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쉬킨의 에브게니 오네긴
작가 ; 알렉산드르 푸퓌킨(1779-1837)
초판 발행 ; 1833 (완간 - 1837)
푸시킨 자신이 《예브게니 오네긴》에 붙인 부제 ‘운문 소설’은 독자에게 장르의 문제를 제기한다. 서구 문학의 소네트를 빌려와 자신의 ‘소설’에 맞는 형식으로 재창조한 셈인데, 특히 ‘오네긴 연’은 완벽한 시형식의 형식미와 독창성으로 인해 러시아문학사에서 모방을 불허하는 독보적인 연 형식으로 남아 있다. 고리키가 ‘최초의 최초,’ 라 하였고, 고골리가 ‘러시아 영혼이 가장 비범한 발현’이라고 찬사하였다.
도시의 사교 생활에 권태를 느낀 오네긴은 친구에게 결투를 신청하여 그를 죽이고 만다. 순진한 시골 처녀 타티아나가 오네긴을 사랑하나 그가 타티아나에게서 사랑을 깨달았을 때는 그녀는 이미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되어 있었다.
주인공 예브게니 오네긴은 최근에 사망한 친척의 유산 상속인이 되어 시골 영지에 가는데 그곳에서 이웃 지주인 렌스키와 그의 애인인 올가의 집안과 친분을 맺게 된다. 올가의 언니 타티야나는 오네긴에게 사랑을 고백하지만 오네긴은 그녀의 사랑을 냉정하게 거절하고 사소한 불화가 원인이 되어 친구 렌스키와 결투를 하여 그를 죽게 한다. 몇 년 뒤 오네긴은 페테르부르크에서 우아한 사교계의 여왕으로 변모한 공작부인 타티야나에게 열렬한 사랑을 느끼지만 이번에는 타티야나가 그의 사랑을 거절한다.
이렇다 할 사건도 속 시원한 결말도 없는 이 단순한 플롯을 비롯한 평면적 인물, 개연성 부족, 불분명한 주제 등의 작품 외적인 특성은 모두 전통적인 소설의 기본 조건에서 이탈한 것이다. 이렇게 “소설로부터 자유로운” 소설은 형식적 제한과 결합해 기묘하게 이율배반적인 ‘운문 소설’을 창조한다. 시클롭스키는 서구에서 들어온 문학의 요소를 패러디하며 또 그럼으로써 “정상적인” 소설 장르를 패러디한 이 작품을 가리켜 “패러디의 소설이자 소설의 패러디”라 일컬은 바 있다. 푸시킨은 시를 넘어서 소설로 간 것이 아니라 시도 소설도 모두 넘어서 독창적인 새 장르의 영역으로 들어간 것이다.
이 소설이 성공한 부분에 대해서 의견이 분분하다 러시아계 미국 작가 나보코프는 ‘지금까지 러시아에 없었던 시적 멜로디를 가진 언어가 가장 큰 원인’이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러시어 원어가 아닌 번역판으로는 소설의 참 맛을 느낄 수 없다.
첫댓글 <푸쉬킨>
알렉산드르 세르게비치 푸시킨(Aleksan-dr Sergeevich Pushkin) 러시아 문학의 기초를 이룩한 국민적 시인. 1799년에 모스크바의 명문 귀족의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혈통적으로 아프리카의 피가 섞여 있었다. 어려서부터 라시느, 볼테르, 루소, 그리스·로마의 고전(古典)에 친숙하였고, 12살 때 짜르스코에 쎄로의 리쩨(제실 고등학교;帝室高等學校)에 입학하여 서구식의 교육을 받고, 큐헤리베케리, 데리뷔크 등과 친교를 맺었다. 1817년에 6년간의 리쩨 생활을 마치고, 외무성(外務省) 8등관(等官) 관리가 되었다. 상류 사회에서 관능적인 환락 생활에 탐닉하는 한편, 시작(詩作)에 몰두하여, 당시의 문단의 대가 카람진, 쥬코프스키 등에 의하여 그 재능이 높이 평가되었다.
1820년, 자유주의적 기분에 넘친 격렬한 정치시(政治詩)가 알렉산드르 1세의 노여움을 사서 남부 러시아로 추방되고, 크리미아, 코카사스, 키시네프, 오데사 등을 전전하다가, 1824년 미하일로프스코에에 도착하였고, 여기서 러시아의 민중과 직접 접촉함으로써 깊은 공감을 얻었다. 이 시기에 바이런 열(熱)이 차츰 식어지고, 셰익스피어에 대한 관심이 커졌고, 『보리스
『보리스 고두노프』를 완성하였다. 다음 해인 25년에 농노제의 폐지, 공화제의 실현 등의 요구를 내세운 데카브리스트의 난(亂)이 일어나고, 학습원 시절의 학우들이 많이 이에 가담하였다.
댓글 2
주모자의 처형(處形) 후, 당국으로부터의 명령에 의하여 모스크바로 출두하고, 여기서 니콜라이 1세로부터 직접 심문을 받고, 추방의 형(形)은 면제되었으나, 엄격한 감시를 받게 되었다. 1829년 댄스파티에서 나탈리야 곤챠로바(당시 16살)를 알게 되고, 결혼을 신청하여 다음 해 30년 약혼이 성립되었다. 영지(領地) 검증(檢證)을 위하여 볼지노를 방문하였는데, 콜레라의 유행으로 발이 묶이어, 3개월간의 장기 체류가 되었다. 이 기간에 「볼지노의 가을」이라고 불리우는 이상한 상상력(想像力)의 개화(開花)를 경험하고, 8년의 세월이 결려 집필한
『예브게니·오네긴』을 완성하고, 이어 『돌의 손님』『인색한 기사(騎士)』벨킨 이야기』등을 집필하였다. 31년에 결혼하였는데, 사교계의 꽃이 된 아내 나타리야의 낭비와 바람기로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곤경에 빠지게 되었다. 궁정 내부에서의 고립화(孤立化)가 깊어지는 속에서, 『청동의 기사(騎士)』『스페이드의 여왕』『대위의
궁정 내부에서의 고립화(孤立化)가 깊어지는 속에서, 『청동의 기사(騎士)』『스페이드의 여왕』『대위의 딸』등 만년의 걸작 소설들을 완성하였다.
1837년, 염문(艶聞)이 끊이지 않던 나탈리야와 청년 근위사관(近衛士官) 단테스의 밀통(密痛)이 표면화되어, 2월 8일 페테르부르크 교외에서 결투하여, 복부에 치명상을 입고, 이틀 후 37세의 생애를 마쳤다.
1812년에 나폴레옹이 러시아를 침공하여 패퇴당하였다. 이때 민족적 자각이 생기면서 러시아 이념이 만들어졌다.
‘러시아는 동양(슬라브주의)인가, 서양인가의 문제를 다루기 시작했다.’
1825년에 데카브리스트(12월 당원)의 반란이 있었다. 이들은 러시아의 전제정치와 농노제도에 항거했다. 데카브리스트는 근본적으로는 황제에 대한 저항 운동이다 이와같은 암울한 현실을 폭로하는 예술작품은 근본적으로 민중성을 띈다.
이런 작품에서 러시아 후기 낭만주의가 나타났다.
1830-40년 대의 러시아에서는 슬라브주의자(민족주이자)와 서구주의자들이 사회의 발전방향을 논하였다.
슬라브주의자들은 러시아 정교의 우월성과 역사적 사명을 기본으로 하여, 서구와는 다르게 독자적인 길을 걸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교적인 사랑과 형제애, 자유를 근간으로 하여 농민 공동체를 세운다. 공동체는 조화로운 삶을 추구해야 한다.
즉 슬라브주의자들의 중심 사상은 ‘공동체 주의’이다.
한편으로 반대편의 서구주의자들을 보자.
유럽화된 러시아인은 서구인들은 러시아 현실 문제를 개혁해야 한다는 데는 무관심했다. 귀족출신으로 무위도식하는 인간형으로 오네긴은 바로 이런 유형의 사람이다. 사회적응에 실패하고 (사회 변혁에 동참하지 못하고.) 무뢰한의 생활에 젖어있다.
결투나 신청하는 냉혈한이 되어 있다. 결투나 신청하고, 연애사건에 휘말려 있다. 절망감에 허탈해 하고 있다. 러시아의 입장에서 보면 이런 인간은 러시아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들도 변혁에는 무관심하다. 러시아의 입장에서 이들은 ‘잉여인간’이다.
이들은 침실에서 뒹굴면서 무료한 시간을 보낸다. 공상으로 소일한다. 러시아 문학은 이런 인간을 잉여인간의 모델로 내세운다. 오네긴이다.
푸쉬킨은 이 작품 외에서도 멋진 시를 남겼다.
보기로
“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 하지 마라.
설움의 날을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이 오고 말리니
마음은 미래에 살고
현재는 언제나 슬픈 것
모든 것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지나간 것은 또 그리움이 되느니라.
이 시는 대구문화예술회관 앞 성당못 남쪽 못둑에도 세워져 있습니다.
글씨는 우리 문협 김부기 수필가님께서 쓰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