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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성격상 다른 사람을 그닥 좋아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사람을 미워한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이재명-정청래-박찬대-추미애-양문석-최민희-박지원-용혜원-전현희-서영교-박은정-유시민-김민석-박선원-김어준까지 쌍판대기를 보고 있자니 천 불이 나서 못 살겠습니다. 내로남불 민주당이 걸핏 하면 법치주의를 말하지 않나, 감옥 간 꼴뚜기당마저 여당을 향해 삿대질을 하고 있으니 염병, 세상 말세입니다. 요새는 여당을 극우 파시즘 정당이라고 몰아붙이고 있는데 니들이 파시즘을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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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처와 선관위의 위법, 친인척 채용 비리까지 드러났는데 전세를 역전 시키지 못하고 있으니 승질 급한 놈만 미쳐 뒈질 지경입니다. 우리 다 함께 접시 물에 코 박고 죽읍시다. 얼마 전에 '허지웅의 파시즘 관한 글'에 반박문을 쓴 적이 있는데 어제는 거짓 정보, 거짓 뉴스의 홍수 속 생수를 발견하고 너무 기뻤어요.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파시즘보다 민주주의 속 파시즘이 훨씬 위험하다" 그 파시즘의 현상은 a. 경쟁 b. 우열 가르기 c. 우월한 자가 열등한 자 지배로 나타난다는 것이 골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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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강자 동일시
2. 약자 혐오
3. 동조 강박
4. 폭력성, 공격성
5. 흑백 논리
6.비겁성 기회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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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가 결판나는 곳은 투표장이 아니라 교실이다. 교실은 민주주의의 훈련장이기에 한 나라가 성취한 민주주의의 수준은 교실에서 결정된다. (중략) 대한민국의 위기는 본질적으로 민주주의의 위기다. 최악의 불평등, 불공정, 차별은 바로 한국 민주주의의 결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불평등은 경제 민주화의 부재에 근본 원인이 있고, 불공정은 사회 민주화의 결함에서 기원하며, 차별과 혐오는 문화 민주화의 결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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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민주화는 어느 정도 이루었지만, 사회, 경제, 문화 민주화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현실이 불공정, 불평등, 차별과 혐오의 사회를 만든 주범인 것이다. “민주주의에 ‘반’하는 파시즘보다 민주주의 ‘ 속’에서의 파시즘이 더 위험하다.” 테오도어 아도르노가 1960년대 독일 사회에 팽배한 ‘일상의 파시즘’을 비판하며 던진 이 말은 오늘날의 한국 사회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지금 한국에서 ‘민주주의에 반하는 파시즘’의 시대는 독재자 전두환과 노태우의 죽음과 함께 최종적으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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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민주주의 속에서의 파시즘’은 여전히 살아 있을 뿐만 아니라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경쟁주의, 우열 의식, 강자 동일시, 약자 혐오, 동조 습성, 폭력성, 공격성, 흑백논리 등 권위주의적 성격으로 드러나는 ‘일상의 파시즘’은 사라지기는커녕 더욱 기세를 떨치고 있다. 이처럼 ‘민주주의 속에서의 파시즘’이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세를 넓히는 현상은 무엇보다도 잘못된 교육에 근본 원인이 있다. 한국의 교실은 성숙한 민주주의자를 기르는가, 아니면 잠재적 파시스트를 기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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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는 대한민국 교육이 기른 ‘전교 1등들’이 보인 최근의 행태만 둘러보아도 충분하다. 코로나 이후 사회적으로 요청된 공공병원 확장에 반대하는 시위에 나선 의사들, 양승태 대법원장의 사법 농단에 관여한 판사들에게 계속 무죄판결을 내리는 판사들, 피의자로부터 향응을 대접받은 검사들에게 불기소 처분으로 일관하는 검사들 ― 이들이 모두 한국 교육이 키운 최고의 모범생이었다는 사실은 한국 교육이 성숙한 민주주의자가 아니라 오만한 엘리트, 일상적 파시스트를 길러냈음을 증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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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렇게 되었을까. 거기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한국 교육의 ‘영혼’인 경쟁 이데올로기가 깊은 의미에서 파시즘의 이데올로기이기 때문이다. 독일의 나치즘을 보라. 그들은 이 세계를 ‘거대한 경쟁이 벌어지는 정글’로 보았고, 그 정글에서는 적자생존, 자연도태, 약육강식이라는 다윈의 법칙이 작동하는 것으로 보았으며, 강자가 약자를, 우월한 자가 열등한 자를 지배하는 것이 ‘순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던가. 경쟁 이데올로기에는 이처럼 파시즘의 논리가 바탕에 깔려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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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학생을 ‘정치적 미숙아’로 보기 때문이다. 한때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의 기수였던 (중고등) 학생들이 군사독재 정권이 들어선 이후 정치로부터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평가절하되었다. 셋째, 교사들이 ‘정치적 금치산자’ 취급을 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교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유일하게 정치적 시민권을 박탈당하고 있다. 생각해 보라. 파시즘적 이데올로기 아래에서 ‘정치적 미숙아’가 ‘정치적 금치산자’에게 교육을 받는 교실에서 어떻게 성숙한 민주시민이 자라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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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중요한 정치 법안이 통과되었다. 이제 18살 고등학생도 국회의원이 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우리도 다른 선진국처럼 10대 국회의원을 볼 날이 머지않았다. 이제 ‘선진국’ 시민으로서 분명히 자각해야 한다. 10대는 더 이상 정치적 미숙아가 아니며, 교사는 더 이상 정치적 금치산자가 아니다. 이제 우리 교실도 성숙한 민주주의자를 기르는 모판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한국 사회에 깊이 뿌리박힌 불공정, 불평등, 차별·혐오의 문제를 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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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에서 민주주의자를 길러내지 못하는 나라는 결코 기품 있는 선진국이 될 수 없다. 이제부터 우리 교실에서도 성숙한 민주주의자를 길러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경쟁교육을 지양하고, 민주시민교육을 강화하며, 교사의 정치적 시민권을 복원해야 한다." (중앙대 김 누리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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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6회입니다. 동수가 신입 신고식을 하는 모양입니다. 복싱 타이틀 전 말입니다. 동수 승입니다. 동수는 권투를 할 것이 아니라 격투기를 했으면 승승장구를 했을 것입니다. 한편 밀수로 유치장 살던 진숙이 아버지가 월남 파병 무궁훈장으로 출소를 했습니다. “진숙이 졸업했습니다.” 졸지에 실직한 진숙이 아버지 마음은 급한데 취직이 쉽지가 않습니다. 이때 가장은 딸내미 생각이 절실하겠으나 서두르지 말고 먼저 자신의 맨 탈부터 다잡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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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진숙이 엄마가 미장원에서 친목계를 하다가 계주가 야 밤도주하는 바람에 구렁이 알 같은 돈을 홀라당 날려버렸습니다. 나는 친목계 하다가 돈 뗀 지인을 여러 번 보았습니다. 사기는 착하고 욕심이 많은 사람이 잘 당합니다. 진숙이 엄마가 어리석고 욕심 많은 아줌마 일 것입니다. 어릴 적 진숙이가 어른 진숙이보다 더 예쁘다고 생각하는데 동의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진숙이 엄마가 고향을 뜨는 장면입니다. 진숙이가 배를 안 탄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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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캉 가는 게 맞는 기다.” “ 안 간다.” “엄마 가지 마라” 진숙이가 어려서도 야무진 구석이 있었네요. “은행이고 뭐고 때려치우고 대학 가라” “대학 안 가면 그렇고 그런 놈 하고 눈 맞을 거고“ 진숙이가 아버지 가슴에 비수를 찍습니다. ”그래 내 밀수했다.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려고 그랬다. 달려드는 진숙이 뺨을 때리는 아비 마음을 나는 알 것 같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신입사원입니다.” “신입사원이 아니고 생원이다“ 진숙이 아버지가 기어이 멍텅구리 배를 타겠다고 돈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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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은 마지막 보루가 멍텅구리 배 타는 것이었는데 나는 뱃멀미 때문에 멍텅구리 배는 타지 않았습니다. 인문계 출신인 진숙이의 신입사원 교육이 빡세게 진행됩니다. 제1금융권은 아니고 저축은행 같습니다. 이때만 해도 주판을 잘 놓으면 한국은행에서 스카우트를 했는데 우리 동네에 광식이 형이 주산 6단으로 트레이드 된 것으로 압니다. 동네 단치를 했어요. 80년대까지는 우리나라도 상공 계열이나 이공계가 알아줬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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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왔나?""인사드려라 일본에서 온 네 이모다” “생전에 죽으면 꼭 고향에 가고 싶다고 했으니 그만 보내 주자“ 준석이 아버지는 ‘친구‘에서 건달 서열 1위입니다. 준석은 아버지 말대로 이모로부터 어머니의 유품을 건네받았습니다. 배에서 좀도둑을 동수가 잡았습니다. 동수는 이제 선장에게 확실히 눈도장을 찍은 셈입니다. W 백을 맨 진숙이 아버지가 탄 멍텅구리 배가 출발을 합니다. 나까지 기분이 착착 해지는 것 같습니다. 준석이 아버지가 형도 면회를 온 걸 보니 슬슬 움직일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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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 얼마 안 남았지?” “요즘 건강은 어떠십니까? “ 방파제에서 깡소주를 퍼마시는 놈은 준석이입니다. “엄마 고향 가기 전에 나랑 데이트 한 번 해야 되지 않나? “ 남자는 외로워서 여자를 찾습니다. 나도 참 외로웠습니다. 그때마다 “날 때부터 건달은 아니었다. 배고프면 주먹을 쓰고 목마르면 눈물을 삼키었다”를 무슨 비밀병기처럼 꺼내 불곤 하였지요. 준석이가 은행으로 진숙 이를 찾아왔습니다. 포장마차에서 술 한잔하는 풍경이 인상적입니다. “상쾌해서 아들이 너를 좋아한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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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택 이는 서울 대 갔다며? 내도 서울 대 친구 하나 생겼네. 은지도 서울로 학교로 갔다.“ 엄마가 남기고 간 유품을 주고 집까지 데려다준 것을 보니 준석이도 진숙을 좋아했네요. “뭐고? 엄마가 너 주라고 했다.” 안소니, 테리우스, 알버트 중에 준석은 테리우스라고 합니다. ”맛 재? 첫눈. 오늘 5학년 때 돌아가신 우리 엄마 화장해서 일본 고향으로 보냈다. 솔직히 슬픈지 어쩐지 잘 모르겠다. 근데 가슴은 터질 듯 답답하다.""네 슬픈 거 맞다. 안아 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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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눈 내리고 이미 어둑해진 골목길에서 상남자 준석이 캉 진숙이 러브스토리를 찍습니다. 동수가 회사에서 선장의 총애를 받고 있습니다. ”젊은 놈이 힘 좋을 때 목돈을 모아 놓아야 배라도 하나 사지“ 생선 한 박스 민 회장 차에 싣는 중에 은지 공주를 만났어요. ”축하한다, 대학생 된 거” “ 내 한 번씩 부산 오면 니 만나줄래?” “ 나도 마지막 학창 시절 니그하고 보낸 거 감사한다.” 은지 동수 커플은 이것이 다인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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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 나갔다가 벽보에 붙은 미술전이 동수 발걸음을 멈추게 합니다. ‘해에게서 소년에게’ 그림이 클로즈업 되었습니다. 사실 나도 석고며 이젤 박스 꽤나 사다가 날랐어요. 지금도 건달들 만나면 그냥 지나가지 않아요. “저 뭐 하나만 물어봐도 됩니까?” 좋은 선생님을 만나려면 어쩌면 됩니까? “인마, 숙 대 앞 수 랩 미술 학원을 찾아가라고“ 보너스로 받은 생선을 들고 모처럼 준석이네 집을 찾아갔고 만, 못 볼 걸 봤습니다. 진숙이 준석의 집에 왜 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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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선이고 뭐고 내팽개쳐 버리고 싶은데 그럴 수도 없습니다. “동수야, 오랜만이네“ ” “동수가 아버지 드린다고 물 좋은 고기를 가져왔습니다.“ ”이 소고기 진숙이가 첫 월급 탔다고 사온기다.“ ”아버님 편안하시나?“ ”니 캉에게 휴식을 명한다. 오늘은 동수랑 데이트할 끼다.“ ”좋다 동수야, 둘이 데이트 잘하고 가라. 니가 있어서 다행이다.“ ”준석이 괜찮은 척하는데 안 그렇다. 니는 인자 진짜 어른 같다.“ ”니그는 인자 결혼까지 하겠네.“ 지금 동수는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나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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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나간 엄마와 진숙에 대한 마음으로 더 복잡해진 동수를 보니 확실히 상처는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받는 것 같습니다. “나는 돈 벌러 바다에 나간다.” “얼마나?” “만선해야 온다니까 2년 정도“ ”돈 벌어가 뭐 할 건데? “ ”하나 하고 싶은 게 있긴 한데 아직 말 못 하겠다.“ ”남자들은 뭐 그리 몰래 하는 게 많은지 모르겠다.“ ”중학교 때 중오 집에 놀러 갔다가 내도 어른이 되면 꼭 배 탈 거라고 생각 해어.“ 가판 위에서 동수가 소주로 고독을 달래고 있습니다. ”니는 세상에 정해진 인연이 있다고 생각 하노?“ 없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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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뭐가 애를 그렇게 쓰고 싶은데?” “원래 억울한 게 세상 아니가?” “누가 그래 부모를 잘 만났대?“ ”내 빼고 다.“ 출항입니다. 돼지 머리에 만원 권도 꽂고 진숙이가 찾아 왔습니다. 동수야 자 이거 갖고 가라. 뱃사람들은 육지 사람들이 준 물건 하나씩 갖고 있어야 무탈하단다. 편지 써라. 하모니카 못 불어도 갖고만 있어라. 어째 이별이 짠하네요. 우리들은 고교 시절을 끝으로 터닝 포인트를 맞이한 것 같습니다. 나의 고교 시절도 질풍노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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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혼자서 생각하고 결정해야 했습니다. 부모님이 다 계셨지만 소싯적에는 아버지가 학교에 오는 게 창피했습니다. 아버지가 특별한 하자가 있는 것은 아니었으나 우체국 트레이드마크였던 빨간색 자전거 때문에 내가 집배원의 아들이라는 것이 싫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지금도 그때도 내가 호래자식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으니 그렇다고 두 번 죽이지는 마시라. 좌우지간 난 울 아버지와 다르다고, 아니 다른 사람이 될 거라고 다짐하고는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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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질풍노도의 시기를 넘기고 내가 정서적으로 안정이 되는 과정에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내가 창피해했던, 판단하고 비판을 쏟아낸 아버지의 모습들이 다양한 형태로 내 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소심한 성격, 행동 하나에도 내 안에 울 아버지의 모습이 그대로 묻어나고 있었습니다. 물론 완전히 똑같다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성장한 환경은 아버지와 완전히 달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아버지와 닮은 꼴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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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미운 짓을 하면 울 어머니는 “영 낙 없이 지 애비 닮았다"라는 말을 하시곤 했어요. 그 말이 어때서, 그러거나 말거나 상관없지 않은 것이 아니라 많이 야속할 만큼 내게 있어 아버지의 존재감은 바닥이었던 것을 고해성사해야겠습니다. 실은 내가 아버지를 연민으로 바라보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어쩌면 철인 일지도 모릅니다. 마하트마 간디 말입니다. 동서남북이 다 막힌 환경 가운데서, 특히 어머니 같은 천적 앞에서(성격적으로) 살아남는 방법을 터득하신 아버지에게 불효 자식이 박수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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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요양원에서 지독한 고독과 싸우고 계신 아버지께서 훌훌 털고 일어나시어 반드시 90세, 100세를 넘기실 것을 응원합니다. 사실 우리는 내가 처한 환경이나 상황을 벗어나려고 몸부림치지만 누구도 거기에서 영원히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그것을 인식하고 벗어나려고 할수록 내가 그 안에 있다는 것이 더 맞을 것 입니다. 문제는 그곳을 벗어나려는 몸부림 속에서 내가 속한 환경의 단점만 보고, 장점을 보지 못한다는 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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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완벽한 곳은 없는데 내가 과거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과정에서 이상하게 단점에 집착하게 되면서 그 주위에 있는 장점들은 보지 못한던 것입니다. 그렇게 몸부림침으로써 그곳을 벗어날 수 있다면 그런 몸부림도 괜찮겠지만, 사실 인간은 누구도 자신의 과거, 그리고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지지 못한다는 것이 아이러니입니다. 작년에 광주항쟁을 온몸으로 치른 저는 내장산과 김제를 오가며 철 장사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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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께서 맡아 하셨던 ‘반도 여관‘에 특사로 보내졌는데 어머니가 졸지에 부재중이니 더 이상 학교가 우선이 아닙니다. 녹색 하복을 입고 들어간 변산 해수욕장은 남도의 보라카이든지, 하와이쯤 될 것입니다. 맨해튼 나이트클럽이 있고, 눈이 부신 해변의 낭만과 맥주, 갓 잡아 올린 횟감, 여자, 없는 것 빼놓고 다 있습니다. 한 철 장사에 어머니께서 청파 여관을 계약하였고 이모부가 해변에 상가 한 칸을 들어갔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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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기 정읍에서 ‘금강 여인숙’을 운영하시던 어머니께서 영등 포 갈매기 (삼촌)가 조달해 준 영 순이 누나 때문에 시비에 휘말리는 바람에 우리들의 보스인 어머니가 전주교도소로 수감되면서 우리 업소들은 창업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게 됩니다. 물론 이 일은 어머니와 나밖에 알지 못할 것이나, 그나마 전체의 그림을 모두 아는 사람은 18살 소년뿐입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한낱 꼬마에 불과했던 내가 감당해야 할 삶의 무게는 데드 포인트 그 이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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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즉에 학교를 접수했고, 소년 가장에 식구들을 지켜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내 청춘은 질풍노도이었고 이글거리는 용암이었을 것입니다. 물론 오늘날 내가 이쪽으로 경쟁력이 생긴 것은 순전히 환경 탓으로 봅니다. 나는 죽음을 가까이에서 너무 많이 보았습니다. 5월 광주 때 도청 앞의 수많은 죽음을 목격하였고 ‘변산‘에서 철 장사하면서 물어 빠져 죽은 사람, 칼 맞고 죽은 사람 등등 제가 직접 본 것이 부지기수입니다. 당시 ‘변산‘은 해변 가까이에 상가들이 있었습니다. 바다에서 멱을 감거나 일광욕을 하고 맨발로 바로 맥주를 먹을 수 있었다는 뜻입니다. 응답하라, 나의 질풍노도여!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
때린다, 부순다, 무너 버린다.
태산 같은 높은 뫼. 집채 같은 바윗돌이나.
요것이 무어야, 요게 무어야.
나의 큰 힘 아냐, 모르냐, 호통까지 하면서
때린다, 부순다, 무너 버린다.
처.........ㄹ썩, 처........ㄹ썩, 척, 튜르릉, 콱.
2025.3.5.WED.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