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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틀랜드-에딘버러 Edinburgh
‘북방의 아테네’라 불리며 스코틀랜드의 정치, 문화의 중심지로 번영을 누린 반면, 역사적 사건도 많이 일어난 도시이다. 조지아와 빅토리아 시대의 유서 깊은 건축물로 도시 전체가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구 시가지(Old Town)에서 자갈이 깔린 좁은 골목길을 둘러보고 조지 왕조 시대의 화려한 신 시가지(New Town)를 구경해볼 수 있다. 그리고 칼튼 힐(Calton Hill)에 올라 놀라운 도시 전경을 감상할 수 있다. 도시 전체를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거대한 에딘버러 축제(Edinburgh Festival)가 열리는 여름은 이 도시를 방문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 중 하나이다. 스코틀랜드 행정·문화의 중심지이며, 옛 스코틀랜드 왕국의 수도이다. 런던 북쪽 629km, 글래스고 동쪽 70km, 북해의 포스만(灣) 남안(南岸)에 있다. 해류와 편서풍의 영향으로 기후가 온화하여 겨울에도 월평균기온이 4℃이고 여름은 14℃이다. '근대의 아테네'라고도 불리는 아름다운 도시로 스코틀랜드의 문인 월터 스콧의 기념상, 왕립 아카데미, 프린세스스트리트 정원 등이 이어져 있고, 골짜기 너머에는 에든버러성(城)이 있다.
스코틀랜드의 상징인 에딘버러성
중세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로얄마일 왕자의 거리,
소설 다빈치 코드의 배경이 된 로슬린성당 관광
★ 에딘버러 시내관광 ★
- 에딘버러의 전경이 한눈에 보이는 에딘버러 성을 관광합니다.
- 구시가지의 중심지로서 중세시대로 돌아간듯한 느낌을 주는 로얄 마일을 비롯하여
스코틀랜드 역사의 흔적 성 자일스 성당, 월터 스콧경을 기리기위해 만든 스콧 기념탑
등을 관광합니다.
에딘버러는 북쪽의 아테네로 불린다. 스코틀랜드 행정·문화의 중심지이며, 옛 스코틀랜드 왕국의 수도로서. 런던 북쪽 535km정도의거리에 위치하며, 기후가 온화하여 겨울에도 월평균기온이 4℃이고 여름은 14℃정도로 시원합니다. "근대의 아테네''라고도 불리는 아름다운 도시로 특히 시의 중앙에 동서로 뻗어 있는 프린세스스트리트의 경관은 너무도 아름답습니다.스코틀랜드의 문인 월터 스콧의 기념상, 왕립 아카데미, 프린세스스트리트 정원 등이 이어져 있고, 골짜기 너머에는 에든버러성이 있습니다.
하루코스로-에든버러성-스코틀랜드 위스키센터(위스키의맛과 제조과정등 모든것을 한눈에 볼수있고 밀납인형들의 설명도 들을수있음)-로열마일(에든버러 성에서 동쪽 홀리루드 궁전까지 이어지는 내리막 언덕길로 약 1마일정도거리)--칼튼힐(미완성의 나폴레옹 전쟁 기념관,넬슨 기념관등이 있으며 해질녘의 풍경이 일품)
영국 안 또 다른 나라 스코틀랜드의 수도 에든버러(Edinburgh). 비록 영국으로 묶여 있지만 스코틀랜드인에게 잉글랜드가 그들의 나라가 아니듯 런던은 그들의 수도가 아니다. 이러한 스코틀랜드인들의 긍지와 자존심은 자신들의 수도 에든버러 곳곳에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자신들의 역사와 개성을 뚜렷하게 아로새겨놓았다.
파리의 명성에 도전한다, 에딘버러는 스코틀랜드의 보석 같은 도시, 에딘버러는 보는 순간 탄성을 자아낸다. 잉글랜드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가진 스코틀랜드의 전경을 느낄 수 있는 월터 스콧 기념비, 에딘버러의 상징이자 세계문화유산인 에딘버러성, 중세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로얄 마일을 걷다 보면, 중세시대에 와있는 듯한 착각마저 일으킨다.
[에딘버러]
에든버러시는 18세기에 구시가지의 인구가 급격히 팽창하면서 신시가지를 계획적으로 조성했다.
프린스 스트리트를 경계로 사진의 좌측이 구시가지, 우측은 신시가지다.
비록 인구는 잉글랜드의 10분의 1밖에 안되지만, 골프와 스카치위스키의 원조이자 민속악기인 백파이프와 특이한 타탄으로 만들어진 전통의상 킬트 등 자신들만의 전통을 고유한 정체성으로 확립시킨 스코틀랜드인의 고집은 충분히 가치가 있다.
1.에딘버러 성Edinburgh Castle
영국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 있는 성.
바위투성이 암벽에 초연하게 서 있는 이 성은 아마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유명한 장소일 것이다
에든버러 성은 오래 전 활동을 중단한 화산 꼭대기의 133m 높이에서 에든버러를 지배하며, 성을 향해 올라가는 가파른 절벽이 성의 세 면을 둘러싸고 있다. 비교적 경사가 완만한 동쪽 언덕을 통해 입구로 접근할 수 있다. 전쟁에 상처 입은 성의 역사는 짧게 잡아도 6세기까지 거슬러가며, 어쩌면 그보다 더 오래되었는지도 모른다.
성에서 가장 오래 전부터 남아 있는 건물이자, 아마 에든버러에서도 가장 오래되었을 성 마거릿의 예배당은 스코틀랜드의 데이비드 1세가 1130년경 신앙심이 독실한 자신의 어머니를 기리는 의미에서 지었을 거라 추측된다. 1174년에서 1186년까지 영국인들이 이 성을 점령했으며, 1296년부터 로버트 더 브루스가 1313년 성을 되찾기까지 또 한 차례 영국인의 손에 들어갔다.
이후 성은 왕궁으로 쓰였으며 제임스 4세는 1639년까지 스코틀랜드 의회가 모였던 장소인 그레이트 홀을 지었다. 16세기와 17세기에 들어 성채는 잦은 포위 공격을 받았으며, 1560년에서 1660년까지는 다시 영국인의 손에 있었고, 1689년에는 오렌지 공 윌리엄 때문에 포위당했다.
성 앞에 있는 산책길은 매년 군악 연주회가 열리는 장소이다. 내리닫이 격자문을 통해 성 안으로 도개교가 걸려 있다. 오늘날 남아 있는 건물의 많은 부분은 18세기 혹은 그 이후에 지어진 것이다. '스코틀랜드의 영광들'–스코틀랜드의 왕관, 왕홀, 보검–은 1818년 월터 스콧 경이 처음으로 재발견해내기 전까지 잊힌 채 창고에 갇혀 있었다. 스코틀랜드의 왕이 그 위에 올라서서 대관식을 행했다는(이 돌이 진짜라면 말이지만) '운명의 돌'은 웨스트민스터 수도원에 있다가 1996년 에든버러로 반환되었으며, 거대한 대포 '몬스 메그'는 제임스 2세가 1457년 손에 넣은 것이다.
에든버러 성은 관광 명소로서 대단히 중요하지만, 이외에도 영국군 사령부의 역할도 맡고 있으며 여전히 군이 주둔하고 있다. 이 성에는 또한 스코츠 그레이와 로열 스코츠 연대에 관한 연대 박물관, 스코틀랜드 국립 전쟁 박물관, 스코틀랜드 국립 전쟁 기념관이 있다.
에든버러 성영국 에든버러.
산 위에 자리 잡은 견고한 성으로 에든버러 시내가 사방으로 내려다보인다. 6세기에 이 지역의 수비를 위해서 처음으로 지어졌고 이후 점차 증축되어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으며 한때 왕이 살기도 했다. 성 입구에는 옛날 복장을 한 병사가 보초를 선다.
대연회장에는 스코틀랜드의 독립을 상징하는 ‘운명의 돌(The Stone of Destiny)’이라는 귀한 돌이 보관되어 있는데, 원래 스코틀랜드 왕의 대관식 때 왕으로 임명받은 사람이 왕관을 받기 위해 무릎을 꿇었던 돌이다. 잉글랜드 왕 에드워드 1세가 돌을 빼앗아 갔으나 1996년에 돌려주었다. 에든버러성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인 세인트마거릿 예배당은 데이비드 1세가 어머니를 위해 지은 예배당이다. 일요일을 제외한 매일 오후 1시 정각에 대포를 쏜다.
스코틀랜드 왕가의 상징 로열 마일. 에딘버러를 한눈에 내려다 볼수있는 "칼튼 힐",스코틀랜드 상징 "에딘버러 성"
에든버러시의 랜드마크 역할을 하는 곳은 에든버러 성이다. 바위산 위에 세워진 에든버러 성을 따라 올라가는 길은 중세 도시의 분위기로 가득하다. 애초 지어진 목적 자체가 군사적 요새였기 때문에 궁전의 화려함보다 요새와 성이 갖는 견고하고 투박한 느낌이 강하다. 성 안 대연회장에는 과거 스코틀랜드 왕의 대관식 때 사용되었던 ‘운명의 돌(The Stone of Destiny)’이 전시돼 있다. 스코틀랜드 왕가의 상징인 ‘운명의 돌’은 700년 전 이웃나라 잉글랜드의 왕인 에드워드 1세에게 빼앗겨, 스코틀랜드가 잉글랜드에서 분리된 이후인 지난 1996년에야 돌려받았다.
구시가지에 솟아 있는 이 성은 도시 어디에서도 잘 보이며 그 웅장함으로 에딘버러 성은 에딘버러의 상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7세기에 세워진 에딘버러 성은 현무암과 사암으로 만들어 진 성이 도시의 분위기를 다소 어둡게 만든다는 평도 있지만, 묵묵히 역사의 흐름을 지켜본 성의 느낌을 살려주기도 한다. 이 성에서 가장 오래된 성 마가렛 예배당과 스코틀랜드 왕가의 왕관과 칼, 유물울 전시하는 크라운 룸, 무기박물관 등이 있다.또 성 마가렛 예배당 뒤에 있는 대포 '몬스맥'도 에딘버러 성의 명물이다. 매년 8월 성 앞 야외무대에서 열리는 밀리터리 타투 퍼레이드는 에딘버러의 유명세를 더해주고 있다.
군사 요새로 지어진 에든버러 성은 화려함보다는 견고하다는 느낌을 받게 한다.
에든버러 여행의 핵심은 에든버러 성에서 동쪽으로 약 1마일 정도 떨어진 홀리루드하우스 궁전과 에든버러 성을 연결하는 약 1마일의 거리인 로열 마일이다. 귀족들만이 지날 수 있었다던 로열 마일은 이제 도로 양편으로 세인트 자일스 대성당, 시립박물관, 천문관측대, 위스키를 모아놓은 스카치 위스키 헤리티지 센터 등이 한데 모여있어 언제나 여행자가 북적이는 곳이다.
다양한 문화 축제로 가득한 도시
8월 중순부터 열리는 에든버러 국제 페스티벌 기간을 맞춘다면 더할 것 없는 눈요기를 할 수 있다. 에든버러 성과 로열 마일에서 열리는 수많은 공연과 각국에서 방문한 인파들의 인산인해로 장관을 이룬다. 사실 에든버러를 세계에 알리는데 가장 큰 기여를 한 것이 바로 에든버러 국제 페스티벌이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유럽인들에게 가해진 전쟁의 상흔을 치유한다는 목적으로 시작한 이래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로 열리는 문화예술 축제로 자리 잡았다.
주최측으로부터 공식적인 초청을 받지 못한 무명의 공연단체들은 로열 마일 인근에서 시민들을 대상으로 무료 공연을 펼친다. 사전심의나 선정과정 없이 누구나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고 관객들에게 어필할 수 있다는 장점을 바탕으로 매년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에든버러 페스티벌의 백미는 군악대 연주(Military Tattoo)다. 에든버러 성 앞에서 펼쳐지는 이 화려한 공연에서는 스코틀랜드의 전통악기인 백파이프와 드럼을 둘러맨 군악대를 선두로 세계 각 나라의 군악대들이 음악 퍼레이드를 벌인다. 축제기간 동안 일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밤 열리는 이 공연을 보기 위해 매년 에든버러를 방문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이다.
신시가지에서 가장 많은 여행자들의 발을 인도하는 목적지는 시내 어디서나 보이는 스코틀랜드의 대문호 월터 스콧 경의 기념탑이다. 월터 스콧 경의 기념탑은 그의 유언대로 오래된 탑처럼 보이게 시커먼 사암석으로 고딕 탑을 쌓아올려, 마치 영화에서나 봤던 기괴한 구조물을 떠올리게 한다. 영원한 라이벌 잉글랜드에 대한 경쟁심으로 영국에서 제일 높은 트리팔가 광장의 넬슨탑 보다 5m 더 높이 올렸다는 후일담이 있을 정도로 스코틀랜드인의 자부심이 넘쳐나는 조형물이다.
61m 높이의 기념탑에 올라가기 위해서는 2백87개의 계단을 걸어 올라가야 한다. 성인 남성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지만 꼭대기에 다다랐을 때는 그만한 보상이 기다리고 있다. 층계마다 스콧의 소설에 나오는 64명의 인물조각상이 무감각한 다리 근육을 위로해주고 마침내 꼭대기에 서면 시원한 바람 속에 에든버러 시가지 전경을 내려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중세와 근대를 넘나드는 전통적 건축물로 가득 찬 에든버러 거리의 모습은 다양한 문화유산을 원형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북쪽의 아테네’ 혹은 ‘근대의 아테네’로 불리기도 한다. 이러한 찬사는 거대 제국 로마에 대한 완강한 저항과 숙명의 이웃 잉글랜드와의 길고도 길었던 투쟁에도 문화의 가치를 깨닫고 지켜낸 스코틀랜드 국민들에게 내려져야 할 것이다.
자신들의 전통을 고수하면서도 다른 국가의 여행자가 예술적 감성을 뽐내면 그들에게 박수를 보내며 호응하는 에든버러 시민들의 모습은 각기 다른 문화들이 어떻게 앙상블을 이뤄내는지를 잘 보여준다. 아시아에 한국 문화의 힘을 각인시킨 우리가 눈여겨볼 대목이다.
에든버러 성(Edinburgh Castle)은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 있는 성이다. 캐슬 록이라는 바위산 위에 세워진 고대의 요새로 에딘버러의 상징이다. 스코틀랜드에서는 글래스고의 켈빈그로브 미술관 및 박물관 다음으로 많은 관광객이 찾아온다. 인간의 정착은 기원전 9세기 전후부터로 알려져있다. 성내에서 가장 오래된 12세기 초기의 건축물인 세인트 마가렛 예배당을 제외하면 성의 건축물의 일부는 16세기 이전의 것이다. 많은성이 마찬가지로 에딘버러 성은 군사 활동의 중심지였다. 에딘버러 성은 아직까지 행사용으로 주둔 부대가 있는 몇 안되는 성이다.
에딘버러성
2.로슬린 성당
음악코드란 이 성당 아치에 새겨진 기하학적 상징물로 13인의 천사 음악가들과 213개의 입방체를 일컫는다. '다빈치 코드'의 로슬린성당 600년만에 '비밀 코드' 해독
로이터 통신은 1일(현지시각) 지난 600년간 비밀에 싸여왔던 이 상징물의 신비가 토마스 미첼(75) 부자(父子)에 의해 풀렸다고 밝혔다. 아버지는 공군 암호 해독사 출신 음악가이고 아들은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다.
해독 결과 상징물은 중세 찬송가 음악임이 밝혀졌다. 지난 27년간 해독에 매달려온 부자는 이것을 ''프로즌 뮤직(frozen music)''이라고 해석했다.
로슬린 성당
「다빈치 코드」속 성배 묻힌 곳, 로슬린 성당
소설 ‘다빈치 코드’의 마지막 대목에서 성배가 묻힌 곳으로 등장한 스코틀랜드 로슬린 성당 기둥의 ‘조각 암호’가 600년만에 풀렸다고 로이터 통신이 최근 보도했다.
영국 공군 암호해독 요원 출신인 토마스 미첼(75)과 작곡가인 아들 스튜어트는 이 성당 기둥에 새겨진 기하학적 상징물들이 중세 찬송가란 사실을 밝혀냈다. 기둥에 조각된 13인의 천사 음악가들과 213개의 기하학 무늬를 해독하는 데 27년 동안 매달려온 토마스는 이 조각들을 ‘얼어붙은 음악’에 비유했다.
미첼 부자는 이 음악을 ‘로슬린 성악곡’이라 부르고, 노랫말을 붙여 현대적 찬송가로 재현해냈다. 이들은 18일 찬송가를 일반에 공개하는 음악회를 열 계획이다.
15세기에 지어진 로슬린 성당은 영국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남쪽 11㎞ 지점에 있다. ‘다빈치 코드’에선 남녀 주인공이 ‘고대 로슬린 아래에 성배는 기다리노라’란 암호에 따라 성당 지하에서 막달라 마리아의 무덤을 발견하는 것으로 나와 있다.
골프에 매달린 프리메이슨
‘다빈치 코드’는 2003년 발간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다. 그런데 작가 댄 브라운이 이 소설에서 언급하지 않은 게 있다. 비밀단체와 골프의 관계다. 브라운이 그냥 지나쳤으니, 이 책에 묘사된 비밀결사조직 프리메이슨과 골프의 연결고리를 찾기 위해 300여 년 전으로 돌아가 보자.
1744년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에 세인트 클레어 경이라는 인물이 갑자기 등장했다. 인근 로슬린성의 영주이며 프리메이슨의 최고 수장인 ‘그랜드 마스터’였다. 골프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이다. 왕실 전용 골프장인 리스동호회에서 4차례나 ‘캡틴’을 맡았고, 영국왕실골프협회(R&A)의 전신인 올드 코스 동호회의 캡틴을 3차례 역임한 당대 최고의 명망가였다. 프리메이슨은 18세기 중엽 스코틀랜드에서 돌을 캤던 석공들의 모임이다. 당시 상위 계층으로 부각되기 시작한 신흥조직이었다. 그들의 조상은 십자군 전쟁의 주역인 템플기사단으로 알려져 있다.
1307년 10월 13일의 금요일, 프랑스의 필립 4세는 3000여 명에 달하는 템플기사단을 이단으로 몰아 화형에 처했다. 그중 일부는 탈출해 유럽의 어디론가 숨어들었다. 수백 년의 세월이 흐른 뒤 그 후손들이 스코틀랜드의 석공 조합으로 다시 등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00년도 훨씬 더 흐른 1446년, 스코틀랜드의 수도 에든버러 남쪽 인근 로슬린 지역에 클레어 경의 조상인 싱클레어라는 성주가 나타났다. 그는 비밀리에 십자군 당시 예루살렘의 솔로몬궁을 지었던 석공의 후예를 물색했다. 그리고 석공의 후예들은 그들의 조상이 예루살렘에서 사용했던 돌, 기둥, 도면, 서쪽의 벽 등을 ‘복사’해 성을 쌓았다. 10년의 공사 끝에 로슬린성이 완공됐다. 그로부터 300년 가까이 지난 1744년 싱클레어의 후손인 클레어 경이 스코틀랜드의 명망가로 주목받았다.
새롭게 태어난 템플기사단의 후예 프리메이슨은 장래를 고민했다. 특히 비밀결사 조직을 굳건히 지켜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긴밀한 연락망과 비밀 교제 유지를 원했기 때문이다. 마침 18세기 당시 골프붐이 일었다. 골프는 결속을 다지는 데 최적의 수단이었고, 프리메이슨은 조직과 골프를 접목하기 위한 일련의 프로젝트를 차분히 진행해 나갔다.
수백 년 동안 골프는 일정한 규칙 없이 자연에서 즐기는 유희였다. 골프라는 놀이의 조직화, 체계화를 구상한 이는 없었다. 5, 7, 12홀 등 골프장의 규모는 제각각이었다. 1라운드가 몇 홀로 구성되는지에 대한 ‘합의’도 없었다. 대회라는 타이틀이 붙는 공식 경기도 없었다. 특히 일정한 규칙이 존재하지 않았기에 시비 붙는 일이 잦았다. 골프의 규격화가 절실했고, 프리메이슨이 이 작업을 맡았다. 프리메이슨은 우선 최초의 골프 규칙 13개 조항을 만들고, 공식적인 실버컵 대회도 개최했다. 골프장마다 동호회를 조직했고, 유니폼 착용을 의무화했다. 대회장에서 유니폼을 입지 않으면 벌금을 물게 했다. 그리고 올드 코스에서 최초로 한 라운드를 18홀로 규정했다. 비밀 회동을 위해 오직 멤버만 입장할 수 있는 클럽하우스를 만들었다. 골프를 하면서 나누는 대화를 제3자가 듣지 못하도록 4명이 걷게 했다. 골프 동호회에 속한 멤버는 예외 없이 프리메이슨 단원이어야 했다. 옥수수밭으로 개간될 뻔했던 올드 코스를 법정 싸움을 통해 지켜냈다. 프리메이슨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스코틀랜드에 머물렀던 골프는 미국, 호주, 아프리카 그리고 아시아로 건너가 지금은 전 세계에서 사랑 받고 있다. 프리메이슨이 추구하는 단일국가 건설은 골프를 통해 벌써 이루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3.로얄마일 왕자의 거리
에든버러 성에서 홀리루드 궁전에 이르는 1마일 가량의 거리로써, 이전에는 왕가 전용 도로로써 평민들은 갈 수 없는 곳이였다. 고풍스러운 중세 건물과 상점, 카페, 선문가게 등이 밀집되어 있다. 왕관모양의 탑이 있는 성 자일스 성당은 칼뱅파의 존 녹스가 종교개혁을 부르짖던 곳이기도 하다. 홀리루드 궁전으로 가는 쪽에 어린이 박물관이있다. 이 박물관은 어린이를 위한 각종 장난감이 전시되어있다. 거리 주변으로 레스토랑, 기념품점 등 다양한 상점들이 있어 관광객들의 필수 코스가 되었다. <사진출처 : 영국관광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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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딘버러는 은빛 물결이 현란한 호수, 백 파이프, 맥아로 빚은 고급 위스키, 장엄한 절경의 산을 연상케 하는 스코틀랜드 로디언주(Lothian)의 주도이다. | |||||||||||||||||||||||||||||||||||||||||||||||||||||||||||||||||
에딘버러의 평균적인 기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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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틀랜드는 세계속의 작은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으로 많은 유명한 것들이 유래한 곳이다. 골프의 정신적인 고향이며, 스코틀랜드의 그 유명한 음식 하기스가 생겨났으며, 특히 스카치 위스키를 만드는 양조장이 유명하다. 위스키와 Highland 라는 말이 동일시될 정도로 스코틀랜드의 위스키는 유명하여 스코틀랜드인들에게는 영혼의 연인이라고 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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