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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전국시대, 천하의 영웅들이 세상의 패권을 놓고 재기와 지략을 겨루던.
하늘이 갈라지고 땅이 뒤흔들리던 혼란스러운 전쟁의 시대,
그 시대에 나, 서시가 살았노라,
영웅들은 천하를 호령하였으나
그 영웅들을 지배한 것은 나, 서시였노라
[경국지색(傾國之色) ~ 서시(西施). 여덟번째 이야기]
샤오룬은 문득 서녘에서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에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시간이 이렇게 흘렀는지 방 안에 붉은 석양빛이 가득했다.
시간이 이렇게 되는 줄도 몰랐군,
샤오룬은 노루의 꼬리털로 만든 얇은 세필붓을 벼루위에 비스듬하게 조심스레 걸쳐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일 년 사이에 키가 두 뼘이나 더 큰 샤오룬은 이제 제법 어른 티가 나는 모습이었다.
딱히 무술을 즐기는 건 아니었지만 무인이었던 진 대인의 손자답게 키도 또래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컸고 체격도 늘씬하게 뻗으면서도 탄탄했다.
얼굴에도 소년의 어린티는 가시고 이제는 청년의 우수가 깃들었다.
나이도 이제는 더 이상 어리지 않은 열 다섯이 되었으니, 샤오룬을 향한 소흥 처녀들의
구애는 더이상 숨길 수 없는 것이 되었다.
진 대인 가문이 어떤 가문인지 아직 잘 모르고 있는 소흥이나 절강성의 귀족의 딸들은 끊임없이
중매장이를 진 대인 저택으로 보내었고, 처녀들은 부끄러운줄 모르고 그의 얼굴을 구경하고자
일부러 담장을 홀끗거리기도 하였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일 이 년 안에 관례에 따라 혼례를 올려야 할 터인데도
진 대인은 아직까지 손자의 혼처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도 언급하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본인 역시 자신의 혼사에 관해서는 무심하니, 애 타는 것은 그저 주변의 처녀들 뿐이었다.
"저녁 바람이 좋구나,"
혼자 지나가듯 중얼거리며 샤오룬은 뜰 안으로 발걸음을 내딛었다.
땅거미가 내려앉기 시작한 저녁의 정원은 낮의 열기로 여전히 뜨거웠지만
한낮 태양의 맹렬한 뜨거움은 가시고 이제는 달구어진 벽과 기왓장이 뿜어내는 은은한
열기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후덥지근한 열을 몰아내려는 듯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눈이 아플 정도로 강렬한 붉은 색과 그에 대조되는 땅거미의 검은 그림자,
이 모든 조화의 가운데에 서있던 샤오룬은 어쩐지 마음이 설레이는 듯, 심란함을 느꼈다.
석양은 저리도 아름다운데 늘 어딘가 사랑하는 님을 보내는 것처럼
마음을 아프게 하는 구석이 있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샤오룬은 일대 처녀들의 마음을 초토화 시켰던 한쪽 볼우물이 살짝
파이는 작은 미소를 지었다.
노을이 지고 이제 사라져가는 태양을 쫓는듯 어둠이 덮이자 샤오룬은 다시
발걸음을 옮겨 집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러다가 그는 흠칫하고 말았으니,
"거기 누구냐"
최근 변성기를 맞은 샤오룬은 목청을 높이는 일이 별로 없었다.
소리죽여 말하여서 그런가, 어둠속에 서있는 상대는 듣지 못한듯 하였다.
보기좋은 짙은 눈썹을 찌푸리며 샤오룬은 조심스레 그 상대를 향해 다가갔다.
"거기에 있는 것이 누구냐,"
다가갈수록 희미한 그 누군가의 모습이 드러났다.
검은 어둠속에서 흰 옷을 입은 자는...
"륜이?"
샤오룬은 크게 놀랐다.
"륜이니?"
그 다음순간, 갑자기 그 허연 물체가 투다닥 달려와서는 샤오룬의 가슴팍을 들이받았고
갑작스런 공격에 샤오룬은 휘청하며 몸의 중심을 잃고 풀밭에 쓰러지고 말았다.
륜은 저 때문에 난데없는 봉변 당한 샤오룬은 아랑곳하지 않고 샤오룬의 몸에 마치 새끼 원숭이가
어미 원숭이 몸에 달라붙듯, 혹은 매미가 고목나무에 달라붙듯 팔과 다리를 샤오룬의 몸에 감고 꼬옥
제 머리를 그 가슴에 부착하였다.
"류, 륜아?"
눈앞에 별이 몇 개가 왔다갔다한다.
무방비 상태에서 갑자기 왠 돌덩이에 치여 바닥에 넘어진것도 모자라 숨이 막힐 정도로
제 몸통에 꼬옥 달라붙어 있는 륜이 덕분에, 샤오룬은 제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수, 숨이 막히는데.."
분위기 상, 륜이의 오늘 기분은 한여름의 태풍만큼이나 심상치 않은듯 했다.
십년을 이 아이와 남매처럼 지내오며 그 뺀초롬한 얼굴 뒤에 숨겨진 심상찮은 성질머리를
잘 알고 있는 샤오룬은 제 몸에 붙어있는 륜의 작은 몸에서 넘실거리며 흘러나오는
검은 기운을 눈치채고 차마 그를 떨구어 내지는 못하고 여전히 풀밭에 누워있는 상태로
조심스레 말을 던졌지만 그것은 이내 곧
"아아아아아악!!!!!!!!!!!!!"
"!!!!!!!!!!"
제 가슴에 얼굴을 묻고 귓청이 찢어져라 비명인지 포효인지 모를것을 내지르는
륜의 악소리에 묻혀버리고 말았으니,
샤오룬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자신은 단지 석양을 구경하러 나온것 인데 갑자기 이 시간에 홀로 나타난 륜에
난데없는 덥침, 게다가 일년에 한 두 번 볼까말까한 잔뜩 성이 난 이 모습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륜아, 무슨일이 있는거야?"
하지만 곧 평상시의 침착을 되찾고 샤오룬은 최대한, 뭐가뭔지 정신을 차릴 수 없는 이 상황에서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한 부드러운 목소리와 말투로 륜에게 다정하게 물었고,
륜은 샤오룬의 가슴에 묻고 있던 고개를 번쩍 치켜들었다.
그리고 샤오룬은 아직 남아있는 희미한 노을빛에 반사되어 륜의 눈가에서
반짝거리는 무언가를 보았다.
그게 눈물이라는 걸 알자 샤오룬의 가슴이 철렁하고 내려앉았다.
"우는 거야? 왜 그래, 갑자기 무슨 일이야?"
"오라버니,"
"집에 무슨일이 생긴거야? 왜 이래, 갑자기.
가, 갑자기 지금 시간에 혼자 나타나서는..."
조그만 아기 때부터 우는 것을 모르는 당돌한 륜이였기에 이리 눈물을
흘린다는 것은 필시 큰 일이 있는것이 분명했다.
대답없는 륜의 눈에서 커다란 눈물 방울이 뚝하고 떨어져 샤오룬의 비단 옷 위에
떨어졌고 샤오룬은 이제 거의 공황상태로 접어들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륜이 그 작은 입술을 달싹이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오라버니, 장가 가요?"
샤오룬은 이게 도대체 뭐가 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으...응?!"
"오라버니 장가 가냐구! 장가 가서 마누라 얻고 애도 낳으면 이제 나랑은
영원히 안 만나는 거냐구!!"
눈에서는 눈물이 줄줄 흘러내리고 악을 쓰듯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낸 륜은 그대로
샤오룬의 가슴에 세차게 머리를 박으며 엉엉 대성통곡하기 시작했다.
"...하...?"
영문을 알 수 없는 샤오룬은 한참을 더 그대로, 어둑어둑해져 별이 떠오르기 시작하는
밤하늘을 보며 한동안 더 찬 풀밭위에 누워있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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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이미 사위는 어두워졌다.
가난한 도시 소흥은 해만 지면 어두워지지만 월나라 최고 귀족인 진 대인의 집에는
불이 꺼질줄을 몰랐다.
황금빛 용문양이 새겨진 커다란 초 몇 개가 방안 곳곳에 놓여져 넓고 어두운 방 안을 낮인것 마냥
환하게 밝히었고, 커다란 방 안을 왔다갔다 거리는 샤오룬의 푸른 비단옷에 음영을 드리웠다.
"내가 장가를 들어 부인을 얻고 자식들을 얻으면 더 이상 너와는 만나면 되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더 이상 너를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래서 분한 마음에 그대로 집에서 뛰어온 거라고? 여기까지?"
약야계에서 읍내까지?
맙소사, 오 리는 족히 넘을 거리니 어린 아이 걸음으로는 아무리 못해도 몇 시간은 걸렸을
법인데, 약야계에서 소흥 읍내까지는 길도 험했다.
샤오룬은 의자에 앉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륜의 발을 내려다 보았다.
오다가 넘어진 건지 무릎 자락이 찢어져있고 그 사이로 핏방울이 송글송글하다.
그것을 보고 저도 모르게 손을 뻗으려던 샤오룬은 멈칫하며 다시 손을 거두어 들였다.
지금은 다독여 주는것보다 오라비로서 동생을 가르치는 것이 더 중요했다.
"네 부모님은 네가 여기에 있는 것을 아시는 것이냐?"
샤오룬은 평상시와 달리 짐짓 엄격한 말투로 물었다.
이제 장성한 샤오룬은 더 이상 이화부인의 보살핌이 필요가 없었다.
게다가 나이가 들어 매일 약야계에서 소흥 읍내까지 왕복하려니 힘에 겨운 이화 부인은
일주일에 몇 번만 진 대인의 집으로 와 살림을 거들어주고 있었고 서용은 한낱 머슴이었으나
특유의 성실함을 높이산 진 대인의 마름이 되어 소작을 붙히고 있는 땅이나 수확물을 관리하는
일을 맡고 있었다.
머슴살이때 보다는 일이 훨씬 수월해진 탓에 그는 오후가 해지기 몇 시간 전에 일찌감치 집으로
돌아가곤 했는데 그 때마침 륜이가 읍내로 온 것인듯 하였다.
그러니.....
륜의 집에서는 한바탕 난리가 났겠군.
샤오룬은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을 느끼었다.
그리 늦은 시간은 아니었지만 이미 어둠이 깔린 길은 다시 가기 힘든 상황이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여기에 아이를 둔다면, 아직 나이가 어리지만 과년한 처녀애가 역시
혼기가 찬 사내를 만나러 왔다는 사실에 어른들에겐 그닥 곱게 보이지 않을 것은 뻔하였으니, 륜은 물론
륜의 부모님까지도 진 대인에게 날벼락을 맞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도대체....."
성품상 모진말이나 거친말은 내뱉지 않는 샤오룬은 그저 한숨만 내쉬었다.
늘 륜이 저지른 사고를 도맡아서 처리 해주곤 했었지만 이번 사고는 그야말로
........대형참사나 마찬가지였다.
"하는수 없다. 일단 내가 네 부모님께는 네가 여기있음을 알리는 서찰을 써
보낼터이니 너는 오늘 여기에 머물다가 아침 일찍 집으로 가거라."
입은 좀 가볍지만 동전 몇 닢 쥐여주면 입을 다무는데다 건망증이 심해 하룻밤만
지나면 모든 기억을 상실하듯 잊어버리는 림 서방에게 서찰을 전달하라고 시키면 될것이다.
사람의 행동이 가볍지만 발이 빠르고 겁이 없는 자이니..
어깨가 왠지 천근만근 무거운 듯하였다.
샤오룬은 책상 위에 앉아 새 종이를 꺼내어 아까 벼루 위에 올려놓았던 세필 붓에 먹물을
묻혀 차분한 글씨로 륜의 부모님께 전하는 서찰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혹여라도 륜이 크게 혼날 것을 염려하여 샤오룬은 자신이 륜에게 보여줄 것이 있어
낮에 부른 것이었는데 자신의 불찰로 시간이 가는줄 몰라 아이를 돌려보내지
못했다는 간략한 설명을 서찰의 마지막 줄에 보태었다.
빠르게 서찰을 써낸 샤오룬은 그것을 청록색의 끈으로 말아 묶은후 방 한구석으로
다가가 드리내린 줄을 잡아당겼다.
그 줄의 끝에 연결된 또 다른 줄에 매달린 종을 통해 림 서방은 샤오룬 도령이 자신을 부르고 있다는
것을 알고 곧 달려올 참이었다.
행실이야 가볍고 쌌지만 충직하기는 충직한 림 서방이 몇 분안에 모습을 들어낼 것을 알았기에
샤오룬은 의자에 죄지은듯 웅크리고 앉아 자신의 눈치를 보고 있는 륜에게 평상시와 다름없는
온화한 말투로 다정히 말하였다.
" 네 부모님께 걱정말라 썼으니 너무 염려하지 말고 방안에
들어가 있어. 괜히 네가 내 방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신다면 좋아하지 않으실 거야"
아까의 엄한 말투가 아닌 평상시의 편한 말투로 되돌아온 샤오룬의 말에 륜은
그제서야 조금은 안심이 됬다는 듯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 방 안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
혹시라도 림 서방이 자신을 보지 못하게 몸을 숨겼다.
륜의 모습이 자신이 서있는 곳에서 보이지 않자 샤오룬은 방문 앞으로 다가가
위엄있는 모습으로 문을 열었다.
림 서방이 밖에 서있었다.
샤오룬은 서찰을 앞으로 내밀었다.
"이것을 할아버님 모르게 약야계의 서 서방에게 전해주고 오거라,"
림 서방은 지금 이 시각에 약야계까지 갔다오라는 작은 주인의 말에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데 그건 그렇고 조부인 진 대인 모르게 다녀오라는건 또 뭐람?
궁금한 건 참지 못하는 성격의 림 서방이 입을 열라는 찰나 샤오룬은 그의 손을
붙잡았고 샤오룬이 자신의 흰 손을 림 서방의 검게 그을린 울퉁불퉁한 손 위에서 떼었을 때
림 서방의 손 안에는 동전 몇 닢에 쥐여져 있었다.
"쇤네, 작은 주인님 명에 따라 약야계에 다녀오겠습니다요"
싱긋 웃으며 림 서방은 빠르게 사라졌다.
그 뒷모습을 끝까지 날카로운 눈으로 주시하던 샤오룬은 잠시 주위를 살펴보다
방문을 닫고 문을 잠그었다.
가만히 문고리를 흔들어 본 샤오룬은 문이 단단히 잠긴 것을 확인하고
안심한 표정으로 침실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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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데서 끊기!-_-;;
더 써야 하는데 지금 시간이 너무 늦어서 전 이만 물러갑니다ㅠㅠ
P.S(피식)
댓글은 돈이 들지 않아염-_-;;;
첫댓글 !!!
첨으로 1빠!!ㅋㅋ 오늘 두편 올라와서 짱좋아요ㅋㅋㅋ분량 더 많았으면!!! 너무 재밌는데요 빨리 보고싶어서용...ㅠ
헉 분량이 여기서 더 많으면;; 종종 수정할 때 게시물 용량 초과라고 다시 검토하라고도 나오더라구요, 대책은 편수를 늘리는 건데;; 한 편 쓰고나면 에너지를 다 써서 휴식을 취하러 가기 땜시롱ㅎㅎ(게을러요-_-;;)
너무잼잇게잘봣어여ㅎㅎ
감사합니다~ 가끔 이렇게 쀨 받을때 두 편씩 올리기도 하는데.. 이런 날이 많아야 할텐데 말이죠잉~ㅎㅎ
잘보고 가요~~ 륜이랑 샤오룬이 잘됬으면 좋겠어요~~
감사합니다^^ 댓글은 저의 힘이랍니다ㅎㅎ
오늘 두편이네요 ㅎㅎ 그냥자기 서운해서 들렸는데 ㅎㅎ
어떻게 딱 때가 맞았네요ㅎㅎ 마음 같아선 하루에 두 편도 세 편도 올려야 하는데 전 글 쓰는 속도가 좀 느린 편이라;;
다음편도 기다려요^^
감사합니다~ㅎㅎ
아 진짜 재밋어요! 더 길게 봤으면 좋겠는데 아쉽네요. 다음편이 일찍 나올 줄로 기대하겠습니다!
잇힝~ 약간 부담 되는데요~>_<ㅎㅎ 이제부터 빨랑빨랑 올리도록 노력하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