 본 일이 없다. (줄임) 천성적으로 부지런한 사람으로 시단에 나온 지 30여 년에 시집 하나가 없다니,(줄임) 무조건 많이 쓰고 보자, 그래서 비슷비슷한 내용과 형식의 시를, 그의 말마따나 설사하듯 쏟아 놓아 시공해를 낳고 있는 판 그이 시에 대한 엄격주의 인색주의는 차라리 신선하게 받아들여진다.”(신경림의 해설 중에서) 는 글에서도 보이듯이 절제된 형식에 시를 부어놓는 공력을 느낄 수 있다.
사월 초파일은 오신 님의 날이외다
오늘은 대나무조차도 오신 나의 님이외다
하늘 꼭대기까지 마디마디 들숨으로 닿아 오르다가 이윽고 안으로 구부리며 날숨을 비워 내린 님이외다
마치, 바람을 잡아당기듯 虛心을 탄 나의 님
반동그란 활 모양의 禪모양이외다
- 서정춘, <竹篇 3-님>
대나무를 바라보며 쓴 수많은 시 가운데 이토록 큰 울림을 주는 시가 그리 많지 않은 까닭이다. 어찌 보면 여백이 없는 죽편에 깨알같이 쓸 수밖에 없어 쓴 것처럼 보이지만 속내는 다 드러낸 다짐을 읽을 수 있지 않은가. 나무와 풀에 더 이상의 거추장스런 가지와 잎이 달리지 않은 이치라고 할까. 그것을 인공미로 위안하며 꾸밀 때에야 사족(蛇足)이 생기게 마련이다.
초혼(招魂)처럼 “~는 ~이외다” 하고 내지르는 것으로 시작하는 한 행이 들숨과 들숨을 느끼는 것처럼 운문시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행갈이를 함에 따라 대나무의 정기를 떠오르게 하고, 그 사이에 읽는 이의 생각이 스며드는, 이른바 여백의 미를 보여주는 것이다. 오밀조밀하면서도 절제된 산문시의 형식과는 달리 행간을 읽고 기다렸다가 다음 행을 받아들이는 ‘사이’가 크고도 깊게 다가온다.
재춘이 엄마가 이 바닷가에 조개구이집을 낼 때
생각이 모자라서, 그보다 더 멋진 이름이 없어서
그냥 ‘재춘이네’라는 간판을 단 것은 아니다.
재춘이 엄마뿐이 아니다
보아라, 저
갑수네, 병섭이네, 상규네, 병호네.
재춘이 엄마가 저 간월암(看月庵) 같은 절에 가서
기왓장에 이름을 쓸 때,
생각나는 이름이 재춘이밖에 없어서
‘김재춘’이라고만 써놓고 오는 것은 아니다.
재춘이 엄마만 그러는 게 아니다.
가서 보아라, 갑수 엄마가 쓴 최갑수, 병섭이 엄마가 쓴 서병섭,
상규 엄마가 쓴 김상규, 병호 엄마가 쓴 엄병호.
재춘아, 공부 잘해라!
- 윤제림, <재춘이 엄마>
읽혀지는대로 보면 산문시처럼 촘촘하게 엮여져 있는 듯하지만 간결한 배치가 가져오는 절제를 느낄 수 있다. 마치 “이런 저런 엄마들의 마음을 털끝만치라도 생각한다면”이 생략된 여백에 “재춘아, 공부 잘해라!” 하고 따뜻한 부탁 하나 새겨넣는 공력은 또 다른 운문시의 매력을 말해준다. 한없이 한 소리 또 하고 한 소리 또 하는 술자리에서 어디 재춘이뿐인가, 저기도 그렇고 요기도 그렇고 하면서도 추렴하는 것 같지만 주고 받으면서 단박에 내지르는 행과 연의 배열이 잘 맞아떨어지고 있다.
아침 됩니다 한밭식당
유리문을 밀고 들어서는,
낯 검은 사내들,
모자를 벗으니
머리에서 김이 난다
구두를 벗으니
발에서 김이 난다
아버지 한 사람이
부엌 쪽에 대고 소리친다.
밥 좀 많이 퍼요.
- 윤제림, <가정식 백반>
앞선 3행에서는 식당으로 들어서는 사람들을 간결하게 표현하고는 그들이 막 일을 끝내고 들어왔다는 것을 말해줄 수 있는 적확한 표현으로 어루고 있다. 그리고 곧 연을 나누어 “재춘아, 공부 잘해라!” 하듯 시인의 마음 그대로 퍼주고 있지 않은가.
식당 벽에 붙은
공기밥 별도
를
세 살박이 아들은 이렇게 읽는다
아빠,
공기밥은 나왔는데
별은
언제 나와요!
순간
머리에 별이 뜬다
- 이종수, <공기밥 별도>
그냥 ‘공기밥 별도’에서 ‘공기’와 ‘별’을 구분해낸 아이의 직관만을 이야기하고자 했으나 어이없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한 순간을 머릿속에 뜨는 또 하나의 ‘별’로 행갈이 해보았다.
서쪽 하늘에
저녁 일찍
별 하나 떴다
깜깜한 저녁이
어떻게 오나 보려고
집집마다 불이
어떻게 켜지나 보려고
자기가 저녁별인지도 모르고
저녁이 어떻게 오려나 보려고
- 송찬호, <저녁별>
동시로 쓴 것이지만 말갛게 뜬 저녁별을 보는 어린 마음처럼 시각적 이미지만이 아니라 시와 동시를 넘나드는 자아를 느끼게 해주는 것을 보면 시의 형식은 무엇보다 간결한 배치여야 한다는 것을 확인해 주고 있다. ‘공기밥 별도’에서 ‘별’을 건져낼 줄 아는 마음이야말로 시의 본령이 아닐까.
하얗게 핀
민들레 꽃씨를
후우,
불었다
조그만
민들레 꽃씨가
바람을 타고
후
후 후
후 후 후 후 후
후 후 후
후 후
날아간다
- 송찬호, <민들레 꽃씨>
어디 가나 민들레 꽃씨를 보면 입으로 불어 날리고 싶은 마음이 또 하나의 그림시를 만들어낸 셈이다. 이런 시도는 그간 많은 실험시에서 다뤘지만 금밤이라도 ‘후~’라는 말과 함께 공중에 흩어질 것만 같은 착시 현상을 만들어내는 것 또한 그럴싸하다.
고
고구
고구마
고구마꽃
고구마꽃이 피
고구마꽃이 피었
고구마꽃이 피었습
고구마꽃이 피었습니
고구마꽃이 피었습니다
- 이선관, <고구마꽃이 피었습니다>
묵념, 5분 27초
- 황지우, <묵념, 5분 27초>
제목 외에 빈 여백만을 배치한, 아니 그럴 필요조차 없는 형식파괴이지만 그만큼 경계를 넘다드는 새로운 시도와 그에 맞아떨어지는 내용성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한 소리 또 하고
또 하고.
당숙은 죽어서 산새가 되었다.
한 노래 또 하고
또 하고.
- 윤제림, <당숙은 죽어서 새가 되었다>
‘당숙은 죽어서 새가 되었다’에 벌써 이야기의 기승전결은 다 해놓았기 때문에 훨씬 가벼워지고 간결해진 배치가 당숙과 새의 이미지를 돋보이게 하고 있는 시다.
대형트럭 하나가 뙤약볕 아래 꼼짝 않고 서 있다. 고단한
모양이다. 그 옆에 늙은 버드나무 이파리 하나 흔들리지 않
는다. 그늘 아래 웃통을 벗은 사내가 네 활개를 펴고 잠들어
있다. 아니, 늘어져 있다. 언뜻 보면 죽은 것 같다.우리 할머
니가 보셨으면 가서 흔들어보라고 하셨을 것이다.
움직이는 것은 그늘뿐이다.
- 윤제림, <버드나무 아래>
앞선 운문시와 달리 산문시는 버드나무 그늘이 만들어내는 시각적 이미가 내용과 함께 잘 빚어진 느낌을 준다. ‘꼼짝 않고 서 있는’, 을 이어 ‘흔들리지 않’, 아 흔들어보고 싶은 마음을 절로 나게 한다. 그에 다시 행을 바꾸어 꼼짝 않고 서 있고 누워 있는 대상을 꿰뚫듯 ‘움직이는 것은 그늘뿐이다’하며 행갈이를 한 것은 마지막 고랑을 내고 난 뒤에 느끼는 맛 같다.
역사를하노라고 땅을파다가 커다란돌을하나 끄집어내어놓고보니
도무지어디서인가 본듯한생각이들게 모양이생겼는데 목도들이 그
것을메고나가더니 어디다갖다버리고온모양이길래 쫓아나가보니 위
험하기짝이없는큰길가더라.
그날밤에 한소나기하였으니 필시그돌이깨끗이씻겼을터인데 그이
튿날가보니까 변괴로다 간데온데없더라. 어떤돌이와서 그돌을 업어
갔을까 나는참이런처량한생각에서 아래와같은작문을지었도다.
‘내가 그다지 사랑하던 그대여 내한평생에 차마 그대를 잊을수없소
이다. 내차례에 못올사랑인줄은 알면서도 나혼자는 꾸준히생각하리
다. 자그러면 내내어여쁘소서.‘
어떤돌이 내얼굴을 물끄러미 치어다보는것만같아서 이런시는 그
만찢어버리고싶더라.
- 이상, <이런시>
난해한 시를 쓰기로 알려진 이상 시인의 산문시다. 맞춤법과는 상관없이 ‘돌’에 대한 ‘사랑하면서도 차지하지 못한 안타까움’과 ‘애절함’을 표현하고 있다. ‘돌’을 사랑하는 사람에 비유하자면 벌써부터 그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부끄러움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스칸디나비아라든가 뭐라구 하는 고장에서는 아름다운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업을 가진 아저씨가 꽃리본 단 딸아이의 손 이끌고 백화점 거리 칫솔 사러 나오신단다. 탄광 퇴근하는 광부들의 작업복 뒷주머니 마다엔 기름 묻은 책 하이덱거 럿셀 헤밍웨이 장자 휴가여행 떠나는 국무총리 서울역 삼등 대합실 매표구 앞을 뙤약볕 흡쓰며 줄지어 서 있을 때 그걸 본 서울역장 기쁘시겠소라는 인사 한 마디 남길 뿐 평화스러이 자기 사무실 문 열고 들어가더란다. 남해에서 북강까지 넘실대는 물결 동해에서 서해까지 팔랑대는 꽃밭 땅에서 하늘로 치솟는 무지개빛 분수 이름은 잊었지만 뭐라군가 불리우는 그 중립국에선 하나에서 백까지가 다 대학나온 농민들 추럭을 두 대씩이나 가지고 대리석 별장에서 산다지만 대통령 이름은 잘 몰라도 새이름 꽃이름 지휘자 이름 극작가 이름은 훤하더란다 애당초 어느 쪽 패거리에도 총쏘는 야만엔 가담치 않기로 작정한 그 지성 그래서 어린이들은 사람 죽이는 시늉을 아니하고도 아름다운 놀이 꽃동산처럼 풍요로운 나라, 억만금을 준대도 싫었다 자기네 포도밭은 사람 상처내는 미사일기지도 땡크기지도 들어올 수 없소 끝끝내 사나이 나라 배짱지킨 국민들, 반도의 달밤 무너진 성터의 입맞춤이며 푸짐한 타작소리 춤 사색뿐 하늘로 가는 길가엔 황토빛 노을 물든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함을 가진 신사가 자전거 꽁무니에 막걸리병을 싣고 삼십리 시골길 시인의 집을 놀러가더란다.
- 신동엽, <산문시 1>
형식에 구애되지 않고 애초에 그리려던 한 폭의 그림을 거침없이 그려낸 것 같은 산문시의 전형을 보여주는 시다.
첫댓글 많은 배웁합니다
고맙습니다
시창작 이론 공부, 여전하십니다.
건강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