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처음 연예부 기자 일을 맡게 되었을 때, 나는 방송이나 특정 연예인의 경조사만 취재하고 보도하면 되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연예인들의 사생활은 물론이고, 그 주변인들의 생활까지 알아야 했다.
딱히 국민의 알 권리와 상관있는 부분은 아니었지만, 연예인들의 소식으로 먹고 사는 나 같은 기자들 (특히 이름이 알려지지 못한 신인)은
자극적인 기사를 필요로 했다.
어떤 연예인이 사기 혐의 고소 당했다. 어떤 연예인이 마약을 했다. 어떤 연예인이 도박을 했다.
같은 범죄 관련 기사들은 솔직히 평범하다. 화재성은 뛰어나지만 나만의 특종은 될 수 없다.
따라서 연예인의 도덕과 관련된 기사들이 절실히 필요했다.
예를 들면 어떤 연예인이 어떤 여자와 모텔에 갔다거나, 어떤 성행위 습관을 가졌다던가,
어떤 연예인이 어떤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욕설글을 올렸다거나 하는 기사.
연예인이 위법을 한 내용은 아니지만, 연예인의 신뢰와 도덕성에 타격을 주는 기사. 그런 게 필요했다.
그때 나 같은 기자들이 주로 쓰는 게 사생팬이다.
사생팬들은 기자들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빠른 정보망과 인내력을 가지고 특정 연예인의 생활을 전부 알고 있었다.
나중에 연예인과 인터뷰를 할 때 보조기자라는 별 필요없는 직함을 준다고 하면, 사생팬 대부분은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을 가까이에서 바라보고 얘기까지 나눌 수 있다는 이점에 끌려 기자들에게 여러 가지 정보를 제공해준다.
지금부터 내가 쓰는 이야기는 내가 만났던 사생팬에 관한 이야기이다.
내가 직접 남자 연예인 A씨 팬클럽 회원들을 조사해, 사생팬 활동을 하던 회원 한 명과 채팅을 나눠 약속을 잡고 만났다.
카페에서 만난 사생팬 회원은 놀랍게도 30대 중반의 남자였다.
기자를 하기 전까지만해도 사생팬하면 어린 여자애들을 떠올리던 내 고정관념이 깨진 순간이었다.
어찌됐든 그는 밝은 얼굴로 나를 맞이해주었고, 나 역시 그와 친밀하게 대화를 나누며 기사로 쓸 정보를 얻었다.
"일주일 뒤에 A씨와 인터뷰가 있거든요? 그때 제 보조로 질문 세 개 정도 하게 해드릴게요."
"아, 감사합니다."
"그런데 A씨가 얼굴 알아보진 않을까요?"
"못 알아보겠죠. 일정 따라다니거나 집 주변에서 돌아다닐 땐, 기억에 잘 남지 않게 상하의 모두 검정색 계열의 옷을 입고요. 모자로 얼굴도 가리거든요."
"아, 그래요?"
나는 웃으며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얻을 정보는 대부분 다 얻었다. 라고 생각했다.
대충 몇 마디 좀 나누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봐야 겠다고 생각한 찰나, 사생팬이 뭔가 재미난 이야기가 떠올랐다는 듯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 그거 아세요? 연예인들 괴담."
"예? 무슨 괴담이요?"
"연예인들 사이에 떠도는 괴담이요. 특히 저 같은 팬들이랑 관련된 거."
"무슨 내용인데요?"
나는 영양가 없는 괴담 내용엔 요만큼도 관심이 없었지만, 마침 몇 마디만 좀 나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궁금한 척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생팬 남성은 내 반응을 진심이라 생각했는지 키득키득 웃으며 얘기했다.
"키킥, 그게 말이요. 연예인들은 인기 좀 있다 싶으면 저 같은 팬들이 있잖아요? 그러다보니 자기들 사이에서 저 같은 팬들이 엄첨 무서운가 보더라고요. 그 괴담이 무슨 내용이냐면요. 연예인들 죽을 때 항상 자살 아니면 사고사잖아요? 특히 우리나라 연예인들."
"예, 뭐."
"연예인의 사소한 거 하나하나까지 일일히 파악하고, 연예인을 좋아해주고, 또 반대로 그만큼 어떤 연예인을 싫어하는 팬들이 많은데도, 그저 연예인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자살과 교통사고 같은 사고사 뿐이라니, 이상하잖아요? 한 번 쯤 팬에게 칼에 찔려 죽은 연예인 기사 같은 거 떠도 그렇게 이상하지는 않잖아요?"
"....."
나는 별 다른 대답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팬에게 살해당한 연예인.
그런 한국 기사를 본 적이 있던가 생각해보았다.
사생팬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연예인들은 그렇게 믿는데요, 자기들이 뭔가 팬들의 믿음을 배신하거나 나쁜 짓을 하면, 팬들이 뭉쳐서 연예인을 죽이고 자살이나 사고사로 위장한다고요."
"아, 그래요?"
"너무하지 않나요? 아무리 그래도 자기들 좋다고 따라다니는 팬들이 무슨 싸이코도 아니고...그런 식으로 생각한다니."
"그러게요. 정말로 그런 괴담이 연예인들 사이에 떠돈다면 너무 하다고 할 수 있겠죠."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물론 그런 괴담이 떠돈다는 걸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네요. 아무래도 연예인들 사이에 떠도는 괴담이 아니라, 팬분들 사이에서 그런 소문이 떠도는 거 아닐까요? 연예인들이 우리를 그렇게 생각한다더라 같은?"
"그럴까요."
내 추측을 들은 사생팬은 뭔가 실망한 표정으로 한숨 비슷하게 말했다.
내가 동조해서 연예인들 너무하다. 라고 답해주길 원한 걸까?
나는 다시 연예인 A씨와의 인터뷰 날짜와 시간, 나와 만날 장소 등을 알려주며 화제를 돌렸다. 그렇게 5분 정도 얘기를 나누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설 준비를 하며, 불현듯이 떠올른 질문을 내 입을 통해 내뱉었다.
"만약 A씨가 그 괴담을 믿는다면 어떠시겠어요?"
나는 입가에 미소를 그리며 장난치듯이 물었다.
팬을 그만 두려나?
그런 생각을 할때, 그 남자 사생팬은 따분하다는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러면 그렇게 해줘야죠."
남자 사생팬은 내게 차가운 시선을 보내며 고개를 까딱여 대충 인사를 한 뒤, 카페를 나갔다.
나는 일어설 준비를 하던 그 동작 그대로 굳어버렸다.
.
.
.
그리고 일주일 뒤에 하기로 했던 연예인 A씨와의 인터뷰는 할 수 없게 되었다.
내가 사생팬과 만났던 바로 그 날 저녁, A씨가 지난 여름 아시아 투어 도중에 돈을 주고 여자와 관계를 했던 게 알려졌다.
그게 알려지자 A씨는 여론에 거센 비난을 받았고, 이에 속이 상한 A씨는 그 다음 날 새벽에 술에 잔뜩 취한 채로 스포츠카를 몰았다. 이윽고 A씨의 정신이 흐릿해지며 차는 전봇대를 향했고, A씨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사고사.
또는 자살.
유서는 없었다.
지인에게 속상하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 때문에 자살로 보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인터뷰가 취소되었기 때문에, 만나기로 했던 그 남자 사생팬에게 연락을 해야했지만, 도저히 할 수가 없었다.
[...차는 심하게 손상되어...]
손에 휴대전화를 들고 있었지만...
찜찜했다.
[...형체를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전화를 걸기엔...
찜찜했다.
[...주변 목격자들에 따르면...]
너무나...
찜찜했다.
나는 텔레비전을 통해 사고 현장 소식을 보며, 손에 들고 휴대전화를 슬그머니 내려놨다.
사고 현장을 둘러싼 인파 가운데 검은 색 옷차림에 모자를 푹 눌러쓴 사람이 보이지만 않았다면, 전화를 했겠지만...
ㅊㅊ - 마기의 공포이야기 시즌2 - http://blog.naver.com/dndb018/220467759649
첫댓글 미친 개소름
와 핵소름
이거 지어낸거야 실화야?
괴담이야 지어낸거
ㅁ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