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를 잘 보지 않는 편이지만 KBS 2 방송 수목드라마 <왕의 얼굴>은 빠지지 않고 봤습니다. 물론 권력지향적인 권모술수와 궁중의 권력암투, 사랑이야기로 치부 할 수 있지만 지난 5일 밤 10시 방송된 최종회에서 <왕의 얼굴> 드라마의 결론이라 할 수 있는 명대사가 압권이었습니다.
광해는 역모를 자백하라는 선조에게 용안비서(龍顏祕書)를 가지고 있음을 밝히며 왕의 얼굴에서 백성의 얼굴을 보아야 한다는 대사입니다. <왕의 얼굴>드라마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하곘습니까? 그것은 바로 지금 우리에게 대통령을 비롯한 지도자들이 자신의 정치와 당을 위한 얼굴이 아닌 <백성의 얼굴>을 지녀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져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왕의 얼굴>에서 또 하나의 내 가슴에 남는 명대사가 있습니다. 광해는 신하 허균에게 “내가 성군의 길을 가지 못할 때에는 자네가 잊지 말고 나를 한없이 질타해주게. 나를 채찍질해줘야 한다” 는 대사입니다. 이 또한 대통령을 비롯한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정치적 채찍의 지혜라 할 수 있습니다.
<왕의 얼굴>에서 탐욕과 권력의 힘을 보는 것이 아니라 백성들의 얼굴을 봐야한다는 메시지, <백성들의 얼굴>이 바로 <왕의 얼굴> 이라는 메시지에서 현재 우리에게 던져주는 메시지는 참으로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대통령의 얼굴>에서 <국민들의 얼굴>을 봐야 진정 우리나라가 좋은 나라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드라마에서 광해의 아버지 선조는 자신의 얼굴이 용안비서(龍顏祕書)에 적힌 성군(聖君)의 얼굴이 아닌 것으로 인해 고뇌했습니다. 자신이 용안비서(龍顏祕書)가 요구하는 왕의 자격기준에 부족하자 용안비서(龍顏祕書)를 없애버리라고 어명을 내렸지만 그 용안비서는(龍顏祕書) 우여곡절 끝에 광해의 손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역시 진리와 정도는 어느 한사람의 욕심에 좌우되지 않는다는 교훈을 우리는 배웠습니다.
드라마에서 왕이 되고 싶었던 김도치에게 광해는 진짜 왕 즉 지도자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대사도 명 대사였습니다 “네 놈은 그 자리가 온갖 권세와 특권을 누리는 자리로 보이더냐? 왕의 자리는 이 땅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책임을 져야하는 자리다. 돌아가신 선왕이 그리 번뇌하셨고, 나 역시 지금 이리도 두려워하는 것이다. 네가 그 자리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자격이 없는 것이다” 입니다.
결국 <왕의 얼굴> 드라마의 가장 큰 메시지는 진정한 지도자의 의미입니다. <왕의 얼굴>에 걸 맞는 특정한 관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백성의 얼굴을 살피는 성군이 진짜 왕이라는 것이지요. 백성을 위한 왕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결론입니다. <왕의 얼굴>에서 백성의 웃는 얼굴, 우는 얼굴 백성의 마음을 담아내어야 진정 성군이라는 거지요 . 이쯤에서 한국교회 안에 현재 처해지고 있는 상황을 한번 살펴봅시다. 한동안 상가교회, 개척교회가 사라지는가 싶더니만 요즘 들어서 제가 사는 도시동네 한 바퀴를 둘러보았더니 상가교회, 개척교회가 눈에 많이 띄었습니다.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안수 받은 목사들이 개척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한국사회로부터 신뢰도가 저하되다 못해 추락하고 있는 이 마당에 전도가 되고 성도들이 모여들지 의심스럽습니다. 어떻든 간에 다시금 <왕의 얼굴> 드라마에서 저는 <목사의 얼굴>을 대비하고 싶은 마음 생겨 이글을 쓰고 있습니다. 한국교회의 개교회의 대표는 목사입니다.
목사를 정점으로 교회가 운영되어 집니다. 따라서 성도들의 모습은 곧 그 교회 목사 얼굴로 모아집니다. 교회 성도들의 희로애락의 모습이 목사의 희로애락으로 나타납니다. <목사의 얼굴>은 어찌보면 용안비서(龍顏祕書)가 요구하는<왕의 얼굴>보다 더 엄격한 조건들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성경(聖經) 66권 전체가 <목사의 얼굴> 조건이기 때문입니다. 디도서.1장 7절에 감독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책망할 것이 없고 제 고집대로 하지 아니하며 급히 분내지 아니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며 이 한구절에도 충족되지 못하는 목사들이 많이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목사는 교회 지도자입니다 따라서 지도자는 성경에서 요구하는 지도자의 덕목과 또한 고매한 성품은 물론이고 사회적 덕망과 인격을 겸비해야 하고 양심적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두렵게 생각하고 복음적 사명을 목숨같이 귀하게 여겨야 하지만 이와 상반되는 행동으로 화인 맞은 양심과 얼굴에 철판을 깔고 있는 목사들이 있기에 한국교회회의 신뢰도는 저하되고 있습니다.
드라마 <왕의 얼굴>에서 한국교회는 <목사의 얼굴>을 가진 목사들이 얼마나 될지 한번 자문 해 봅니다. <왕의 얼굴>이 <백성의 얼굴>이라면 <목사의 얼굴>은 <예수님의 얼굴>이어야 합니다.
한국교회 목사의 얼굴에서 예수님의 얼굴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런 목사들은 삯군 목사입니다. <목사의 얼굴>에서 교회 성도들의 고통 받고 있는 삶의 얼굴이 그려져야 합니다. 그러지 못하고 사치스런 귀족의 얼굴로 목회를 한다면 그것 또한 성경에서 요구하고 있는 <목사의 얼굴>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드라마에서 왕이 되고 싶었던 김도치에게 광해는 네 놈은 그 자리가 온갖 권세와 특권을 누리는 자리로 보이더냐? 왕의 자리는 이 땅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책임을 져야하는 자리다. 돌아가신 선왕이 그리 번뇌하셨고, 나 역시 지금 이리도 두려워하는 것이다. 네가 그 자리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자격이 없는 것이다” 대사를 광해 버젼으로 고쳐 보면 이렇습니다.
“목사 아니 당회장 그 자리가 온갖 권세와 특권을 누리는 자리로 보이더냐? 목사의 직분은 한국교회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책임을 져야 하는 자리이다. 일제 강점기에 순교하신 순교자들이 그렇게 기도했고 나 역시 두려워 하는 것이다. 네가 하나님의 종 목사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가 때문에 지격이 없는 것이다” 라고 소리를 지를 것으로 생각합니다. 정말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을 잦추어야 하는지 일꺠워 주는 명대사였습니다
<왕의 얼굴>에서 광해는 신하 허균에게 “내가 성군의 길을 가지 못할 때에는 자네가 잊지 말고 나를 한없이 질타해주게. 나를 채찍질해줘야 한다” 는 대사입니다.
이에 반해 한국교회 목사는 목사의 바른 길을 가지 못할 때 자신을 질타하고 채찍질 해 워야 한다는 겸허한 권력의 의지를 가질 꿈도 꾸지 못하고 있습니다. 목사의 말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생각하고 있는 이 마당에 꿈도 꾸지 못할 요구입니다.
감히 그 누구도 목사의 잘못을 말하지 못하도록 성역시 하고 있습니다. 그런 고언과 채찍질을 하지 못하는 구조이기에 한국교회는 타락의 길로 가고 있다고 봅니다. 목사를 하나님의 종으로, 선지자로, 목사를 우상시하기에 성도들은 마치 당산나무를 건드리면 잘 못될 수 있다는 무속적 믿음으로 목사를 그리 대하고 있습니다. 종교개혁의 정신이 어느때보다 퇴색하고 있는 한국교회가 정말 한심스럽니다.
성경에서 요구하고 있는 목사의 자격 조건 기준이 지키기는 힘들다고 하더라도 <왕의 얼굴>에서 제시하고 있는 메시지만이라도 <목사의 얼굴> 영양가로 받아들여진다면 한국교회는 희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회가 경매로 넘어가고 수없는 반사회적인 범죄의 병리적 현상과 한국교회 신뢰도 추락의 유발인자가 목사들이 그 꼭지점이라 생각하는 이 상황에서 한국교회는 <왕의 얼굴> 드라마에서 배워야 할 점이 많은 것 같아 감히 뼈를 깍는 아픈 마음으로 적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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