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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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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방에서 중심도시로 성장
오늘날 런던은 영국의 수도이자 유럽의 관문으로 그리고 국제적인 금융·문화 중심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도시가 영국 경제를 넘어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유럽의 다른 도시보다 월등하게 높아진 것은 18세기의 후반의 일이다. 물론 그 이전만 하더라도 런던의 도시 규모나 인구는 대륙의 경쟁 도시를 크게 앞지르지 못했다. 18세기 이전 런던의 인구 증가율은 매우 미미했으나 18세기에 접어들면서 산업화와 영제국의 확대 그리고 국제무역의 번영에 힘입어 급속하게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
원래 런던은 제정 로마시대에 브리튼 섬에 주둔하는 로마군의 주요 병참기지였다. 로마군이 여기에 주둔한 것은 런던이라는 이름의 어원에서 나타나듯이 템스 강 하구에 위치한 지리적 이점 때문이었을 것이다. 라틴어 ‘civitas’는 도시라는 뜻 외에 도시민 자격과 조건 또는 도시민의 권리라는 추상적인 의미도 가진다. 브리튼 섬에서는 오직 런던만이 이런 의미를 충족할 수 있는 도시였다. 현재 구 런던 시를 가리키는 ‘시티(the City)’라는 표현이 바로 이를 말해 준다.
그렇다고 해서 런던이 중세 초기부터 정치적 수도였던 것은 아니다. 노르만왕조와 그 뒤를 이은 플랜태지닛(Plantagenet)왕조의 왕들은 전국을 순행하면서 통치하는 관행을 지켰다. 왕과 신하들이 상당 기간 머무는 장소로는 런던뿐 아니라 브리스톨이나 요크 같은 지방 도시들도 포함되었다. 그러나 백년전쟁 이후 왕의 통치는 주로 웨스트민스터 궁(Palace of Westminster)을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의회 또한 같은 장소에서 열리기 시작했다. 15세기에 이르러 런던은 상업 중심지 시티와 행정 중심지 웨스트민스터 시구를 포함하는, 명실상부한 수도가 되었다.
런던의 성장은 근대국가 영국의 발전과 동일한 궤적을 그리며 전개되었다. 17세기 후반 이래 영국은 경쟁국 네덜란드와 프랑스를 제치고 국제무역과 해외 식민지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했다. 이러한 발전 과정은 금융혁명, 산업혁명, 영제국 형성으로 이어졌다. 바로 이 같은 변화가 런던의 도시 풍경에 그대로 각인되었다. 1660년대에 ‘대역병’이나 ‘대화재’ 같은 재앙을 겪기도 했지만, 런던은 영국의 발전과 병행해 급속하게 성장했다.
1일차 런던 관광
해가지지 않는 대영제국의 심장 런던
영국의 수도로1,600㎢의 면적에 약 800만 이상의 인구가 거주하고 있습니다.
소호(SOHO)지구를 중심으로 두 개의 시로 나뉘어지는데 동쪽은 이스트 엔드로 서민적인 분위기를 접할 수 있으며, 서쪽은 웨스트엔드로 귀족적이고 화려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어 대부분의 관광지가 이곳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1인당 녹지율이 세계 제일로 꼽힐 만큼 도시 곳곳에서 녹지와 공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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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런던, 약 2시간 30분 소요]
런던의 대표적인 상징물.
템스 강 상류에 세워진 타워 브리지는 국회의사당의 빅 벤과 함께 런던의 랜드마크로 꼽히는 건축물이다. 영국의 호황기였던 1894년에 총 길이 260m로 완성되었는데, 설계자는 호레이스 존스다. 양 옆으로 솟은 거대한 탑이 있는 우아한 도개교(跳開橋)이며, 도개교를 매단 두 개의 탑은 높이 50m의 철골 탑이다. 당시 런던 탑과의 조화를 고려하여 고딕 양식으로 지어졌다. 탑에는 1,000t이나 되는 다리를 들어 올리기 위한 동력 장치가 있다. 지금은 증기 엔진이 아닌 전기 모터를 사용하지만 다리를 들어 올리는 유압의 원리는 당시와 동일하다고 한다. 탑 안에는 도개교의 원리를 알 수 있는 타워 브리지 전시관(Tower Bridge Exhibition)이 있으며 탑이 건설되었던 당시의 증기 엔진을 전시하고 있다.
타워 브리지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던 두 개의 다리를 각각 양쪽으로 들어 올리는 이엽도개교이다. 템스 강의 조수 간만의 차 때문에 배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세워진 다리로 준공 당시에는 1년에 6,000회 정도 다리가 개폐되었지만 대형 선박이 지나다니는 횟수가 줄면서 현재는 200회 정도로 줄어들었다. 대형 선박이 지나갈 때마다 개폐형으로 만들어진 다리 가운데가 분리되어 양쪽으로 서서히 들리기 시작해 여덟 팔(八)자 모양이 되었다가 거의 90도 가까이 세워지는 모습은 많은 관광객들이 보고 싶어 하는 장관이다. 다리가 들리게 되면 양 탑의 문이 닫히고 브리지 양쪽의 차선은 통제된다.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탑 위로 올라가면 유리 통로로 된, 2개의 탑을 연결하는 인도교가 나오는데 브리지 아래의 템스 강은 물론 멀리 런던의 경치를 바라보기에 더할 나위없는 최고의 전망대다. 템스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 중 가장 야경이 아름답다는 평을 듣는 만큼 밤 하늘을 배경으로 조명을 받아 하얗게 빛나는 타워 브리지는 빼놓을 수 없는 런던의 명물이다.
런던의 상징인 타워 브리지는 템즈강 하류에 자리잡고 있는 빅토리아 스타일로 건축된 교각이다. 호레이스 존스 경의 디자인으로 1887년에 착공해 8년간 거친 공사 끝에 1894년에 완공되었다. 100년이 넘는 시간동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타워 브리지는 크고 작은 고딕풍의 첨탑이 있어 마치 동화속에 나오는 중세의 성을 연상시킨다. 교각 중앙이 개폐식으로 되어 있어 큰 배가 통과할 때에는 90초에 걸쳐 무게 1,000t의 다리가 수압을 이용해 열린다. 전성기 때는 한 달에 700여 회 열리고 닫혔으나, 요즘은 1주일에 서너 차례 정도만 열린다. 타워 내부에는 타워 브리지와 관련된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담고있는 전시관과 빅토리아 시대부터 있었던 증기엔진실이 마련되어 있어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엔진실에는 타워 브리지가 올라가는 원리를 설명하는 모형이 있다.
2.빅벤
런던 국회의사당 동쪽 끝의 거대한 시계탑. 빅 벤(Big Ben)은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사원 북쪽 끝에 있는 시계탑에 딸린 큰 종에 대한 별칭이다. 시계탑의 정식 명칭은 엘리자베스 타워이지만 흔히 종뿐만 아니라 시계탑 자체도 빅 벤이라고 부른다. 시계탑의 4면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자명종 시계가 달려 있고, 시계탑 자체도 독립되어 세워진 것들 가운데 세 번째로 높은 것이다. 2009년 5월 31일 건립 150주년을 축하하는 행사가 시계탑에서 있었다. 1858년에 세워진 빅벤은 많은 영화에서 런던을 상징하는 장소로 등장하였다. 본래 웨스트민스터 궁전 건축 당시 시계탑에 붙여졌던 이름은 성 스티븐 타워(St. Stephen Tower), 종에 붙여졌던 이름은 그레이트 벨이었지만 모두 공식 제정된 명칭은 아니었으며 건설 책임자였던 벤저민 홀 경의 거구에서 유래한 '빅벤'이라는 이름이 더 많이 통용되면서 이들 이름은 잊혔고, 2012년 엘리자베스 2세의 즉위 60주년을 기념하여 빅 벤은 '엘리자베스 타워'라는 공식 명칭을 갖게 되었다.
1834년 10월 16일 옛 웨스트민스터 궁전이 화제로 소실된 뒤 새로운 의사당의 건축을 책임지게 된 찰스 배리는 시계탑을 설계에 집어넣었다. 찰스 배리는 신고딕주의 양식에 따라 건물들을 설계하였으며, 시계탑의 디자인은 랭커셔의 스카리스블릭 홀과 같은 건축물을 설계하여 고딕 양식의 부흥에 일조한 오거스트 푸긴에게 맡겼다. 푸긴은 디자인을 마친 후 광증으로 십여년을 고생하며 살다가 사망하였기 때문에, 이 시계탑은 푸긴의 마지막 작품이기도 한다. 푸긴은 "내일 배리가 이 아름다운 시계탑의 디자인을 가지러 온다는 말을 듣고, 나는 이 보다 더 바쁜적이 없을 정도로 일했다"고 적었다.푸긴은 높이 316 피트(96.3 m)의 고딕 양식 탑을 디자인하였다.
시계 역시 푸긴이 디자인 한 것으로 한 면이 7 m 인 철제 틀과 312 조각의 오팔글라스를 사용하여 스테인드글라스와 같이 장식하였다. 시계의 눈금은 금도금하였고, 태두리에 라틴어로 "오 주여, 우리의 여왕 빅토리아 1세를 보호하소서"(DOMINE SALVAM FAC REGINAM NOSTRAM VICTORIAM PRIMAM)라는 글씨를 달았다.
3.국회의사당
중세의 웨스트민스터 왕궁은 1834년 불타 버렸다. 목조 지붕, 둥근 천장의 지하실, 회랑, 그리고 벽 몇 개만 남은 거대한 노먼 홀만이 그나마 살아남았다. 화재 당시에도 이미 재건축을 고려하고 있었는데, 이 지경이 되었으니 더 이상 핑계를 대며 머뭇거릴 수가 없게 되었다. 새로운 국회의사당 설계안 공모전에서는 고딕 양식이나 엘리자베스 양식 둘 중의 하나여야 한다고 규정상 못을 박았다. 우승자는 찰스 배리 경(1795~1860년)과 오거스터스 퓨진(1812~1852년)이었다. 성격상, 그리고 종종 견해상으로도 정반대였던 두 사람이었지만, 화기애애하게 작업을 했고, 덕분에 공동 창작의 결과물인 국회의사당이 탄생하게 되었다. 배리 경은 명료함과 상식을 결합한 설계안을 내놓았고, 건축 자체과 관련된 일은 모두 그의 몫이었다. 공모전을 위해 드로잉을 했던 퓨진은 금속, 스테인드글라스, 타일을 사용한 디테일은 책상의 잉크스탠드(잉크병을 고정시켜 놓는 물건)부터 옷걸이에 이르기까지 모두 디자인했다. 배리의 설계는 격조 있고 균형미가 돋보인다. 빅토리아 타워와 시계탑(빅벤)은 이런 좌우대칭 균형을 깨는 주요 요소이다. 국회의사당 덕분에 이후 몇 년간 영국에서는 고딕 양식이 주를 이루었다. 20세기에는 대다수 궁전의 고딕풍 장식을 죽이면서 원래의 가구들은 치워졌지만, 1970년대 후반 이후로는 복원되거나 교체되었다. 1941년 폭격으로 파괴된 하원 의사당은 자일스 길버트 스콧 경(1880~1960년)이 중립적인 고딕 양식으로 다시 지었다.
국회의사당은 영국 정치의 심장부로 현재의 건물은 국회의사당으로 사용되던 웨스트민스터 궁전이 소실되자 팔리 배리경에 의해 새롭게 복원한 것이다. 국회의사당은 국회가 열리는 기간 중에서 방청목적으로 관람이 가능하다. 국회의사당과 함께 런던의 가장 유명한 명물로 뽑히는 것은 1859년 E.베켓의 설계로 당시 4만 파운드(14t)를 들여 주조된 시계이다. 원래 빅벤이라는 명칭은 당시 공사를 담당한 벤저민 홀(Bensamin Hall)경(卿)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붙인 이름으로서, 원래는 종의 이름이었으나 지금은 시계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종의 지름은 약 274cm, 무게는 13.5t이며 시계탑의 전체 높이는 106m, 시침의 길이는 2.7m, 분침은4.3m이다. 빅벤은 여러번의 실험 끝에 1869년 현재와 같은 200kg의 당목(撞木)을 설치한 이후 114년 동안 별 고장 없이 정확한 시계의 대명사로 불리어왔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의 폭격도 버텨낸 빅벤도 1976년과 1997년에 기계 고장으로 작동이 중단된 적이 있다. 우리나라의 보신각처럼 빅벤은 새해를 알리는 1월 1일에 영국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다.
4.웨스트민스터 사원
영국 왕과 왕비들의 화려한 대관식이 진행되는 사원.
영국 왕실의 웅장한 사원. 명성만큼이나 오랜 역사를 품고 있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은 영국 왕과 위인들이 잠든 곳이다. '수도원 중의 수도원'이라는 의미로 'The Abbey'라고도 불린다. 11세기 참회왕 에드워드가 세운 세인트 페트로 성당이 지금의 수도원의 모체이다. 13세기에 헨리 3세의 지시로 당시프랑스에서 유행했던 고딕 양식으로 완성되었다.
1066년 정복자 윌리엄을 비롯해 엘리자베스 2세에 이르기까지 역대 왕들이 이곳에서 대관식을 올렸으며 또한 이곳에 묻혀 있다. 1997년에는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장례식을 이곳에서 치르기도 했다. 헨리 8세가 캐서린 왕비와의 이혼 문제로 로마 교황청과 대립하면서 영국 내의 로마 가톨릭 교회나 수도원이 모두 몰수되거나 파괴되었지만, 왕실과 관련이 깊었던 이곳은 무사히 파괴를 면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왕이나 여왕의 무덤이 안치되어 있으며 아직도 국가 주요 행사가 이곳에서 치러진다. 지금은 사원의 절반이 국가의 교회로 사용되고, 나머지 절반은 박물관으로 쓰인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안으로 들어가면 대리석과 스테인드글라스가 장엄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격조 높은 영국 왕실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대관식이나 왕족 결혼식 등이 거행되는 휘황찬란한 방은 반드시 둘러봐야 할 곳이다.
1300년경에 만들어진 대관식용 의자를 제단 뒤에서 볼 수 있다. 의자에는 스코틀랜드 왕실과 연합했던 촛대의 돌이 있으니 한번 찾아보자. 또한 헨리 7세의 예배당도 꼭 둘러보기를 추천한다.
성당 내부의 벽면과 바닥은 역대 영국 왕을 비롯해 처칠 등의 정치가나, 셰익스피어, 워즈워스와 같은 문학가, 음악가인 헨델, 과학자 뉴턴 등과 같은 역사적 인물들의 묘비와 기념비로 가득 차 있다. 특히 내부에 전시된 수많은 왕실 관련 유물들이 압권이다.
웨스트민스터는 영국 런던에 있는 고딕 양식의 성공회(영국 국교회) 교회당이다. 이곳은 1643-1647년에 157명의 목사, 상원의원, 하원의원, 스코틀랜드 교회대표들이 모여 장로교 신앙고백서를 제정한 유서 깊은 장소로 유명하다.
그런데 이 교회가 소개될 당시 일본 사전들에서는 'abbey'를 '사원'(寺院)이란 말로 번역하였다. 이를 한국 출판사에서 그대로 원용하여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말에서 '사원'이란 불교의 사찰 또는 회교의 모스크를 가리키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리고 실제로 웨스트민스터 사원은 교회당이다. 따라서 이제부터라도 〈웨스트민스터 교회당〉으로 고쳐 부르는 것이 좋다.
국회의사당과 마주보고 있는 고딕양식의 사원이다. 8세기 경에 처음 세워져 11세기와 13세기에 걸쳐 각각 개축되었으며, 18세기 중반에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수도원 중의 수도원이라는 의미로 The Abbey로도 불린다. 많은 대리석과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된 교회의 내부는 장엄하다 이 수도원과 왕실의 관계는 깊다. 엘리자베스 2세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영국왕이 이 곳에서 대관식을 올렸고, 대부분의 왕이나 여왕이 이 곳에 묻혀있다. 1997년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장례식도 여기에서 치뤄졌다. 처칠, 셰익스피어, 워즈워스, 헨델 등 여러 분야에 걸친 3,000여 명이 넘는 유명인사들이 여기에 잠들어 있다. 시의 서쪽에 있다고 해서 웨스트민스터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현 영국 왕과 왕비가 살고 있는 궁전. 트라팔가 광장에서 피카딜리 서커스를 지나 더 몰(The Mall) 거리를 따라 계속 가면 영국왕실을 상징하는 버킹엄 궁전이 나온다. 버킹엄 궁전은 영국 왕실의 사무실이자 집이며, 국빈을 맞이하는 공식적인 장소이다. 궁전 앞에는 영국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던 빅토리아 여왕의 기념비가 황금빛을 발하며 위풍당당하게 서 있다. 꼭대기에 있는 황금 천사 조각(브리타니아 여신)이 마치 궁전의 수호천사처럼 사방을 환하게 비춰 주고 있다.
버킹엄 궁전은 원래 버킹엄 공작의 집으로 지어졌는데, 1762년 조지 3세가 왕비 샤를 로테를 위해 구입했다. 그 후 조지 4세가 당대 최고의 건축가 존 내쉬에게 명하여 개축했다. 건축 비용이 엄청나게 들어 국민들의 비난을 사기도 했다. 개축 과정이 워낙 중구난방이어서 전체적으로 조화롭지 못한 궁전이 되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그래도 왕실다운 격식과 중후한 분위기를 풍기는 정면은 관광객의 기념촬영에서 빠지지 않는 곳이다.
완성 후 이 궁전에 처음 거주한 사람은 빅토리아 여왕이었다. 그 후 역대 국왕들의 거처로 쓰여 명실상부한 영국 왕실이 되었다. 현재의 여왕 엘리자베스 2세도 평일에는 이곳에 머무른다. 여왕이 궁전에 있을 때는 궁전 중앙의 게양대에 로열 스탠더드(왕의 깃발, Royal Standard)가 내걸린다.
이 궁전은 대영제국의 위용을 자랑하듯 궁전 뒤쪽에 48,000평에 달하는 널따란 정원이 있고 방도 650개가 넘는다. 궁전의 실내 장식도 화려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당시 의회의 견제가 심했기 때문에 다른 유럽의 궁전만큼 화려하지는 않다. 1992년 윈저 성에 화재가 나서 이를 재건하기 위한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그 다음해부터 매년 8~9월 동안 궁전의 일부를 공개하고 있다.
퀸스 갤러리는 왕실의 미술품을 전시하는 곳이다. 반다이크, 렘브란트, 푸생의 그림과 베르메르의 <음악 교실>을 볼 수 있다. 로열 뮤스, 왕립 마구간)는 퀸스 갤러리와 같은 라인에 있는 건물로 버킹엄 궁전과는 별도로 떨어져 있다. 조지 4세 이래 역대 국왕들의 대관식에 사용되었던 명품 마차가 있다. 단, 이 두 곳은 가이드 투어로만 관람이 가능하다. 무엇보다 현재 왕실의 모습을 볼 수 있으니 기회가 된다면 꼭 관람하자. 티켓은 궁전 오른쪽의 그린파크 캐나다 게이트에서 구입할 수 있다.
버킹엄 궁전에서 최고의 하이라이트는 오전 11시 30분(5~7월 매일, 8~4월 격일)에 거행되는 근위병 교대식이다. 교대식이 벌어지는 동안 궁전 앞은 차량이 통제되고 퍼레이드가 펼쳐진다. 그러나 근위병 교대식 일정은 왕실 주요 행사가 있거나 국빈이 궁에 머무르는 경우 예고 없이 바뀌기도 하므로 현지에서 스케줄을 확인해야 한다. 근위병 교대식을 보기 위해 몰려드는 인파가 엄청나므로 요령껏 관람하자. 근위병 교대식은 우선 세인트 제임스 궁전에서 출발해 퍼레이드를 하면서 더 몰을 거쳐 빅토리아 기념비를 돌아 버킹엄 궁전으로 들어간다. 궁전 앞에서 근위병 교대식을 끝내고 나면 다시 병영으로 되돌아간다. 그러므로 이 순서를 잘 활용하는 것이 관람의 노하우이다.
영국인들의 휴식 공간으로 거대한 규모의 공원.
지금의 하이드 파크가 일반인들에게 공개된 것은 찰스 1세가 공원으로 조성한 이후부터다. 그 이전에는 원래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소유지였다가 1536년의 수도원 해산령에 의해 헨리 8세에게 몰수당해 사냥터 등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약 140만m2에 이르는 넓은 공원이기 때문에 이곳에 들어가 있으면 런던 시내 중심가라는 것을 잊게 된다. 관광보다는 여유롭게 산책하기 좋은 곳이지만 400년 역사를 자랑하는 공원답게 볼거리도 많다. 공원에는 길쭉한 모양의 인공호수인 서펀타인 호수가 있다. 호수 위에서 한가롭게 노 젓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으며 수영을 할 수도 있다.
공원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매주 주말과 공휴일에 공원 북동쪽에 마련되는 스피커스 코너다. 누구나 연단에 올라가 어떤 이야기든 할 수 있다는 1872년 이래로 계속된 민주주의 문화다. 가끔 열변을 토하는 사람이 있으면 지나가던 사람들이 박수를 쳐주기도 한다. 비가 올 때는 중지된다고 한다. 공원의 동남쪽에는 음악당이 있어 콘서트가 열리며, 북쪽 베이스워터로드에 면한 벽에 노상전람회가 열리는 시민을 위한 문화의 장소이기도 하다.
원래 버킹엄 궁전에 있던 웰링턴 아치와 마블 아치의 모습도 하이드 파크에서 볼 수 있다. 북쪽에는 피터팬 동상이 서 있고, 서남쪽으로는 고 다이애나황태자비의 기념비가 자리해 있다. 하이드 파크 코너에 있는 앱슬리 하우스는 웰링턴 박물관으로 공개되고 있다.
7. 런던타워Tower of London
영국 런던에 있는 중세시대의 대표적 성채(城砦) 유적으로 1988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영국 런던 템스강 북쪽변에 위치한 중세 시대의 왕궁으로 영국 왕권의 상징이자 노르만 군사건축의 전형적인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11세기에 처음 세워진 이래 왕궁·방어용 성채·국사범의 감옥 및 처형장·무기고이자 왕실 보물 저장고·조폐국 등으로 다양하게 이용되었으며, 영국의 역사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런던타워의 역사는 11세기 노르만의 정복왕 윌리엄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복왕 윌리엄이 1078년에 중앙의 핵심 건물인 화이트 타워를 세웠고, 이어 헨리3세는 1216년부터 1272년까지 내부의 원형 성곽을 건설하였다. 이후에도 증축과 개축이 반복되면서 14세기 무렵 현재와 같은 형태를 갖게 되었다.
런던타워는 견고한 외부 성곽과 해자 안에 크고 작은 타워들이 모인 복합체다. 핵심 건물은 최초에 세워진 화이트 타워인데, 흰빛으로 칠을 해서 화이트 타워라고 불렸으며, 높이가 30m로 11세기에는 런던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 런던타워 안의 주얼리 하우스는 1303년 이래 영국 왕가의 진귀한 보물들을 보관하고 있는 곳이다. 12개나 되는 왕관에 왕홀, 보주, 검을 포함 영국 왕실의 호화로운 보물들이 소장되어 있다. 세계 최대 다이아몬드인 ‘아프리카의 별’과 1837년 빅토리아 여왕을 위해 제작한 2800개의 다이아몬드와 보석으로 장식한 왕관 등은 호화로움 그 자체다.
하지만 런던타워가 세인들 사이에 유명해진 이유는 이곳에서 벌어진 권력과 왕좌를 둘러싼 ‘피의 역사’ 때문이다. 왕족을 비롯한 여러 고위층이 이곳에 유폐되거나 처형되었다. 12세에 왕위에 오른 에드워드 5세와 동생, 앤 블린(Anne Boleyn)을 포함한 헨리 8세의 두 부인, 헨리 그레이의 딸 제인 그레이 등 많은 이들이 이곳에서 처형되었고, 엘리자베스 1세를 비롯해 유폐되었다가 풀려난 이들도 부지기수다.
수세기 동안 영국 왕실의 철벽 요새였던 곳
영국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노르만 건축물인 런던탑은, 정복왕 윌리엄이 런던을 감시하기 위한 성채 목적으로 지었던 이래 위압적인 자태로 템스 강을 내려다보아 왔다. 런던탑은 노르만 군사 건축 양식을 보여 주는 전형적인 예이며, 중세에 지어진 다른 많은 요새의 본보기가 되어 왔다는 점에서 198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1603년까지 이곳은 왕궁이었으며, 군사 본부와 병영, 감옥, 반역죄를 저지른 이들을 사형에 처하는 처형장이 있었다. 한때는 왕립 천문대와 왕립 동물원이 이곳에 들어서기도 했다. 현재 런던탑에는 대관식 때 쓰는 보물이 보관되어 있고, 무기고가 있으며, 까마귀들이 음침한 분위기로 탑 주변을 서성대고 있다. 까마귀들이 영영 떠나 버리면 탑이 무너질 거라는 전설이 있어, 이 까마귀들은 날개가 잘린 상태다.
런던탑은 처음에는 임시 목조 요새였다가 높이 27m에 두께 4.5m의 돌 벽을 지닌 육중한 성으로 대체되었는데, 이 건물이 지금도 서 있는 '화이트 타워'이다. 방어 시설은 1190년대에 더욱 강화되었으며, 1235년 동물원에 처음으로 들어온 동물들표범 세 마리이 도착하여 대중들이 볼 수 있도록 전시되었다. 1200년대 후반에 외벽이 지어졌고 '반역자의 문'이 생겼다. 조폐국과 대관식 보물이 이곳에 소장된 것은 1300년대부터였으며, 중세에 들어서는 대관식 행렬이 종종 런던탑에서 출발하곤 했다.
런던탑에서는 오랜 기간 동안 고문과 유혈 사태가 자행되어 왔다. 헨리 6세가 이곳에서 살해되었고, 에드워드 4세의 아들, 두 명의 '어린 왕자들' 역시 '블러디 타워'에서 살해되었다. 왕비 앤 볼린은 '타워 그린'에 있는 요새에서 참수 당했으나, 대부분의 경우 처형은 외부의 타워 힐에서 이루어졌고 그 시체는 음울한 분위기의 예배당인 '세인트 피터 아드 빈쿨라'(사슬에 매인 성 베드로)로 옮겨졌다. 가이 포크스와 그의 공모자들은 1605년 이곳에서 심문받았다. 이곳에는 유령이 매우 많다.
8.대영박물관British Museum
세계적으로 희귀한 고고학 및 민속학 수집품들을 소장한 박물관으로, 런던의 블룸스버리 지역에 있다. 왕립학사원장을 지낸 의학자 한스 슬론경(Sir Hans Sloane)의 6만여 점에 이르는 고미술(古美術)·메달·동전·자연과학 표본류 등 방대한 소장품을 1753년 정부가 매입할 것을 의회에서 의결하고, 로버트 코튼경(Sir Robert Cotton)의 장서와, 옥스퍼드의 백작 로버트 할리(Robert Harley)의 수집품들을 합하여 1759년에 설립, 일반에게 공개하였다.
초기에는 17세기 프랑스 고성풍(古城風)의 진귀한 건물로 그레이트 러셀가에 있던 몬터규(Montagu) 후작의 저택에 전시되었다. 그러나 소장품이 증가하자, 1824년부터 로버트 스머크경(Sir Robert Smirke)의 설계로 동쪽에는 장서용, 서쪽에는 이집트 조각 전시용의 갤러리가 먼저 세워지고, 1852년 중앙부의 옛 건물 자리에 신고전양식(新古典樣式)으로 현재의 정면 건물이 완공되었다.
1881년 자연사 소장품들은 사우스켄싱턴에 신축한 자연사박물관으로 옮기고, 박물관 안의 도서관은 몇몇 주요 기관들의 장서를 합하여 영국도서관으로 독립하였다. 또한 1970년부터 민족학 부문 소장품들은 웨스터민스터의 벌링턴가든스에 있는 인류박물관에서 전시하고 있다.
주요 전시품에는 1802년 프랑스에서 얻은 이집트의 고고학 자료, 1806년에 수집한 타우네레, 1816년에 수집한 엘긴 대리석 조각, 이밖에 크니도스의 데메테르 여신상, 소크라테스의 소형상(小形像), 페리클레스의 반신상(半身像), 율리우스 카이사르 및 로마 제왕들의 흉상 등이 있다.
이외에 아시리아의 날개 달린 황소, 칼데아의 유물, 헨리 8세 궁전의 금붙이 세간, 중앙아시아의 옥수스의 유보(遺寶), 중국의 벽화·도자기 및 불상 등이 있다. 그밖에 성서의 알렉산드리아 사본, 색슨의 연대기, 마그나카르타, 옛날 인쇄·제본의 견본 등은 하나의 문헌으로서도 귀중하다. 2000년 11월 396.72㎡ 규모의 한국관이 신설되었는데, 구석기 유물부터 청자·백자 등 조선 후기 미술품 250여 점을 전시하고 있다
18세기 중반, 영국의 몇몇 예술품 수집가들이 자신들의 컬렉션을 국가에 기증하였고, 이들은 블룸즈버리의 몬태규 하우스라는 건물에 전시되었다. 19세기 초, 이 컬렉션과 조지 4세로부터 사들인 장서를 함께 소장하기 위한 미술관을 짓기 위한 계획이 수립되었다. 건축가인 로버트 스머크 경(1780~1867년)은 세계 최고 수준의 컬렉션에 걸맞은, 안뜰을 중심으로 한 웅장한 고전주의 복고 양식의 건물을 구상하였다.
영국 박물관은 몇몇 눈에 띄는 내부를 자랑하는데, 이집트 컬렉션을 소장하고 있는 웨스트 윙과 킹스 라이브러리는 왕실의 장서를 위해 특별히 설계한 것으로 진보적인 철근 콘크리트 구조물이다. 웨스트 윙과 킹스 라이브러리 모두 영국 박물관이 처음 지어졌을 때의 분위기와 장식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또 하나는 원형 리딩 룸으로, 스머크 경의 동생인 시드니 스머크 경이 설계하였다.
1857년 리딩 룸이 완성된 뒤에도 건물은 수차례에 걸쳐 확장과 개축을 거듭했다. 1900년부터 1914년 사이에는 북쪽으로, 1930년대에는 서쪽으로 증축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영국 박물관의 가장 대규모 변신은 20세기 말에 국립 도서관이 세인트 판크라스로 옮기면서 찾아왔다. 그레이트 코트—리딩 룸 주위를 아우르는 구역—를 비우고 리모델한 뒤 노먼 포스터 앤 파트너스 사(社)가 놀라운 유리 천장을 설치하였다. 덕분에 관람객들에게는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미술관 중 하나에서 느긋하게 시간을 보낼 이유가 하나 더 늘어난 셈이다.
영국 > 런던 > 도시개요 | |
런던 |
2천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영국의 수도 런던은 1,600㎢의 면적에 800만 이상의 인구가 거주하고 있는 유럽 최고의 도시이다. 과거와 현재가 조화롭게 공존하는 도시 런던은 영국의 무역, 경제, 정부의 중심인 동시에 유럽에서 빠뜨릴 수 없는 필수 관광지이다. 그래서인지 많은 이들이 유럽 여행을 시작하는 관문도시로 이곳 런던에서 선택한다. | |||||||||||||||||||||||||||||||||||||||||||||||||||||||||||||||||
런던의 평균적인 기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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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 런던 > 여행길잡이 | |
런던에서 인터넷 이용하기 |
요즘 유럽에서도 쉽게 인터넷 PC방을 이용할 수 있다. 도시에 따라서 이용요금이 비싼 경우도 있지만, 대개의 경우는 우리보다 조금 비싼가격, 느린 속도로나마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다. 호텔을 이용한다면 30분정도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경우도 많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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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에서 뮤지컬 보기 |
웨스트 엔드의 극장가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레미제라블, 미스사이공 등의 연극, 뮤지컬 등을 관람하는 것을 권한다. 뿐만아니라 다양한 발레, 오페라, 락음악회등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뮤지컬의 가격은 10-35파운드로 자리에 따라 가격에 차이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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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투어와 박물관 관람 |
대개 관광객들이 런던을 1박2일의 촉박한 관광을 한다. 하지만 영국에서 3일의 여유가 있다면 런던 동부와 동남부의 관광을 해보는 것을 권한다. 관광객과 주민들에게 인기있는 그리니치, 북적대는 시장, 훌륭한 건물들. 그리고 독특한 해상환경은 관광을 즐기기에 더할나위 없는 장소이다. Charing Cross에서 그리니치 또는 Maze Hill역까지 기차교통이 용이하다. |
대영 박물관 | 타워 브리지 | 버킹검 궁전 | 웨스트민스터 사원 |
★ 세계 3대 박물관, 대영 박물관 대영 박물관은 세계 3대 박물관 중 하나로 손꼽히는 곳으로 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자랑합니다. 처음엔 웅장한 그리스 신전을 연상케 하는 외관에 놀라게 되고, 다음으론 엄청난 전시물들에 놀라게 될 만큼 규모가 거대합니다. 이집트의 미라, 람세스 2세의 석상, 고대 문자가 쓰인 로제타 석 등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 관람실 사정에 따라 관람 작품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
국회의사당의 빅벤(Big Ben),
런던의 상징으로 템스 강과 고딕 양식의 탑이 어우러진 타워 브리지를 감상합니다.
세계 3대 박물관 중 하나인 대영 박물관의 내부를 관람합니다. [약 1시간 소요]
고대 문자가 쓰인 로제타석과 람세스 2세의 석상, 이집트의 미라 등을 보실 수 있습니다.
※ 관람실 사정에 따라 관람하시는 작품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대영 박물관 | 타워 브리지 | 버킹검 궁전 | 웨스트민스터 사원 |
★ 세계 3대 박물관, 대영 박물관 대영 박물관은 세계 3대 박물관 중 하나로 손꼽히는 곳으로 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자랑합니다. 처음엔 웅장한 그리스 신전을 연상케 하는 외관에 놀라게 되고, 다음으론 엄청난 전시물들에 놀라게 될 만큼 규모가 거대합니다. 이집트의 미라, 람세스 2세의 석상, 고대 문자가 쓰인 로제타 석 등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 관람실 사정에 따라 관람 작품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