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편의 빛 / 강희안
피카소의 <아비뇽의 아가씨들>을 보면 커튼 사이로
몽마르뜨 언덕이 보입니다. 달빛 몇 낱으로 실족의 함정을
놓는 1차원 나라엔 하늘빛을 찾아 나서는 속죄양의 무리가
풍금소리로 흥건히 깔려 있던가요? 낡아 삐걱대는 계단을 따라
피카소의 아뜰리에를 방문한 깊은 밤, 수모의 혀를 물고
터지려는 듯 무릎까지 가슴까지 흔들어대는 빛의 세계를
헤집어 들어갑니다. 벌거벗은 여인들이 무리를 이루어 육감적인
허리를 세울 때마다 누군가 지나가며 혼잣말로 중얼거립니다.
“쯧쯔, 깨진 유리파편이군. 아무도 들여다볼 수 없겠어.”
피카소가 잠시 이젤의 단을 낮추는 사이 매음굴보다 먼저
죄가 닿는 하늘을 화폭에 담고 싶지만, 대체 당신은 어떤 시간에
살을 섞는 것입니까. 만삭의 달빛으로 밝혀 놓은 시리디시린
불임의 촉수들, 눈에 보이거나 꾸며진 건 다 거짓이라며
4차원의 난장을 더듬어 들어갔나 봅니다. 질긴 어둠에 묻혀서야
아득하게 뻗어 오르는 향일성의 덫, 눈물로부터 먼 아비뇽의
아가씨를 닮아가는 젖은 얼굴들이 보입니다. 피카소가 울고
있습니다. 한여름 밤은 깊어만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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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답고 싶지 않은 非詩의 길 - 마경덕
- 강희안 시집 <나탈리 망세의 첼로>
피카소도 자신의 예술세계를 모색하며 많은 갈등을 하였을 것이다.
피카소는 현대 회화의 아버지라 불리는 폴 세잔(Paul Cezanne)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폴 세잔 역시 기존의 그림 형식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것을 창조하기 위해 주력했다. 1907년 7월에
발표된 피카소의 작품 <아비뇽의 아가씨들>은 동료 화가들과의
컬렉션에 첫 선을 보였다. 20세기를 통틀어 가장 큰 찬사와 악명을
동시에 얻은 이 그림은 에스파냐 바르셀로나 아비뇽 거리에 있는
매음굴에 대한 화가의 기억에서 비롯되었다. 나부(裸婦) 다섯 명의
도발적인 모습에 대한 반응이 부정적이어서 피카소는 십 년이나
그림을 전시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 아픈 기억은 피카소에게
기존의 관습을 뛰어넘는 새로운 주제를 제공해 준 셈이다.
그 당시도 기존의 화법으로는 명성을 얻기 어려웠을 것이다.
다른 화가의 그림과 비슷해서는 개인의 창작물로서 인정받을 수
없었기에 기존의 온전한 형태를 버려야 했다. 그래서 평면에서
입체를 만드는 일이 시작되었다. 팔다리조차 제자리에 있지 않아
기형적인 모습이었다. 눈은 정면을 바라보는데 그 얼굴은 측면으로
몸통을 작은 면들로 나눠져 있어 어느 비평가는 그것은 마치 부서진
유리 파편 같다고 말했다. 피카소가 창조한 입체는 바로 눈앞에
사물이 위치해 있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공간을 들쭉날쭉 표현해
관람자에게 어지럽고 불편함으로 기억되었다. 그것은 시각적인
도전이었다. 어느 평론가는 실험적인 강희안의 시들은 시적 분열이
정교해질수록 ‘세계를 균열시키는 미적 강도는 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시적 분열은 단단한 세계의 ‘내핵’을 파쇄하는 데 그 궁극이
있다는 것이다. 시적 충격을 주기에 충분한 그의 실험시는 새롭지만
난해하지 않다. 그는 예술과 현실을 잘 융화시킬 줄 안다.
시가 될 수 없는 것들도 그의 손을 거치면 시라는 작품으로 새롭게
태어난다.
[출처] 파편의 빛 / 강희안|작성자 동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