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명 계좌가 있나요?”
“...............”
“목도 안 말라요?”
물도 안 먹고 저렇게 뚱한 표정으로 있은 지 3시간째다.
“.....”
또 묵묵부답이다.
“저도 지치네요. 수사관님이 여쭤보면 지금처럼 그러지 말고 말씀 좀 해주세요.”
너무 화가 나서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몰아붙이지 못하는 내 자신도, 저렇게 아무 말도 안하고 있는 정지환도 밉다.
잊어야 하는데... 왜 못 잊는지..... 어디가 예쁘다고 저렇게 보면 아픈지........
“검사님. 오늘은 그만하시고 돌려보내죠. 보는 저도 아주 징그럽습니다. 으휴.”
“그래요. 이수사관님. 마무리 좀 잘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어리면 어리다고 할 수 있지만 20대의 마지막을 이렇게 보낼 수만은 없었다.
“한 번... 잊어보자..”
“언니!!! 왜 이렇게 늦게 와!!! 연락도 없이.. 얼마나 걱정했는데....”
“미안미안. 달별아. 혹시 우주 들어왔어?”
“아니? 오빠 오늘 당직이래.”
“에휴.. 다행이다..”
“왜?”
“하하.... 너가 얘기했던... 그 남자.... 소개.. 시켜줄 수 있을까.....? 우주한테는 비밀로 하고.”
“응?? 왜????”
우주가 알면...... 지환이도 알게 되니까.....
“그냥..”
“그래!! 알았어! 내가 오빠한테 전화해 볼게. 아마 내일 당장이라도 날아올걸? 히히히.”
“검사님, 손님이.. 찾아 오셨는데요?”
“누구...요?”
“글쎄요.. 박세희라고 하는데.. 잘나가는 모델이래요. 아까 박수사관이 그러더라고요...”
지환이.... 때문에 온 건가...?
“네, 들여보내주세요.”
“네.”
“똑똑. 대한민국 검사님의 시간을 잠깐 뺏어도 될까요?”
“아, 앉으시죠. 수사관님들, 식사하고 오시겠어요? 먼저 가계세요. 뒤따라가겠습니다.”
“아.. 네....”
“네.”
“자... 이제 둘만 남았으니 본론으로 들어갈까요? 보시다시피 바.빠.서.”
“훗. 그러게요. 참 쓸 때 없이 바빠 보이네요. 지환씨 건들지 마세요. 아니, 흔들지 마세요.”
“지금 검사가 할 짓 없어서 사랑놀이 하는 걸로 보시는 건가요?”
“네. 제 눈엔 그렇게 밖에 안 보이네요.”
“역시 소문대로군요. 머리에 든 게 없으시네요. 전 먼저 가보겠습니다. 다.들. 기다리셔서요.”
똑똑하네, 박세희. 진짜 눈치 한 번 빠르구나?
“제가 오해를 한 거라면 저도 좋겠네요. 주인 없는 방에 있는 건 예의가 아니죠. 먼저 나가겠습니다. 그럼.”
고개를 까딱하더니 나가버리는 박세희.
나도 몰랐던 걸 어떻게 그렇게 맞춰버리지? 대단하네.
“언니!!! 왜 이제와!!! 빨리빨리!!!!”
달별이가 소개시켜준다는 사람이 지금 막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고 한다.
사건 때문에 1시간이나 지각한 나는 달별이한테 엄청나게 시달리며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정말이지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다.
왜 이렇게 오글거리고 민망한 건지....
“오빠! 한 턱 쏘는 거다?!! 히히 둘이서 잘 놀아~!!!!! 간다~~!!!!!!”
“야!!!!!”
“나달별!!!!!!!!!!!!!!!!!!”
달별이는 우리 둘을 남겨놓고 도망가 버렸다.
정말 어색함과 침묵만 흐르는 이 순간을 피하고 싶었건만......
“음... 서울 구경 시켜주실래요? 제가 서울은 어렸을 때 와보고 처음이라...”
“아...!! 네! 그래요!”
“아, 차 키 주세요. 제가 운전하겠습니다.”
“네. 여기요.”
제법 남자답다.
180이 훌쩍 넘는 우월한 기럭지에 주먹만 한 얼굴 사이즈. 잘생긴 외모. 스타일도 좋고...
우리는 서울로 올라가면서 조금씩 서로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했다.
“여기 맛 어때요? 인터넷 강추 집이던데....”
“정말 맛있는데요? 여은씨는 뭘 제일 좋아하세요?”
“음식이요? 음...... 김치찌개 좋아해요.”
“하하. 전 제육볶음이 제일 좋더라고요.”
“그것도 진짜 끝내주는 음식이죠!”
서로 좋아하는 것을 공유하고 공감대를 형성하고.... 오랜만에 느껴보는 즐거운 데이트다.
“여기가 저희 집이에요.”
“혼자 사세요?”
“아.. 달별이랑 달별이오빠랑요.”
“아.. 달별이랑은 무슨 관계이신 거예요? 달별이 말로는 친언니라고 했는데.....”
“하하하. 맞아요. 친자매. 우선 오늘은 시간이 많이 늦었네요. 저 먼저 들어갈게요, 조심히 가세요.”
“네, 여은씨도 잘 자요.”
“언니!!!!! 내가 언니 오기만을 얼마나 기다렸는데 이제와!!!!!!!!!”
“일찍 오면 그거 퇴짜 맞은 거야, 바보야.”
“도준이오빠는 안 그런 거 아니까!!! 이 바보야!!!”
“그냥 괜찮은 사람인 것 같아.”
“괜찮은 사람인 것같아가 아니라 괜찮은 사람이야!!!!!”
“그래그래. 괜찮은 사람이야. 너랑 내 관계 묻더라. 친자매라고 그랬다며?”
“당연. 그게 왜?”
“내가 달별이오빠랑 같이 산다고 했거든.”
“헉..........”
“미리 알아야 될 거 같아서. 씻고 올게.”
참.... 좋은 느낌의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