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 리 (二) / 김수영
돈을 버는 거리의 부인이여
잠시 눈살을 펴고
눈에서는 독기를 빼고
자유로운 자세를 취하여보아라
여기는 서울안에서도 가장 번잡한 거리의 한 모퉁이
나는 오늘 세상에 처음 나온 사람모양으로 쾌활하다
피곤을 잊어버리게 하는 밝은 태양 밑에는
모든 사람에게 불가능한 일이 없는 듯하다
나폴레옹만한 호기는 없어도
나는 거리의 운명을 보고
달큼한 마음에 싸여서
어디고 가야 할지 모르는 마음---
무한히 망설이는 이 마음은 어둠과 절망의 어제를 위하여
사는 것이 아니고
너무나 기쁜 이 마음은 무슨 까닭인지 알 수는 없지만
확실히 어리석음에서 나오는 것은
아닐텐데
---극장이여
나도 지나간 날에는 배우를 꿈꾸고 살던 때가 있었단다
무수한 웃음과 벅찬 감격이여
소생하여라
거리에 굴러다니는 보잘것없는 설움이여
진시왕만큼은 강하지 않아도
나는 모든 사람의 고민을 아는 것같다
어두운 도서관 깊은 방에서 육중한 백과사전을 농락하는 학자처럼
나는 그네들의 고민에 대하여만은 투철한 자신이 있다
지이프차를 타고 가는 어느 젊은사람이
유쾌한 표정으로 활발하게 길을 건너가는 나에게
인사를 한다
옛날의 동창생인가 하고 고개를 기웃거려보았으나
그는 그사람이 아니라
○○ 부의 어마어마한 자리에 앉은 과장이며 명사이다
사막의 한 끝을 찾아가는 먼 나라의 외국사람처럼 나는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다
지금은 이 번잡한 현실 우에 하나하나 환상을 붙여서 보지 않아도 좋다
꺼먼 얼굴이며 노란 얼굴이며 찌그러진 얼굴이며가 모두 환상과 현실의 중간에 서서 있기에
나는 식인종같이 잔인한 탐욕과 강렬한 의욕으로 그중의 하나하나를
일일이 뚫어져라 하고 들여다보는 것이지만
나의 마음은 달과 바람모양으로
서늘하다
그네, 마지막으로
돈을 버는 거리의 부인이여
잠시 눈살을 펴고
찌그러진 입술을 펴라
그네의 얼굴이 나의 눈앞에서
어린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도르라미모양으로 세찬 바람에 매암을 돌기 전에
도회의 흑점---
오늘은 그것을 운운할 날이 아니다
나는 오늘 세상에 처음 나온 사람모양으로 쾌활하다
---코에서 나오는 쇠냄새가 그리웁다
내가 잠겨있는 정신의 초점은 감상과 향수가 아닐 것이다
정숙이 나의 가슴에 있고
부드러움이 바로 내가 따라가는 것인 이상
나의 긍지는 애드발룬보다는 좀더 무거울 것이며
예지는 어는 연통보다도 훨씬 뾰족하고 날카로울 것이다
암흑과 맞닿는 나의 생명이여
거리의 생명이여
거만과 방만을 잊어버리고
밝은 대낮에라도 겸손하게 지내는 묘리를 배우자
여기는 좁은 서울에서도 가장 번거러운 거리의 한모퉁이
우울 대신에 수많은 기폭을
흔드는 쾌활
잊어버린 수많은 시편을 밟고 가는 길가에
영광의 집들이여 점포여 역사여
바람은 면도날처럼 날카러웁건만
어디까지 명랑한 나의 마음이냐
구두여 양복이여 노점상이여
인쇄소여 입장권이여 부채의 여인이여
그리고 여인중에도 가장 아름다운 그네여
돈을 버는 거리의 부인들의
어색한 모습이여
<1955. 9.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