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0년대, 제3세계 비동맹운동으로 탄생한 신국제질서(NIEO)를 파괴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정책(SAP)에 대하여
신국제경제질서 NEW INTERNATIONAL ECONOMIC ORDER (NIEO)
Pink Floyd – Money
신국제경제질서는 1970년대 제3세계 나라들의 가장 큰 관심사였다. 석유수출국기구가 야기한 오일 쇼크는 그간 마땅한 부를 누리고 있다고 생각한 나라들을 겁에 질리게 하였다. 석유 가격은 네 배 가까이 뛰었다. 석유 없이는 작동하지 않는 자본주의 산업 경제는 석유를 생산하는 나라들의 요구에 귀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다.그 요구가 훗날 신국제경제질서라고 불리게 될 제3세계의 보다 공정한 경제 질서였다. 그리고 신국제경제질서는 남반구와 북반구의 사람들이 경제질서를 둘러싸고 마침내 대화를 하게 되었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연후 탈식민화된 나라들은 세계 경제 질서를 토론하는 자리 어디에도 초대받은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대등한 자격으로 북반구의 대표들과 만나 협상을 할 자격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오일쇼크로 인해 신국제경제질서가 등장했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것은 탈식민화 이후 아시아, 아프리카 그리고 남미의 많은 나라들이 끈질기게 주장하고 요구했던 것이기 때문이다. 1964년 발족한 UN 무역개발회의(UNCTAD: United Nations Conference on Trade and Development)는 1947년 제정된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T: General Agreement on Tariffs and Trade)이 제 구실을 못하고 있다는 데 대한 깊은 불만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GATT는 가맹국 사이에 무역 제한이나 차별을 방지하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식민주의와 제국주의의 지배로 인해 ‘저발전’된 나라들의 눈으로 보기에 그것은 여전히 미국과 유럽의 부유한 나라들을 위한 무기에 불과했다. UN 무역개발회의는 바로 제3세계 나라들이 집단적으로 세계 경제 질서를 개혁할 것을 요구한 최초의 국제 포럼이었다. 그 때문에 이 기구는 비동맹운동과 제3세계 프로젝트가 가장 눈부시게 활약했던 순간, 경제학자 필립 맥마이클의 말을 빌자면 “비동맹운동에서 유래한 집합적 정치의 정점”이었다.
신국제경제질서를 제창함으로써 UN 무역개발회의는 많은 국제기구에 제3세계주의가 확산되도록 만들었다. UN은 제3세계주의의 무대가 되었고 마침내 1974년 5월 <신국제경제질서 수립 선언 Declaration on the Establishment of a New International Economic Order>이 UN 총회에서 채택되었다. 미국의 잇단 방해와 저지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무려 79번이나 상정된 끝에 UN 총회 투표에서 그 선언은 찬성 120표, 반대 6표, 기권 10표의 결과로 결국 통과되었다. 이 선언에 반대한 나라들은 벨기에, 덴마크, 룩셈부르크, 영국, 미국 그리고 서독이었다. 선언의 골자는 제3세계 국가들은 자국 영토에서 활동하는 다국적 기업의 활동을 규제하고 통제할 권리를 갖는다는 것, 그리고 제3세계 국가들에 우호적인 조건으로 외국 자산을 국유화하거나 수용할 수 있다는 것, 석유수출국 기구처럼 기본재 생산자들의 연합체를 자유롭게 결성할 수 있으며 모든 나라는 이를 인정하여야 하며 이런 시도를 억제하려는 의도에서 경제, 군사, 정치적 조치들을 취해서는 안 된다는 것, 그리고 제3세계 국가들의 생산물에 대해 안정적이고 정당한 가격을 보장해주어야 하며 어떤 관세 차별도 있어선 안 되고 부가 조건 없이 기술을 이전하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신국제경제질서는 결국 1980년대에 접어들며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급기야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내세운 공세에 의해 붕괴되고 말았다. 이미 신국제경제질서에 맞서 G7을 결성하며 대응했던 서구의 발전된 자본주의 국가들은 북반구의 경제적 승리를 구가하기 위한 맹공을 퍼부었고, 그 일차적인 대상은 신국제경질서였다. G7이 신국제경제질서를 붕괴시키고자 동원했던 무기는 부유한 제1세계 국가의 자본가들을 위한 검투사 역할을 맡은 IMF와 세계은행이었다. 그 사이에 제3세계의 나라들은 ‘최저발전국(LDCs; Least Developed Countries)과 신흥공업국 혹은 부유한 산유국들로 나뉘었다. 비동맹운동이 상징하던 제3세계의 통일전선은 무너지고 있었다. 반면 G7으로 대변되는 제1세계의 자본가 권력은 자신들의 세계 지배를 되찾고자 보다 공고한 단결을 이루어 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외채 위기가 제3세계를 휩쓸었다.
1980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달러화의 가치 하락을 막고자 이자율을 올림으로써 풀려나간 미국 달러를 회수하고 과잉순환을 줄이려는 조처를 취했다. 당연히 제3세계 나라로 향하던 융자도 줄어들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자율을 높아지고 상환기한은 단축되었다. 그로 인해 제3세계 국가들의 신규대출은 거의 이전의 대출금과 이자를 갚는데 쓰였다. 제1세계의 경기 침체로 수출까지 줄어들었는데, 공산품 수출 가격에 비해 언제나 가격이 불안정한 원자재들은 가격이 폭락했다. 많은 나라들의 GDP가 줄어들었다. 채무 체제(debt regime)의 부담이 특별히 가혹했던 아프리카의 경우, 탄자니아, 수단, 잠비아의 경우에는 한 해에 수출로 벌어들인 수익 전부를 외채를 갚는 일에 써야 했다. 결국 이 나라들은 빚의 덫에 걸렸고, IMF와 세계은행이 요구한 조건에 따라 구제 금융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바로 그 조건을 가리키는 악명 높은 이름이 바로 구조조정정책이다. 국제통화기금은 세계은행이 제공하는 구조조정 차관을 활용해 부채의 상환 기일을 조정해주는 대가로 채무국에 경제 질서를 개편하도록 요구했다. 이제 발전이라는 목표는 세계 시장 참여라는 이름의 가치로 대체되었다. 그리고 국가의 역할은 현저히 축소되고 이른바 제3세계 국가 형태의 긴축이 강요되었다. 채무 체제가 초래한 위기와 파산은 결국 신국제경제질서를 최종적으로 붕괴시켰다. 신국제경질서는 초국적 독점 기업과 금융 자본 중심의 신자유주의적 세계 경제 질서에 패배했다. 그러나 그것이 계속 권력을 유지하지 못할 것이라는 의문을 던지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브릭스(BRICS) 즉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과 같은 나라들은 이제 경제 대국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받고 있다. 그리고 이들 나라는 미국과 서유럽이 주도하는 현재의 경제질서가 다시 짜이길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인 과거 비동맹운동이 얻어낸 것과 같은 새로운 경제 질서를 구축할 것인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초래한 극단적인 불평등을 타파하려는 남반구 민중들의 투쟁은 계속될 것이다.
작성일자2020년 1월 23일글쓴이homopop카테고리- 오늘의 글, - 짧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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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조정정책(SAPs: Structural Adjustment Policies)
Devo – Whip It
경제학에서는 구조조정정책을 이렇게 풀이한다. 채무국에 채무를 상환할 수 있는 대출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채무국의 우선 생산순위와 정부의 프로그램을 전반적으로 재편하는 정책. 일반적으로 구조조정차관이란 이름으로 빚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채무국에 경제 재편을 요구하는 것이 구조조정정책의 핵심이다. 이는 금융 개방은 물론 공공자산(상수도, 전기, 전화, 통신 등)을 북반국의 다국적기업에게 팔아치우는 것을 비롯해 공공예산의 삭감, 통화 평가 절하, 고용관계의 유연화, 시장 개방 등을 요구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한국 역시 이러한 구조조정정책의 희생양이 된 바 있다. 1997년 외환위기를 맞이하며 감내해야 했던 구조조정정책도 이와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제3세계의 민중들에게 구조조정정책이란 비동맹운동과 더불어 시작된 보다 평등하고 민주적인 경제질서를 수립하고자 했던 시도(대표적으로 신국제경제질서NIEO)가 위기에 직면했음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바야흐로 북반구의 자본이 식민주의가 종결되면서 주춤했던 자신의 착취와 수탈을 회복할 절호의 수단을 되찾았음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였다.
나라의 경제적 부의 상당 부분을 빚을 갚는 데 쓰도록 했던 국제 채무 체제는 급격한 이자율 상승으로 더욱 엄청난 부담을 가난한 나라에게 전가했다. 이는 우선 남미에 있던 많은 나라들을 파산시켰다. 이를 주류 경제학자들이나 언론은 외환의 부족 즉 전문용어로 유동성 문제라고 말하지만 실은 세계 금융 체제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다. 국제채무체제의 첫 번째 희생양은 멕시코였다. 멕시코는 1982년 800억 달러의 외채를 짊어진 뒤 결국 국제통화기금을 비롯한 외국의 은행들로부터 대출을 받는다. 물론 그 부채 상환의 부담은 노동자와 농민에게로 고스란히 전가되었다. 이는 훗날 신흥발전국가로 칭송이 자자했던 중간소득국가인 태국과 아시아의 네 마리 용 가운데 하나로 영예를 누렸단 남한에도 적용되는 일이었다. 이는 훗날 워싱턴 컨센서스(Washington Consensus)라고 불릴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본격화를 알리는 일이었다.
약삭빠른 북반구의 다국적 독점 기업과 금융자본은 자신들이 조장한 채무위기를 제3세계 국가들에서 정부가 차지하는 역할을 약화시키고자 하는 핑계거리로 만들었다. 이는 그들의 말을 빌자면 “정부의 실패”였다. 그들은 국가가 주도하던 제3세계 나라들의 발전 모델을 포기하도록 종용하였다. 개도국 지원에 ‘조건’을 부과하는 것은 이를 받는 나라들의 개발금융에 대한 반감을 유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한 조건 없는 지원은 이제 끝이 났다. 원조가 차지하던 자리에 새로운 조건 즉 구조조정정책을 받아들이는 한에서의 대출이라는 무시무시한 처방책이 들어섰다. 그 때까지 원조에 조건을 덧붙인다는 것은 흔치 않은 생각이었다. 무역정책의 방향이 개발에 중요하다는 인식 때문에 1970년대부터 기술협력의 한 형태로 정책컨설팅이 강조되기는 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원조와 발전도상국의 정책을 결부시킨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구조조정과 더불어 국제원조기구는 제3세계 나라들의 정책에 직접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부터 본격화되기 시작한 구조조정정책을 이끈 것은 IMF와 세계은행이었다. 이 두 기관은 국내 수요를 충족시키려는 국가 역량을 파괴하는데 앞장섰다. 그들은 1990년대 프랑스령 서아프리카와 마다가스카르에서 일어난 제2의 독립물결을 저지하고 정치적 불안을 조성하였다. 이러한 추세는 자원전쟁이 벌어진 나라들, 라이베리아, 시에라 레온, 콩고민주공화국 등 여러 나라로 확장되었다. 이들 나라에서 AK-47 소총으로 무장한 기업형 깡패조직들과 군대들이 금, 다이아몬드 그리고 여러 희귀 광물과 미네랄을 수출하고자 토지소유권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이는 워싱턴 컨센서스가 보여준 민낯이었다. 민족해방운동을 이끌던 정당이 국가를 장악하고 관리하던 제3세계 국가들을 무너뜨리고자 정부의 실패 혹은 국가의 퇴각을 역설하던 북반국의 자본이 옹호했던 것은, 결국 부패한 군대와 기업이란 가면 뒤에 숨은 약탈적인 폭력집단이었다. 그리고 이 두 기관은 전 세계를 누비며 신국제경제질서의 모든 경계를 파괴하였다. 아프리카는 물론 남미와 아시아의 가난한 제3세계 나라들을 거쳐 마침내 신흥공업국마저 덮쳐눌렀다. 이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라는 북반구가 일방적으로 주도하는 새로운 경제질서를 향해 가는 길을 닦은 섬뜩한 무기가 되어 주었다.
작성일자2020년 1월 23일글쓴이homopop카테고리- 오늘의 글
http://homopop.org/log/?p=14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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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미국이 리셋될 판이군!)
바이든, 텍사스 중대 재난지역 선포..리더십 시험대 올랐다
김기혁 기자 입력 2021. 02. 21. 17:28
정전 진정됐지만 물 공급난 여전
전기요금 180배 폭등 논란까지
이재민 거처 마련·피해 복구 등
연방정부 예산 신속 투입 방침
현장 직접 방문도 신중히 고려
https://news.v.daum.net/v/20210221172807352?x_trkm=t
첫댓글 지금의 코로나대유행과 세계 대 재설정(Great Reset)과 관련한 참고자료로 올려 봅니다.
1! 재해가 심각한 상황인가보네요.
잘 읽었습니다.
2차 대전후 패권을 쥔 미국은 UN, 세계은행, IMF, GATT등 세계를 자기들 입맛대로 주무르기 쉽게 각종 기구와 체제를 만들었죠.
이것도 부족해서 각종 공작과 전쟁을 통해서 제국주의 본성을 여지 없이 보여주었죠
한국도 예외 없이 위 본문 글과 거의 정확하게 탈탈 털렸죠.
한국의 IMF구제 금융후 구조조정의 결과 대기업, 국영기업, 은행들의 지분이 외국자본으로 헐값에 팔리게 되었죠.
김영삼 정권 (대통령)만이 IMF의 책임이 있는게 아니라 1980년 초중반 부터 이러한 공작은 시작 되었다고 하더만요
(작고하신 김기원 교수님의 '한국경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