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평온한 시간은 언제 오는가?
젊음의 시절이 지나고 나이를 먹으면서
어느 때면 세상의 모든 일에 놀라지 않고,
개의치 않고서 바라볼 수가 있을 것인가?
하고 나 자신에게 묻고 또 물었지만
내가 나자신에게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살아갈수록 알 수 없는 것이 그것이라는 것을
깨닫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에 대한 해답을 헤르만 헤세로부터 들었다.
“나이 마흔과 쉰 사이의 십 년은 감정이 풍부한 사람들과
예술가들에게는 힘겨운 세월이다.
삶과 자기 자신을 적절히 조화시키기 어렵고, 불안해서
종종 불만족에 시달리는 시기다.
그렇지만 그다음에는 평안한 시간이 다가온다.
나는 그것을 나 자신한테서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었다.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며 심하게 가슴앓이를 하는 젊음이
아름다웠던 것처럼 나이를 먹는 것과 성숙해 가는 것에도
아름다움과 기쁨이 있다.“
헤르만 헤세의 <아름다운 죽음에 대한 사색>에 실린 글이다.
나이를 먹어야 알 수 있다는 그 말에 동의하면서도,
나이를 먹을수록 더 불안해지고, 쓸쓸한 것은 그 무슨 연유인가?
곡성의 도림사의 명부전에서 만난 나한들은 무심히 사색에 잠기기도 하고,
먼 산을 바라보기도 하고, 조용히 미소를 지으면서 앞을 바라보고 있는데,
나는 그 나한들을 바라보면서도, 내 삶의 이유를 묻고 또 물었으니,
그제는 정읍여고학생들과 동학의 현장답사,
어제는 전북환경운동연합 친구들과 곡성지역 답사로
도림사, 태안사, 그리고 보성강과 유곡나루를 답사했으니,
신기하다, 신기해 햇빛 쏟아지던 그 섬진강,
살아갈수록 어려운 것이 삶이고,
그 삶은 시시각각 내 앞에 다른 삶을 펼쳐 놓고 나에게 선택을 강요한다.
말로는 아니, 생각으로도 내려놓고 또 내려놓아야 한다면서도,
내려 놓지 못하는 그 무엇,
그 무엇의 실체를 알지 못하고, 찾고 또 찾는 마음이여,
등불을 들고 내가 나를 찾는 그 세월이 지나가고 또 지나가는데,
2019년 11월 4일, 월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