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야고보 5,13-20
사랑하는 여러분, 13 여러분 가운데에 고통을 겪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기도하십시오. 즐거운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찬양 노래를 부르십시오. 14 여러분 가운데에 앓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교회의 원로들을 부르십시오. 원로들은 그를 위하여 기도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그에게 기름을 바르십시오. 15 그러면 믿음의 기도가 그 아픈 사람을 구원하고, 주님께서는 그를 일으켜 주실 것입니다. 또 그가 죄를 지었으면 용서를 받을 것입니다.
16 그러므로 서로 죄를 고백하고 서로 남을 위하여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병이 낫게 될 것입니다. 의인의 간절한 기도는 큰 힘을 냅니다. 17 엘리야는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었지만, 비가 내리지 않게 해 달라고 열심히 기도하자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내리지 않았습니다. 18 그리고 다시 기도하자, 하늘이 비를 내리고 땅이 소출을 냈습니다.
19 나의 형제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에서 어떤 사람이 진리를 벗어나 헤맬 때 누가 그 사람을 돌이켜 놓았다면, 20 이 사실을 알아 두십시오. 죄인을 그릇된 길에서 돌이켜 놓는 사람은 그 죄인의 영혼을 죽음에서 구원하고 또 많은 죄를 덮어 줄 것입니다.
복음 마르 10,13-16
그때에 13 사람들이 어린이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그들을 쓰다듬어 달라고 하였다. 그러자 제자들이 사람들을 꾸짖었다. 14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보시고 언짢아하시며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어린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말고 그냥 놓아두어라. 사실 하느님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1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린이와 같이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다.”
16 그러고 나서 어린이들을 끌어안으시고 그들에게 손을 얹어 축복해 주셨다.
여러분은 하루에 몇 분 웃으십니까? 요즘에 별로 웃을 일이 없다고 생각하세요? 영국의 한 의과대학에서 웃음에 대한 연구를 하다가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발표했습니다.
‘어린아이는 하루에 평균 400~500번을 웃는다. 그런데 장년이 되면 이 웃음은 하루 15~20번으로 감소한다.’
이 연구 결과를 보면서 정말로 그런 것 같습니다. 사실 어린아이는 정말로 잘 웃습니다. 자그마한 행동과 약간의 재미있는 말만 해도 ‘까르르’ 웃는 것이 아이들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어른들은 어떻습니까? 제가 이곳저곳 특강을 많이 다니는데, 그 자리에 형제님들이 많으면 걱정부터 앞서게 됩니다. 아무리 온 몸을 던지면서 행동을 하고 말을 해도 별 반응을 보이지 않는 형제님들이 참으로 많기 때문입니다. 과묵하게 가만히 있는 것을 큰 덕목으로 생각하시는지, 아무런 표정 없이 저만 말없이 바라만 보고 계십니다. 이러한 표정을 보면 ’얼마나 잘 하는지 보자.‘라면서 노려보시는 것 같은 느낌이기도 합니다.
아무튼 왜 어렸을 때에는 기쁨 속에서 잘 웃던 사람들이 기쁨을 상실한 채 웃음을 잃어버리게 된 것일까요? 바로 그 동안의 경험에서 오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염려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 불안과 염려가 웃음을 잃어버리게 한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 하나는 이 불안과 염려가 내 미래를 바꿔놓을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쓸데없는 걱정’이라는 글을 남긴 노먼 빈센트 필 박사는 이렇게 말하지요.
“사람이 하는 걱정 중 절대로 발생하지 않을 사건에 대한 걱정이 40%, 이미 일어난 사건에 대한 걱정이 30%, 별로 신경 쓸 일이 아닌 작은 것에 대한 걱정으로 22%, 우리가 바꿀 수 없는 사건에 대한 걱정이 4%, 우리가 바꿀 수 있는 사건에 대한 걱정이 4%이다. 결국, 사람들은 96%의 불필요한 걱정 때문에 기쁨도, 웃음도, 마음의 평화도 잃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불안과 염려로 인해서 쓸데없는 걱정을 가지고서는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어린이와 같이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다.”라고 단언을 하신 것입니다.
사랑을 하면 예뻐진다는 노래가사가 생각합니다. 왜 예뻐질까요? 사랑하면 많이 웃기 때문입니다. 마음으로부터 웃는 모습이 흉한 경우는 없거든요. 그렇다면 주님을 우리는 과연 사랑하는 것일까요? 사랑하면 많이 웃는다고 하는데, 우리는 기도할 때 잘 웃지 않기 때문입니다. 온갖 인상을 쓰면서 기도하는 우리의 모습은 아니었을까요? 과연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도 그러한 모습을 보이겠습니까?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사랑하는 사람은 좋아할 것 같습니까?
어린이처럼 많이 웃으면서 사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쓸데없는 걱정은 하나둘씩 내려놓으면서 말이지요. 그래야 우리의 잃어버렸던 기쁨과 웃음을 다시 회복하게 될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친절하고 관대한 것이 자기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는 길이다. 남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사람만이 행복을 얻을 수 있다(플라톤).
이렇게 웃는 오늘이 되세요.
부부의 일곱 고개(‘좋은생각’ 중에서)
오랜 세월 함께한 부부 사이엔 일곱 고개가 있다고 한다. 결혼하면 좋을 때나 싫을 때나 다음의 고개를 넘어야 한다.
첫째는 ‘눈물 고개’다. 신혼부터 3년 동안 넘는 고개로, 크고 작은 어려움을 울고 웃으며 견뎌 내는 과정이다.
둘째는 ‘진땀 나는 고개’다. 3~7년 동안 서로의 단점을 타협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위험한 권태기를 넘기기도 한다.
상대를 어느 정도 안 다음에는 ‘투쟁의 고개’가 찾아온다. 상대를 포용하기 위해 스스로와의 싸움이 필요할 때도 있다.
결혼 15년 차쯤엔 ‘결단의 고개’를 넘어야 한다. 상대의 장단점을 인정하고 비로소 보조를 맞춘다. 돌고 도는 시행착오를 겪느라 ‘헛바퀴 고개’라고도 부른다.
다섯째는 ‘따로 고개’로 결혼 15~20년 사이에 온다. 몸은 함께 있지만 정신은 멀리 떨어진 듯 따로따로 사는 시간이다.
여섯째는 ‘통일 고개’로 20년 넘게 산 부부에게 해당된다. 과거의 잘못을 덮고 새로운 헌신과 책임감으로 상대를 위해 남은 생을 바치는 시간이다.
마지막 단계는 ‘자유의 고개’다. 30년이 지나면 완숙의 단계로, 말하지 않아도 서로 이해하며 행복을 나눈다. ‘천국의 고개’라고도 한다.
부부가 여러 위기를 견디며 보낸 시간은 행복을 위한 과정이다.
많은 고개를 넘어가면서 만들어가는 부부의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여러분의 가정은 어느 고개까지 넘어가셨나요? 저는 혼자라... 하나의 고개도 체험하지 못했네요. ㅋㅋ
어제 맛있는 만두국을 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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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