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몽과 동명왕이 동일인이냐 아니냐라는 논란이 있는데 동일인이 아니라는 설에 대해서 그것의 합당성을 인정한다면 그 문제를 이렇게 해석합니다.
일단 고씨왕조의 성립시기가 삼국사기의 고구려건국연대라고 가정할 경우 의문을 제기할만한것으로 그때 고씨왕조의 창업자가 주몽이라고 단정하기에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 생겨버립니다.
주몽이 고구려라는 나라 자체를 창업한것이 아닌 그 이전에 이미 최소한도로 5부족연맹체형태의 고구려라는 국가가 존재했고 소노부가 주도권을 쥐고 있었던 상태에서 어떻게 방금 부여에서 내려온 주몽이 즉각 새로운 왕조창업자가 될만큼 정치구도를 뒤엎을힘을 보유할수 있었을까?
주몽을 고씨왕조창업자라고 한다면 왕건이나 이성계와 같은 인물이라는 의미가 되어버립니다.
그렇다고 해서 주몽을 군사, 경제적으로 막강한 힘을 보유한 외부정복자라고 할만한 단서도 현재로써는 전무한 실정입니다.
일설에는 소서노세력과의 결탁을 들기는 하지만 그렇다 해도 이미 소노부세력이 기존에 왕권을 뒤고 있는 상황에서 소서노세력이 주몽을 영입해서 쿠테타라도 일으킬만큼 힘을 보유했을까도 의문시됩니다.
그러니 결론은 주몽은 삼국사기에 씌어진 그 시대보다는 최소한 수십년이상은 앞서 생존했던 인물이고 주몽의 몇대후손으로 나중에 고씨왕조를 창업한 창업주를 동명왕으로 비정하는 것이 아무래도 논리적으로 설득력이 높을듯 합니다.
소서노 세력과의 결탁문제도 그러합니다.
세력결탁으로 역량을 키우러고 해도 다소간의 시간이 필요하기에 일단은 주몽이 소서노세력과 결탁을 했더라도 소노부를 제치고 왕권을 획득하기까지는 적정시간이 소요되는것이 상식입니다.
주몽을 고구려의 창업주라고 생각하는것은 후대에 와서 와전된것이 분명한데 조선태조 이성계가 왕위에 오른후 그의 4대조를 모두 왕에 추존했는데 어떻게 역사기록이 부실하다보니 이성계의 고조부인 도조가 조선왕조의 시조인냥 인식되었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것입니다.
조선상고사에서도 주몽의 생존연대를 삼국사기보다 백여년정도 앞당겨 기록하고 있습니다.
만일 그 기록의 신빙성을 인정한다면 우선 주몽이라는 인물의 생존시기에서 고씨왕조성립까지의 주몽후손세력의 성장이라는 측면이 설득력을 얻게 됩니다.
첫댓글추모가 건너올 당시 고구려는 강력한 중앙집권체제의 국가는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5부족 연맹 체제인 형태인 국가에서 쿠데타를 일으키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이는 모본왕까지의 해씨 왕조 대신 태조대왕부터 고씨 왕조가 다시 시작될 때의 과정이 그 근거가 됩니다.
그리고 이성계와 추모를 비교하셨는데, 비교하는 거 자체가 모순된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두 인물이 처했던 상황은 너무나 다릅니다. 졸본 부여는 5부족 체제였고 고려는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였습니다. 추모가 이성계처럼 쿠데타를 일으켜 왕이 되었다 해도, 이성계처럼 욕 먹을 일은 아닙니다.
첫댓글 추모가 건너올 당시 고구려는 강력한 중앙집권체제의 국가는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5부족 연맹 체제인 형태인 국가에서 쿠데타를 일으키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이는 모본왕까지의 해씨 왕조 대신 태조대왕부터 고씨 왕조가 다시 시작될 때의 과정이 그 근거가 됩니다.
모본왕 당시의 고구려가 추모 당시의 고구려보다 훨씬 더 중앙집권적이었던 것을 볼 때, 추모가 소서노 세력과 결탁하여 쿠데타를 일으켜 새 왕조를 세우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성계와 추모를 비교하셨는데, 비교하는 거 자체가 모순된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두 인물이 처했던 상황은 너무나 다릅니다. 졸본 부여는 5부족 체제였고 고려는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였습니다. 추모가 이성계처럼 쿠데타를 일으켜 왕이 되었다 해도, 이성계처럼 욕 먹을 일은 아닙니다.
당시 고구려사회가 하나의 통일된 집권적 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주몽집단이 고구려의 중심세력으로 자리잡기가 오히려 유리했을겁니다. 선구자님은 주몽의 남하 이전의 고구려의 상황을 마치 고려와 같은 중앙집권적인 국가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군요.
가끔씩 느끼는 거지만 선구자님은 글 쓰실 때 말을 좀 빙빙 돌리는 경향이 있으신거 같네요. 그런 점은 좀 고치셨으면 싶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