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4:1~4 / 떡으로만 살지 못하는 인간
(눅 4:1)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강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눅 4:2)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더라 이 모든 날에 아무것도 잡수시지 아니하시니 날 수가 다하매 주리신지라
(눅 4:3) 마귀가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이 되게 하라
(눅 4: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기록된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였느니라
예수님은 지금 메시야 사역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메시아 사역을 준비하기 위해서 요한에게 물세례를 받으시고 하나님께 성령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말씀을 받으셨습니다.
오늘 말씀에는 메시아의 사역 준비를 위해서 사탄의 시험을 이기십니다.
이스라엘에 가면 지금도 예수님이 시험받은 민둥산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곳에서 마귀에게 세 가지 시험을 받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받은 시험을 세 주일에 걸쳐서 배우고자 합니다.
오늘은 그 첫 번째 말씀으로 물질과 현실에 관한 시험입니다.
물질과 현실 문제에 대한 시험은 예전부터 지금까지 지속되어 온 문제입니다.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 물질주의 시대에 물질과 현실 문제에 대한 시험을 이기고 성령의 역사를 힘 있게 이루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1절 예수님은 세례받으실 때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셨습니다. 그 후에 예수님은 광야에서 40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며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성령에게 이끌리며 마귀에게 시험을 받을 것을 볼 때 우리는 두 가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이 시험을 받으시는 것이, 하나님 뜻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마귀의 종에서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먼저 시험을 받으시고 이기셔야 우리를 이해하시고 우리가 시험을 이길 수 있도록 도우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은 육신을 가지셨습니다.
물욕도 있었고, 안일 욕도 있었고, 마음의 자랑에 대한 욕구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시험에 들지 않고 시험을 이기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시험받는 우리를 이해하시고 도우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시험을 받을 때 예수님께 나가서 기도하면 예수님은 우리를 친히 이해하시고 도와주십니다.
둘째, 성령이 충만하면 마귀의 시험이 온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가 있을 때 사탄의 시험이 있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있을 때 사탄의 역사가 있습니다. 이런 사탄의 시험을 이기면 더 큰 성령의 역사가 있습니다.
그러면 또 사탄의 시험이 있고, 이것을 이기면 그보다 더 큰 성령의 역사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사탄의 시험이 있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시험이 있는 것을 기쁘게 여기라고 했습니다. 시험이 있으면 성령이 나에게 일하시고 있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시험이 찾아오는 것을 기쁘게 여기고, 기대감을 갖고 사탄을 싸워 이겨야 합니다.
2~3절 예수님이 받은 첫 번째 시험은 바로 물질을 통해서 오는 시험입니다.
예수님은 40일을 굶으셨습니다. 육신적으로 거의 한계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마귀는 예수님에게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면 돌로 떡이 되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사탄은 떡(물질) 문제가 말씀이나 영혼의 문제보다 더 중요하다고 유혹하였습니다.
이 유혹에 넘어가면 다음에도 같은 상황이 되면 말씀보다 떡을 더 우선시하여 결국은 물질의 노예가 됩니다. 문제는 떡과 말씀 중에 어느 것을 더 중시하느냐는 가치관의 문제입니다. 말씀보다 떡을 택하면 잠시 육신의 만족이 있습니다.
풍요롭고 편리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잃고 영생을 잃어버립니다.
돈이 많다고 결코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돈 많은 것이, 때로는 불행의 씨앗이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돈이 많으면 사람들이 대체로 교만해집니다.
우리나라는 부유해지고 나서 이혼율도 자살율도 늘어났습니다.
4절 예수님은 사탄의 시험을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물리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에는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서 떡은 중요하지만, 떡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떡(돈)보다 하나님이 중요하고 사람이 더 중요합니다. 돈은 항상 하나님 자리에 올라가고자 합니다. 돈이 사람에게 만족을 줄 것처럼 생각하게 하고 돈이 있으면 모든것을 다할 수 있다는 착각을 심습니다. 그러나 돈으로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참 만족을 주는 것을 돈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영생을 주는 것은 돈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돈이 있으면 병원에 갈 수 있고 맛있는 것을 먹을 수 있지만 돈이 하나님 나라를 주지는 못합니다. 우리는 돈이 많아질 때 폐해도 알아야 합니다. 돈이 많아질 때 사람과의 관계가 깨어지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집니다.
사람은 재벌이 되고 부자가 되기를 원하지만, 재벌가들의 자녀들이 화목한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삼성, 현대, 한화 어디 한 곳 자녀들이 싸우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차라리 돈이 없는 집이 화목합니다. 부부관계나, 부자관계도 돈 때문에 깨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이를 알고 돈보다 사람을 중시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한 광인을 살리기 위해서 이천 마리의 돼지를 희생시키셨습니다.
지금으로 하면 한 광인을 살리기 위해서 20억을 쓰신 것입니다.
우리가 가난하게 살라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는 돈보다 사람을 중시하고 하나님을 중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돈이 있어도 하나님께 드리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에 쓸 수 있어야 합니다. 돈을 벌수록 더 십자가를 사랑하고 기도하고 말씀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고사성어 중에 형제투금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형제가 길을 가다가 동생이 금을 주웠습니다. 금을 줍고 나서 동생은 형제에 대해서 의심이 생겼습니다. 형이 자신에게 돈을 빼앗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둘이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널 때 동생이 금을 물에 던졌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어떤 사람은 그 금을 팔아서 돈을 둘이 나누면 더 좋지 않으냐고 하였습니다. 아주 지혜로운 말입니다. 이것이 기독교 물질관입니다.
기독교는 돈을 천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금을 팔아 형제가 서로 나누고 더 필요한 사람에게 돈을 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돈이 죄가 아니라 하나님이나 사람보다 돈을 더 사랑하는 것이 죄입니다. 예수님은 돈으로 친구를 사귀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돈으로 하나님을 친구 사귀고 사람을 친구 사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