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라는 장르는 아름다운 세계를 구현해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본래의 목적은 세상의 위협과 위험으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어른들의 강박에서 출발한다. 집 밖은 무서운 짐승과 마녀가 도사리고 언제든 너를 해할 준비를 하고 있다. 어린이란 보호와 통제라는 수단이 필요한 존재로 인식했고 어른이 되기 이전에는 자신의 세계조차 가지지 못하는 불안정한 상태로 인식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어른이란 이들은 자신이 겪었던 과오나 상처를 자라는 세대가 경험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기도 할 것이다.
동화를 통해 컨트롤하려고 했던 것은 가족이라는 기본 단위로 시작하는 사회라는 구성체였고 비대해진 사회는 그 형태를 유지하고 개인을 지키기 위해 개인을 희생시키는 모순적인 이상인 전체주의를 만들어낸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전체주의의 정점에 서있는 일본, 아니 현재의 세계에 빛이 닿지 않는 낮은 곳을 살피고 목소리를 들으려 한다. 차별받고 소외된 존재들, 사회라는 하얀 선 밖으로 밀려난 이들을 다루면서 그들을 소재나 대상이 아닌 엄연히 자신의 사고와 정체성을 지닌 존재로 그려내려 했었다. 그의 영화 속에서 아이들은 당연하다고 믿고 살아가는 어른들에게 왜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현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기도 하고,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깨달아간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신작 ‘괴물’ 역시 그런 관념의 연장선에 놓인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보통이라고 하는 사회적 시선이자 통념이 어떻게 사람을 내모는 것인지,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사실들이 폭력이 되어가는 과정들을 다각도로 비춰보며 괴물이 아닌 괴물을 만들어내고 있는 우리에 대해 고민하게 한다.
영화는 하나의 사건의 바라보는 다른 시점들을 차례로 보여주며 이야기를 풀어간다. 시내에 대형 화재를 시작으로 범인이 누구인지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고, 일상의 불안 요소가 된다. 그리고 미나토의 엄마 사오리는 어느 날부터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하는 아들의 모습에 그 방화에 자신의 아들이 연관이 되어있을까 불안해한다. 방화라는 사건은 평범하던 일상에 작은 균열을 만들어내고 이야기는 서스펜스에서 촉발된 스릴러를 전개해 나가다가 인간의 근원적 심리를 건드리는 오컬트적인 분위기까지 자아낸다. 거기에 괴물이라는 붉은색 글씨의 제목까지 더해지니 관객들은 직유나 은유로써의 괴물이 누구인지 추리를 시작하게 된다. 그 시각은 초반부의 이야기를 주도하는 사오리를 따라가게 된다. 그녀는 미나토를 홀로 키우며 스스로 강해진 여성이다. 화재를 진압하러 가는 소방대원에게 큰소리로 응원을 하고 아들의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쿨한 성격의 인물로 묘사된다. 민폐 끼치는 것을 상당히 큰 문제로 받아들이는 일본 사회에선 조금은 튀어 보인다. 그런 사오리는 미나토가 담임에게 폭력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고 학교로 찾아가고 다소 이상한 반응에 교장과 선생님에게 맞서는 모습은 괴물의 정체를 찾으려는 정의로 인식하게 된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명백하게 존재하고 괴물은 누구인가?사오리의 시점에서 함께 추리를 해가던 관객은 뒤통수를 맞는 것처럼 그간 따라간 과정을 담임의 시선으로 반박당한다. 사건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점을 통해 우리가 보아온 그렇다고 믿어온 것들이 사실의 파편에 불과하고 관점을 조금만 달리해도 전혀 다른 진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영화는 섬뜩하게 보여준다. 다시 말해 ‘괴물’은 특정한 대상을 두고 괴물로 만들어 책임을 따져 묻는 것이 과연 절대적 가치를 지니고 있나를 묻고 있다. 따라서 미니토와 요리가 함께 읊조리는 “괴물은 누구게”라는 놀이의 울림은 영화 중반부까지 괴물로 분류될 누군가를 색출하는 행위가 얼마나 괴물 같은 행위인지 우리들 스스로에게 거울처럼 반전시켜 투사한다.
비극은 그 거울이 담아내도 보지 않고 외면했던 모두가 조금씩 보태는 잘못으로부터 온다. 엄마 사오리처럼 호리 선생이 걸스바에 다닌다는 뜬소문을 사실로 믿는다거나 호리 선생의 동료들처럼 나에게 피해가 오지 않으면 애써 외면하기도 하고 담임처럼 싱글맘은 아이를 과보호를 한다는 편견에 확증편향에 빠지기도 하고, 교장선생님처럼 자신의 잘못을 회피하려다가 더 무거운 중압감에 눌리기도 한다. 아이들은 또 어떤가? 마음을 감추려던 미나토의 작은 거짓말은 쌓이고 쌓여 다른 사람들을 상처 입히고 요리의 복수심은 큰 불을 내기도 한다. 이 모든 일들이 벌어지는 동안 그들은 서로에게 한없이 무심했고 사소하다 생각했던 편견과 보통이라는 제약은 어느 누구에게도 책임 소재를 물을 수 없는 참담한 현실을 목도하게 한다. 이 찜찜하고도 지루한 진실을 사람들은 받아들이지 못하고 기어이 괴물을 만들고 그에게 뒤집어 씌우는 방식으로 매듭을 지으려 한다. 영화는 우리 모두가 알면서도 암묵적으로 외면했던 현실의 민낯을 드러내기 위해 엄마 사오리를 통해 책임 추궁의 과정을 보여주고 그에 반박하는 담임의 시점을 통해 반론을 하는 구조를 취한다. 그를 통해 사건을 대하는 사회적 태도와 인간이란 얼마나 파편화된 존재인지를 스스로 질문하게 한다.
“괴물”의 미학은 이런 교훈적 일갈로 영화를 끌고 가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추궁과 반론의 과정을 거치면 전해지지 않은 진심 같은 아이들의 시선을 만든다. 미나토는 아빠가 외도를 하다가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엄마는 보통의 가족을 이루고 살아야 한다는 강박으로 숨통을 조이게 하고 요리는 아버지로부터 자신의 성향을 인정받지 못하고 뇌가 돼지의 것으로 만들어져서 그렇다는 부정한 존재로 취급받는다. 그런 아이들에게 흰 선 밖은 지옥이라는 엄마의 말과 일면만 보고 상황을 인지하려는 담임, 누구도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 학교와 집은 보통이라는 강박으로 자신을 옥죌 뿐이다. 그것이 아이들의 위한 선의의 거짓이든 강압이든 이미 자신들이 가질 행복과 머무를 세계를 찾아낼 만큼 주체적으로 성장해 있었다. 산사태가 아지트를 덮치고 열차 밑 수로로 빠져나오며 “흙에 파묻혔으니 이제 다시 태어나는 걸까 “라는 질문과 “화목한 가정을 이루는 정상인“이라는 범주에 들었갔을까 같은 질문에도 “그런 일은 없어. 원래대로야”라는 답변을 하듯 그들은 이미 자신의 길을 찾았다. 그러니 결말에 빛을 향해 뛰어가는 아이들의 모습이 실제인지 환상인지는 중요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비현실은 결국 잠깐이나마 마음껏 뛰고 놀 해방의 순간을 만들어 줄 것이다. 우주가 팽창하다 한계에 다다르면 모든 것이 무로 돌아가 아픔마저도 없는 것이 될 거라는 빅크런치 같은 몽상을 안고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전해주고 싶었던 이상적 결말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이 영화는 괴물 찾기에서 시작해 무엇이 괴물을 만든 가로 그리고는 괴물이면 안 되는 건가?라는 질문으로 귀결된다. 괴물은 태풍에 흩날리는 그림들, 하구뚝에 넘치는 물, 흰 선 밖으로 나가려는 존재, 폐쇄된 선로에서 빅크런치를 꿈꾸는 이들이다. 가장 소소한 행복인 내 마음을 이해하는 존재와 함께하는 것은 사회라는 범주, 그 안에서 돼지의 뇌를 가진 아이들은 서로가 되어주고 싶었다. 교장 선생님은 트럼펫으로 마음에 쌓인 것을 뱉어내는 것을 배웠고, 호리 선생님은 활자 안에 진심을 넣는 법을 알려주었지만 글과 목소리는 보통이라는 벽을 넘지 못했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는다. 작은 잘못들이 모여 비극을 만들어 내듯 그런 작은 이해들과 간절함이 때로는 누군가를 구하기도 한다고 믿는다. 괴물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멀리하고 등한시하고 책임의 대상으로써가 아닌 어디선가 소음처럼 드릴 트럼펫 소리를 지르는 누군가에게, 그가 남기는 글이 들려주는 목소리에 한번 귀를 기울여 보는 건 어떨까 싶다. 언젠가 누군가에게 한없이 차가워지거나 외면하고 싶을 때 떠올려 보길 바란다. 한 번은 뜨거웠던 적이 있던 자신을, 괴물이라 불리는 이의 이전 모습을
* 한대수 / ”행복의 나라“ 가사에서 가져옴.
첫댓글 저도 괴물 너무 인상 깊게 봤어요
아직 정리가 안되서 글을 못쓰고 있네요
주말에 한번 더 볼시간이되면 글 써볼까 합니다. 영화보면서 참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정성스럽고 좋은글 너무 감사합니다. 괴물 엔딩장면은 올해 저에겐 올해 최고의 엔딩이었습니다.
소대님의 글에서는 작은것들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져서 참 좋습니다. '괴물이면 안되는 건가?' 라는 말에서 또 한번 위로 받고 가네요. 소대님! 글 꾸준히 올려주세요! 너무너무너무 잘읽었습니다!
(글쓰는) 괴물 소대가리 님의 이전 모습은 어땠습니까. 글은 언제부터 잘 쓰셨나요.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괴물은 꼭 필요한 메세지를 너무 어렵지도 너무 쉽지도 않게 전달해줘서 좋았습니다.
일본에선 이 정도 사회적 메세지도 전하는 감독이 없는 것 같아요.
괴물.보면서 내가 느꼈던 감정,생각들이 소대가리님,글에서 정리되는 느낌입니다. 공감 되는 글 감사합니다
새벽에 올라온 글을 읽고
영화관 스케줄표를 보니 맞는 시간은 하나도 없고..
영화 보게되면 글을 더 가까이 느끼며 읽게 되겠죠? ㅎ
다시 올게요.
감사히 잘 읽고 갑니다~
영화보고 읽어야 더 감흥이 클거 같은데. 영화를 못 봐서 큰일이네요 ㅎㅎ
안볼려고 했는데 소대님 리뷰 보고 꼭 보고싶어졌음요
괴물 영화에 한대수 행복의 나라로 라니요!! 너무나 어울리는 조합입니다.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감정들과 사고들이 소대가리님 글을 읽으면서 정리되는 느낌이네요. 다시 한 번 보고 싶어지는 영화에요.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괴물을 찾고 있던 내자신이 어쩌면 괴물아닐까..하는 영화였는데 소대님이 너무나 친절하게 설명해주셨네요.. 각본에 풍부한 감성이 녹아있다고 생각해요..맑고 투명한 감독의 연출력까지...이렇게 좋은 영화가 생각보다 관수가 많지 않아 아쉬웠어요..감상평 굿입니다!!^^
많은 생각이 드는 작품이었는데 무엇 하나 놓치지 않고 꼼꼼히 써내려간 리뷰 잘 봤습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