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트윈스의 ‘슈퍼소닉’ 이대형(27)이 지난 주말 뜻하지 않게 대기록 도전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지난 4일 잠실구장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이대형은 선발 출장하지 않은 채 벤치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LG 코칭스태프는 최근 타격 부진으로 슬럼프에 빠진 이대형을 후보로 돌리고 중견수에 이병규를 선발 출장시켰습니다.
빠른 발을 활용한 폭넓은 외야 수비를 자랑하는 이대형이 빠지자 LG 외야진은 실수를 연발하며 롯데에 6-2로 끌려가고 있었습니다. 사단은 2-6으로 뒤진 LG의 8회초 수비에서 벌어졌습니다. 2사 3루에서 갑작스럽게 굵은 비가 퍼붓기 시작하자 김병주 구심은 게임일시중단을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급하게 선수단을 덕아웃으로 철수시키고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비는 30분을 기다려도 그칠 줄 모르고 게속 쏟아졌고 심판진은 강우콜드게임을 선언, 롯데의 승리로 경기가 끝났습니다. 1시간 가량 집중적으로 쏟아진 소나기로 인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불거진 강우콜드게임으로 LG 덕아웃에 있던 좌타 외야수 이대형은 유탄을 맞고 말았습니다. 8회말 공격 때 대타나 9회초 대수비로 출장할 예정이었으나 경기가 갑작스럽게 끝나버려 쓸쓸히 짐을 챙겨야했습니다.
평소 같으면 1년에 한 두 번 일어날 수 있는 강우콜드게임으로 여길 수도 있지만 이대형과 LG 벤치는 심판진과 하늘을 원망해야 했습니다. 이대형이 2007년부터 3년 가까이 이어온 ‘연속경기 출장’이라는 기록이 뜻하지 않게 강우콜드게임과 함께 중단돼 버린 것입니다.
이대형은 2007년 9월 2일 잠실구장 한화 이글스전부터 연속경기 출장 기록을 이어왔습니다. 지난 3일 경기까지 353경기 연속 출장을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이 부문 역대 최고 기록인 최태원 KIA 타이거즈 코치의 현역 시절의 대기록(1014게임)과 비교하면 훨씬 못미치는 수치이지만 이대형의 나이 등을 감안하면 최 코치의 기록에도 충분히 도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었습니다.
이 점을 고려해 박종훈 LG 트윈스 감독은 8회말부터는 이대형을 가동할 작정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소나기가 쏟아지면서 구상에 차질이 빚어졌습니다. 구심이 게임 일시 중단을 선언하자 박 감독은 심판실로 향하던 심판위원에게 “이대형의 기록이 걸려 있다. 강우콜드게임은 천천히 판단해달라”며 사정을 얘기했습니다. 이날 경기의 승패도 중요하지만 이대형이 선발 출장을 못하고 벤치를 지키다가 연속 출장 기록이 중단될까봐 걱정이 됐던 것입니다.
박감독의 우려는 현실이 되고 말았습니다. 30분을 기다려도 비는 그치지 않았고 심판진은 규정에 따라 강우콜드게임을 선언한 것입니다. 이대형과 박종훈 감독으로선 야속한 일이지만 어찌할 수가 없었습니다.
경기 후 박 감독은 “비가 10분만 늦게 내렸어도 이대형의 출장 기록은 계속될 수 있었을텐데...”라며 몹시 아쉬워했습니다. LG 코칭스태프는 이대형이 현재 기록은 역대 최고 기록에 한참 못미치지만 이대형의 실력, 자질, 나이 등을 고려하면 충분히 도전할 수 있었다는 판단입니다. 군문제도 해결된 상태로 앞으로 7년 정도만 더 뛰면 최태원 코치의 기록돌파도 노려볼만했습니다. 그러기에 아쉬움이 더욱 컸습니다.
이대형은 빠른 발과 탄탄한 체력을 지녀 연속 경기 출장은 계속 이어갈 수 있는 선수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타격이 부진해도 대타 혹은 대수비 요원으로 경기 출장이 충분히 가능합니다. 특히 이대형은 올 시즌 현재 도루 37개로 이 부문 단독 선두를 질주하며 4년 연속 도루왕을 향해 거침없이 달려가는 등 빠른 발이라는 비장의 무기가 있습니다. 빠른 발을 십분 활용한 넓은 수비 범위 등 뛰어난 수비 능력으로 선발 출장하지 않아도 경기 후반 대수비 요원으로도 경기에 나설 수 있는 선수입니다. 물론 부상이라는 복병을 만나지 않는 다는 가정하에서입니다.
따라서 이날도 정상적으로 9회까지 경기가 계속됐다면 이대형도 그라운드에 나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소나기로 인해 강우콜드게임이 선언됐으니. 하늘의 뜻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대형처럼 뜻하지 않게 비 때문에 연속 경기 출장 기록이 무산된 경우가 이전에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일본 프로야구 소프트뱅크에서 뛰고 있는 한화 이글스 출신의 3루수 이범호가 비운의 주인공이었습니다. 이범호는 한화 주전 3루수로서 공수에 걸쳐 맹활약하며 연속 경기 출장은 615게임까지 이어갔습니다. 하지만 2008년 6월 4일 광주구장 KIA 타이거즈전에서 허리 통증으로 선발 출전하지 않았다가 일(?)을 당했습니다.
당시 이범호는 후반 대타로 출전할 계획이었지만 경기 중 비가 쏟아져 7회 강우콜드게임으로 끝나면서 현역 통산 최다경기 연속 출장 기록을 마감했습니다. 연속 출장기록이 인정되려면 수비로 한 이닝을 완전히 마치거나 한 타석에서 타격을 완전히 종료해야 합니다. 대주자로 출장하는 것은 해당되지 않습니다. 당시 신문 기사들에 따르면 한화 측은 7회말 무사 1루에서 폭우로 경기가 중단되자 이범호의 기록 연장을 위해 1이닝이라도 더 경기를 할 것을 요청했지만 천둥 번개와 함께 비가 더 쏟아지는 바람에 경기가 그대로 끝났다고 합니다.
이범호도 이대형처럼 선발 출장을 하지 않은 채 벤치를 지키고 있다가 갑작스런 강우콜드게임으로 어이없이 연속 출장 기록이 중단된 것이죠. 이범호의 당시 기록은 역대 3위에 해당하는 것으로 정말 억울한 일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연속경기 출장으로 ‘철인’의 칭호를 받기까지는 본인의 철저한 노력 및 관리와 함께 하늘의 도움도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절감한 이대형과 LG 코칭스태프였습니다. 잔부상과 슬럼프 정도는 가볍게 극복해야함은 물론 갑작스런 기상변화에도 대처해야 진정한 ‘철인’으로 탄생할 수 있는 것이죠.
이대형과 이범호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온갖 난관을 이겨내고 1014게임 연속 출장으로 철인이 된 최태원 코치의 노력에 박수를 보낼만 합니다. 현재 현역 최다 연속 출장 기록은 두산 베어스의 좌타 강타자 김현수(22)의 361게임입니다. 김현수가 부상, 슬럼프, 우천 등의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앞으로 6년 후 최태원 코치의 기록을 뛰어넘을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집니다.
setFontSize(0);