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없는 세상 어찌 살란 말인가?
‘라면왕’ 농심 신춘호 회장이 3월 27일 별세했다. 향년 92세.
신 회장은 1930년 12월 1일 울산에서 태어났다. 롯데 신격호 회장의 동생이다.
1965년 농심을 창업하여 신라면 짜파게티 새우깡을 개발했다. 신라면은 100 여 개국에 수출하는 효자품목이다.
고인에게 실례지만 기부에 인색한 롯데인데, 입원해있던 서울대학병원에 10억 원을 기부했다.
라면은 사랑이었다.
라면 먹고 갈래요? 아가씨의 이 한마디에, 밤의 뜨거운 역사는 어떻게 할 것인가?
라면은 종종 일탈을 부르는 사랑이었다.
아내가 집을 비웠을 남편은 끼니를 무엇으로 때웠을까?
야근을 마친 후의 헛헛한 속이나 술 마시고 쓰린 속은 어떻게 달랬을까?
갑판 보초를 서면서 라면국물 맛보다가 선임 하사에게 들켜 얼차려 하는 수병의 신세는 어땠을까?
갯바위에 기대어 먹던 라면의 꿀맛은 어떻게 표현할까?
내무반에서 김치를 넣고 끓인 라면을 먹으면 고향 생각이 절로 난다.
라면이 없었더라면 100만 자취생은 다 굶어죽었을 것이다.
어려웠던 시절 눈물 젖은 라면을 먹어보지 않고는 라면을 말하지 마시라!
라면은 생존이었고 위안이었다.
라면의 유래
국수를 양 기름에 튀기면 좀처럼 부패하지 않는다. 그래서 오래 보관할 수 있다.
면을 튀겨 건조시면 부피가 작다, 포장을 줄이기 위해 꼬불꼬불하게 만든 것이 라면의 시초다.
인스턴트 라면은 중공군이 국수를 튀겨 휴대하고 다니던 것에서 유래했는데. 중일전쟁을 통해 일본에 전해진 것이다.
종이컵에 부슨 라면을 포크로 둘둘 말아 먹는 것에 착안하여, 컵라면을 만들었다는 미국에서는 인스턴트 라면이 일반 라면보다 더 많이 팔린다.
라면의 슬픈 역사
쌀이 부족하여 보리와 밀 등 잡곡을 장려하던 시절이었다.
백성을 굶기지 말라는 선친 인촌 김성수 선생의 유지에 따라 설립한 삼양식품이, 종로 네거리에서 라면 시식회를 열었다.
한국 사람들은 매운 것을 좋아하니 고춧가루를 더 넣으면 좋겠다. 행사에 참가한 박정희 대통령의 말이다.
매우면 물을 켜니 포만감이 생겨, 당시 식량 절약정책에 부합되었다.
60년대는 바지락 칼국수나 감자 수재비보다 닭고기 냄새가 나는 라면이 상전 대우를 받았다.
김치찌개나 된장찌개가 10원이었는데, 라면은 특별한 날에만 먹는 고급 음식으로 30원이었다.
라면은 1963년 9월 15일 태어났다.
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은 60년대, 삼양식품 전중윤 사장은 남대문시장에서 한 그릇에 5원하는 꿀꿀이죽을 먹으려고 길게 늘어선 줄을 보았다.
"싼 가격으로 배부르게 먹게 할 방법은 없을까?"
일본에서 라면 제조설비를 들여오면 좋겠는데 외화가 부족한 상태였다
전 사장은 정부보유 달러를 민간인이 사용하기 힘든 상황이라.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중앙정보부장 김종필(JP)을 찾아가. 백성들을 배 곯리지 말자고 호소했다.
JP는 농림부에서 보유한 10만 달러 중 5만 달러를 쓸 수 있게 주선해주었다.
일본도 전후라 어려운 시기여서 설비를 선뜻 팔려고 하지 않았다.
라면설비 제조회사의 오쿠이(奧井) 사장을 찾아가, 한국의 식량사정이 얼마나 절박한지를 설명하고 도와달라고 했다.
한국 실정은 잘 모르지만, 한국전쟁이 일본경제 재건에 기여한 것은 고맙게 생각한다. 그 덕분에 일본은 잘 살고 있다.
라면 제조설비는 한 라인에 6만 달러인데, 두 라인에 2만5.000 달러에 주겠다.
드디어 삼양의 ‘치킨라면’으로 태어나, 굶주린 백성들의 배를 채울 수 있었다.
한국 국민 1인당 라면 소비량은 단연 세계 1위. 한 사람이 1년에 70개 이상 소비한다.
인도네시아가 50개로 2위, 이어 일본 중국 미국 순이다.
아시안게임에서 임춘애 선수가 라면만 먹고 3관왕이 된 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소설가 김훈은 산문집 ‘라면을 끓이며’에서
끓는 물에 수프만 넣으면, 매운 맛과 소고기 맛을 동시에 난다.
라면은 한국인의 솔 푸드다.
배고픈 시절에 홀연히 나타나서, 경이로운 행복감을 저렴하게 공급하는 라면.
맛의 놀라움은 장님이 눈 뜨는 것과 같고, ‘불의 발견’과 맞먹는다.
라면에 부연하여
알프스 융프라우 역 해발 3454m,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서, 얼큰한 한국 라면을 맛볼 수 있다.
라면 사랑이 유별난 한국인을 위해, 산악열차 탑승권을 산 한국인은 무료다.
몇 해 전부턴 마터호른에서도 한국 라면을 팔고 있다.
이곳에서 연간 판매량 10만개 중 6만개를 한국인이 소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