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의 고질적인 병폐 중의 하나인 '부익부(富益富)빈익빈(貧益貧) 현상'은 스포츠의 세계에서도 예외는 아니다.잘 나가는 구단은 유니폼을 입는 조건으로 수천억원의 현찰을 챙기는 반면,보잘 것 없는 구단은 동대문시장같은 곳에서 협찬받기도 쉽지 않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명문구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얼마전 세계적인 스포츠브랜드 나이키가 제작한 유니폼을 내년 8월부터 13년 동안 입는 조건으로 무려 3억300만파운드(약 5400억원)를 받기로 했다.그동안 맨체스터 선수들이 입고 뛰었던 유니폼은 움브로(Umbro)의 제품.그러나 90년대 이후 프리미어리그를 7차례나 제패한 맨체스터의 상품 가치를 간파한 나이키의 엄청난 현금공세 앞에 움브로는 두손을 들고 말았다.물론 여기에는 기존 스폰서를 가볍게 차버린 맨체스터 구단의 비정함도 한몫 거들었다.
맨체스터 구단과 나이키의 장삿속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맨체스터 구단이 내년에 창설 100주년을 맞는다는 명분을 앞세워 새로운 유니폼을 만들기로 한 것.수십년 동안 전통적인 붉은 유니폼을 입고 숱한 대회에 출전했던 맨체스터는 하루아침에 그 색상을 황금색으로 바꿔버렸다.
유니폼 색깔이나 디자인이 바뀌면 팬들의 지갑도 얇아지는 게 프로스포츠의 불문율.영국인 10명 중 1명은 갖고 있다는 맨체스터의 붉은 유니폼은 장롱 깊숙히 처박히고 대신 새로 바뀐 유니폼을 구매하려는 팬들은 나이키 매장 앞에 장사진을 칠 게 분명하다.오는 7월20일부터 시판에 들어가는 맨체스터의 새유니폼은 성인용이 39.99파운드(약 7만2000원),어린이용이 29.99파운드(약 5만4000원).가격도 만만찮은데다 장삿속이 짙다는 비난 여론이 일자 맨체스터는 "황금색 유니폼을 원정 또는 제3유니폼으로 활용하겠다"며 얼버무리고 있다.
이처럼 철저한 상업적 마케팅 덕택에 맨체스터는 지난해 12월 '들르와트 & 투세 스포르(Deloitte & Touche Sport)'와 영국 월간지 '4-4-2'가 벌인 공동 조사에서 3년 연속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축구클럽'으로 이름을 올렸다.98∼99시즌을 토대로 이뤄진 조사에서 맨체스터는 한시즌에만 1억1090만파운드(약 2000억원)를 벌어들인 것으로 나타났다.2위는 독일 분데스리가의 바이에른 뮌헨으로 8350만파운드(약 1500억원).또 이탈리아의 유벤투스(5850만파운드),AC 밀란(5410만파운드)이나 스페인의 바르셀로나(5570만파운드) 등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세계 유수의 명문구단과도 상당한 격차를 보였다.
해마다 100억원 가까운 돈을 밑빠진 독에 물붓기식으로 털어넣는 게 우리 프로축구단들의 현실.물론 유럽과 한국의 프로스포츠 환경과 시장이 다르긴 하지만 내년이면 성년의 나이에 접어드는 만큼 우리 프로축구도 좀 더 적극적인 마케팅으로 생존을 모색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